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4화
촤르르르르륵!
촉수들이 허공을 빼곡하게 메우며 내려왔다. 시몬이 망토를 펄럭이며 오른손으로 대검을 붙잡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이 갈라지며 수십 개의 촉수가 통째로 절단되어 갑판을 나뒹굴었다.
"......?!"
털썩털썩 떨어지는 촉수들을 보며, 핀치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갑자기 힘의 격이 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던 상대였는데, 다른 사람처럼 분위기마저 변했다.
핀치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순간, 등 뒤로 시몬의 신형이 번개처럼 도달했다.
'......무슨!'
스릉!
핀치가 몸을 뒤로 빼는 것보다 시몬이 대검을 위로 치켜올리는 게 빨랐다. 핀치의 오른팔이 피를 뿌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핀치가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팔! 내 팔!"
핀치는 극도의 고통에 날뛰면서도 의문을 느꼈다.
아까 촉수들도 그렇고, 어째서 회복이 안 되는 거지?
그의 시선이 자신의 잘려 나간 팔로 향했다. 마치 검에 베인 부위가 괴사한 것처럼, 자신의 몸 일부가 아니게 된 것처럼 변해 버렸다.
"포기하세요."
해골 투구를 쓴 시몬이 오른손만으로 가뿐히 대검을 세워 들며 말했다. 그림자가 없는 녹청색 망토가 바람결에 휘날렸다.
"다음은 머리를 날리겠습니다."
"......!"
압도당한다.
자신보다 한참을 어린 후배에게, 핀치는 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
스무 개가 넘는 촉수들도, 한쪽 팔도, 일격에 회생불능이 되어버렸다. 피어의 대검은 상처를 입지 않는 핀치의 완벽한 상성이다.
입술을 꾹 깨물던 그는 이내 체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젖혔다.
"......하아아아아, 그래. 인정이다."
"?"
"확실히 열일곱의 나도 천재 소릴 듣긴 했지만, 자네처럼 강하지는 못했지. 특례 1번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내가 키젠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납득이 되는군."
시몬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 지경에도 학력이 그렇게까지 콤플렉스입니까? 지금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건 키젠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죄 없는 사람들입니다."
"글쎄."
고개를 꺾은 채로 멍하니 있던 핀치가 눈동자만 굴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네크로맨서에게 죽음은 숙면처럼 가까운 것. 내 누이의 사망 이후, 타인의 죽음은 내 감정의 아무런 고저도 일으키지 못해."
"......."
"그보다, 자네가 다루는 언데드들은 퍽 대단해 보이는군."
핀치가 너덜너덜해진 셔츠를 죽 찢었다. 그의 가슴 전체에 그려진 칠흑 마법진이 보였다.
키젠 1학년인 시몬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수식이었지만, 좌우 사방에 그려진 수식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영속의 진!'
한번 생명체에 박아 넣은 이상, 생명체의 칠흑에 직접 기생하며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효과를 발휘하는 수식이었다.
핀치의 몸이 액체처럼 변했다가 돌아오는 것도 저 수식이 들어간 마법진의 효과 덕분이었으리라.
"자네의 언데드와, 내가 컨트롤하는 괴물. 어느 쪽이 더 강할지 기대되지 않나?"
핀치가 자신의 가슴 한복판의 룬어에 손바닥을 올리더니, 버튼을 돌리는 것처럼 찰칵 비틀었다. 그의 체내에서 칠흑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또 무슨 짓을!"
시몬이 대검을 붙잡고 뛰어들려는 순간, 피어가 막았다.
[물러나라 소년!]
"네?"
핀치의 온몸이 액체처럼 변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시몬의 눈이 허무하게 흔들렸다. 그의 살점과 장기 조각들이 후두두둑 갑판에 떨어졌다.
"웁......!"
지독한 모습에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했다. 그러곤 숨을 헐떡이며 주위에 흩어진 '핀치였던 것'을 보았다.
두근두근 살아 있는 것처럼 뛰고 있던 장기들이나 살점들도, 잠시 후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군......! 아니, 주인님!"
에르제베트가 여성의 모습으로 변해 갑판 위로 올라왔다.
품에는 슌이 안겨 있었지만 핀치의 잔해를 보지 못하도록 그녀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 끝난 건가요?"
"그런 것 같은데."
시몬이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뭔가 심상치 않아."
휘이이이이이이이잉!
비바람이 격렬하게 불었다. 정체불명의 해무들도 창공의 햇빛을 틀어막으며 더더욱 짙게 퍼져 나갔다.
쏴아아아아!
바다의 물살이 급격히 세지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세 개의 대형 해적선들이 얽혀 있는 이곳도 크게 흔들렸다.
"군단장님! 뒤에!"
에르제베트의 외침에 시몬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바닷물에서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연체동물의 다리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쏴아아!
쏴아!
바다에서 더 많은 다리들이 올라왔다.
피할 곳이 없다. 다리들이 배 전체를 포위하며 닻 기둥을 휘감거나 갑판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윽, 징그럽사와요!"
"싫어!"
에르제베트와 슌이 기겁한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이번에는 해적선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닷물의 수면이 변동하듯 높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건......!'
시몬의 눈이 커졌다. 잠시 후 바닷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커다란 괴물 문어의 몸통이었다.
-심지어 이 정도의 규모가 아직 성체가 아닐세. 성체 크라켄은 아직 그 누구도 포획한 적이 없거든.
블루하버에 들어온 첫날, 전시회에서 핀치에게 오버로드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가 떠올랐다.
저게 바로 성체 크라켄이었다.
"주인님! 저 괴물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나도 몰라!"
쾅!!
크라켄의 몸통이 선체에 달라붙었다.
몸통 중간에 뚫려 있는 입이 쩍 벌어졌고 크라켄의 다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핀치의 사체를 휘감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내 게걸스럽게 으적거리며 핀치를 먹어치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렇게 핀치를 집어삼킨 크라켄의 몸통이 다시 배에서 떨어졌다.
입은 바다에 잠기고 머리 부위만 육지에 드러난 상태. 그때 몸통의 꼭대기의 피부가 불쑥거리며 일어났다.
우둑! 우두두둑!
크라켄의 피부에 혹이 났다. 그 혹은 비틀어지고 베베 꼬였다.
팔이 튀어나왔고 얼굴이 형성되며 여러 군데에 숭숭 구멍이 났다. 그 구멍들은 눈과 콧구멍, 귀와 입을 형성했다.
그것은 인간의 이목구비라고 하기에는 기이했고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멀고 입도 삐뚤어져 있었지만 '사람'이라고도 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도 그럴게.
[봤느냐 시몬!!!]
이름을 부를 수 있었으니까.
[나는 이제 너를 뛰어넘고! '그들'을 뛰어넘었다! 크라켄과 융합한 나는 바다에서 최강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바다에서 스무 개가 넘는 다리들이 솟아올랐다.
[이 몸으로! 이 힘으로! 네놈들과 블루하버의 인간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바다에 수장하겠다! 그리고 로크섬으로 갈 것이다! 네프티스는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내가! 그 마녀에게 선택받지 못한 바로 나 핀치가!]
얼굴 정중앙에 세로로 위치한 그의 입이 벌어지며 눈과 코,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최강이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륵!
스무 개의 다리들이 폭발적으로 내달렸다. 시몬은 급히 피어의 힘을 사용해 뛰어올랐다.
촤아아악!
촤르륵!
시몬의 몸 곳곳을 빨판이 달린 다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피어의 갑옷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고 피어가 통증을 입는 만큼 시몬도 통증을 느꼈다.
핀치가 인간 형태일 때 본인의 몸을 액체화해서 사용하던 촉수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과 속도, 유연성이었다.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에르제! 슌을 데리고 배 안으로 들어가!"
"네!"
무영의 망토가 크게 펼쳐진다. 시몬의 속도가 더 더 더 올라가며 이제는 섬광처럼 쏘아져 나간다. 갑판의 난간을 딛고 달리는 하나의 점을 수십 개의 직선과 곡선들이 따라잡는다.
"크으으!"
시몬이 뒤를 돌아보며 대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다리들이 동강이 나며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갈라진 단면에서 재생하는 게 아니라, 그 위에서 새로운 다리가 튀어나왔다.
[하하하!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진 않는다!]
콰콰콰쾅!
쿠쿵!
어딜 봐도 크라켄들의 빨판 달린 다리들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대로는 선체가 버티지 못하고 가라앉을 것이다. 시간을 그렇게 많이 끌 수는 없다.
[소년! 뒤다!]
"!"
시몬이 급히 머리 위로 대검을 세웠다. 창격처럼 내리꽂히는 크라켄의 다리가 시몬의 등을 갑판으로 밀어붙였다.
"큭!"
강한 힘에 바닥이 뚫리며 시몬의 몸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대검으로 몸에 구멍이 뚫리는 건 면했지만, 두 개의 다리가 더 천장을 뚫고 내려왔고 이내 세 개의 다리가 시몬의 몸을 밀어붙였다.
콰앙!
쿠웅!
쩍!
시몬의 몸이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으저저적!
다섯 개의 다리가 시몬의 몸을 밀어내며 급기야 배의 바닥에 구멍을 뚫고 시몬을 바닷속으로 쳐 밀었다.
그 충격으로 시몬은 피어의 검을 놓치고 말았다.
"크흡!"
시몬이 숨을 참았다. 언데드에게 취약한 바닷물 속으로 들어오자 입고 있는 피어 또한 힘이 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소년!]
촤르르르르르르!
강하게 아래로 내리찍는 힘에 뭘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크라켄의 몸을 이끌고 물속으로 들어온 핀치가 팔을 뻗었다. 다리 하나가 시몬의 허리에 감기더니 그대로 바닷속으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다 끝났다!! 키젠의 앞잡이!]
광기에 찬 핀치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몸에 점점 힘이 빠진다. 숨도 가빠온다.
[소년!]
머릿속에 들리는 피어의 목소리조차 흐릿하게 들린다.
시몬은 머리가 텅 비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상에서 비를 맞으며 괴물의 다리를 피해 미친 듯이 달리던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바닷물은 평화롭고 포근했다.
[정신 차려라! 소년!]
조금씩 이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피어의 목소리로 간신히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네, 듣고 있어요 피어.'
[뭘 하고 있나!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냐!]
'포기 안 해요.'
시몬은 멀어지는 배의 밑바닥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너무 많은 게 걸려 있어.'
의뢰자인 슌의 목숨.
함께 따라와 준 에르제베트의 목숨.
블루하버의 주민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로크섬 어딘가에서 임무를 수행하거나 공부하고 있을 친구들의 안전까지.
'와라.'
피어의 뼈로 뒤덮인 시몬의 오른팔이 칠흑에 물들었다. 점점 더 멀어지는 배의 밑바닥에서 물거품이 일었다.
'와라!'
촤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의 절대명령이 발동했다.
바닷물을 가르며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엄청난 속도로 피어의 대검이 내려오고 있다.
그것을 본 핀치가 기겁하며 다리들을 보냈지만 파멸의 힘이 깃든 칼날에 찢어지고 갈라질 뿐이었다.
차악!
그리고. 순식간에 시몬의 손안으로 검이 들어왔다. 시몬이 힘을 주어 손잡이를 붙잡고는 그대로 팔을 내리그었다.
쩍!
허리를 휘감고 있던 다리가 단면을 보이며 떨어져 나갔다. 허리를 압박하던 힘이 풀리자 시몬이 검을 앞으로 세우는 자세를 취했다.
[참격의 원리는 한 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어라!]
시몬이 검을 옆으로 기울이며, 피어의 설명에 따라 모든 칠흑을 검에 때려 박기 시작했다. 검이 일렁이며 어마어마한 기세로 요동쳤다.
주위의 바닷물에 물거품이 일어나고, 어두운 바다 아래에 현란한 빛의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촤르륵!
촤르르르르륵!
핀치도 즉시 스무 개의 다리를 보내왔다. 시야를 가득 잠식하며 다가오는 적의 공세에도 시몬은 굳건히 자세를 유지했다.
[참격은 눈앞의 대상을 베는 게 아니다.]
피어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흘러들어 왔다.
[대검을 휘둘러 아득히 먼 곳의 상대를 베어야 한다. 하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머릿속에 인지하는 순간 허공을 가르기만 할 허무한 일격이 될지어니, 거리를 소거하고 공간째로 상대를 베어내는 이미지만을 극대화 시켜라!]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피어의 대검에 엄청난 양의 칠흑이 들끓었다. 주위가 파도치듯 휘몰아쳤다.
스무 개의 다리들이 시야를 가득 가리는 상태에서,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공간째로!'
허리가 돌아가고 오른팔이 움직인다. 몸에 부착된 피어의 뼈들이 수천수만 번 반복했을 경험과 업을 그대로 시몬의 몸에 재현해 낸다.
'베어낸다!!'
응집된 칠흑이 피어의 대검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백색의 검격이 바다를 가르며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드높은 바다가 갈라진다.
참격은 바다를 썰어내며 일순간 수면 위의 하늘까지 닿았다.
갈라진 바다의 간격에 들어온 크라켄의 다리들과 몸통도 모조리 반으로 갈라졌다.
핀치의 눈이 황망하게 흔들렸다.
'어떻게.......'
크라켄의 몸통이 허리에서부터 갈라져 분해된다.
'......어떻게 이런 힘이 존재할 수가 있는 거지?'
꾸루루루룩!
그때 물살을 가르며 시몬이 핀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검에 남아 있는 칠흑을 일으켜 제트 분사처럼 사용한 것이다.
시몬이 말없이 검을 그었고.
쩍!
마침내.
핀치의 몸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