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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16화 (11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6화

'노블'의 동아리 방은 2학년 중앙관 건물의 최상층에 위치했다.

산과 강, 성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키젠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카펫이 깔린 바닥을 한 남자가 걷고 있었다. 그를 본 2학년 학생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노블에서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인물.

1학년 특례 10번 입학생 말콤 랜돌프. 그가 노블에 소환됐다.

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2학년 여학생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말콤은 까닥 묵례하고는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비됐어 1학년?"

"예, 뭐."

"왕자...... 아니, 회장님. 1학년이 왔어요."

여학생이 문을 열어주었다.

호화로운 방의 모습이 드러났지만 조명은 어두웠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테이블, 접시 위에 올려진 과일 등이 마치 빛이 바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왕좌를 연상케 하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노블의 회장이자 드레스덴 왕국의 셋째 왕자인 안드레였다. 그는 거만한 자세로 다리를 꼰 채 턱을 괴고 있었다.

"앉게."

"네."

말콤이 의자에 앉자 안드레가 까닥거리며 손짓했다.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다가와 찻잔과 다과 거리를 말콤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말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미쳤군.'

이 여자, 하수인이 아니다.

안드레 본인과 동등한 2학년 키젠 여학생에게 메이드복을 입혀놓고 하인처럼 부리고 있다니.

그녀도 이런 상황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었어.'

어떤 약점이 잡혔는지는 모르겠지만, 키젠 학생회나 교사진이 알게 된다면 학교가 발칵 뒤집힐 사항이다.

하지만 누가 이 사실을 폭로해서 공론화시켜 봐야, 세간에는 철없는 왕자의 장난처럼 알려질 거고 왕족인 안드레는 허술한 징계나 받고 넘어갈 것이다. 반면 내통자는 지옥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겪게 되겠지.

이런 세상의 부조리야 흔히 봐왔기에, 말콤 또한 상황에 빠르게 적응했다. 정말로 여선배를 하녀 다루듯 대강 휙휙 손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떠났고, 안드레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내가 자네를 왜 여기까지 불렀는지 알겠나?"

"전혀 모르겠습니다."

말콤이 담백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제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노블의 평판이 떨어지는 일일 텐데요."

"알고 있다. 자넨 저질스러운 갱단 두목의 아들이니까."

저질스러운 이란 대목에 말콤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그 이상으로 반응하진 않았다.

왜 드레스덴 왕국의 셋째 왕자가 자신을 불렀느냐가 핵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안드레의 이야기는, 말콤이 분노를 참은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았다.

"자네에게 노블에 가입할 기회를 주겠네."

아까 그 메이드 여학생이 다가와 조심스레 깃펜과 가입서를 내려놓았다.

"자네에게도 머리가 있다면, 이번 기회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중대한 시점이라는 건 알겠지."

"......."

안드레가 몸을 기울이며 깍지를 꼈다.

"쓰레기 갱 집단이 암흑연합의 권력자들과 연결될 찬스란 걸세. 이 소식이 전해지면 자네 부친이 좋아서 날뛸지도 모르겠군."

갱단은 범죄를 일삼는 폭력 조직이지만, 사업의 윤활성을 위해 지방세력 및 중앙권력과 결탁해야 했다.

그런데 암흑연합의 실세들이 가득한 이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갱단의 덩치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 커질 수 있었다.

"......조건이 무엇입니까."

갱의 아들을 노블에 들여보내겠다는 건 값비싼 진주에 똥물을 튀기는 것과 같다.

대외적 이미지의 악화를 감수하고도 이러는 이유가 뭘까. 틀림없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 가능성이 크다고 말콤은 생각했다.

"별거 아니네."

안드레가 히죽 웃었다.

"자네의 이번 결투평가 상대가 특례 1번, 시몬 폴렌티아더군."

"예, 그렇습니다."

"놈은 우리의 입부 제안을 거절했네."

안드레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어. 다른 학생들이면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겠는데, 특례 1번이 노블을 거절하고 다른 동아리에 들어간 건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네. 그래, 20년. 아주 중요한 관례가 지금 깨진 거야."

안드레가 이를 뿌득 갈았다.

"하필이면 내가 노블 회장일 때 말일세."

"......."

"벌써 외부에서 염장이 미친 듯이 들어와. 이대론 내가 졸업해도 선배 회장들의 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할 게야."

안드레가 피곤한 얼굴로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옆의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렇다면, 제가 해야 하는 건 보복입니까?"

"아니. 보복이 아니라 관례를 행하는 걸세."

안드레가 안광을 빛내며 말했다.

"키젠에서 이런 인식이 있지 않나? 노블을 조심해라. 노블을 적으로 돌리면 끔찍해진다. 뭔가 잘되다가도, 노블에 찍히면 모든 게 꼬이기 시작한다. 그런 흔해 빠진 관례들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뿐일세."

안드레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말콤에게 던졌다.

그것은 무려 드레스덴 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아티팩트였다.

"선배님. 결투평가에서 타인의 아티팩트 대여는 룰 위반......."

"대여가 아닐세."

안드레가 씩 웃었다.

"그건 선입금이지. 지금부터 이 아티팩트는 자네 것일세. 키젠에 자네 물건으로 등록해도 좋네."

"......!!"

말콤의 입이 벌어졌다.

"수많은 관중이 보고 있는 앞에서, 이 아티팩트의 힘으로 시몬을 압도적인 차이로 눌러 버리게. 그리고 결투가 끝난 순간에 이 표식을 하는 거지."

안드레가 손을 휙휙 움직이며 R자를 그렸다.

저건 드레스덴 왕실의 표식.

그랬다. 시몬을 쓰러뜨리고, 승리의 공을 노블과 안드레에게 돌리라는 뜻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말콤의 입장에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흘러가는 상황도 알기 쉬웠다.

안드레는 본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외부의 압력까지 받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보란 듯이 거절한 시몬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노블의 권위를 바로 잡고자 한다. 이를 위해 말콤을 노블의 장기말로 받아들인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서 귀족의 자존심이란 건 목숨보다 더 소중하니까.

"요즘 이런저런 이슈 때문에 사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리에게 거스르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특례 1번의 몰락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겠어. 이제 곧 모두가 알게 되겠지. 시몬 폴렌티아는 사실 처음부터 노블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다는 걸."

안드레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이제 말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시를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선배님이 나서서 찍어누르는 방법이 가장 큰 메시지를 남기지 않겠습니까?"

"자네는 품격이란 걸 모르는군."

안드레가 껄껄 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몬 폴렌티아를 좋게 봐주는 교수들이 있어. 저주 연구회와 사담이 굳이 시몬의 영입에 나섰다는 건 뭐겠나. 바힐 교수와 실라지 교수가 뒤에 있다는 거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합법적인 루트로 정면에서 깨부수겠습니다."

말콤이 앞에 놓인 뜨거운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곤 아티팩트를 챙겨 품에 넣고는 드레스덴 왕국의 R자 표식을 그렸다.

"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노블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드리죠."

안드레가 히죽 웃었다.

"바로 그거야."

* * *

시몬은 오늘 하루 좀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제군! 겔런이 네 아공간 아티팩트를 완성했대. 오늘 수령하러 오라는데?"

드디어 오버로드 전용 아공간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인데 아티팩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몸은 강의실에 있지만 정신은 로체스트에 가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 수업이 끝나자마자 시몬은 곧장 돌연변이 동아리실로 달려갔다.

"선배님! 빨리요!"

벤야를 들들 볶아서 준비시키고, 케빈의 마구간 루트를 이용해 성벽을 빠져나갔다.

"와, 키젠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제군은 아직 1학년인데 이런 장소를 잘 아네!"

좁은 굴을 기어가던 벤야가 연신 감탄성을 흘렸다. 곳곳에 보이는 종유석이나, 졸졸 흐르는 지하수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그녀가 앞을 보며 말했다.

"제군! 내가 앞에 가면 안 돼?"

"안 돼요."

"응? 왜?"

"......크흠, 아무튼 안 돼요."

그렇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좁은 굴을 통과해서 로체스트에 들어왔다. 약속장소는 로체스트 외곽 지역의 한적한 공터였다.

"아가씨! 시몬 학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겔런이 중절모를 가슴에 올리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사이 머리숱이 또 줄었는지, 중앙이 텅 비어버린 머리가 안쓰러웠지만 시몬은 애써 모른 척하며 마주 인사했다.

"겔런! 정말 완성된 건가요?"

"예, 밤낮을 꼬박 새웠지만 기일을 맞출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기 있습니다."

겔런이 반지 케이스를 내밀었다. 시몬은 즉시 그것을 받아 케이스를 열었다.

전에 끼고 있던 아공간 반지가 프리즘 빛깔이었다면, 이번에는 찬란한 황금빛이었다.

케이스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 넣은 시몬이 얼른 반지를 착용하려 하자, 겔런이 덧붙였다.

"아, 그 반지는 왼손에 끼셔야 합니다."

"그래요?"

시몬은 시키는 대로 왼손에 꼈다.

"그럼 바로 시험해 보겠습니다. 아공간을 열기 위한 동작 패턴은 왼손을 편하게 늘어뜨린 다음, 주먹을 펼쳤다가 쥐고,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펼쳤다가 쥐고, 다시 주먹을 펼쳤다가 쥐면 됩니다."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킨 그대로 동작을 취했다.

그러자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시몬의 등 뒤에서 아공간이 열렸다.

"와!"

오버로드가 들어가면 꽉 차는 맞춤형 크기였다. 어차피 시몬도 이 아공간에는 오버로드만 넣을 생각이었으니 충분했다.

시몬은 원래 아공간에서 오버로드를 꺼낸 다음 벤야, 겔런과 힘을 합쳐 새로운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팟!

파밧!

오버로드가 들어가자 아공간 아래의 바닥에 마법진에 불이 들어왔다. 이내 아공간 전체가 조명이 켜진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메인 아공간은 켜놓도록 하죠. 자,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반지에 칠흑을 흘려 넣어주세요."

"네!"

반지에 칠흑을 투여하자, 아무것도 없이 매끈한 반지 겉면에 멋들어진 검은 무늬가 나타났다.

"먼저 기본 기능입니다. 이 반지는 사용자의 의지를 읽습니다. 주위 5미터 이내의 공간에 아공간을 열겠다고 인지하십시오."

"그걸로 되는 거예요?"

"네, 됩니다."

시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오른쪽 어깨 옆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웅!

즉시 아공간이 열렸다. 시몬은 습관처럼 오버로드의 사념을 컨트롤했고.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열린 아공간에서 오버로드의 다리가 쭉 뻗어져 나왔다.

"와!"

벤야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짝짝짝 쳤고, 겔런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념이 끊김 없이 깔끔하게 전달돼. 다르긴 다르구나.'

시몬이 뒤를 돌아보았다.

오버로드의 몸통 바로 아래의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오버로드는 이쪽으로 다리를 밀어 넣고 있었다.

시몬이 사념을 조종해 다리를 조금 집어넣자, 아공간에서 오버로드의 다리가 구멍에서 조금 밀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공간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사념의 연결상태는 어떻습니까?"

"좋아요! 완벽해요!"

몇 번 더 시도해 보자 완벽함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로드에게 다리를 넣으라는 명령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허공에 아공간을 열어놓고 타겟을 공격하라는 지시만 내리면 오버로드가 알아서 다리를 밀어 넣었다.

사전 동작을 머릿속에 완전히 지우고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시몬 학생이 오버로드를 다루는 모습을 수백 수천 번 이미지 트레이닝하면서, 어떤 방법이 최선일지 고민한 결과 나온 작품입니다."

"......하하, 뭔가 감동이네요."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릅니다."

겔런이 눈을 반짝였다.

"이 아공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이다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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