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96화 (9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6화

시몬은 슌과 함께 마차를 타고 저택 밖으로 나왔다.

"아까 결례를 범해서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백작님."

맞은편 자리에 앉은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하자, 슌은 유쾌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냥 아까처럼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게 말해!"

"네? 그럴 수는......."

"그쪽이 나도 편하니까 하는 소리야! 알겠지?"

"아, 알겠습니다."

슌은 활기 넘치고 웃음 많은 소년이었다. 백작이라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귀족 아이들보다 더 장난기 많고 수수한 느낌?

어째서 어린 나이에 백작위와 거대한 재산을 가지게 됐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구나.'

어린 나이에 백작위를 물려받고 블루하버를 통치하는 소년. 시몬은 슌에 대해 점점 더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저기가 관광객이 가장 많은 사라 해변이야! 그리고 저쪽 골목엔 대규모 쇼핑단지가 있는데......!"

슌은 마차 밖에 보이는 명소들을 하나하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들뜬 목소리에는 영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시몬도 그의 말에 맞춰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백작님, 전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슌의 가이드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 보니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몬이 마차 문을 열어주자마자 슌이 대포알처럼 슝 하고 뛰쳐나갔다.

"잠깐만, 슌! 그러다 넘어지겠어!"

시몬이 기겁하며 뒤따라 내렸다.

우다다 계단을 오르던 슌이 중심을 잃고 휘청하며 뒤로 넘어갔다.

뒤에서 달려온 시몬이 가뿐히 슌의 두 겨드랑에 팔을 넣고는 훌쩍 들어 올려 계단 위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오!"

슌이 씩 미소 지었다.

"일 잘하는데? 시몬 형! 응! 그렇게만 하면 돼!"

"......."

안도의 한숨을 내쉰 시몬이 억지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힘든 임무 기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슌 백작님. 어서 오십시오."

전시관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좌우로 물러나며 비켜주었다. 슌이 작은 몸을 휙 돌리며 으스대듯 웃었다.

"원래 전시회는 내일모레 공개지만! 이번만큼만 내 경호원을 위해 특별히 일찍 보여주는 거야!"

"응. 그거 고마운데."

끼이이익.

커다란 대문이 열리며 전시관의 모습이 드러났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블루하버에서 열리는 차세대 언데드 전시회.

블루하버는 오랜 기간 대륙과 단절되어 독자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섬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유일종'들이 다수 살고 있다.

이 전시회는 블루하버의 몬스터를 이용해 만든 언데드를 중심으로, 새롭게 연구 중인 차세대 언데드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어!'

일단 전시회 1층 중앙에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공룡형' 스켈레톤은 그야말로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저런 스켈레톤이 공격해 온다면 전의가 확 꺾여 버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체중을 견딜 하체 부분의 밸런스 문제는 해결 못 한 모양이네.'

전시회 곳곳에 연결된 칠흑실이 저 공룡 스켈레톤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고 있었다. 대형 스켈레톤을 개발한 건 좋지만, 하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실전에서 써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시몬이 키젠에 제출할 보고서 내용을 생각하느라 잠시 한눈파는 사이, 옆에 서 있던 슌이 어느샌가 보이지 않았다.

"슌!"

시몬이 기겁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꺄륵! 하하하!"

어느새 슌은 전시장 안의 동물형 스켈레톤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랴 이랴! 가자! 출발해!"

슌이 스켈레톤의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철썩 때리자, 스켈레톤이 긴 고개를 움직여 슌을 돌아보았다.

'위, 위험해!'

그냥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소환 마법이 적용되어 있는 모양이다.

시몬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을 느끼며 달려갔다.

한 손으로 안전 펜스를 붙잡고 훌쩍 뛰어넘은 그가 두 다리에 칠흑을 집중시켰다.

'칠흑 밟기!'

시몬의 몸이 날아오르는 동시에 스켈레톤도 입을 쩍 벌리며 슌을 향해 다가왔다.

'내가 더 빠르......!'

부웅!

슌을 감싸려던 시몬의 두 팔이 허공을 갈랐다. 어느새 슌의 허리를 감싼 녹색 액체가 그를 데려가고 있었고, 시몬은 스켈레톤과 얼굴을 부딪치고 말았다.

'아파!'

시몬이 얼굴을 감싸 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명색이 경호원이란 자가 그렇게 한눈팔아서 되겠나?"

어두운 조명 아래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눈매에 두드러진 속눈썹, 콧구멍이 작고 입가도 길었다.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고, 다른 한쪽 팔은 액체 같은 것으로 변해서 슌을 붙잡고 있었다.

남자가 슌을 내려주자 슌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핀치 삼촌!"

핀치라고 불린 남자는 다시 손을 원래대로 되돌리고는 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해야지? 여긴 움직이는 언데드도 있으니까 위험해."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 소개할게!"

슌이 시몬을 가리키며 말했다.

"키젠에서 온 최강의 경호원! 특례 1번 입학생인 시몬 폴렌티아야!"

"음."

핀치가 턱을 쓸며 시몬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핀치 니키만이라고 하네. 나도 네크로맨서야."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시몬이 악수를 위해 핀치의 손을 붙잡는 순간, 그의 손이 흐물렁 녹아내렸다. 시몬은 속으로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하하! 장난일세 장난!"

다시 원래대로 손을 되돌린 핀치가 악수한 손을 가볍게 흔든 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용돈 벌러 온 1학년이지? 어떤 물렁한 마음으로 이 휴양 섬에 왔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은 제대로 해야지. 안 그런가?"

슌을 제대로 보호하라는 질책이었다. 이에 시몬은 왼쪽 가슴에 주먹 쥔 손을 올리고는 허리를 깊게 굽혔다.

"제 불찰을 용서해 주십시오 백작님."

물론 고개를 숙인 대상은 핀치가 아니라 슌 쪽이었다.

"......."

핀치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 시몬 형! 왜 그래애!"

슌이 시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삼촌도 내 경호원 혼내는 거 그만해! 방금은 내가 잘못한 거니까!"

"하하, 혼내긴 무슨. 그냥 후배에게 충고한 거지."

핀치가 땀을 삐질 흘리며 둘러대고는, 슬쩍 시몬을 흘겨보았다.

'이거 봐라......?'

곱상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성깔은 있는 모양이다.

시몬이 고개를 들자 핀치가 크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키젠의 특례 1번 입학생이라고?"

"네."

"주위의 기대가 크겠군. 선배로서 한 가지 조언하자면, 키젠에서 배우는 지식이 모두 진리라고는 생각하지 말게. 솔직히 말해 요즘 키젠도 삐딱선을 많이 탄단 말이야. 과거엔 전설이었지만 최근의 교육 방식은 너무 낡고 고지식한 감이......."

"실례지만 핀치 선배님은."

시몬이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키젠 졸업생이신가요?"

"......."

웃고 있는 핀치의 입꼬리가 꿈틀꿈틀했다.

"크흠. 아니, 공립 네크로맨서학교 알란드에서 시작했네."

"아, 네. 그러시군요."

"자네도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되겠지만, 알란드, 시에라, 모이란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편입학 제도로 키젠에 넘어오기도 한다네. 기존 키젠 학생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유능하지!"

시몬이 생긋 미소 지었다.

"와, 대단하네요! 키젠보다 더 유능하다니. 그러면 굳이 편입으로 키젠에 넘어올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새끼가 진짜!'

안 그런 척 웃으면서 은근히 사람 신경 긁어댄다.

그렇다고 키젠을 뭐라 직접적으로 비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핀치는 화를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크흠. 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거지. 아니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핀치 삼촌! 빨리 빨리! 나랑 시몬 형한테 언데드 소개해 준다고 했잖아!"

"아, 그렇지."

핀치가 얼른 표정관리를 했다.

"학생 레벨의 이야기는 관두지. 학교를 졸업한 뒤가 네크로맨서로서 진정한 커리어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지금부터는 프로의 영역을 보여주겠네."

"기대하겠습니다."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슌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슌이 무슨 일이냐는 듯 올려다보자 시몬은 미소를 지을 뿐,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또 도망치면 혼난다.'

그런 눈빛을 미소와 함께 보냈다. 슌은 어쩐지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자, 두 분 고객님. 이쪽 작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핀치는 블루하버에 소속된 네크로맨서인 만큼, 차세대 언데드 연구의 선구자였다. 전시장에는 총 100점의 작품이 있었는데 그중 20점이 핀치의 작품이었다.

핀치의 설명을 들으며, 시몬은 솔직히 감탄했다.

성격이나 인성은 둘째치고, 실력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블루하버의 몬스터들을 이용해 참신한 기능을 가진 언데드들을 높은 퀄리티로 구축해 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언데드를 전시하는 행사라 그런가, 실용적인 부분에선 아쉽네.'

어떤 언데드들은 도무지 써먹을 방법이 없을 만큼 막막했다. 그래서 얕은 지식이나마 아쉬운 부분들을 집어서 말했다.

"이 로커 웜 스컬레톤의 꼬리는 억지로 뼈로 연결하는 것보다는 단백질이나 키틴질로 덮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이대로는 몇 번만 휘둘러도 관절이 과부화돼서, 못쓰게 될 것 같은데요."

시몬의 지적에, 핀치는 얼굴을 붉히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허, 이제 1학년이 뭘 안다고! 모든 작업엔 이유가 있네. 그렇게 앞뒤 생각없이 툭툭 아이디어를 내뱉는다고 해서 현실적인 부분이 해결되는 건 아니란 말이네!"

"아, 네. 괜히 참견해서 죄송합니다."

핀치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래서 어디를 키틴질로 덮는 게 좋겠다고?"

"?"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장을 한 바퀴 쭉 돌았다. 슌은 벌써 집중력이 떨어진 건지 하품을 쩍쩍했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은 피어의 분신을 콕콕 눌렀다.

'피어. 계세요? 잠깐만 도와주세요.'

[뭘 말이냐?]

핀치가 정신없이 설명하고 있고, 슌이 연신 하품을 하는 사이, 시몬은 교복에 매달아 둔 피어의 분신을 풀어서 슌에게 내밀었다.

"슌, 이거 봐."

"이게 뭐야?"

"콕 누르면 움직인다?"

슌이 손끝으로 피어의 분신을 콕콕 눌러보았다. 그러자 피어가 기겁하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장난감이 아니다!]

"와! 간지럽히니까 해골이 막 입을 뻐금거려!"

"신기하지?"

[소년! 당장 놈을 내게서 떨어뜨려라!]

"이렇게 꼬집으면 어떻게 돼?"

잠시 피어가 놀아주자 슌은 금방 집중력과 즐거움을 되찾았다. 그렇게 전시관 5층까지 올라왔다.

"지금부터 이번 전시회의 하이라이트를 공개하겠네."

핀치가 덮여 있는 흰 천을 내리자 커다란 어항 같은 게 나왔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스켈레톤이었다.

몸체는 해파리와 문어를 섞어놓은 듯한 외계 생명체 같은 형태였는데, 몸체가 뼈로 이루어져 있고, 주위를 물렁물렁한 액체가 뒤섞여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이 해파리 괴물의 긴 다리들이 순수한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이음쇠가 잘 맞물린 듯한 기계 다리처럼 보였지만, 틀림없이 뼈였다.

"연체 언데드 오버로드."

핀치가 웃음기를 싹 빼며 진지하게 말했다.

"재료는 심해 몬스터 크라켄일세. 심해에 사는 연체동물과 비슷한 외형인데, 특이하게도 신체의 핵심 부위가 뼈로 구성되어 있어 스켈레톤의 조건이 맞춰졌지. 심지어 이 규모가 아직 성체가 아닐세. 성체 크라켄은 아직 그 누구도 포획한 적이 없거든."

핀치가 마법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자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오버로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친......!'

시몬은 너무 놀라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뼈로 구성된 여섯 개의 긴 다리들이 유연한 연체동물의 촉수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었다. 뼈가 저렇게까지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속도는 물론 절단력까지 갖추고 있지."

핀치가 아공간에서 철판 한 장을 꺼내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오버로드가 그걸 보고 다리를 움직였다.

샤악.

어항 밖으로 나온 긴 다리가 허공을 일 자로 긋고 지나가자, 철판이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이어지는 두 번째 다리가 떨어진 철판의 중앙을 꿰뚫었다.

'와, 진짜.'

소환학도로서 이건 고문이다. 이렇게 대단한 언데드가 눈앞에 있는데 써볼 수 없다니.

핀치가 신호를 보내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다시 어항 위에 천을 덮었다.

"핀치 선배님."

"그래, 질문 있나?"

"혹시 이 언데드를 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가격은 얼마 정도 할까요?"

핀치가 픽 웃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그건 키젠으로서 하는 질문인가? 아니면."

"아뇨, 아뇨. 그냥 제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글쎄. 이건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연구품이고, 파는 물건도 아니며 내 소유도 아닐세.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잠시 고민하던 핀치가 말했다.

"최소한 1만 골드는 받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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