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19화 (11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9화

"빌어먹을!!"

격분한 말콤이 계속해서 칠흑을 쥐어짜내 도플갱어를 일으켰다.

시몬이 바닥에 박혀 있는 봉을 쳐냈지만 마법진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고 도플갱어의 생성에도 문제는 없었다.

'봉이 마법의 매개체가 아니었네.'

시몬이 아쉬운 미소를 흘렸다. 반면 말콤은 더더욱 전의를 끌어올렸다.

'고작 공격 한 번 막힌 정도야! 아무것도 바뀐 건 없다!'

말콤의 도플갱어들이 다시 한번 시몬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포위 공격이 아니라 시간차 공격.

시몬은 냉정히 주위를 쓸어 보더니 팔을 움직였다. 다시 아공간이 열리고, 네 개의 촉수 칼날들이 사르륵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칼날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리고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동시에 상호보완했다.

선으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필연적으로 틈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 틈을 다른 칼날들이 서로 휘감고 커버하며 유기적인 흐름을 이루었다.

가히 실용을 넘어 아름다움의 영역까지 다다른 컨트롤.

네 개의 칼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되며 빈틈없이 주인을 지키고, 그 상태에서 시몬은 걸음을 옮긴다.

지이이익-

왼발을 바닥에 붙인 채로 전진. 왼발에 형성된 마법진은 여전히 유지된 채고 시몬은 자유롭게 오버로드의 칼날을 움직일 수 있다.

반면에 바닥에 마법진을 펼쳐둔 말콤은 도망칠 수 없었다. 무조건 자신의 발로 마법진을 밟고 있어야 칠흑을 흘려보내 도플갱어를 만들 수 있다.

즉, 말콤의 최대 이동 거리는 마법진의 끄트머리였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륵!

칼날이 휘둘러지고, 도플갱어들이 펑펑 터져 나가 석탄가루 휘날리듯 사라지는 게 반복된다.

이제 도플갱어들은 올라오는 족족 파괴당하고 있다. 말콤은 자신과 100% 똑같이 생긴 소환수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와아아아아!"

"잘한다 1번!!"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물론 말콤의 도플갱어도 대단하긴 했지만, 시몬은 그 어떤 네크로맨서들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전투법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쪽에 더 관심이 가는 게 당연했다.

관중석의 VIP석에서 지켜보던 고위층 인사들도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훌륭해. 키젠 수석이라는 자리가 아깝지 않군."

"저건 어떤 흑마법인가요?"

"흑마법이 아니에요.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고 회수하는 전투 방식. 아공간에 있는 건 소환수일 거예요!"

그렇게 대답한 건 네크로맨서 출신 귀족들이 아닌, 드레스덴 왕국의 몰리 공주였다. 주위의 귀족들이 알 만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 행사마다 빠짐없이 키젠의 결투평가를 구경하러 오는 그녀가 네크로맨서 전문가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단해!'

다시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린 공주가 흥분한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라고 해봐야 결국 언데드일 텐데, 저렇게 정교한 컨트롤도 가능하구나!'

기대해도 좋다는 제인의 이야기는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시몬의 전투를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쭉 빼고 엉덩이도 살짝 들었다.

'이름을 기억할 가치가 있겠네요! 시몬 폴렌티아!'

그리고, VIP석에서 조금 떨어진 관중석에서는 연신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바힐 교수님. 표정관리 해요. 표. 정. 관. 리."

저주학의 수석 조교 체헤클이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바힐에게 상기시켰다.

바힐은 한 달 내내 저기압이었다. 그간 본인의 뜻대로 풀리는 일이 없었다.

시몬은 저주 연구회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번 결투평가에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소환학으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

체헤클은 바힐의 표정을 보고 놀랐다. 평소의 그 악귀 같은 표정이 아니라, 마치 손주 재롱을 보는 듯 살살 녹는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재능이란 것도, 포텐이란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바힐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건 정도를 아득히 넘어섰군요! 경이롭지 않습니까?"

"......."

체헤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시몬 학생이 저주로 싸우지 않아서 화나지 않으신가요?"

"물론 화나죠. 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힐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런 천재가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면, 네. 기꺼이 인내할 수 있습니다!"

"......시몬 쟁탈전에 가장 앞서 있는 건 누가 봐도 소환학의 아론 교수님인데요."

"조급해할 필요 없겠죠. 어차피 내 손에 들어올 인재."

바힐이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턱을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적어도 그의 경기를 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순수한 한 명의 네크로맨서이고 싶습니다."

경기 양상은 갈수록 시몬이 압도적으로 흐름을 휘어잡아 가고 있었다. 말콤이 힘들게 모아둔 도플갱어 스무 기가 오버로드가 휘두르는 칼날 한 번에 날아갔다.

'망할!'

말콤이 직접 도플갱어 2~3기를 컨트롤해서 페이크를 걸어도 넘어오지 않았다.

시몬은 도플갱어의 움직임을 예상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움직임을 끝까지 보고 칼날을 운용했으니까.

속도의 차이가 월등하기에 할 수 있는 여유였고, 그렇기에 나오는 안정성이었다.

'슬슬 칠흑이 달린다. 게다가 놈은 계속 거리를 좁혀오고 있어.'

말콤이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그는 도플갱어 마법진의 끝자락을 밟고 있었다. 더 밀려나면 도플갱어를 쓰지 못하게 된다.

'이제는 승부수를 던져야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콤은 팔을 등 뒤로 보냈다. 아공간을 열고, 푸른빛의 주먹만 한 포션병을 손바닥에 떨어지게 했다.

거대 갱단 랜돌프 가문의 특제품.

그 정체는 칠흑을 부여해 대폭발을 일으키는 액체폭탄이었다. 폭발 몬스터 롱거의 부산물을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랜돌프 갱단은 이 물건을 유통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고, 수많은 조직들을 몰락시켰다.

본래는 시전자까지 휘말릴 확률이 높아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쓰이지만, 도플갱어를 쓰는 말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칠흑을 쥐어짜 내 한 번에 열 기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냈다.

차차차착!

도플갱어들이 셔플하듯 바쁘게 움직이며 서로 위치를 바꾸었다. 단순히 위치 혼동을 위한 움직임 같았지만, 이때 말콤은 세 명의 도플갱어에게 폭탄을 쥐여준 상태였다.

'이번 공격으로 끝낸다! 가라!'

폭탄을 든 열 기의 도플갱어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시몬을 향해 뛰어들었다. 시몬은 하나의 칼날만 수비로 남긴 채, 남은 세 개의 칼날을 보내 도플갱어를 공격했다.

촤륵!

촤르르륵!

칼날들이 구불거리는 뱀처럼 도플갱어들을 파괴하며 지나갔다.

그때 한 도플갱어가 파괴되며 바닥에 포션병 하나가 툭 떨어졌다. 뒤따르던 도플갱어가 재빨리 그것을 주웠지만 시몬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폭발 포션......!'

'눈치채도 이미 늦었어!'

말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도플갱어들이 칠흑으로 포션을 점화한 채 일제히 시몬에게 달려들었다.

포션병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며 흘러나왔다.

'내가 이겼다!'

승리를 확신한 말콤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잿빛의 폭발이 경기장 한복판에 터져 나왔다.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였다. 관중석에서는 대규모 배리어가 펼쳐져 있었지만, 모두가 그 여파와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폭발로 인한 맞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말콤이 광소했다.

아버지 몰래 가지고 나온 보람이 있었다. 나중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면 한소리 듣겠지만, 특례 1번을 꺾고 노블에 들어가는 메리트가 훨씬 더 크리라.

쿠구구구구-

폭발 구름과 자욱한 먼지가 경기장 전체에 내려앉았다. 관중석에서도 짙은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다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있다!"

누군가 외쳤다.

"보인다!"

"역시 멀쩡해!"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에 말콤이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그럴 리가? 이 화력을 버틸 수 있다고?

그러나 이제는 말콤의 눈에도 보였다.

차륵.

차르르륵.

여섯 개의 오버로드의 칼날들이 마치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시몬의 몸을 빈틈없이 가로막고 있었다.

칼날들이 스르륵 벌어지고, 그 사이의 어둠 속에서 시몬의 눈동자가 안광을 뿜어냈다.

말콤은 뒷머리가 곤두서며 팔에 소름이 쭉- 돋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어?'

있을 수 없다. 나는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고, 공포를 심는 역할이었다.

말콤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무는 그때, 오버로드의 칼날 하나가 슉!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퍽!

그것은 정확히 말콤의 앞에 있는 도플갱어를 관통했다. 말콤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다행히 칼날은 더 뻗지 못하고 도플갱어만 처치한 채 스르륵 돌아갔다.

"하!"

말콤이 입을 벌렸다.

"하하하하하! 소용없어! 소용없다고! 이미 네 공격의 거리 계산은 해뒀어!"

촤르르르르르르륵!

또 다른 칼날이 말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소용없다고 했을......!"

바로 그때, 촉수의 칼날을 이루고 있는 몸통과 몸통이 스르륵 펼쳐지더니 미스릴 뼈대가 드러났다. 그 길이는 1.5배는 더 늘어났다.

시몬이 미소 지었다.

'재밌어!'

상대를 패턴과 상식 속에 가둬놓고, 그것을 깰 때의 쾌감은 각별했다.

말콤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콰아아아앙!

그대로 촉수가 말콤의 가슴을 강타했다. 그의 몸이 수 미터를 부웅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흥분한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시몬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슬슬 한계네.'

반지를 끼고 있는 손가락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시몬은 모든 칼날들을 회수하고는 말콤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은, 지금까지 모든 게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아까의 폭발은 예상 밖이었지만 무사히 대응했고, 과부하로 반지가 더 달구어지기 전에 말콤을 마법진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말콤은 도플갱어를 사용하느라 칠흑을 과소모했지만, 시몬은 오버로드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다.

말콤보다 훨씬 더 칠흑에 여유가 있는 상황.

피차 오버로드와 도플갱어가 봉인된다면, 지금부터는 시몬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흐흐흐......!"

말콤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시몬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냐?"

그는 목에 건 아티팩트를 붙잡고 있었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야."

우우우우웅!

그의 아티팩트가 맹렬한 섬광을 뿜어냈다. 이내 그 안에서 정제된 칠흑이 흘러나와 말콤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갑옷의 형태. 관중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몰리 공주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 어째서? 어째서 저 보물이 갱 아들의 손에 있는 거지?'

체내의 칠흑으로 몸을 덮는 마투의 '흑의'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칠흑의 형태가 굳어지며 갑옷으로 완전히 맞춰졌고 말콤의 얼굴까지 투구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됐다.

통칭 '흑기사'의 갑주. 드레스덴 왕국의 흑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 방어구였다.

"흐하하!"

말콤이 광소를 내지르며 손으로 R자 표식을 그리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몰리 공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이 바보 오빠가......!'

"시몬 폴렌티아."

흑기사의 갑옷을 입은 말콤이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네게 원한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걸 업보라고 하지? 네 행동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거라고 생각해."

"재밌네."

시몬이 씩 웃으며 가상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스켈레톤 두 기가 아공간에서 나타났다.

"그럼 이쪽도 입는다."

"뭐?"

촤르르르륵!

두 기의 스켈레톤이 흩어지더니 시몬의 몸에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네크로맨서 출신의 귀족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본 아머다!"

"1학년이 본 아머까지 쓰는 거야?"

차작.

착.

차차차착.

전신을 스켈레톤의 뼈가 뒤덮여가는 중에, 시몬이 입을 열었다.

"내기할래?"

"뭐?"

시몬이 장착된 본 아머를 슥 만져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어느 쪽 수트가 더 좋은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