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7화
전시회를 나서는 순간에도, 시몬의 머릿속은 마지막에 본 '오버로드'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체 언데드는 그만큼 시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버로드에 대한 내용으로만 보고서를 써도 몇 장은 족히 넘어갈 것 같았다.
"오늘 수고 많았어 시몬 형!"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슌이 말했다.
"내일 경호 임무는 저녁 전시회 만찬에서 시작할 거야."
"만찬?"
"응! 우리 올드원 가문 사람들이랑, 전시회 손님으로 온 귀빈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 그리고 내일모레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전시회가 공개돼."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일찍 출근할 생각이었는데."
"됐어! 미리 와봐야 할 일도 없고. 만찬 두 시간 전에만 도착해 줘."
1,000골드짜리 일치고는 생각보다 복지도 괜찮았다.
그렇게 마차가 저택에 도착했고 슌은 손을 흔들며 집사들과 함께 들어갔다.
경호 임무기간 동안 숙소 비용은 모두 백작가 측에서 부담한다. 집사장은 저택에 머물러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시몬은 고사했다. 한적한 곳에서 혼자 연습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몬이 잡은 숙소는 블루하버의 핵심 구역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의 오두막이었다.
밤바다가 보이는 작은 1층집. 가격도 저렴하고 밤에는 인적도 드물어서 언데드들이 왔다 갔다 해도 문제가 없었다.
[자, 군단장님! 짠!]
에르제베트의 기분도 맞춰줄 겸, 저녁에는 그녀와 함께 와인 한잔하며 식사도 했다. 오랜만에 송장거미들도 자유롭게 모래사장을 돌아다니며 벌레나 작은 짐승들의 피를 빨아먹도록 풀어두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마자 시몬은 혼자 방 안으로 들어왔다.
'1분 1초도 헛되이 쓸 수 없어.'
시몬은 이번 임무에서 '본 아머'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게 목표였다.
심호흡하며 머리를 텅 비우고, 몸에 충분한 칠흑을 확보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두 기의 스켈레톤을 꺼내 좌우에 세웠다.
'본 아머!'
촤르르르륵!
스켈레톤들의 몸이 분해되며 시몬의 몸에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론이 보여줬던, 온몸을 완전히 뒤덮는 수준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팔다리에 연결되어 전신 근력 증강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집중. 집중.'
큰 뼈로 기둥을 세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작은 뼈들이 자리 잡자 밸런스가 급격히 흔들렸다.
본 아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간 시몬이 이론적이든 본능적이든 체득한 '뼈의 연결 순서'를 완전히 뒤집다 못해 비틀어야 한다. 척추뼈가 팔뼈의 이음새에 들어가고, 다리뼈와 목뼈가 합쳐지기도 한다. 심지어 사용하는 스켈레톤이 두 개라서, 다른 스켈레톤의 뼈 부위끼리 마구 맞물린다.
그런 소름 끼치는 이질감에서 벗어나, 오로지 '갑옷'의 형상을 맞춰내기 위해 뼈를 계획적으로 맞춰야 했다.
와르르르르르!
집중력이 깨졌다. 팔을 맞추느라 소홀하던 갈비뼈가 무너져 내렸고, 연결된 다른 부위들도 도미노처럼 흩어졌다.
시몬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였다.
"허억! 헉!"
역시 어렵다. 머드 골렘을 준비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토록 소환학에 높은 벽을 절감한 게 언제였을까 싶었다.
'다시!'
벌떡 일어난 시몬은 될 때까지 본 아머를 시도했다.
[군단장님~ 배 충분히 꺼지셨죠? 야식 가져왔어요!]
한 손에 요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온 에르제베트가 멈칫했다. 그러곤 그녀를 뒤따르고 있던 송장거미들에게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주스와 푸딩이 담긴 접시를 몸통에 올려놓고 쪼르르 다가오던 거미들도 멈춰섰다.
[역시 군단장님은 대단한 연습벌레라니까.]
-키리리리!
[니들이 먹는 벌레가 아니니까 흥분하지 마. 바보들아.]
에르제베트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었다.
* * *
"시몬 형! 왔어?"
반듯한 예복 차림의 슌이 연회장에 들어온 시몬을 반겨주었다.
"뭐야? 휴식을 줬는데 왜 더 피곤한 얼굴이야?"
"아냐, 멀쩡해."
시몬이 애써 웃었다.
사실 휴식 시간 대부분을 본 아머 훈련에 쏟느라 조금 진을 뺐었다. 그래도 중간중간에 낮잠을 자서 임무를 수행할 컨디션 정도는 충분히 맞춰왔다.
"그보다 나도 옷 갈아입어야 해?"
"딱 좋은 옷을 입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야?"
슌이 시몬이 입고 있는 세련된 키젠 교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만 좀 손보면 되겠다."
슌이 손가락을 딱 튕기자, 뒤에서 냅다 시몬의 손목을 붙잡는 우악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옆 방 의자에 앉혀진 시몬이 어버버하며 말했다.
"왜, 왜 이러세요?"
"세팅 들어갑니다. 눈 따가워요."
치익! 치익!
메이드복을 입은 중년 여성이 뭔가를 머리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눈이 따가웠던 시몬이 얼른 눈을 감았다. 뒤따라온 슌이 낄낄낄 장난스럽게 웃었다.
"와! 형 두피가 밀가루 반죽처럼 막 늘어나!"
"......조용히 해."
그렇게 머리 세팅까지 마친 시몬은 슌과 함께 연회장 안으로 이동했다.
고풍스러운 테이블 앞에는 막 요리된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휘황찬란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사소한 식기 하나하나조차 값비싸 보였다.
"우리 위치는 여기야."
연회장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실내 분수대 앞. 슌이 분수대에 턱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손님들이 오면 맞아주고, 인사하고, 안으로 보내면 돼."
"응. 이해했어."
"아마 손님들도 시몬 형이 입은 키젠 교복을 보고 한두 마디씩 말을 걸어올 거야. 적당히 맞춰주면 돼! 할 수 있지?"
"해볼게."
시몬이 넥타이를 고치며 전의를 다졌다. 그때 연회장 정문에 서 있던 집사장이 말했다.
"백작님. 손님 들어오십니다."
"응! 시작하자."
정문이 열리며, 예복을 입은 신사와 드레스를 입은 숙녀가 손을 잡고 들어오고 있었다. 집사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키놀라 올드원 경과 소피 올드원 부인께서 입장하십니다."
올드원이면 슌과 같은 가문이다.
시몬은 빠르게 상황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분위기를 읽었다. 키놀라 부부가 슌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숙부!"
"허허! 슌 백작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슌은 백작위라는 위치 때문인지 예를 먼저 취하지는 않았다.
'자, 집중하자.'
암흑연합은 나라마다 격식과 예식이 제각각이다.
현재 연합은 네 개의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키젠과 가까운 랭커스틴을 수도로 한 '드레스덴' 왕국.
시몬의 고향인 레스힐이 속해 있는 '볼드윈' 왕국.
시몬의 첫 임무지였던 아르니쉬가 속해 있는 '칼로스' 왕국.
연합 소속이긴 하지만, 고립된 느낌이 강한 북부의 '샤헤드' 왕국.
그중에서 블루하버는 볼드윈 왕국령이다. 이쪽 격식은 잘 알고 있다.
이야기를 마친 키놀라 부부가 시몬을 보고 다가왔다.
"백부! 이쪽이 키젠에서 온 특례 1번 학생이에요!"
"아아, 이분이......!"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인 다음, 그와 악수했다. 숙녀인 부인에게는 가볍게 손등 키스를 했다.
"키젠 학생께서 친히 우리 가문의 전시회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님께 부름받은 덕분이죠. 제가 더 영광입니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은 시몬은 다시 허리를 바르게 펴고 고개를 숙였다.
시몬은 어쨌거나 호위역으로 왔고, 당사자인 백작이 직접 소개해서 인사를 했을 뿐이지 너무 긴 이야기를 하는 건 실례다. 키놀라 부부도 그것을 아는지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갈란 영지의 영주. 라이언 다비 남작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시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갈란이라면 드레스덴 왕국의 영지다.
시몬은 이번엔 드레스덴 격식으로 인사했다.
이어서 열 명 정도의 손님이 연달아 몰려왔지만 시몬은 거침이 없었다. 상대의 국적, 신분, 성별에 맞춰 척척 대응하는 모습은 능숙함을 넘어서 현란하기까지 했다.
슌도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다리를 툭툭 때렸다.
"뭐야, 형.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아버지께 예법을 빡세게 배웠거든."
틀릴 때마다 매를 맞아가면서 배웠다. 그때는 시골 영지에서 이런 예법 교육을 왜 하나 싶었는데, 역시 무의미한 배움이란 건 없었다. 시몬은 시종일관 미소를 유지하며 손님들의 말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백작님의 호위 임무 중이라서요."
"영광스럽게도 백작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네, 전부 백작님 덕분이죠."
"저보단 슌 백작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을까요?"
키젠 교복은 어디든 눈에 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슌보다 시몬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시몬은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 철저히 슌을 치켜세워 주었다.
'슌의 올드원 가문이 1,000골드를 지불하면서까지 날 임무로 고용한 이유.'
잘 알고 있다.
키젠의 특례 1번이라는 명성으로 이 자리를 빛내기 위한 화려한 트로피.
그리고 막 가문을 물려받게 된, 불안정하고 어린 슌에게 키젠의 특례 1번이 백작위를 보증한다는 일종의 안전장치.
'당신들이 기대한 대로, 1,000골드 값은 어떻게든 해주마.'
이 자리에서는 누구도 슌을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시몬은 철저히 조연으로 남아 슌을 띄워주는 데 집중했다. 가문의 식솔들과 집사들도 시몬의 이런 대처를 보며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요즘 젊은 친구답지 않게 생각이 깊단 말이야."
"응. 자기 포지션을 기가 막히게 알아."
"성격 반듯하지. 어르신들께 깍듯하지. 괜히 키젠 출신을 모셔가려고 눈에 불을 켜는 게 아니라니까."
"쉿, 쉿. 핀치 경이 듣겠어요."
그때 집사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핀치 경은?"
* * *
같은 시각.
연회장에서 은밀히 빠져나온 핀치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지 둘러보았다. 그러곤 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다."
-계획대로 출발했다. 내일모레면 블루하버에 닿을 것 같군.
통신 수정구에서 거친 억양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다. 이쪽도 별문제는 없어. 가문의 주요 인물들도 빠짐없이 연회장에 모였다."
-별문제가 없다고? 우리 정보망에 따르면 신경 쓰이는 소문이 있던데.
남자의 목소리가 차갑게 깔렸다.
-블루하버에 키젠 학생이 들어왔다는 소문 말이야.
"아, 신경 쓸 필요 없다. 키젠이라고 해봐야 1학년 병아리라 변수 정도도 되지 않아.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내가 직접 놈을 맡을 테니 걱정 마라."
-1학년이라.......
핀치가 픽 웃었다.
"왜, 이제 와서 겁나나?"
-자극하지 마라 네크로맨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깨끗이 쓸어버릴 것이다. 물론, 입금만 확실하다면 말이야.
"물론. 나 핀치가 보장하지."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섬의 모든 게 너희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