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9화
시몬을 포함한 1학년 세 사람은 선배들이 돌아오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안경을 쓴 1학년 남자애의 이름은 피츠제럴드.
M반의 소환학 지망생이고, 이론에 빠삭한 학자타입으로 보인다. 메이린처럼 전 과목을 통달하지는 못했지만, 전공인 소환학 분야에서만큼은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의 인재였다.
"네 골렘에 대해선 들었어. 인상적인 건 인정."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하지만 결평에선 비효율적. 경기장 밖에서 골렘을 쌓아 올리는 전법은 상대가 알고 있는 이상 통용되기 힘들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몬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대답이 의외인지, 피츠제럴드가 반대쪽 안경테를 살짝 붙잡고 눈가를 좁혔다.
"보통 본인이 가진 가장 큰 자신감을 깎아내리면 사람들은 화를 내던데."
"내가 왜 화를 내겠어? 지적은 언제나 환영이야. 근데 네 말대로 골렘이 비효율적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피츠제럴드가 기다렸다는 듯 술술 늘어놓았다.
"역으로 골렘을 만드는 척할 것. 가장 잘 알려진 골렘전술로 페이크를 넣으면서 심리전으로 우위에 선 다음, 다른 핵심 요소로 승부를 가져가는 게 유효한 전술이라고 판단돼."
시몬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너는......."
피츠제럴드가 시선을 움직여 토토를 바라보았다.
"누구지?"
토토는 쓴웃음을 흘리더니 얼른 대답했다.
"시몬이랑 같은 A반의 토토 아모리야! 나도 소환학 지망!"
시몬이 다시 봐도 토토는 키가 무척 작았다. 여학생인 카미바레즈와 비교해 봐도 더 작은 정도?
이종족인 호빗의 피가 섞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평 스쿼드는?"
그 물음에 토토가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위....... 저번에는 최하위였고......."
"지금이라도 소환학을 포기하고 바힐 교수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걸 추천."
피츠제럴드가 담백하게 안경을 고쳐 쓰며 권고했다.
"널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키젠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어."
"......그!"
토토가 꼼지락거리고 있던 두 손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나, 난 소환학 말고는 아무 재주도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 시몬의 첫 결투평가를 보고 확실히 깨달았어!"
시몬을 바라보는 토토의 시선에는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선망과 존경, 그리고 같은 분야의 경쟁자로서의 순수한 승부욕.
"뚝심을 가지고 키젠 생활을 하는 게, 세상에서 최고로 멋지다고 생각해!"
"......."
안경에서 손을 뗀 피츠제럴드가 팔짱을 꼈다.
시몬은 분명 또 비효율적이라는 둥의 악담을 할 거라고 생각하며 걱정했지만.
"멋짐은 중요하지."
피츠제럴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시몬과 토토가 의아한 눈으로 한번 시선을 마주했다.
벌컥!
"1학년 제군들! 늦어서 미안하다!"
시몬을 데리고 온 아까 그 크림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동아리 방에 들어왔다. 1학년 세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아암, 왔어?"
소파 위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디오가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그러곤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돼지는?"
"걘 뭐 출석을 기대하지도 않았어! 둘이서 시작하자!"
디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좀비처럼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로 바닥에 딛고, 허리가 구부정한 채로 스르륵 올라왔다.
"......이쪽이야."
디오가 1학년들을 안내했다.
그냥 낡고 좁은 동아리 방인 줄 알았는데, 디오가 책장을 치우자 놀랍게도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니 밝은 조명이 비추는 큼지막한 공간이 드러났다.
피츠제럴드, 시몬, 토토가 차례대로 나란히 섰고, 그들의 앞으로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녀가 당당히 팔짱을 끼고 섰다. 이것저것 서류들을 챙겨온 디오가 느릿한 걸음으로 그녀의 옆에 섰다.
후으읍.
양 허리에 손을 얹은 그녀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만나서 반갑다! 1학년 제군들!!!"
쩌렁쩌렁!
높은 볼륨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성악을 공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량이었다.
"내 이름은 벤야 바닐라!"
그녀가 머리 위로 검지를 척 세웠다.
"2학년 소환학 전공에! 장래희망은 세계정복이다! 잘 부탁한다!!"
"......?"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진짜 키젠 2학년인가? 중학생 2학년이 아니라?
"......너희도 예상하다시피."
디오가 한숨을 푹 쉬며 덧붙였다.
"......이런 인간이 동아리 회장이야. 그냥 평범한 곳으로 가는 게 너희들을 위해서도 좋...... 꾸허헣!"
훌쩍 뛰어오른 벤야의 이단 옆차기가 디오의 얼굴에 꽂혔다. 그의 몸이 수십 미터를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다행히 돌벽은 아닌지 푹신한 메트릭스처럼 충격을 완화했지만, 디오의 몸뚱이는 건어물처럼 축 늘어졌다.
착.
바닥에 내려온 그녀가 몸을 쭉 일으켰다.
"저 의욕 바닥은 디오 파텔. 그냥 내 졸병이니까 무시해도 돼."
"질문 있습니다. 선배님."
피츠제럴드가 손을 들었다. 그녀가 씩 웃으며 검지 끝으로 그를 척 가리켰다.
"의욕 있는 제군은 좋아해! 질문이 뭐지?"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세계정복의 의의가 궁금합니다."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치켜올렸다.
"지금까지 무력으로 인한 세계정복은 대륙의 역사상 그 어떤 영웅도 실현시킨 적이 없습니다. 위대한 네프티스 님조차도 일곱 명의 성녀들이 수호하는 신성연방을 어쩌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예리한 질문! 무력 정복은 나도 그렇게 선호하진 않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언데드로 세상을 정복한다!"
"언데드...... 요?"
"그래! 사람들은 언데드의 진정한 가치를 몰라! 다들 생각해 봐! 이렇게 저비용 고효율의 노동력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언데드는 대륙에 내린 우주의 선물이야!"
흥분한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미관상의 문제, 죽은 자에 대한 본능적 혐오성,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공격성 때문에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들만 쓰는 형국이지만! 나는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언데드를 민간 분야까지 넓게 통용시켜서 세상을 훨씬 더 윤택하게 만들 거다!"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무력에 의한 정복은 한 사람을 위해 아흔아홉 명이 희생당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정복이라고 할 수 없지! 나는 신성연방의 사람들마저도 내 언데드의 가치에 매료되게 할 거다!"
짝. 짝. 짝. 짝. 짝.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 피츠제럴드만이 무섭게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입부하겠습니다."
"좋아!"
시몬은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차원들끼리는 역시 통하는 게 있는 걸까.
'역시 여긴 정상은 아니야.'
시몬은 고개를 돌려 토토 쪽을 보았다.
그는 얼굴을 수줍은 듯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크림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열정 넘치게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벤야의 얼굴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 예쁘다......."
세상에, 이쪽은 피츠제럴드보다 더 위험했다.
"제군!"
그때 벤야가 성큼성큼 다가와 시몬의 앞에 섰다.
"자네는 아직도 입부를 망설이고 있나?"
"아, 네."
"입부해라 시몬."
옆에 선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고쳐 쓰며 권유했다.
"전설의 시작을 학창시절부터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메리트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땀을 삐질 흘렸다.
그리고 토토는 조금 옆으로 물러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가, 가까워! 선배님이랑......!"
"음?"
그 모습을 본 벤야가 성큼성큼 토토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제군은 몸에 열이 조금 있는 것 같은데."
"허, 허어어억!"
토토가 감전당한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단 병동에 가보는 게......."
"괘, 괜찮습니다! 이, 입부하겠습니다!"
토토의 이마에서 손을 뗀 그녀가 눈을 깜빡이더니 씩 웃었다.
'서, 선배님이 날 보고 웃어주셨어!'
그 미소에 토토는 정신적 기절상태에 도달했다.
'.......'
한편 시몬은 그녀의 손을 보고 있었다. 18세 소녀의 손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많은 상처와 굳은살이 보였다.
세계정복이라는 꿈은 허무맹랑하지만, 그 열정과 노력은 진짜.
동아리 방에 널린 재료들을 보니 실력도 있어 보였다.
'......같은 소환학도로서 배울 점은 하늘만큼 많겠지.'
시몬은 천천히 생각했다.
관심사와 화제를 공유하는 친구들.
언데드를 직접 만들고 개발할 수 있는 공방.
그리고 대륙 최고의 언데드 제작사인 바닐라 그룹 회장의 딸과의 인연.
당장의 가치로만 보면 사담, 저주 연구회, 노블에 비해 부족하지만, 시몬의 마음이 동하는 건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스럽지만, 선배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음! 뭐지?"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언데드를 손에 넣었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녀는 고민하지도 않고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무조건 같이 부딪히고 깨져 봐야지! 미지와 일상이 공존하는 하루하루라니, 생각만 해도 두근거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닐까?"
"......아하하."
시몬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입부하고 싶습니다."
"좋아 제군들! 모두 마음을 정한 거지?"
"......하지만."
벤야의 발차기에 맞아 날아갔던 디오가 다시 구부정한 허리로 복귀해서 말했다.
"......우리 동아리 사정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준에 미달하는 1학년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디오가 전단지를 흔들며 말했다. 벤야도 씩 웃으며 팔짱을 꼈다.
"가입 조건은 제군들도 봤겠지? 조건은 특수 언데드의 보유와 수준급의 운용력이야!"
사실 '돌연변이'는 다른 소환학 지망생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벤야 바닐라의 존재, 그녀와 인맥을 만들 기회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이 가입을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입 조건이 다른 동아리들에 비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까다롭다.
특수 언데드의 보유와 운용.
현 1학년 소환학 지망생의 수업 진도는 스켈레톤을 비롯한 하급 언데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정도다.
그냥 독학만으로 스켈레톤 아처나 머드골렘을 만들어 운용하는 시몬은 한없이 비정상적인 케이스였다.
물론 '특수 언데드'를 보유하고 있는 소환학 지망생들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소수의 강자들이고 더 높은 위치에 랭크되어 있는 동아리에 들어가길 원했다.
'특수 언데드'를 전문으로 하는 돌연변이는 소환학 중에서도 마이너할 수밖에 없는 위치지만 그럼에도 조건이 까다롭다. 이게 지원자가 별로 없는 이유였다.
"자, 면접을 시작하자!"
벤야가 손바닥을 착 맞부딪히며 말했다.
"제군들은 어떤 특색 있는 소환수와 교감하고 있지? 내게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