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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08화 (10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8화

"......미안."

시몬이 앓는 소리를 내며 앉아 있는 옆으로,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메이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시몬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윽!"

"앗!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냥 병동 가라니까!"

시몬은 억지로 괜찮은 척 미소 지었다. 그리고 괜히 거기 갔다가 의사가 수업 중지 명령 때리면 정말로 억울해진다. 그냥 참는 게 낫다.

"아.'

맞은편 자리에서 카미바레즈와 시선이 마주쳤다.

걱정 반 반가움 반의 표정이던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몬~"

"안녕. 카미도 별일 없었지?"

"네!"

그때 딕이 교복 재킷을 훌러덩 벗었다.

"암튼,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러곤 옷 곳곳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동아리 전단지들을 쑥쑥 빼기 시작했다.

"이번 동아리 시즌이, 1년 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2학년들이 우리에게 잘 대해줄 때란 거야."

이쪽도 동아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호기심이 생긴 시몬이 물었다.

"잘해주는 정도가 아니던데. 왜 그렇게 1학년 유입에 목을 매는 거야?"

딕은 끌끌 웃으며 손가락으로 동전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다 이런 문제 아니겠냐. 유입 인원에 따라 동아리 지원금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거든."

"......아하."

시몬은 바로 이해했다. 키젠 생활에서 자금은 중대였다.

"학기가 흘러가다 보면 또 동아리를 탈퇴하거나 키젠에서 퇴학당하는 1학년들도 있긴 한데, 이게 또 탈퇴로 깎이는 지원금 폭은 작아. 그래서 일단 애들을 많이 확보하고 보자! 대충 뭐 그런 양상이 된 거지. 아 씨, 바지 뒷주머니엔 어떻게 전단지를 넣은 거야?"

딕이 투덜거리며 엉덩이 주머니에서 전단지를 뽑았다. 정말로 주머니란 주머니에는 전부 전단지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메이린이 자기 어깨를 툭툭 때리며 말을 받았다.

"동아리 입학 시즌이 끝나자마자 찬밥 대우하는 경우도 허다하대. 그러니까 이상한 곳엔 눈길도 주지 말고. 어느 정도 메이저한 동아리에 들어가는 게 안전빵이야."

"너희들은 어디에 들어갔어?"

시몬의 물음에 카미바레즈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전 혈류 연구회인 '사담'에 들어갔어요!"

"아, 거기구나."

시몬이 쓰게 웃었다.

"난 순수마법 연구회."

메이린이 말했다.

순수마법이라면, 칠흑이 아닌 마나 만으로 마법진을 그려서 사용하는 옛날 스타일의 마법이었다.

"순수마법 연구회? 거긴 왜?"

시몬의 질문에 딕도 고개를 들었다.

"나도 묻고 싶었어. 뜬금없이 순수마법은 왜 배우려고?"

"내가 상아탑이라 관심이 있기도 하고, 뭐가 됐든 칠흑원소계의 원조잖아? 공부하면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들었어."

두 사람 다 자신의 지망과목이나 특기와 어울리는 동아리를 골랐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는 딕, 넌?"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후후! 난 아예 동아리를 새로 만들었지!"

"진짜? 어떤 동아린데?"

"로체스트 창업 지원회!"

"......으엑."

메이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곳을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고? 최소 세 명은 있어야 창설을 허락해 주지 않아?"

"금방 구해지던데. 동아리에 관심 없는 애들한테 가서 이름만 올려주면 지원금 떼준다고 하니까 우르르르!"

"......하여간 인생이 꼼수라니까."

"지름길이라고 해줘."

카미바레즈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시몬은요? 시몬은 어디 갈지 정했어요?"

"아직 고민 중이야."

시몬이 감자칩 하나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고춧가루 팍팍 뿌려진 딕의 취향 같은 매운 감자칩이었다.

"근데 시몬, 너 혹시 '노블'에서 입부 제안 안 왔냐?"

딕의 물음에 시몬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오, 오긴 했는데."

"크으, 역시! 특례 1번도 입부 대상자라고 들었거든!"

"노블이면 왕자님이 계신 그 동아리 아니에요?"

"맞아. 권력자들 모임."

딕이 팔짱을 꼈다.

"엄청 거만한 곳이긴 한데, 들어가서 나쁠 건 없어. 각종 혜택은 두말할 것도 없고, 2학년들과 강력한 파벌을 형성할 수 있어. 아래에 있는 자기 후배들 건드리면 2학년들이 나서서 다 조져 버린다는데?"

"으휴, 찌질해. 찌질해."

메이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딕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넌 상아탑이라는 거대한 배경이 있어서 모르겠지만, 키젠 생활에서 '빽'이 있고 없고는 진짜 커. 노블을 뒤에 두면 주위 사람들 태도가 달라진다고."

"빽이니 뭐니, 결국 뭔가에 의존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에서 기인하는 거잖아?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뿐이야."

"그러니까 넌 상아탑이......."

세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시몬은 진지하게 어떤 동아리에 들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방금 2학년에게 받은 '특수 언데드 연구회'의 전단지로 향했다.

* * *

'한번 이야기나 들어볼까.'

결국 시몬은 특수 언데드 연구회, '돌연변이'의 동아리방으로 가고 있었다.

동아리 방이 있는 건물은 1학년 주요 캠퍼스에서는 조금 떨어진 위치. 식당들과 카페가 밀집된 중앙 구역과 가까운 건물이었다.

"거기, 잠깐!"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한 여학생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크림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2학년이네.'

그녀는 교복 재킷을 벗어서 허리에 끼고 있었지만, 빨간 표식을 보지 않고도 배경정보만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었다.

비교적 순한 느낌의 화장을 하는 1학년 여학생들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진한 화장에 고난도의 눈화장. 그리고 짧은 스커트.

2학년들은 대담하게도 키젠 교복을 자기 스타일대로 수선하곤 했다.

남학생은 바지를 더 타이트하게, 여학생들은 치마를 짧게 줄였다. 그래도 교복에 걸려 있는 배리어는 전신 방호형이니 문제가 없긴 했다.

"부르셨습니까. 선배님."

시몬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성큼성큼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다가온 그녀가 팔짱을 끼며 미소 지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동아리는 벌써 정했나 보네?"

"아, 아뇨. 정한 건 아니고 설명을 좀 들어보려고요."

그때 그녀의 시선이 시몬의 손에 들려 있는 전단지로 향했다.

"오! 오! 오! 너 그거! 그거!"

그녀가 급발진하며 바짝 다가왔다. 갑자기 거리가 확 가까워지자 시몬은 목을 살짝 뒤로 뺐다.

"너 혹시 '돌연변이'에 들어오려고?!"

"설명을 좀 들어볼......."

"하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시몬의 등을 짝! 짝! 때렸다.

메이린과에게 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세기에, 시몬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 뭐야 너? 왜 그렇게 눈물이 글썽글썽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내 동아리에 들어오는 게 감격적인 거야? 꺄하하하하! 고럼 고럼!"

"일단 설명을 듣......."

그녀가 시몬의 손목을 강한 힘으로 붙잡아 당기며 소리쳤다.

"가자!"

좀처럼 남의 말을 듣지 않는 타입이었다.

거기에 엄청난 기분파에다가 하이톤의 목소리. 표정에서도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그녀는 짧게 줄인 교복 스커트를 조심성 없이 나풀거리면서, 다리를 쭉쭉 뻗어 걸어갔다.

그녀에게 손목을 붙잡혀 도착한 곳은 허름한 동아리실이었다.

문 앞에는 삐뚤빼뚤한 글자로 '돌연변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색이 곳곳에 번져 있고 테이프도 대충 붙은 티가 났다.

"자, 들어와!"

"감사합니다."

동아리 방은 생각보다 조금 낡고 허름했다. 키젠의 동아리는 크고 웅장하며 화려하단 소리를 들었는데 적어도 그 소문과는 다른 모습.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지트 같은 느낌이고 기분이 편안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시몬의 취향은 화려한 쪽보다는 손때 묻은 수수함이었으니까.

"......왔어?"

소파에 누워 있던 2학년 남학생이 부스스한 머리를 쓸며 몸을 일으켰다.

시몬은 바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전단지를 준 바로 그 짙은 다크서클의 남학생이다.

"뭐 하는 거야? 디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졸려. 그리고 어차피 전단지 뿌려봐야 몇 명 오지도 않을 텐데."

"안 오긴! 여기 누가 왔는지 봐!"

그녀가 시몬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뒤늦게 디오라고 불린 남자도 시몬을 발견했다.

"어...... 너는......."

"또 뵙습니다. 선배님."

시몬이 그에게서 받은 전단지를 보이고는 꾸벅 인사했다.

"니들은 잠시 여기 있어! 난 1학년 쪽에 한 번 더 다녀올게!"

"......그냥 있으라니까."

"갔다 온다!"

그녀가 후다닥 동아리 문을 닫고 떠났다. 디오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시몬을 보았다.

"......너도 편안히 있어."

"네?"

그가 다시 소파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좀 있으면 면접 볼 거니까 그때까지...... 움냐 움냐."

그러곤 잠들었다. 별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시몬은 고개를 움직였다.

'슬쩍 둘러볼까.'

시몬은 동아리 방 이모조모를 살폈다.

뒤로 갈수록 전문적인 냄새가 났다. 그냥 휴식을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작업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서 직접 언데드를 개발하는 건지, 네크로맨서 상점 못지않은 다양한 언데드 재료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다. 책상에는 여러 도안을 비롯해 칼이나 가위, 깎여 나간 뼈들이 어질러져 있다 심지어.

'동아리 방이 좁아 보이던 이유가 여기 있었네.'

방의 뒤쪽에는 기계들까지 있었다.

마력석으로 돌아가는 자동 밴딩 기기와, 냉조 처리해 주는 기계까지.

시몬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기기들을 쓸 수만 있어도, 이 동아리에 들어올 메리트는 충분해 보였다.

똑똑.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디오는 여전히 잠든 채 반응이 없었기에, 시몬이 대신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달칵.

문이 열리며 차가운 인상의 안경을 쓴 남자가 들어왔다.

교복 재킷 안에 후드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후드를 눌러 써서 앞머리가 강조되면서도 폐쇄되고 딱딱한 느낌이 났다.

'1학년이구나.'

들어오자마자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시몬이 입을 열었다.

"선배님들이 조금 있다가 시작한대. 앉아서 편히 쉬고 있으라는데?"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제집처럼 편안히 소파에 앉았다. 그러곤 아공간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묵묵히 눈으로 훑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시몬은 슬쩍 책 이름을 보았다.

<침팬지는 왜 철학자가 될 수 없을까>

'......저게 대체 무슨 책이야?'

뭔가 이상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두 번째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살짝 열리더니, 키 작은 소년이 얼굴을 빼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시몬을 발견하고 그의 눈이 커졌다.

"아, 시몬!"

"토토!"

같은 A반의 소환학 전공자인 토토 아모리.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던 그가 반가움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몬! 너도 여기 가입하려고?"

"응? 아. 아직 결정은 안 했어."

낯선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분위기가 한층 풀어졌다.

두 사람은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경남은 별로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지 여전히 독서 삼매경 중이었다.

"난 선배님 한 명 보고 여기까지 왔어."

토토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선배님?"

"소문을 들었거든."

토토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 동아리의 회장이 그 유명한......."

"2학년, 특례 5번 출신, 현 학생회 소속인 벤야 바닐라."

두 사람의 고개가 들어갔다. 어느새 책에서 눈을 떼고 시몬과 토토를 바라보던 안경남이 말하고 있었다.

시몬은 익숙한 단어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잠깐만! 바닐라라면 혹시 그......."

"어."

안경남이 눈을 빛냈다.

"바닐라 그룹 회장의 손녀딸이 이 동아리의 회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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