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3화
쿠웅! 쿵!
콰아아아아앙!
흙먼지가 산처럼 일어나고, 나무가 쓸려나간다.
그 사이로 프리스트 복장을 한 에르제베트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짐승에게 쫓기는 기분이네.'
시몬의 명령에 따라 금지된 숲을 지키고 있던 에르제베트는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특징 없는 갈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게, 딱 봐도 기를 쓰고 정체를 숨기려는 차림새였다. 거기에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수상쩍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까지.
그녀는 저 거수자가 시몬이 말한 프리스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즉시 송장거미를 보내 시몬과 피어를 불러들였지만, 두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그가 숲에서 벗어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에르제베트는 단독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계획대로 프리스트로 변신해, 프리스트의 격식에 맞춰 인사를 하고 정보를 뜯어내려 했으나.
상대편에서 돌아온 건 정보가 아닌, 난잡한 주먹질이었다.
'!!'
에르제베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굽혔다. 집채만 한 바위와 통나무 따위가 돌팔매질하듯 훙훙 날아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상대는 인간이었지만 에이션트 언데드와 필적하는 괴력을 보유했다.
'어쩔 수 없네.'
싸움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두 손바닥을 펼치자 각 손가락 끝에서 검푸른 거미줄이 뻗어 나갔다.
스륵!
그녀가 그대로 두 팔을 교차하자 이 근방의 나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나무들이 모조리 얽혀 쓰러지는 난장 속에서 프리스트가 번뜩이며 올라왔다. 팽이처럼 회전하던 그가 오른팔을 휘두르자, 에르제베트의 정면으로 커다란 손톱자국이 남았다.
그녀의 다리와 무릎 위까지 긁힌 상처가 남았다.
'큭!'
에르제베트가 통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그사이 프리스트는 바닥으로 내려와 달려오기 시작했다. 에르제베트가 두 팔을 뻗으며 사방에 거미줄을 흩트렸다.
상대가 움직일 공간을 극도로 줄여 버리고, 줄에 닿은 즉시 뼈와 살이 썰려 나가는 비기였지만 프리스트는 인간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기괴한 움직임으로 하나하나 거미줄을 피해가며 거리를 좁혀왔다.
'진짜 짐승이 따로 없네!'
그녀가 양 손바닥을 뒤집은 채 두 팔을 교차하자, 허공에 전개되어 있던 거미줄이 한꺼번에 역전되며 위치가 뒤바뀌었다. 남자의 몸에 거미줄이 파고들며 피가 튀었다.
승리를 예감한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는 그때.
'......!'
갑자기 시야 앞으로 신발 밑창이 훅 다가왔다.
쩌어어어억!
발차기에 제대로 이마를 얻어맞은 그녀가 나무들을 박살 내며 수백 미터를 날아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크으윽!"
그녀가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것 보다, 프리스트가 달려들어 그녀의 상반신 위로 올라타는 게 빨랐다. 프리스트의 주먹이 달을 가리며 들어 올려졌다.
"어머나."
에르제베트가 애써 웃었다.
"저는 여자니까 얼굴은-"
쩌어어억!
충격과 함께 에르제베트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쩌억!
으적!
빠아아악!
어떤 규칙성도 없는, 그야말로 무차별 난타가 이어졌다.
그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던 에르제베트가 손가락을 까닥했다.
"......!"
로브를 입은 프리스트의 몸이 번쩍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그의 목에 거미줄이 감겨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봐달라고 했는데 이 새끼가!]
어느새 얼굴 살이 벗겨지고, 몬스터에 가까운 다홍색 눈을 번뜩이며 에르제베트가 소리쳤다.
[죽어!]
우드드득!
목을 맨 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목을 붙잡으며 괴로워하던 프리스트가 갑자기 오른팔을 들어 허공을 때렸다.
콰콰콰쾅!
거대한 충격파가 튀어나가다니 오른쪽 지형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며 들어 올려졌다. 그중에 거미줄과 연결된 나무도 있었던 건지 팽팽하던 거미줄이 느슨해졌고, 즉각 거미줄을 풀어낸 프리스트가 바닥에 내려왔다.
퉷.
시뻘건 침을 바닥에 뱉어낸 프리스트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에르제베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칠흑을 끌어올리려는 그때.
"에르제!!"
시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어 있던 그녀의 안면이 확 밝아졌다.
'군단장님! 구해주러 오셨군요!'
그런데 프리스트 또한 시몬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니 갑자기 그녀를 무시하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차!'
에르제베트가 다급히 뒤따랐지만, 프리스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직 학생급인 시몬의 힘으로는 이 괴물을 이길 수 없다.
타다다다닷!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를 달려나가 시몬을 찾아낸 프리스트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날아 차기를 날렸다.
시몬 또한 로체스트에 오느라 키젠 교복을 벗고 로브를 뒤집어쓴 차림이었다.
'흡!'
시몬은 기민하게 반응하며 즉시 고개를 옆으로 젖혔고 프리스트의 발은 허공을 갈랐다.
바닥에 착지한 그가 다소 놀란 반응으로 시몬을 돌아보았다.
터엉!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바닥을 가라앉히며 정면으로 돌진해왔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팔을 뒤로 뻗었다.
"피어!!"
촤르르르르르륵!
어느새 유적에서 도착한 피어의 뼈들이 시몬의 오른팔에 연결되었다. 시몬이 그대로 오른팔을 내질렀다.
터어어어어엉!
허공에서 두 사람의 주먹이 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
그리고 밀려난 쪽은 프리스트 쪽이었다. 시몬이 '후우' 숨을 내쉬며 전투 자세를 다잡았다.
탓. 타닷. 탓.
프리스트가 괴이한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홱 꺾이며 머리가 바닥에 닿듯 기울어졌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도저히 어떻게 오는지 움직임을 간파할 수가 없었다.
"후웁!"
결국 시몬 쪽에서 먼저 뛰어들어 피어의 뼈를 두른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프리스트는 기민하게 허리를 숙여 피해내고는 시몬의 등 뒤로 돌아와 그의 뒤통수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빠악!
그러나 오히려 공격한 프리스트 쪽에서 발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발이 날아오기 전에 피어의 두개골이 시몬의 머리를 투구처럼 감싼 것이다.
프리스트는 즉시 몸을 회전시키며 이번엔 로우킥으로 시몬의 다리를 걷어찼지만 이번에도 피어의 뼈들이 다리를 보호하는 게 빨랐다.
차작. 착. 착.
빈 곳에 퍼즐이 맞춰 들어가듯, 시몬의 몸이 피어의 뼈로 뒤덮이고 있었다.
프리스트가 재차 달려들려는 그때.
덥석!
두 번의 실수는 없었다.
이번엔 시몬이 프리스트의 팔을 붙들고 그의 사정거리 내로 바짝 들어가며 왼 주먹을 당겼다. 이에 프리스트는 이를 악물고 안면으로 칠흑을 움직여 머리를 보호했다.
공격하는 상대의 주먹을 역으로 부술 생각이었지만.
촤르륵!
어느새 시몬의 오른손을 감싸고 있던 피어의 뼈들이 시몬의 왼손으로 옮겨와 있었다.
"......!!"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억!
거대한 충격과 함께, 그의 몸이 나무들을 수없이 부수며 날아가 가시거리 밖으로 밀려 나갔다.
프리스트가 피를 토하며 힘겹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본 아머를 완전 장착한 시몬이 무영의 망토를 휘날리며 그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간발의 차이.
몸을 날려 시몬의 펀치를 피해낸 프리스트가 오른손을 뻗었다. 칠흑이 일렁이며 창의 형태로 변했다.
막 돌진을 마치고 바닥을 긁으며 감속하던 시몬의 등을 향해, 칠흑의 창이 쏘아져 나갔다.
스으.
시몬은 피어의 뼈로 감싸진 왼팔을 뻗었다.
'복원!'
터업!
즉시 피어의 대검이 시몬의 손안으로 날아왔고, 그것을 비틀어 쥔 시몬이 그대로 허리를 돌리며 허공을 그었다.
촤아아아아아악!
프리스트가 기겁하며 몸을 낮췄다. 피어의 참격이 칠흑의 창을 반으로 찢어버리고 나아가 뒤쪽의 나무들까지 반으로 갈라 버렸다.
"......."
프리스트는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강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 봤던 그 누구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가 다시 무릎을 굽히며 시몬에게 돌진했다.
터어어어엉!
하지만 시몬은 상대해 주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강하게 발을 굴려 주위에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킨 것이다.
시야가 가려지는 바람에 프리스트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춘 그때.
후웅!
흙먼지를 뚫고 군단화된 스켈레톤이 검을 휘둘렀다. 프리스트가 뒤로 한발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부아앙!
이번에는 등 뒤와 측면에서 검이 휘둘러진다.
어느새 프리스트의 주위를 10기가 넘는 스켈레톤이 감싸고 있었다.
따다닥!
따닥!
군단화된 스켈레톤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갑자기 전투가 다수전 양상으로 변했지만, 프리스트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현란하게 몸을 움직였다. 마치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쇄도하는 창격과 검격을 피하며 주먹과 발차기를 사방으로 날려댔다.
스켈레톤들의 몸이 빠각! 소리를 내며 부서져 갔다.
스르르.
그때 바닥에 굴러다니던 뼈의 잔해가 허공으로 올라왔다. 시몬이 대검을 쥐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흑마법을 발동하고 있었다.
'본 네일!'
푸욱! 푹! 푹!
스켈레톤들과 싸우느라 한눈팔던 프리스트의 몸 곳곳에 스켈레톤의 뼈들이 쑤셔 박혔다.
프리스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포위망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촤아악!
날카로운 것에 등이 베였다.
[놓치지 않겠사와요.]
어느새 이 근방이 검푸른 거미줄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독이 잔뜩 오른 에르제베트가 프리스트 주위의 공간을 거미줄로 차단한 것이다.
촤악! 촤악!
나무 위에서는 송장 거미들이 거미줄을 뱉거나 거미줄을 타고 내려왔고.
따다닥!
따닥!
정면에서는 스켈레톤이 빈틈없이 포위망을 형성하며 무기를 휘둘러왔다.
스륵.
스스슥.
스켈레톤을 쓰러뜨려도, 바닥에 떨어진 뼈들이 움직여 프리스트를 공격한다.
군단의 연계에 프리스트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했다. 피도 너무 많이 흘려서 체력도 떨어지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나갈 도박 수는 하나뿐.
'우두머리 먼저 친다.'
땅을 걷어차듯 뛰어오른 프리스트가 무작정 시몬을 향해 돌진했다.
에르제베트가 설치한 거미줄이 깊게 몸에 파고들며 피가 쏟아지고, 스켈레톤의 공격은 그냥 받아내면서 언데드를 조종하는 시몬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시몬은 급히 대검을 정면으로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앙!
대검과 주먹이 중앙에서 격돌했다. 바닥에 내려온 프리스트는 즉시 신속한 동작으로 반대쪽 주먹을 들어 바닥을 내려쳤다.
쿵!
두 사람이 발을 딛고 있는 흙바닥이 움푹 내려앉았고, 대비하지 못한 시몬이 휘청이며 밸런스가 무너졌다.
먼저 밸런스를 회복한 프리스트가 즉각 오른 주먹에 칠흑을 끌어올려 시몬의 안면을 향해 내지르려는 순간.
촤아악!
피분수가 솟구쳤다.
난데없이 뒤에서 커다란 칼날 같은 것이 올라와 프리스트의 등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크윽!"
밸런스가 무너진 척한 건 페이크. 시몬이 반대쪽 손으로 레버를 당기고 있었다.
'좋아, 오버로드!'
프리스트의 움직임이 경직된 사이 그의 팔을 에르제베트의 거미줄이 휘감았고 시몬은 대검으로 프리스트의 목을 겨누었다.
[단념해.]
시몬이 본 아머로 연결된 피어의 목소리를 빌려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졌어.]
"......."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프리스트는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고는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시몬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