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7화
"자, 자, 진정들 하시게."
의자에서 내려온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결국 선택은 시몬이 할 테니, 그가 결정하도록 두는 게 맞지 않겠나?"
저주 연구회와 사담 회장이 쯧 하고 혀를 찼다. 남자가 앞으로 나와 제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나는 안드레. 드레스덴 왕국의 셋째 왕자일세. 그리고 노블은 미래에 연방을 통치할 권력자들의 모임이지."
왕자라니......! 왕족이 키젠이 있다고?
시몬이 예를 취하려고 하자 안드레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런 건 됐네. 키젠에서 사람의 위아래를 가르는 건 오로지 실력뿐이니."
"아, 넵."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노블은 암흑연방의 큰 밑그림을 그리는 모임일세.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 각자의 소속을 대표한 채로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상당한 외교적 비용이 소모되지만, 지금 우리는 순수하게 학생으로서 여기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직 학생일 때 약속해 둘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네."
안드레가 눈을 빛냈다.
"노블은, 우리는 학생으로서 대륙을 움직인다."
권력자들의 동아리란 게 그런 뜻이었구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젠의 모든 학생들이 노블의 가입을 원하고 있지만 가입 조건은 까다롭지. 부모님이 후작위 이상의 귀족, 혹은 그에 준하는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 자네 동기인 엘리사도 우리 동아리에 들어왔다네."
그 하늘에 유령선을 띄우던 특례 7번? 어쩐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전 권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요."
"아니! 자네도 가입 조건에 속해 있다네. 특례 1번 학생은 특별 조항으로......."
"아, 말 더럽게 많네. 됐고."
사담 회장이 안드레의 얼굴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안드레가 삿대질하며 '평민 따위가 무례하다!'를 연신 외치고 있었지만 그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으며 말했다.
"1학년. 사담에 들어오면 네가 가진 SM-1의 혈액의 활용법을 극대화해서 무한한 칠흑을 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겠어."
이번에는 저주 연구회 회장이 앞으로 나왔다.
"그 정도로 뭘. 너 소환학 지망생이라고 했지?"
그가 품에서 꺼낸 마력 투사기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눈이 달려 있고 썩은 나무처럼 생긴 언데드 그림이 나타났다.
"희귀종의 저주 언데드 데드바이런이다. 이미 우리가 확보했고, 원한다면 네게 무료로 제공하마. 운용법까지 전수하도록 하지."
"이봐, 너!"
"저주는 네크로맨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학문이고, 범용성도 넓어. 네 소환학에 저주학이 합쳐지면 충분히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
"비켜라!"
왕자 안드레가 두 사람을 동시에 밀어내며 중앙으로 나왔다.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인간은 권력이다, 권력! 결국 우리가 여기서 아등바등하는 것도 다 미래의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노블에 가입하는 게 궁극적인 목적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인......!"
"저리 꺼져라!"
"너나 비켜! 그리고 몸에 냄새나니까 좀 씻어!"
"체질이다!"
세 선배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시몬은 작게 한숨을 쉬며 그들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조금 고민할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시몬은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려 기숙사 건물 쪽으로 떠났다.
세 사람은 떠나는 시몬의 뒷모습을 보며 각자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틀림없이 우리 쪽에 온다!'
* * *
동아리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시몬은 기숙사에 돌아와 짐을 풀자마자, 바로 금지된 숲으로 가서 피어의 유적에 넘어왔다. 아공간의 스켈레톤과 송장거미들을 모두 꺼내고, 마침내 '이것'의 차례가 됐다.
[얼른 꺼내봐요 군단장님!]
"좋아."
아공간을 열고 조심스럽게 오버로드를 꺼냈다.
'크으으, 다시 봐도 미쳤다.'
피어나 에르제베트는 물론, 주위의 스켈레톤이나 송장거미들까지 호기심이 생기는지 기웃거렸다.
하지만 오버로드는 경계심이 강한 성격인지, 긴 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다가오려는 언데드들을 위협했다.
'진짜 신기하긴 하단 말이야.'
문어, 오징어, 혹은 해파리를 연상케 하는 크라켄은 누가 봐도 뼈 없는 연체류 타입의 몬스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뼈로 구성되어 네크로맨서가 움직일 수 있다니. 겉으로 보면 뼈를 조립해서 만든 문어 모형 같은 느낌이다.
시몬은 크라켄의 다리를 슥슥 만져 보았다.
이전에 들었던 핀치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엔 크라켄의 뼈가 워낙 물렁물렁해서, 냉조 처리 후 단단하면서도 탄력적인 미스릴을 뼈에 다량 투여했다고 했는데 이게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유연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날이 완성된 것이다.
'좋아.'
시몬이 크라켄의 사념에 접속해서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시몬의 의지대로 다리를 붕붕 허공에 휘젓는 모습이 시원시원했다.
이런 종류의 몬스터가 처음이라 아직 컨트롤이 미숙했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실력은 금방 붙을 것 같았다.
[시험해 보고 싶으신가요?]
어느새 에르제베트가 납작한 암석 잔해를 들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걸 과녁으로 생각하고 맞춰봐요!]
시몬이 씩 웃으며 오른팔을 뻗었다.
촤르르르륵!
촉수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중간에 방향이 꺾이자 에르제베트가 화들짝 놀라며 암석을 위로 던지며 도망쳤다.
촉수는 그대로 추적하듯 올라가 암석의 중앙을 꿰뚫었다.
[노, 놀랐사와요. 군단장님!]
"아, 미안. 아직 컨트롤이 익숙지 않네."
그런데.
단 한 번 오버로드로 휘둘러 봤을 뿐인데 짜릿짜릿할 정도로 손맛이 각별했다. 컨트롤하는 재미가 있는 언데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종이긴 하나, 위력과 속도 어느 쪽도 흠잡을 곳이 없다. 확실히 비싼 값을 하는 언데드야. 하지만!]
피어가 팔짱을 꼈다.
[오버로드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게 뭐죠?"
[본체의 방어도가 전무한 수준이다.]
확실히 그랬다. 오버로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언데드가 아닌 만큼, 뼈만으로 형태를 구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구자의 인공적인 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만약 이 몸체가 공격당해서 파괴되면.
[파괴되면 본래대로 되돌릴 수 없겠지.]
원제작자인 핀치도 이제 없다.
한 번이라도 파괴당하면 그걸로 끝. 오버로드는 스켈레톤 특유의 '복원'이 불가능한 개체였다.
[아마 실전에서 100% 활용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버로드는 이 대륙에서 소년, 너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언데드다!]
"......고유한 언데드."
[그래! 그러니 누가 사용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오버로드에게 맞는 운용법도 네 스스로 찾아내야 해!]
"확실히 그러네요."
시몬은 팔짱을 끼며 곰곰이 고민에 빠졌다.
"아!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시몬은 다시 오버로드를 아공간에 넣었다.
"외부의 공격이 위협적이라면, 아예 몸체를 안전한 아공간에 넣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시몬이 다시 가상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이렇게 아공간을 열고 다리만 빼내면......!"
시몬이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래도 안 나오자 낑낑거리며 연달아 명령을 내렸지만 오버로드는 묵묵부답이었다.
"뭐야, 왜 말을 안 듣는......."
촤르르르르륵!
갑자기 아공간에서 오버로드의 다리가 쭉 뻗어 나와 정면에 보이는 유적의 벽에 틀어박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촉수 끝이 벽을 부수고 깊게 들어갔다.
'와우.'
[대단하옵니다!]
시몬은 짜릿한 손맛을 느끼며 다시 오버로드에게 촉수 회수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또 오버로드는 묵묵부답이었다.
[아공간에 있으니 사념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군.]
피어가 말했다.
[크라켄은 원래 스켈레톤이 될 수 없는 개체인 만큼, 사념 전달력이 약하다. 거기에 아공간에까지 들어가 있으면 효과가 월등히 떨어질 수밖에.]
'음.'
위력은 확실하다.
하지만 스위치를 당겨도 화살이 나가지 않는 석궁. 몇 번이고 계속 당겨야 나갈까 말까 한다면 주력으로 사용하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개선하고 연구할 점이 많네요."
그래도 시몬은 가슴이 뛰었다.
이 위력적인 재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이제 자신의 몫이었다. 나아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 * *
피어의 유적에서 오버로드 운용법을 연습하며 시간을 보낸 시몬은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런데 책상에 딕의 쪽지가 있었다. 빈 강의실에서 조원들끼리 스터디 중이니까 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시몬은 바로 교재 몇 권을 챙기고 딕이 알려준 건물로 이동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동아리에 가입시키려는 2학년 선배들의 막판 스퍼트가 진행 중이었다. 시몬이 알기로는 동아리 가입일이 바로 내일까지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동아리라.'
시몬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마음에 확 와닿는 동아리는 없었다. 오버로드 때문에 온 생각이 그쪽에 쏠려 있는 것도 한몫했다.
"......안녕."
인기척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시몬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퀭한 다크서클에 등이 축 늘어진 남학생이 다가왔다. 시몬은 그의 옷깃에 붙어 있는 붉은 표식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 선배님. 말씀하시죠."
"이거...... 괜찮다면 받아줘......."
그가 전단지를 내밀었다.
"생각 있으면 한번 들려주면 좋겠지만...... 안 올 거 아니까...... 하아암."
그가 하품을 하며 다른 곳으로 갔다.
시몬은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전단지를 펼쳐보았다.
<특수 언데드 연구회 '돌연변이'>
뭔가 별난 네이밍이다. 그리고 시몬이 제안받은 동아리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보는 소환학 관련 동아리였다.
'정확히 뭘 하는 곳이지?'
"어? 야! 시몬!"
복도 쪽에서 반갑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메이린이었다.
"안 들어오고 문 앞에서 뭐 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의 등을 짝 소리 나게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자 시몬이 '억' 소리를 내며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야, 야! 너 왜 그래!"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나 아직...... 부상이......."
"부, 부, 부상? 진작 말했어야지! 바보야!"
"......말할 시간도 안 줬잖아."
떠들썩한 소란에 딕과 카미바레즈가 무슨 일인가 싶어 강의실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입에 과자를 하나씩 물고 있었다.
"......?"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시몬과, 얼굴이 시뻘게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메이린을 번갈아 보았다.
"메이린......."
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성적과 질투에 눈이 멀어 친구를......."
"그런 거 아니야! 미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