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5화
바로 다음 날부터, 시몬은 결투평가를 대비해 오버로드 맹훈련에 들어갔다.
수업 전후는 물론, 빈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오버로드를 연습해 보았다.
'음,'
그런데 몇 번이고 오버로드의 사념에 접속해 칼날을 휘둘러 봤지만, 뭔가 시원치 않았다.
지금 이게 실력이 늘고 있는 건지, 성장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숙련도가 바로바로 눈으로 보이는 본 아머나 머드 골렘과는 달리, 오버로드 훈련은 그냥 칼로 물 베기 하는 기분만 들었다.
이럴 때는 홀로 끙끙 앓는 것보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쪽이 빠른 해결책이라는 걸, 시몬은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움직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시몬 폴렌티아."
수업을 끝나고 연구실에 도착한 아론이 말했다.
무작정 아론의 연구실 문 앞에 앉아서 빵조각을 깨작거리던 시몬이 벌떡 몸을 일으켜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가르침을 구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아론이 이마를 짚으며 쓴웃음을 흘렸다.
요즘 복원 수업이 드물다고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가르침이라면, 본 아머 말이냐?"
"그건 저번 임무에서 완성했습니다!"
미친놈.
아론은 슬슬 이 젊은 제자가 괴물 같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본 아머가 아니라면 뭐냐."
"제가 이번에 얻은 새로운 언데드 '오버로드'의 운용법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론 또한 시몬이 블루하버에서 1만 골드 가치의 특수 언데드를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는 제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평소 같았다면 지금은 퇴근 시간이라며 무시했겠지만.
'오버로드라.'
뼛속부터 소환학자인 아론은 새로운 언데드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샘솟는 것을 느꼈다. 사실 일만 바쁘지만 않았어도 블루하버 전시회에 직접 가서 구경했을 테니까.
힐긋 아론의 반응을 살핀 시몬이 재빨리 덧붙였다.
"오버로드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연체 언데드입니다. 총 여섯 개의 촉수를 가지고 있는데, 강도가 부족한 뼈에 미스릴을 발라 칼날처럼 만들었습니다."
"......."
"촉수를 검처럼 베거나 찌르는 공격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모델이에요. 정말 움직임도 연체동물 같고요. 다만 운용법이 어려워서 교수님이 봐주신다면 큰 도움이......."
"알았다. 나와라."
아론이 뒤를 돌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했다.
그렇게 건물 공터에 도착했다.
아론이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시몬은 오버로드를 꺼내고 사념에 접속해 여러 기술들을 선보이며 이렇게 훈련하는 게 맞냐고 물었다.
"그런 식으로 다짜고짜 휘두른다고 훈련이 될 리가 없지."
"......그,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준비해라. 웃옷을 벗도록."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시몬은 일단 시키는 대로 교복을 벗었다.
겉옷과 셔츠를 벗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나오자, 아론이 아공간에서 '데몬의 뼈'로 만든 스켈레톤을 꺼냈다. 그러곤 여러 개의 뼈들로 분해했다.
"지금부터 이 뼈들로 널 공격하겠다."
"네, 네?"
"지금부터 네가 쓸 수 있는 건 오버로드뿐이다. 막아봐라."
그러고는 냅다 복원 기술로 뼈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언제 손을 썼는지, 시몬의 두 다리도 '본 프리즌'의 응용기술로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큭!"
이러면 피할 수도 없다.
시몬이 급히 오버로드의 사념에 접속하고 날아오는 뼈들을 향해 칼날을 보냈다.
채앵!
챙!
뼈들이 칼날에 맞아 튕겨 나갔다. 그런데 휘둘러지는 칼날 위를 비집고 들어온 뼈 하나가 시몬의 이마를 딱! 소리가 나게 맞추고 지나갔다.
막 엄청나게 아픈 건 아니었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긴장하도록. 계속 날아간다."
슈슉!
슈슈슉!
균등한 비행속도와 템포로 뼈들이 연속해서 날아온다. 시몬은 한 번에 두 개의 칼날을 들어 올렸다.
'속도와 패턴을 읽고.'
좌우로 날아오는 뼈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시몬이 두 팔을 교차했다. 그러자 칼날들도 좌우에서 교차되며 측면과 중앙을 한 번에 커버했다.
'도착지점에 정확하게 칼날을 보낸다!'
칼날이 휘둘러지며 곡선을 그렸고, 날아온 뼈들이 이에 부딪혀 힘없이 튕겨 나간다. 아론의 통제하에 있는 뼈들이라 그런지, 불규칙적인 패턴이란 일절 없었다.
타이밍만 맞추면 전부 막을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지금부터 공격량을 두 배로 늘리마."
아론이 손짓하자 허공에 뼈들이 더 충원되었다.
"속도와 패턴은 동일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지?"
설명 없이 즉시 날아오는 뼈들, 시몬은 땀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도 두 개의 칼날을 더 통제했다.
도합 네 개의 칼날.
"후읍!"
네 개의 칼날들이 시몬의 전면을 가리듯 휘둘러지며 날아오는 뼈들을 쳐냈다. 나가떨어지는 뼈들을 보며 시몬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손맛 진짜 끝내준다!'
확실히 아무 대상 없이 허공을 베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컨트롤이 늘고 있는 게 체감된다.
빠악!
퍽!
그러나 집중력이 잠깐 무너졌는지 템포가 꼬이며 시몬의 몸 곳곳에 뼈들이 부딪혀 오기 시작했다.
"실전이었으면 벌써 죽었다. 더 세밀하게 컨트롤하도록."
슈슈슈슉!
슈슉!
시몬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칼날을 움직였다.
그렇게 템포 훈련을 마치고, 다음엔 허공에서 좌우로 날아다니는 투사체들을 직접 칼날로 맞춰 떨어뜨리는 정확성 훈련, 그리고 일부러 패턴을 꼬아서 궤적을 읽기 힘든 투사체들을 맞추는 훈련까지 해냈다.
"허억! 허억! 후우!"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시몬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뼈에 얻어맞은 부위는 욱신거리고, 계속 사념에 집중하느라 멘탈도 너덜너덜해졌다.
아론은 조용히 근처의 벤치에 걸터앉아 시가를 입에 물었다.
"재밌군."
"......네?"
시몬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되물었지만 아론은 아무 말 없이 시가 연기를 내뿜을 뿐이었다.
"네가 시작한 일이다. 시작은 네 마음대로 했을지 몰라도, 끝내는 건 내 마음이다."
"무슨 말씀을......."
"내일도 나와라."
아론이 다 태운 시가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등을 돌렸다.
"즐거운 훈련을 해야지? 나로서도 연체 언데드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으니 유익하겠군."
"아, 아론 교수님?"
세상만사 귀찮아하던 아론이 평소답지 않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시몬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아직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다음으로 시몬이 향한 곳은 금지된 숲에 있는 피어의 유적이었다.
[그 아론이란 키젠 교수 놈의 수업은 너무 뻔해! 단순히 숙련도와 반사신경을 늘리는 정도는 언데드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없다!]
피어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이 꺼낸 오버로드의 몸체를 손으로 짚었다.
"잠깐만요 피어! 혹시......."
[군단화 하려는 게 아니니 걱정 마라! 오버로드는 네가 키젠에서 써야 할 게 아니냐!]
스르르르르르!
피어가 뭔가를 한 뒤에 물러나자, 잠잠하던 오버로드의 갑자기 몸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시몬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오버로드의 사념을 폭주시켜 잠시 공격성을 극대화시켰다.]
피어가 군단형 스켈레톤들을 보냈다. 그러자 흥분한 오버로드가 촉수를 움직여 스켈레톤의 몸뚱이를 날려 보냈다.
"......!"
[잘 봐둬라. 소년.]
피어가 말했다.
[저게 오버로드가 가진 본연의 움직임이다.]
오버로드의 칼날은 마치 구불구불 뱀처럼 움직이며 스켈레톤의 몸을 옥죄거나, 칼날 끝만 움직여 스켈레톤을 마비시키듯 툭툭 쳐냈다.
그간 시몬이 사념에 접속해서 오버로드를 다뤄서 재현한 건 베기나 찌르기 등의 뻣뻣하고 인위적인 공격들뿐이었다.
하지만 오버로드 본연의 움직임을 보니 머릿속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연하다. 관절을 저렇게 쓰는구나.'
'저렇게 살짝살짝 칼날의 끝만 움직여도 충분히 위협적이야.'
'직선만 고집할 게 아니라 곡선으로. 그리고 저렇게 칼날을 휘두르면 좁은 공격 범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시몬이 눈을 빛내며 실시간으로 동작을 관찰하고 있는 그때, 오버로드의 칼날이 이번엔 시몬을 향해 떨어졌다.
"우왓!"
시몬이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피어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뭘 가만히 보고만 있느냐! 직접 피해보면서 오버로드의 움직임을 느껴봐라!]
"피어!"
피어의 수업은 오버로드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최대한 관찰하고 몸에 익힌 다음, 사념에 접속해서 그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였다.
인간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과, 오버로드가 촉수를 움직이는 건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오버로드가 좀 더 편해하고, 잘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덩달아 시몬도 점점 칼날을 휘두르는 움직임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피어의 수업까지 끝낸 다음에는, 다음 날 점심시간에 '돌연변이' 동아리 방에 들렸다.
"아니, 제군아! 하루 동안 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동아리 회장 벤야가 경악한 표정으로 오버로드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냥 좀 훈련을......."
"잔뜩 혹사시켰잖아! 벌써 이쪽 관절의 접합 부위가 마모됐고, 물기도 말랐어!"
그녀가 짧은 스커트를 나풀거리며 뛰어가더니 선반의 페인트 통 같은 것들을 잔뜩 들고 왔다.
그러곤 통 안에 커다란 붓을 듬뿍듬뿍 넣고는 오버로드의 몸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일반 스켈레톤처럼 편하게 방치해도 되는 녀석이 아니야. 인위적인 방법으로 극히 불안전한 몸체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유지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 꾸준히 관리해줘야 해!"
"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건가요?"
벤야가 '좋은 자세야!'라고 외치며 오버로드의 몸통을 잡아당겼다.
"특히 몸통의 이 말랑거리는 재료는 '플뤼도'라고 하는 건데, 오버로드가 다리를 자주 움직이게 하면 이쪽 부분. 여기 관절 아래가 말라버려. 이곳을 계속 플뤼도나 슬라임 성분을 발라 축축하게 유지시켜 줘야 해. 계속 이렇게 했다간 내구성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미스릴을 통째로 갈아 끼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오케이?"
"명심하겠습니다!"
벤야는 오버로드의 유지보수에 대한 세세한 지식들을 알려주었다.
누군가 자신의 몸에 닿는 걸 극히 싫어하던 오버로드 또한, 자신을 위한 일이란 걸 아는지 벤야의 손길은 거부하지 않았다.
시몬은 선배 소환학도로부터 여러 새로운 상식들을 배워 나갔다.
"수고하십니다."
그때 동아리 방에 피츠제럴드가 찾아왔다. 그 또한 아공간에서 키메라를 꺼내고는 이것저것 만지고 있었다.
"제군도 키메라 조율하려고?"
"예."
"오! 잠깐만 기다려 봐. 로체스트에서 좋은 재료들 몇 개 들어왔거든?"
벤야가 재료를 가지러 선반 쪽으로 간 사이, 시몬이 피츠제럴드에게 다가왔다. 피츠제럴드도 그를 보고는 말했다.
"시몬, 이번 결투평가는 쉽지 않겠더라."
"봤구나. 아, 그러고 보니 너도 말콤이랑 같은 M반이라고 했지?"
피츠제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심해. 시몬."
"응?"
"말콤은 네가 여태껏 결투평가에서 만난 녀석들과는 달라. 이전처럼 페이크 플레이로 상대하면 절대 못 이겨."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피츠제럴드의 말은 그냥 흘려들을 수 없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알게 된 부분이지만, 그는 괴짜였어도 언제나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
"......."
잠시 조용히 있던 피츠제럴드의 시선이 시몬의 오버로드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