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05화 (10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화

반으로 갈라진 핀치의 몸이 깊은 심해로 떠내려갔다.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던 시몬은 갑자기 덥석 입을 틀어막았다.

'......윽, 호흡이!'

[달려라 소년! 대검에 칠흑을 투여해서 계속 쏴!]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검을 바다 방향으로, 몸은 수면 방향으로 틀었다. 그 상태에서 참격을 짧게 짧게 쏘아내자 시몬의 몸이 슉슉 밀려났다.

'하, 한계야!'

극단적인 체력고갈과 산소 부족으로 이성이 증발하기 직전이었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 가까스로 정신을 유지했다.

어떻게든 배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이제 배의 밑바닥까지 한 발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찰칵! 찰칵!

대검 끝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칠흑을 전부 소모해 버린 것이다.

한계를 몇 번이고 넘어선 시몬의 이성이 마침내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슌이 바닷속으로 헤엄쳐 오는 모습이 보였다.

'슌......!'

시몬과 슌이 서로를 향해 팔을 뻗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손을 제대로 꽉 맞잡았고, 그 순간에 시몬의 의식은 끊겼다.

* * *

쏴아아아!

"푸읍! 어푸! 하!"

격렬하게 파도치는 바다에서 슌과 정신을 잃은 시몬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이걸 잡으세요!"

에르제베트가 거미줄로 만든 동아줄을 던졌다.

슌이 헤엄쳐서 줄의 끝을 붙잡자, 에이션트 언데드의 괴력으로 단번에 갑판까지 끌어 올렸다.

"쿨럭쿨럭! 허억! 후!"

갑판 위의 슌이 입에서 연신 물을 토해냈다.

"백작님! 주인님은요?"

"괜찮아! 힘이 다해서 의식을 잃었을 뿐이야."

두 사람은 빠르게 시몬의 응급처치부터 했다.

하지만 이제 해적선도 안전하지 않았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것 때문에 점점 선체가 가라앉고 있었다.

-키리리!

그때 송장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나 에르제베트에게 신호를 보냈다.

"거, 거미?"

"걱정하지 마시와요. 아군이옵니다."

그녀가 손짓하자, 다섯 마리의 송장 거미들이 작지만 멀쩡한 나무배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비상 탈출용 쪽배가 있더군요. 이걸 타고 블루하버로 가시지요."

슌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잘했어! 거미들!"

-키리리리!

거미들이 앞다리를 들어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하는 시늉을 했다. 에르제베트가 시몬에게서 분리된 피어의 두개골을 쓰다듬었다.

"피어, 당신도 수고했어요."

[크흐흐! 전신이 욱신거리는군!]

"육지에서 소금물을 빼면 조금 상태가 나아질 거예요. 자, 어서 옮기죠!"

* * *

"......."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마침내 의식이 돌아온 시몬이 눈을 떴다.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윽.'

격통이 치밀어 오르며 온몸이 뻐근하고 아팠다. 몸 곳곳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주인님! 눈을 뜨셨사옵니까?"

시몬이 깨어난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한 에르제베트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곤 그의 어깨를 휙휙 흔들었다.

"제가 누구인지 알아보시겠나요?"

"어, 어지러워 에르제......."

"다행이옵니다!"

주위의 메이드들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시몬 님!"

"슌 백작님! 시몬 님이 깨어나셨어요!"

"어, 진짜? 시몬 형!!"

슌이 한걸음에 달려와 시몬을 와락 끌어안았다. 슌도 계속 방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시몬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기억을 되짚어 보던 시몬이 픽 웃으며 슌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네가 날 구해준 거구나? 슌."

"아냐! 형이 날 구한 거야!"

이곳은 올드원 백작가의 저택이었다. 시몬은 슌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오늘은 임무 5일째 마지막 날. 해적들의 공격으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선장 가일을 잃은 해적 잔당들은 전력을 수습한 블루하버의 해군에 모두 진압되었다. 특히 에르제베트의 계략으로 해적선 한 척 분량의 인원이 핀치와 싸우느라 소모된 게 주요했다.

전투가 끝난 뒤 시몬은 바로 저택으로 옮겨와 치료받았고, 피어도 별 탈 없이 무사했다.

블루하버는 주요 도심지가 해적선의 포격으로 불타 버렸지만, 현재 불길은 잡혔고 재건을 시작했다고 한다. 올드원의 재력이라면 다시 이전의 모습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슌은 덧붙였다.

그리고 슌은 엄마의 죽음에 대한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로 했다. 올드원 가문의 몇몇 원로들이 이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혐의가 나왔는데, 그들은 당시 장남이었던 슌의 아버지를 새로운 귀족 영애와 정략 결혼시키길 바랐던 것 같다.

가문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슌의 결심은 확고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시몬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무사히 마무리됐구나. 임무 기간이 초과하지도 않았네."

"응! 안 그래도 키젠에서 하수인이 찾아왔어."

아까부터 벽에 딱 붙은 채로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던 검은 옷의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시몬도 그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언제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요?"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안에만 시몬 학생이 원하시는 때를 말씀해 주시면 그 시간에 맞춰 텔레포트를 준비하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시몬의 휴식을 배려해 주기 위함인지, 슌과 메이드들, 그리고 하수인은 방에서 나갔다. 측근인 에르제베트만이 남아서 과일을 깎고 있었다.

시몬은 잠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에르제. 넌 왜 그런 차림이야?"

메이드복을 입은 그녀가 시몬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제가 군단장님을 주인님 주인님하고 부르니까 저택의 메이드 분들이 동종업계인 줄 알고 한 벌 빌려줬네요. 잘 어울리옵니까?"

그녀가 치맛단을 붙잡고 빙그르르 회전했다. 시몬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딱 두 시간만 더 쉬다가 키젠으로 돌아가자."

"네? 조금 더 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기엔 할 일이 산더미야. 키젠에 제출할 보고서도 써야 하고, 내일 수업 준비도 해야지. 계속 저택에 눌러앉아 있는 것도 여기 일하는 분들께 민폐고."

"군단장님의 뜻이 그렇다면 알겠사옵니다. 저쪽 집사장에게 말해놓겠어요."

그렇게 아침 겸 점심으로 죽으로 식사를 마친 시몬은, 기력을 회복한 다음 깨끗하게 세탁된 키젠 교복을 입고 집사의 안내에 따라 저택 밖으로 나섰다.

"시몬 님! 힘내세요!"

"절대 못 잊을 거예요~!"

"학교 때려치우게 되면 누나한테 와! 알았냐?"

일과 업무고 뭐고 저택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온 메이드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시몬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시몬도 그동안 자신을 보살펴 준 사람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마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슌이 킥킥 웃었다.

"시몬 형, 메이드 누나들한테 인기 많네?"

"......나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

"어머나, 이런 미녀를 옆에 두고 어딜 보는 거예요?"

에르제베트가 보란 듯이 시몬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저택 쪽에서 왁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에르제베트가 혓바닥을 삐쭉 내밀며 약을 올렸다.

"장난 그만 치고 빨리 가자."

"네!"

슌이 마차에 올라타고 시몬과 에르제베트가 뒤따라 앉았다. 마부가 마차를 출발시키며 바퀴가 굴러갔다.

"키젠에서 온 하수인 분은?"

"약속장소에서 텔레포트인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대. 그보다 형."

"응?"

슌이 킥킥 웃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마차가 저택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택 앞에 몰려들어 있던 주민들이 박수와 함께 우렁찬 환호성을 쏟아냈다.

"잘 가요~ 키젠 학생!"

"블루하버를 구해줘서 고맙네!"

"언제 한번 우리 가게에 꼭 들러줘!"

앞에는 본 아머를 입고 함께 싸웠던 주민들도 보였다.

"함께 싸웠던 일들은 못 잊을 거예요!"

"잘 가!"

시몬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창밖으로 얼굴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직접 손을 흔들어주었다.

"힘내라! 블루하버의 아들 시몬 폴렌티아!"

아, 그건 좀.

레스힐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것 같다.

"우흐흐, 왜 이렇게 민심이 좋아? 나 안 보는 사이에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아니, 그냥 네 명령대로 싸운 것뿐인데."

저택과 도심지를 지나 도로를 열심히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멈춰 섰다.

무척 익숙한 장소, 그간 시몬이 일했던 언데드 전시장이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잠깐 들고 갈 게 있어서."

슌이 훌쩍 뛰어내리고 시몬과 에르제베트도 뒤따라 내렸다.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좌우로 비켜주었다.

그 와중에 경비 한 명은 시몬에게 블루하버를 지켜줘서 고맙다며 덕담을 남겼다. 시몬도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잠깐 물건만 가지고 올 건데 따라오려고?"

"그래도 오늘까지는 네 경호원이잖아."

"참. 그렇지!"

슌이 킥킥 웃으며 먼저 계단을 올랐다.

"허락을 받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어."

계단을 올라오자 집사장을 비롯한 집사들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집사장은 손에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임무 보상이지."

상자를 건네받은 시몬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았다. 번쩍번쩍 빛나는 금전 1,000개가 보였다.

'아......!'

1,000골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확 와닿지 않았는데, 직접 내용물을 보니까 비로소 상당한 거금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몬이 감격하며 말했다.

"......진짜 고마, 아니, 감사합니다 백작님."

"아하하!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슌이 큰 소리로 웃으며 집사들에게 손짓했다. 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 뭐 하나 잊은 거 없어?"

"음?"

"어제 내가 이 섬과 영지민들을 지켜주면 추가 의뢰비를 지급한다고 했잖아."

그 말에 시몬이 무안한 얼굴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진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걷어."

슌의 명령에 집사들이 천을 확 잡아당겼다. 어항에 담겨 있는 연체동물 형태의 스켈레톤이 보였다.

"1만 골드의 가치를 가진 차세대 언데드, 오버로드."

슌이 후우.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이어 말했다.

"지금부터는 시몬 형 거야. 받아줬으면 해."

"......?!!"

시몬은 해일과도 같은 충격을 받으며 입이 딱 벌어졌다.

언젠가 해골마나 데몬의 뼈로 만든 스켈레톤은 시몬의 버킷리스트였지만, 1만 골드 이상의 가치라는 이 오버로드는 가진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었다.

"슈, 슌! 이건 너무......."

슌이 씩 웃으며 코를 쓸었다.

"형 반응을 보니까 더 주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 나와 올드원 가문, 그리고 블루하버 주민들의 성의를 받아줄 거지?"

"......."

아예 거절할 구멍도 막아버리고 대답을 요구하는 슌이었다. 수만 가지 감정이 교차하며 멍하니 있던 시몬이 이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집사들과 에르제베트가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군$@&%&단$!!!]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피어도 기뻐죽겠다는 이야기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