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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02화 (10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2화

배신.

그 한마디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주위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짙은 정적에 휩싸였다.

"......배신이라."

핀치는 어떤 특별한 반응을 보인다기보다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곤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올드원 가문에 충성을 바친 지 올해로 20년일세. 자네가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지."

그가 싸늘한 눈으로 시몬을 내려다보았다.

"고작 사흘 동안 고용인 신분으로 지낸 자네가, 감히 내 충심에 의문을 제기한단 말인가?"

"배신이란 이슈는."

시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시간이 어쩌고 나이가 어쩌고 하는 감정론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니죠. 명확한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감히 날 배신자로 모는 명확한 사실이 뭐지?"

"당신과 공모한 해적들이 자백했습니다."

웅성 웅성 웅성.

가솔들이 경악한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블루하버의 해군 병사들도 해적들이 실토하는 걸 들었죠."

"실토라. 명색이 네크로맨서라면 포로의 혓바닥에서 원하는 답을 이끌어내는 정도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간단한 일이지."

"그럼 모두와 함께 해변으로 가보시죠."

시몬이 삐딱하게 말했다.

"붙잡은 해적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짧은 시간에 제가 모든 해적에 손을 쓰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거기서 진실을 가려보시죠."

"지금은 전시다. 영지 전역에서 해적들이 날뛰는 상황에 그럴 여유는 없어."

끝났다.

시몬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자세를 낮추었다.

"그럼 일단 백작님을 내려놓고 이야기하시죠. 당신은 배신 용의자입니다."

"백작님의 경호에 있어선 어떤 타협도 할 수 없다고 했을 텐데."

"핀치 삼촌."

핀치의 액체화된 팔에 붙들린 슌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려줘."

"......."

백작 본인의 명령.

임시 고용인이든 누구든 배신자 용의가 들어온 핀치는 이것을 거절할 명분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도 이미 형성된 상황.

핀치는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체념하듯 그렇게 말하는 핀치의 무릎이 내려가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아공간에서 떨어진 녹색 구체들이 치이이이이! 소리를 내며 사방에 독 안개와 마비 가스를 뿌리기 시작했다.

"큭!"

"조심해! 코를 막아!"

모두가 옷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그 사이에 핀치의 하체가 연기처럼 변해 저택의 지붕을 넘어갔다.

"저, 정말로 핀치가......."

집사장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코를 감싼 시몬이 큰소리로 외쳤다.

"제가 핀치를 뒤쫓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핀치의 배신 사실을 해군과 다른 관계자들에게 전파해주세요!"

"......."

집사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백작님을......."

"네. 맡겨주세요."

시몬은 즉시 칠흑을 밟고 핀치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 * *

핀치는 슌을 데리고 먼 거리를 비행했다.

저택을 지나, 불타는 도시를 지나, 그리고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을 지나 마침내 바다로.

바다에는 여전히 짙은 해운이 껴 있었다. 안개를 뚫고 날아가던 그의 시야에 마침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해적선 한 척이 보였다.

차악.

핀치가 해적선에 내려왔다. 배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짙은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핀치는 밧줄로 슌의 손목을 억세게 묶은 다음 갑판 위에 내던졌다.

"으윽!"

"얌전히 있어라."

슌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 보니 아무도 없는 텅 빈 해적선 곳곳에 죽은 해적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의 아래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핀치가 주문을 중얼거리며 흑마법을 발동했다.

딸칵. 딸칵.

슌은 기겁하며 앉은 자세로 물러나 기둥에 딱 등을 붙였다.

시체에서 살이 분리되며 뼈만 남은 언데드들이 흐물렁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 스켈레톤......!'

"일해라. 쓰레기들."

핀치가 명령했다. 그러자 스켈레톤들이 따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산스럽게 흩어졌다.

닻을 올리고 배의 키를 붙잡는 등 분담해서 항해 준비를 했다. 생전의 기억과 버릇이 강하게 남아 있는 스켈레톤의 특성을 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우."

핀치가 피곤한 얼굴로 갑판 위의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스켈레톤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슌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핀치 삼촌."

핀치가 픽 웃었다.

"아직도 날 삼촌이라고 부를 정신머리가 남아 있나?"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혹시 내게 서운한 점이 있다면......!"

"네가 아니야."

핀치가 바지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만악의 근원은 네 부친이다."

"......뭐?"

"내 누나이자 네 어머니의 죽음."

핀치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 진실에 대해 알고 있나?"

핀치 니키만.

보잘것없는 몰락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 재능만큼은 천재적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압도적인 성취를 보였고, 그에 대한 소문은 연방 전체로 퍼져 나가 가장 유력한 차기 키젠의 '특례 1번 후보'라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였다.

각 가문들이 이런 핀치를 손에 넣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중, 가장 적극적이었던 건 블루하버에 기반을 둔 재력가 가문 '올드원'이었다.

핀치의 누나는 올드원 가문의 장남과 결혼했고, 핀치 본인 또한 일찌감치 올드원 가문의 전속 네크로맨서 계약을 맺었다.

탄탄대로일 것 같은 시작이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그로부터 1년 후의 키젠 입학 시즌에서, 핀치는 특례입학 제안을 받지 못했다. 특례입학은커녕, 본인이 자존심을 굽히고 응시한 입학시험에서도 거짓말처럼 떨어지고 만다.

그 일로 올드원 가문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됐다. 막대한 돈을 들여서 핀치를 영입하고 뼈대 없는 가문과 장남을 결혼까지 시켰더니 돌아온 결과는 키젠의 문턱도 밟지 못한 패배자 한 명.

결국 핀치는 키젠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그 아래에 있는 3대 네크로맨서 학교 중 '알란드'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하며 엘리트 학생으로 거듭났지만, 키젠에서 낙오한 핀치와 올드원 가문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인식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핀치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가 믿고 있는 건 3대 학교 학생들이 키젠으로 올라가는 '전과' 시스템. 틀림없이 키젠이 자신을 불러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키젠으로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어느 날. 블루하버로 시집간 누나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 너무너무 힘들어 핀치. 날 고향으로 데리고 가줘. 여기서 나가고 싶어.]

누나가 올드원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지는 알 만했다. 그리고 누나의 고통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핀치는 더더욱 악에 받쳤다.

[조금만 더 참아줘 누나. 틀림없이 이제 곧 키젠에서 날 부를 거야. 내가 키젠에 들어가면 분명 가문도 세상 사람들도 우릴 다시 보게 될 거야.]

하지만 아무리 알란드에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해도, 끝내 핀치는 키젠에서 부름을 받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가고 결국은 알란드에서 졸업을 앞둔 그때.

핀치는 누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됐다.

가문에서 알린 사인은 병사. 그러나 블루하버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여한 핀치는 모두가 잠든 밤, 관 뚜껑을 열고 누나의 상태를 샅샅이 살폈다.

남편이 한 짓으로 예상되는, 온몸에 나 있는 구타로 인한 멍 자국. 그리고 무엇보다 두꺼운 옷으로 숨기고 있었지만, 목에 선명한 밧줄 자국까지.

그랬다.

사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핀치는 소리죽여 울부짖었다. 관 앞에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꺽꺽거리며 죽은 누이에게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한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숨이 끊어진 시체를 농락하여 스켈레톤이나 산송장으로 만드는 것뿐. 3년간 필사적으로 배운 지식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핀치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그렇게 울다 지친 핀치가 늦은 새벽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가주의 방에서는 남녀가 적나라하게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끔찍했다.

아직 누나의 시체가 채 식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누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남편이라는 자는 장례식에 참여한 다른 가문의 영애와 놀아나고 있었다.

피가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충혈된 눈으로 달뜬 소리가 흘러나오는 문 앞에서 핀치는 결의했다.

이 가문을 몰락시키겠다고.

이 가문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가주는 의문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고, 그 아들인 슌이 어린 나이에 백작위를 물려받게 됐다.

"흐흐흐흐흐! 하하하하!"

핀치가 광인처럼 웃었다.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가던 슌의 얼굴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멍한 눈의 슌을 보고 웃고 또 웃었다.

"조카여! 이제 알겠느냐!"

핀치가 소리쳤다.

"내가 네 아버지를 독살했다! 나는 네 아비의 원수이자! 네 어미의 원수를 죽인 자다!"

"......."

"그리고 지금처럼 올드원 가문의 관계자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때를 기다렸지! 탈출할 방법은 없다. 이 섬의 사람들은 해적들에게 남김없이 제거될 거고, 올드원 가문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 블루하버의 통치권과 올드원 가문의 재산은 유일한 가문의 관계자인 나."

핀치의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핀치 니키만에게 세속된다."

"......."

"내 계획이 어떠냐 조카야?"

슌이 눈을 한번 꾹 감았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핀치를 노려보았다.

"삼촌의 계획대로는 안 될 거야."

"흠, 어째서지?"

"시몬 형이 막으러 올 테니까."

푸핫!

핀치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가 키젠의 특례 1번을 부른 게 이번 계획의 유일한 변수였지.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놈을 본 소감은...... 하! 세상에. 아무런 특징도 뭣도 없는 그런 범재가 특례 1번이라고?"

그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나는 입학시험 탈락이고! 그런 범재가 특례 1번? 네프티스도 늙어서 눈이 삔 게 분명해! 망할! 키젠! 키젠! 키젠! 뭐 그리 대단한 곳이고! 뭐 그리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긴 핀치가 다시 시가를 입에 물었다. 후우우 하고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표정이 한결 진정되었다.

"좋아. 다 지난 일일 뿐이니까. 너를 데리고 올드원의 유적에 가서 재산만 빼 온 뒤, 그 특례 1번도, 해적들도 전부 내 손으로 죽여주마."

"시몬 형은 안 죽어!"

그때 선체가 갑자기 크게 덜컹거렸다. 핀치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키를 잡은 스켈레톤을 노려보았다.

"운전 똑바로 안......! 음?"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난데없이 커다란 해적선 한 대가 물살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쿠우우우우웅!

"우와앗!"

그대로 두 배가 충돌했다. 갑판이 기울어지며 선체가 격정적으로 흔들렸다.

슌은 데굴데굴 굴러다녔고 핀치는 칠흑으로 두 발을 갑판에 고정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시가를 한 번 더 태운 그가, 손가락을 튕겨서 바다로 꽁초를 던졌다.

저벅. 저벅.

충격으로 인한 흔들림이 멎은 후, 반대쪽 해적선의 갑판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핀치가 칠흑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누구냐."

슌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뭐가 됐든 지금보단 상황이 나빠질 순 없을 것이다. 혹시 자신을 구하러 온 시몬이 아닐까.

'시몬은 아니다.'

핀치의 생각은 달랐다.

불과 방금 저택에서 만났다가 헤어졌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했을 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해적선을 탈취해서 배를 들이박는 건 불가능.

결론은 핀치의 생각이 맞았다. 모습을 드러낸 건 '선장'임을 상징하는 챙이 긴 모자를 쓴 검은 수염의 사내.

"여기 있었군 백작."

다름 아닌 해적선장 가일이었다. 그의 시선은 손목이 묶여 있는 슌에게로 향했다.

"자네가 왜 여기에 있지?"

핀치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뻔한 이야기 아니겠나."

가일이 히죽 웃으며 팔을 척 뻗었다.

"백작을 상처 없이 데려와라! 방해하는 놈들은 쳐 죽여도 좋다!"

"오오오!"

반대편 배의 갑판에서 해적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핀치가 킥 웃으며 칠흑을 끌어올렸다.

'저쪽에서 먼저 배신한 건가.'

핀치와 가일은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를 이용했지만, 마지막에는 피차 배신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일은 네크로맨서를 혐오했고, 핀치는 올드원의 재산을 독점하길 원했다.

'어차피 송사리들뿐이다. 지금 여기서 결판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달려드는 해적들을 보며 핀치가 입꼬리를 올렸다.

반면 가일은 침을 꼴깍 삼키며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하아아, 안 들켜서 다행이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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