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3화
"허억! 허억! 후우!"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시몬 일행은 정신없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힘내 카미!"
"네! 시몬도요!"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좀비들의 숫자가 확 불어나 있었다.
유입 루트도 제각각이었다. 각 골목에서 좀비들이 떼로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집에서도 좀비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메이린이 소리쳤다.
"우리가 이미 확인한 곳에서도 좀비가 나오잖아!"
"우리가 미처 못 찾은 거겠지! 그냥 달려!"
거리를 질주하는 네 사람을 향해, 사방팔방에서 좀비들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우글거리는 숫자를 보니 상대하기도 전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앞에도 있어요!"
카미바레즈가 소리쳤다.
시몬과 딕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 들고 여학생들보다 빠르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스릉!
승!
두 사람과 좀비들의 몸이 서로 교차하며 지나갔다. 좀비의 목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딕은 살짝 얕았는지, 뒤돌아서 다시 좀비의 등에 검을 박아넣었다.
"윽!"
검을 뽑을 때 얼굴에 검은 핏방울이 튀자 딕이 질색하듯 어깨를 떨었다.
"메이린!"
"나도 알아!"
화르르륵!
그녀가 양손에 검은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곤 집과 집 사이의 골목에 화염을 떨어뜨려 불타도록 했다.
골목으로 뛰어오던 좀비들이 멈칫했다. 어떤 개체는 무모하게 불길에 뛰어들어 타 죽었고, 어떤 개체는 돌아가거나, 심지어 점프해서 화염을 넘어버리는 개체도 있었다.
"지금이야!"
이 틈에 네 사람은 더 속도를 냈다.
도망치다 보니 어느새 각자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시몬과 딕은 검을 들고 정면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베어 넘겼고, 메이린은 틈틈이 측면에 불길을 일으켜 좀비들을 차단했다. 카미바레즈는 혈류탄으로 후방을 견제했다.
"맙소사!"
뒤를 돌아본 딕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뒤에서 따라오는 좀비 떼들은 어느새 백 기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카미바레즈의 혈류탄이 한 방 꽂힐 때마다 수십 마리가 휩쓸려 쓰러졌다. 그리고 쓰러진 좀비들을 짓밟으며 뒤쪽의 새로운 좀비들이 몰려드는 모습은 마치 성난 파도를 방불케 했다.
-우어어어어어어!
-키이이이이!
시몬은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이대로는 체력이 떨어져서 따라잡힐 것이다. 잠시라도 숨을 고를 장소가 필요했다.
시몬의 눈동자가 집중력으로 번들거렸다. 정신없이 주위를 훑어나가던 그의 시선이 근처에 보이는 저택 지붕에 고정되었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신속했다.
'나와라.'
시몬이 아공간을 열고 스켈레톤 네 기를 꺼냈다. 그리고 바로 본 아머를 실행시켰다.
차착!
착!
스켈레톤 네 기의 몸이 분해되더니 시몬과 조원들의 몸에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뭐야 이거!"
메이린이 기겁하며 다리를 오므렸다.
"내가 쓴 흑마법이야. 조금만 참아!"
"아, 깜짝아! 써줄 거면 말을 하라고!"
시몬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네 사람의 몸에 모두 본 아머를 입혔다.
완전 무장을 하려면 한 사람당 두 기의 스켈레톤이 필요했지만, 여덟 기의 스켈레톤을 동시 운용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시몬은 하반신만 스켈레톤으로 무장하는 형태로 했다.
"다들 내 옆에 일자로 서줘! 다리 딱 붙이고!"
네 사람이 엉거주춤 시몬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딕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오우야.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할 거면 빨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정면에서도 계속 와요! 이대론 포위당하겠어요!"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시몬은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왼쪽 반지의 아공간을 작동시켰다.
'개문!'
촤르르르르륵!
바닥의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오버로드 촉수들이 투석기처럼 솟구쳐 올라 네 사람을 위로 날려 보냈다.
"꺄아아악!"
"와우우!"
하늘을 날았다.
네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좀비들이 막 그들이 있는 자리를 뒤덮는 모습이 보였다.
거의 초 단위 만에 '언덕'이 만들어졌다. 몇 초만 늦었어도 저기에 깔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 번에 지붕까지!'
본 아머가 네 사람의 몸을 끌어당겼다. 스켈레톤의 인력만으로는 하늘을 나는 극적인 효과는 없었지만, 오버로드가 날린 네 사람의 몸이 공중에 더 체공하는 효과 정도는 있었다.
이제 바로 앞에 저택이 보인다.
"붙잡아!"
타악.
텁!
세 사람이 저택의 지붕 끝을 붙잡았다. 그러나 키가 작은 카미바레즈만 팔이 헛돌며 지붕 끝에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카미!!"
"내가 갈게."
시몬은 망설임 없이 지붕을 붙잡고 있던 손을 뗐다. 이어서 저택의 벽을 발로 딛더니, 칠흑을 부스터처럼 뿜어냈다.
터어어엉!
벽을 내려 앉히며 시몬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이어서 눈을 꼭 감은 채 웅크리고 있는 카미바레즈의 몸을 안아 들고 두 다리를 아래로 향했다.
'개문!'
우웅!
건물 벽에 아공간이 열리고, 오버로드의 칼날이 일자로 튀어나왔다.
시몬은 칼날을 두 발로 딛고 충격을 흡수하듯 무릎을 굽히며 허공의 의자에 앉는 시늉을 했다.
"후웁!"
그가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마치 계단처럼, 벽에 일정 간격을 두고 오버로드의 칼날들이 튀어나왔다.
시몬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오른발로 두 번째 계단을 디뎠다. 그리고 즉시 왼발을 뻗어 세 번째 계단을 밟았다.
타닷.
탓.
타닷.
마치 야생동물 같은 시몬의 몸놀림에 딕과 메이린이 탄성을 흘렸다. 시몬은 오버로드의 계단을 타고 무사히 지붕 위로 올라왔다.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는 시몬이었다. 그러곤 품에 안겨 있는 카미바레즈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미안해. 많이 놀랐지?"
카미바레즈는 붉게 물든 얼굴로 두 손을 꼭 모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내 계산 착오...... 윽!"
결국 다리에 힘이 풀린 시몬이 풀썩 무릎을 꿇었다.
"시몬! 시몬! 괜찮아요?"
"아, 잠깐 다리 힘 빠졌어."
"다들 다친 데 없어?!"
딕과 메이린도 허겁지겁 그들에게 다가왔다.
* * *
[호오, 제법이네.]
타악.
타악.
폐허가 된 건물 위, 창백한 회색 피부의 소년이 손바닥 위의 돌멩이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저택 위의 옥상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 시몬과 그의 조원들을 향해 있었다.
[쉽게 도망치게 둘 순 없지.]
그가 스으으 손바닥을 움직였다. 그러자 시몬 일행을 놓쳐 어리둥절하던 좀비들이 다시 성큼성큼 저택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해하는 시몬 일행의 모습을 보며, 소년은 유흥거리를 즐기듯 낄낄 웃어댔다.
-그으으으.
그때 그의 뒤로 좀비 한 기가 기어 들어왔다. 소년은 즐거운 놀이를 방해받은 아이처럼 인상을 썼다.
[뭐야? 나 바빠.]
-그으으으으.
[스켈레톤들? 놈들이 그러는 게 한두 번이야?]
-그으으으.
[이번엔 다르다고?]
소년이 뒤를 돌아보며 좀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으으음, 마누스가 관여되어 있다면 귀찮긴 하네.]
데스랜드는 현재 두 언데드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가장 유력한 세력인 소년과 그를 따르는 좀비들.
그리고 데스랜드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마누스'와 그를 따르는 스켈레톤들.
[뭐, 마음대로 하라고 해. 난 지금 더 급한 문제가 있으니까.]
소년은 다시 시선을 키젠 학생들에게로 돌렸다.
[데스랜드에 나타난 군단장. 그리고 피어. 무슨 속셈인지 뻔하지.]
소년이 두 팔을 펼쳤다. 어둠 속에서 개미 떼 같은 좀비들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내 손으로 군단을 파괴할 거야.]
* * *
데스랜드의 지하 묘지.
스윽.
슥.
한 남자가 검을 들어 올린 채 헝겊으로 칼날을 정성껏 닦고 있었다.
그는 붉은 꽃의 문양이 패턴처럼 그려진 천 옷을 몸에 휘감고 있었는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의 몸뚱이는 살 한 점 없이 하얀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이라는 사실이었다.
"좀비왕자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나? 마누스."
검을 닦고 있던 스켈레톤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건 시가 두 개를 동시에 입에 물고 벽에 기대어 있는 늙은 인간이었다.
"좀비왕좌의 본체가 데스랜드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고 하네. 그 본체가 쓰고 있는 왕관을 손에 넣으면, 데스랜드의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다더군. 더 나아가 이 데스랜드 전체의 소유권을 손에 넣게 되는 거지."
스켈레톤이 다시 고개를 내려 검을 닦는 데 집중했다.
[관심 없소.]
"나는 자네에 대해서 아주 잘 아네."
남자가 팔짱을 풀며 천천히 마누스에게로 다가왔다.
"키젠을, 그리고 이 암흑연합을 무너뜨리고 싶지? 복수하고 싶지 않나?"
[.......]
마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인의 혓바닥이 뱀처럼 움직였다.
"그렇다면 이 데스랜드를 손에 넣는 게 먼저일세. 원래 자네가 다스리던 영지가 아닌가?"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
"옛 제국의 소드마스터여."
스릉.
마누스의 검이 남자의 목을 겨누었다. 남자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졌지만, 그의 입은 쉬지 않았다.
"자네와 프린스의 결전은 결코 피할 수 없어. 그리고 자네는 단신으로 전황을 바꿀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네. 무얼 망설이는가?"
남자의 말대로, 마누스는 이제 에이션트 언데드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마누스가 입을 열었다.
[왕관의 위치는?]
"알아냈네."
남자가 손바닥을 비비며 웃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좀비왕자가 자리를 비운 것도 확인했네. 거의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야. 다시 오지 않을 찬스일세."
마누스는 천천히 남자의 목을 겨눈 검을 내렸다. 하지만 특유의 날 선 시선은 거두어지지 않았다.
키젠.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조국 탈헤른을 무너뜨린 악의 축.
그들의 술수에 당해, 자신조차 앙상한 백골만 남은 언데드가 되었지만, 이런 저주받은 몸으로 살아가며 의지를 유지하고 있는 건 오로지 복수심 때문이었다.
"장미회군은 제국의 5만 정예병을 전부 언데드로 바꿔 버리는 것으로 대륙을 공포를 몰아넣었지. 하지만 상상해 보게."
남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언데드가 된 자네와 자네의 옛 백성들로, 키젠에 대한 복수를 완성하는 모습을."
[.......]
"멋지지 않은가?"
마누스가 고개를 돌려 다시 남자를 보았다.
[날 돕는 이유가 무엇이오?]
"누누이 말하지만 나도 키젠에 원한이 있네. 공동의 적! 아주 간단한 논리가 아닌가?"
남자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단지 그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