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8화
무사히 연회를 마치고 다음 날, 드디어 공식적인 언데드 전시회가 열렸다.
슌과 가문 사람들, 그리고 전시회 개최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모여 개회식을 했다. 경호원으로 참가한 시몬은 개회식에 직접 참여하진 않고 슌과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경호를 서고 있었다.
'후우, 어렵네.'
오후의 개회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본 아머 연습을 했다.
시몬은 어제 훈련 중에 피어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있었다.
-그런데 피어. '군단화'된 피어의 스켈레톤으로도 본 아머를 쓸 수 있나요?
-안 될 건 없다. 하지만 당분간은 꿈도 꾸지 말도록.
-네? 왜요?
그때 피어의 분신은 웃고 있었다.
-나쁜 버릇이 들어버리거든.
피어는 시몬의 멘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피어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시몬은 다시 소환형 스켈레톤의 본 아머 숙련에만 집중해 왔다.
짝짝짝짝짝!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시몬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드디어 개회식 행사가 모두 끝난 것이다.
무대에 올라와 있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흩어졌고, 시몬은 경호를 위해 슌의 옆으로 붙었다.
"시몬 형! 뭐 고민거리 있어?"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때 개회식 행사를 진행하던 사회자의 시선이 시몬 쪽으로 향했다. 시몬이 무슨 일이냐는 듯 미소 짓자 사회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전시회에 키젠 학생도 한 명 와 있었군요! 여러분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관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당연히 이쪽 분야 최고 권위자의 말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겠죠? 자! 키젠 학생을 앞으로 모셔보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우렁찬 환호성이 들렸다.
시몬은 난감한 표정으로 슌을 바라보았다. 사회자의 시선도 슌에게로 향해 있었다.
"괜찮겠죠? 백작님."
시몬이 나 좀 살려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슌은 장난스럽게 이를 보이며 웃더니 시몬의 등을 떠밀었다.
"물론 괜찮지!"
"자, 번외 인터뷰네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키젠 학생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시몬이 씁쓸한 표정으로 떠밀려 나왔다.
'와.'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블루하버 내에서도 이번 전시회가 상당히 이슈였던 모양이다.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마력 확성구를 시몬에게 내밀었다. 사회자 본인은 확성구를 쓰지 않아도 성량으로 주위에 다 들릴 정도로 말하고 있었다.
"키젠 1학년 소환학 지망생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아, 가장 중요한 게 빠졌는데요?"
사회자가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검지를 흔들었다. 시몬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영광스럽게도 특례 1번 입학생 자격으로 키젠에 들어왔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이 한마디에 시몬은 자신을 보는 시선이 확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백작님을 경호하면서 안에 한 번은 들어가 보셨겠죠? 이번 전시회! 어땠습니까?"
시몬은 대충 분위기 파악을 마쳤다.
개회식이라지만 딱딱한 귀족 문화가 아니라 오락행사처럼 활기와 에너지가 넘친다. 휴양섬이라는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다.
그럼 이쪽도 분위기를 맞춰줘야지.
"제가 지금까지 가본 언데드 전시회 중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언데드 전시회가 처음이지만.
"블루하버는 독자적으로 진화한 생태계가 갖춰져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입니다. 이런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고 올드원의 이름 아래서 보전되고 있다는 점은, 네크로맨서로서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섬의 생물들로 만들어진 언데드들은 제겐 20년 뒤의 미래에서 온 기술처럼 보였습니다."
딕션을 조금 더 강하게. 표현도 자극적으로.
"특히 마지막 층의 오버로드는 꼭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오! 오버로드가 탐이 나셨나 봅니다!"
사회자의 농담에 시몬은 바로 받아쳤다.
"그렇지 않아도 경호 중에 안달이 나서 관계자분께 가격도 물어봤습니다."
"대담하신데요! 어, 얼마 정도......."
"1만 골드부터 시작이라 포기했습니다."
하하하하!
개회식 분위기가 급격히 밝아졌다. 사회자와 시몬은 빠른 템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탁! 탁!
그때 뒤에서 집사장이 손목시계를 두들기는 제스쳐를 취했다. 키젠에 여자친구가 있냐는 짓궂은 질문으로 시몬을 괴롭히던 사회자가 화들짝 정신 차리며 마무리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30분 뒤에 열리는 신 언데드 전시회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시몬 학생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곳곳에서 열화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관중들에게 인사한 다음 슌의 옆으로 복귀했다. 그가 킥킥 웃으며 시몬의 다리를 툭 쳤다.
"시몬 형! 보기보다 말 잘하던데?"
"......보기보다? 그거 칭찬 맞지?"
"하하하!"
잠시 후 전시장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와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슌과 시몬은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둘째 날 연회에서 만나지 못한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 * *
넷째 날 아침.
오늘의 일정도 셋째 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간을 전시장에서 보낼 것 같았다. 시몬은 아침 일찍 슌과 함께 마차를 타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시몬이 팔짱을 꼈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네."
"그러게. 사람들이 전시회에 많이 와주지 않을까?"
자욱한 안개가 해변 전체에 껴 있었다. 실제로 해변에 해수욕하러 나온 관광객들은 예상치 못한 날씨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웬 안개가 이렇게......."
"비도 안 오는데."
"오늘은 온종일 방에 박혀 있어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블루하버의 관리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해무(海霧)가 모래사장까지 덮을 정도로 심해서 수영을 제한한다는 이야기였다. 관광객들이 투덜거리며 해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네, 갑니다 가."
파라솔에 앉아 쉬던 사람들도 시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야, 야, 근데 저기 뭐 이상한 거 안 보여?"
"어. 보고 있잖아. 안개."
"아니, 저기 안개 너머에...... 뭐지?"
"헛소리하지 말고 가자. 나 배고파."
그런데 해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비명과 도망치라는 다급한 외침까지 섞였다.
쏴아아아아아아!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를 뚫고, 입이 딱 벌어질 만큼 거대한 초대형 범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범선의 돛 꼭대기에 펄럭이는 깃발. 일그러진 해골 밑에 두 개의 칼이 교차한 모습.
이 깃발이 상징하는 의미는 하나였다.
"해, 해적이다!"
"해적이다아아아아!"
평화로운 바닷가가 순식간에 패닉상태가 되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앞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투콰아아아앙!
포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전함에서 발사된 포탄이 도시의 드높은 건물 기둥에 폭발했다. 석재건물이 와르르르 무너져 내리며 기둥에 불이 붙었다.
쿠우웅! 쿵!
어떤 포탄은 해변가에 떨어졌다. 커다란 모래 분수가 솟구치며 사람들이 휩쓸려 쓰러졌다.
"피해! 피해!"
수많은 포탄이 안개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해변과 마을이 순식간이 쑥대밭으로 변하고 불이 붙었다. 이내 거대한 함선이 해변가로 들어왔다.
콰콰콰콰콰콰콰!
모래들을 튀기며 해적선이 지상으로 내려오자, 해적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그리고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낄낄 웃어대는 길쭉한 수염의 남자가 있었다. 그가 통신 수정구를 들며 말했다.
"제2함과 3함은 좌우 측면에서 섬을 감싸고 상륙해! 섬에서 한 놈도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예!
안개 속에서 똑같은 크기의 대형 범선들이 좌우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해적들이 일제히 물러나며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보인다.
"블루하버라. 좋은 섬이야."
챙!
그가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뭘 하고 있느냐! 전부 상륙해!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아!"
* * *
전시장에 있던 시몬과 슌도 하늘을 뒤흔드는 포성에 얼른 밖으로 뛰어나왔다. 누군가가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맙소사......."
자욱한 해무와 함께 도착한 초거대 해적선이 도시 전체에 포탄을 쏴대고 있었다. 블루하버가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평범한 해적 무리가 아닙니다."
집사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배의 규모나 깃발을 보나 신주해의 해적들. 이런 평화로운 바다에 올 놈들이 아닌데 어떻게......."
슌이 겁에 질린 얼굴로 시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시몬이 슌의 손바닥을 덮으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사령관님이 오셨습니다!"
배지를 주렁주렁 매단 제복 차림의 남자가 전시장 밖으로 나왔다.
"......말도 안 돼."
그가 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적선이 해안선까지 들어올 수가 있는 거지? 해상 초소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령관이 급히 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초소! 응답해! 초소!"
그러나 통신은 묵묵부답이었다. 사령관이 급히 채널을 돌려 다른 곳으로 연락을 넣었다.
"사령관이다! 지금 당장 응답해!"
그러나 해상을 차단하는 세 개의 해군 부대 모두 응답이 없었다.
"가, 갑자기 통신이 먹통인가? 안개 때문에?"
"그냥 연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겠죠."
시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누가 끼어드나 싶어서 고개를 돌린 그가 시몬의 교복을 보고 눈이 커졌다.
"키, 키젠......!"
"연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란 게 무슨 뜻이야 형?"
슌의 물음에 시몬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벌써 당했단 거지."
* * *
블루하버 해군 본부.
"커헉!"
"쿨럭 쿨럭!"
무장한 병사들이 입에서 침을 토하며 하나둘씩 풀썩풀썩 쓰러져 가고 있었다. 건물 전체가 자욱한 녹색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블루하버 해군 제2 병영.
"대체 음식에 뭘 탄......!"
"끄윽!"
이쪽은 다들 입에서 검은색 액체를 줄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힘겹게 버티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바닥에 꾸물거리던 인공 슬라임들이 다가와 그들의 몸을 집어삼켜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블루하버 해군 제3 병영.
이곳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병사들이 온몸이 부자연스럽게 꺾인 채 쓰러져 있었고, 벽면에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리고.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의 시체 속에서 유유히 시가를 피우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러게, 그냥 편하게 독에 당해주면 서로가 좋았잖아?"
입고 있는 예복이 온통 피범벅이었지만 남자는 눈 한번 꿈쩍하지 않았다. 그가 통신구를 들었다.
"배는?"
-전부 불태웠다.
"한 놈도 섬 밖으로 빠져나가게 둬서는 안 돼. 특히."
블루하버 최강의 네크로맨서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슌 백작과 올드원 가문 일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붙잡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