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8화
'와.'
학생 대기실에서 경기장을 슬쩍 훔쳐본 시몬은 깜짝 놀랐다. 오늘 외부로부터의 대규모 참관이 있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관중석 가장 아래 좌석에서부터 위층 꼭대기 자리까지 전부 사람들이 차 있었다. 키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아래에 앉았고, 칸막이 너머에는 외부인들이 있었다.
"참고로 말해두는 건데."
오후 경기라서 대기실에 놀러온 딕이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전부 네 결투를 보러온 거야."
"응?"
"여기 제2 경기장에서 최고 이슈는 누가 뭐래도 특례 1번과 10번의 결투니까. 앞선 대진표를 보니까 네임드라고 할 만한 애들은 너네뿐이더라고. 다들 미지의 특례 1번을 눈에 담으러 왔겠지."
시몬이 쓰게 웃었다.
"야, 뭔데. 갑자기 왜 이렇게 긴장시켜?"
"너 원래 긴장해야 잘하는 타입이잖아. 그리고,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란 뜻으로 말한 거야."
딕이 손으로 V자를 만들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며 말했다.
"물러날 곳 없는 벼랑 끝 매치야. 이렇게 많은 관중이 보고 있는 앞에서 네가 지면, 이번 특례 1번은 별 볼 일 없다는 소문이 대륙 전역에 쫙 퍼질 거야! 사람들이 널 한없이 과소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시몬이 '음-' 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시몬!"
"하하! 농담이야. 그보다."
시몬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딕의 팔뚝을 툭 쳤다.
"말해봐. 사실 너도 돈 걸었지?"
그 말에 딕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시선을 피하며 무안하게 웃는 모습은 알기 쉬웠다.
"솔직히 불어. 누구한테 걸었냐?"
"아! 당연히 너한테 걸었지! 원래 도박의 묘미는 역배...... 가 아니라! 내 친구를 무조건 믿으니까!"
시몬이 킥킥 웃었다.
"걱정 마. 돈 날릴 일은 없게 해줄게."
"흐흐, 역시 든든하다니까! 부탁한다 시몬!"
그렇게 말하던 딕이 뒤를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아까부터 누구야? 나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사실 시몬도 눈치채고 있었다.
잠시 뒤에서 망설이는 듯 쭈뼛대더니 한 여학생이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카미!"
카미바레즈였다. 그녀는 벽을 짚고 소심하게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녀가 오후 경기였다는 걸 떠올린 시몬이 놀라서 물었다.
"왜 벌써 경기장에 온 거야? 일찍 오면 긴장하잖아."
"시, 시몬!"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쪼르르 시몬의 앞으로 뛰어왔다.
"히, 힘내세요!!"
"......응?"
"상대가 누구든 시몬이 이길 거예요! 시몬은 제가 봐온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
이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보다', '누구보다'를 반복하던 그녀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구보다 노력했으니까요!"
그 한마디를 내뱉고 용기가 다 떨어진 듯 쪼그려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마도 원래 준비해 온 말은 '노력했으니까요'가 아니었겠지만, 시몬은 결투평가 때문에 받고 있던 스트레스들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부드럽게 말했다.
"카미."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른 뒤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카미바레즈가 손바닥을 살짝 치우며 붉어진 얼굴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정말 큰 힘이 됐어. 이번 결투평가는 무조건 이길게."
"......네, 시몬!"
뭔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딕은 키득거리며 조용한 걸음걸이로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응?"
대기실 밖에 메이린이 팔짱을 낀 채 등을 기대고 있었다.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벽을 응시하던 그녀가 뒤늦게 딕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입 모양으로 뻐끔뻐끔 말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미친놈아!'
"응?"
'눈치 겁나 없네 진짜!'
딕이 픽 웃으며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눈치 있으니까 나와줬잖아."
"어휴, 됐네요."
메이린이 그렇게 말하곤 시크하게 등을 돌려 걸어갔다.
"메이린."
"뭐."
딕이 시몬이 있는 대기실을 가리켰다.
"넌 한마디 안 하고 가도 되겠냐?"
그 말에 그녀가 멈칫했다.
그녀의 시선이 힐끔 시몬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가, 이내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넌 진짜 드럽게 눈치가 없단 거야."
메이린은 그 말과 함께 다시 복도를 걸어갔다.
딕은 팔로 뒷머리를 받치며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 M반 말콤 랜돌프 학생은 경기장으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대기실에 있던 시몬이 경기장으로 나오자 그것만으로도 떠들썩한 함성이 쏟아졌다.
"힘내라! 특례 1번!"
"너한테 걸었어!"
반대편 대기실에서 나온 말콤도 방호 슈트를 입으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말콤은 히죽 웃었고 시몬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뒤이어 경기장 청소와 쉬는 시간이 끝났다. 화장실에 가 있던 관중들이 돌아오고, 다른 경기장의 관중들도 특례 입학생들의 대결을 보러 몰려들고 있었다.
딕과 카미바레즈도 관중석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고, 경기가 끝난 메이린도 합류했다.
결과는 당연히 승리. 기분이 좋아진 듯 두 사람과 하이파이브한 그녀가 털썩 자리에 앉았다.
"야, 시몬 컨디션은 어때?"
"일단 좋아 보여."
딕이 그렇게 대답하며 팔짱을 꼈다.
"오버로드 컨트롤을 어느 정도 완성했느냐가 관건이겠지."
잠시 후 심판의 지시에 따라 시몬과 말콤이 경기장 앞으로 올라왔다.
"양 선수, 악수."
두 사람이 다가와 서로 손을 맞잡았다.
꾸욱.
말콤이 악수한 손에 힘을 주었다. 시몬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저택에서 한번 당해놓고 또 이러네."
"난 나를 망신 준 놈은 절대 못 잊어."
말콤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 말고도, 너한테 망신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시몬의 시선이 말콤의 목에 걸려 있는 드레스덴 왕실의 문양이 새겨진 아티팩트로 향했다.
"알 만하네."
이번에는 말콤의 표정이 굳어졌다. 시몬도 역으로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말콤도 이를 악물고 힘을 꽉 주었다.
"이번 경기 잘 부탁해."
시몬이 웃으며 말했다.
"만원 관중 앞에서 인생 최악의 날이 되도록 해주마."
말콤도 웃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손을 놓고 등을 돌렸다.
"두 학생! 모두 준비됐습니까?"
심판의 물음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럼, 지금부터 A반 시몬 폴렌티아 학생과 M반 말콤 랜돌프 학생의 결투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시몬은 깜짝 놀랐다.
다시 봐도 말이 나오지 않는 규모의 관중이다.
아래층에는 같은 7조 조원들은 물론, A반 친구들, 헥토르의 파벌, 2학년들, 벤야와 돌연변이 동아리 사람들도 한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위에는 호화로운 옷을 입은 귀족들과 열심히 깃펜을 움직이는 스카우터들이 보였다.
'이거 큰일이네.'
시몬이 쓰게 웃으며 손바닥에 고인 땀을 닦았다. 처음으로 결투평가에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시몬과 말콤을 번갈아 보던 심판이 머리 위로 치켜든 팔을 내렸다.
"경기 시작!"
그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몬은 코어를 풀가동하며 전신에서 칠흑을 끌어올렸고, 말콤은 손에 쥔 은빛 봉을 번쩍 들어 올렸다.
쿵!
그리고 바닥에 찍듯이 내려놓았다. 봉을 중심으로 거대한 칠흑 마법진이 펼쳐졌다.
"내가 이 무대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모를 거야. 시몬 폴렌티아."
찰칵 찰칵 찰칵!
바닥의 마법진이 무서운 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시몬은 그 전개 속도를 보고는 깨달았다.
키젠에 와서 막 배운 게 아니고, 한두 번 반복한 게 아니다.
수천수만 번 반복하며 이제는 눈 감고도 시전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특기.
경기장의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특례 10번의 흑마법을 지켜보았다.
<도플갱어(Doppelgänger)>
바닥의 거대 마법진에서 말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스르륵 튀어나왔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걸음걸이까지 똑같았다. 순식간에 스무 명이 넘는 말콤이 경기장을 가득 뒤덮었다.
"도플갱어 사용자라니!"
"소문이 사실이었군."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흥분한 관중들 사이에서, 메이린 또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뭔데?"
"말콤의 주특기인 도플갱어야."
옆자리의 딕이 설명했다.
"말콤은 오로지 저 흑마법 하나만으로 키젠에 특례입학했고, M반을 장악한 데다, 모든 수행평가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어."
간단하게 말하면 도플갱어는 자신의 똑같이 생긴 소환수를 무수히 만드는 흑마법이었지만, 말콤은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말콤은 도플갱어를 통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냄새를 맡는 것도 가능하다. 전투능력도 우수하고, 본체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완성도도 뛰어난 편.
같은 키젠 1학년 학생이 스켈레톤 3~4기를 컨트롤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숫자에 상관없이 소환체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도플갱어는 극강의 흑마법이었다.
물론 차후에 모든 학생이 상향 평균화되는 키젠 2, 3학년 때는 성능이 조금 애매해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1학년 때는 물량이 장땡이었다.
특례 10번인 말콤이 근접한 다른 특례 입학생들보다 전투력에서 더 우위에 선다고 평가받는 이유였다.
"말콤을 이기기 위해선 본체랑 분신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광범위 흑마법, 혹은 본체를 알아낼 수 있는 탐지 마법. 그 외에는 도플갱어 마법 자체를 직접 무력화시킬 수 있는 캔슬 계열의 저주가 필요해."
딕의 말에 카미바레즈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몬은 그중에서 해당되는 사항이 없잖아요!"
"그래서 2학년들의 배팅도 8:2가 나온 거겠지. 도플갱어는 쉽게 이길 수 있거나, 이기기가 불가능하거나 둘 중 하나니까."
말콤의 도플갱어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시몬은 코어를 100% 활성화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린 다음, 태연하게 말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가 돌아버렸냐?"
말콤이 히죽 웃었다.
"범위 마법도 없이 들어오려고?"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때."
"하여간 건방진 새끼!"
말콤이 스무 기가 넘는 도플갱어들을 동시에 돌진시켰다. 그러자 시몬도 비로소 제자리에 멈춰 섰다.
왼발을 바닥에 댔다. 발을 중심으로 가상의 마법진이 펼쳐지고, 칠흑을 투여해서 실체화했다. 그사이 말콤의 도플갱어들은 시몬의 주위를 원을 그리듯 포위했다.
"뭐 하는 거야? 특례 1번!"
"포위당했어! 사방에서 들어온다!"
스무 기의 도플갱어들이 일제히 시몬을 향해 뛰어들었다.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던 시몬이 이내 눈을 크게 떴다.
'개문!'
웅! 웅! 웅! 웅!
시몬의 주위로 아공간이 벌어졌다. 도플갱어들이 시몬의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촤르르르르르륵!
촤르르륵!
금속과 뼈로 구성된 오버로드의 다리들이 아공간에서 튀어나왔다. 칼날들은 주위의 도플갱어들을 베어버리며 시몬을 감싸듯 원을 그리며 올라갔다.
뛰어든 도플갱어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찢겨졌고, 석탄가루처럼 허공에 흩뿌려져 사라졌다.
"와! 저, 저게 뭐야?"
"개쩐다!"
관중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대인 말콤마저도 입을 딱 벌린 채 서 있었다.
'저게 흑마법이라고?'
그때 시몬을 감싸고 있던 칼날 중에서 하나가 말콤의 본체를 향해 쑥 뻗어져 나왔다.
"큭!"
말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급하게 피하느라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칼날은 그대로 길게 채찍처럼 휘둘러져 도플갱어들을 추가로 파괴하고 바닥에 박힌 봉까지 뽑아 하늘로 던져 버렸다.
터어어어어어엉!
경기장 천장에 말콤의 봉이 일자로 틀어박혔다. 칼날들은 촤르르륵 소리를 내며 다시 시몬의 아공간 속으로 회수되었다.
칼날의 숲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시몬이 모습을 드러내며 태연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범위기가 뭐 어쨌다고?"
와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관중들이 격렬한 환호성을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