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화
[데스랜드의 지배자다.]
털썩.
프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이린이 주저앉았다. 이내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메이린!"
"큭!"
이번엔 딕이 입을 틀어막은 채로 쓰러졌다. 뱀파이어인 카미바레즈는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눈이 스르륵 감기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음.]
이제 온전히 서 있는 건 시몬뿐이었다.
[잘 버티네. 시체 냄새가 익숙해?]
'망할! 역시 이게 문제였나.'
프린스가 가져온 말의 사체. 시몬은 즉시 그것을 걷어차 하수구에 흐르는 물에 빠뜨렸다.
저 시체에서 유해가스 같은 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긴, 이 정도로 다 쓰러지면 재미없지.]
시몬이 굳은 얼굴로 피어의 분신을 두 번 두들겼다.
'피어, 이 녀석 맞죠?'
[뭐?]
프린스의 모습을 본 피어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프린스!!]
쩌렁쩌렁!
피어의 분신이 소리 내어 외쳤다. 프린스도 눈동자를 굴려 시몬의 교복에 매달린 피어의 분신을 보았다.
[역시 네놈이었나! 알고도 감히 우릴 공격해?]
[지긋지긋할 만큼 하나도 안 변했네. 피어.]
프린스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대꾸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군단에 합류해라! 이 녀석은 리처드의 아들이다!]
[응, 그런 것 같더라. 많이 닮았네.]
프린스가 목을 붙잡고 삐거덕거렸다.
[거기 좀비들 많지? 그것들을 뚫고 당신이 여기까지 오는 데 최소 20분은 예상해. 그전에.]
프린스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당신의 계약자를 갈기갈기 찢어줄게.]
그가 살기를 내뿜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난데없이 에이션트 언데드와의 1:1 승부.
시몬은 침을 꿀꺽 삼키며 스켈레톤 아처를 꺼내 주위로 퍼뜨려 놓았다.
내가 당하면 다른 조원들도 위험하다.
스슥.
프린스가 몸을 굽히는 자세를 취했다.
"......!"
그러고는 다음 동작 없이 바로 시몬의 앞에서 나타나 주먹을 당기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시몬이 급히 고개를 젖혔다. 살벌한 궤적을 그리며, 프린스의 주먹이 시몬의 눈앞에서 지나갔다.
주먹에서 뻗어 나간 풍압이 하수도 벽에 부딪히자, 찢어질 듯한 비명 같은 게 터져 나왔다.
'한 대라도 제대로 맞으면 끝장이야!'
그래도 카운터 찬스가 왔다.
시몬은 즉시 왼발에 힘을 주고 오른발 뒤꿈치를 들었다.
허리를 돌리며 오른 주먹의 카운터 펀치가 이상적인 각도로 프린스의 안면에 틀어박힌다.
쩌어엉!
살이 함몰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
프린스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스으.
다시 반대쪽 손으로 펀치가 날아온다. 시몬은 바닥에 쓰러지듯 하며 억지로 피해냈다.
'이런 미친!'
시몬이 주먹을 바라보았다.
칠흑을 둘러서 쳤는데도 주먹이 아프고 얼얼했다. 마치 커다란 바위를 때린 것 같다.
[미적지근하네.]
프린스는 아무런 충격도 경직도 없어 보였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팔을 뻗었다.
팍!
프린스의 등판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프린스가 고개를 돌려 몸에 박힌 화살을 바라보았다.
파악!
팍!
어깨와 허벅지에도 한 발씩, 이어서 팔과 가슴에도 꽂혔다.
하지만 프린스는 화살을 맞아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 화살은 그냥 부딪혀 튕겨 나가기도 했다.
'끙! 어떻게 돼먹은 맷집이야?'
아처들과의 사념을 끊은 시몬이 즉시 전면에 아공간을 열었다.
콰득!
퍽!
두 기의 스켈레톤들이 아공간에서 나오자마자 무기를 휘둘렀다. 창이 프린스의 복부를 찔렀고 검은 프린스의 목을 베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런데 무기가 박히지 않는다.
스켈레톤들이 낑낑대며 아무리 힘을 가해도 소용없었다. 프린스가 무심하게 파리 쫓듯 팔을 휘두르자 스켈레톤이 박살 나 흩어졌다.
'뭐 이런 괴물이.......'
창자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에이션트 언데드.
곁에 있는 피어나 에르제베트가 위엄이라곤 없이 뒹굴거려서 자주 깜빡하지만, 역시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존재들이었다.
[진짜 이게 끝이야? 군단장.]
프린스가 씩 웃으며 바닥에 엎어진 시몬을 짓밟으려 다리를 들었다. 시몬도 마주 웃었다.
"그럴 리가."
웅! 웅! 웅! 웅! 웅! 웅!
프린스가 방심한 찰나의 틈. 여섯 개의 아공간이 펼쳐지며 오버로드의 칼날들이 창격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프린스의 몸을 쭉 밀어내며 하수도 벽에 처박아 넣었다. 거친 소리와 함께 하수도가 뒤흔들리고 천장에서 잔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시몬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섯 개의 칼날에 벽에 고정된 프린스의 모습이 보였다.
까각.
까가각.
그러나 오버로드의 칼날조차도 프린스를 온전히 베어내지 못했다. 그를 벽에 밀어붙이고만 있을 뿐, 칼날이 피부의 겉면을 조금 파고들어 간 정도에서 그쳤다.
[이건 놀랍네.]
프린스가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있는 칼날을 하나씩 붙잡았다. 소년의 얇고 가느다란 팔에 핏줄이 불끈 솟아나더니 칼날의 방향을 근력만으로 옆으로 비틀었다.
끼긱. 끼긱.
결국 힘으로 봉쇄를 풀어낸 프린스가 바닥에 내려왔다.
시몬은 혀를 내두르며 오버로드의 칼날들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적에 대한 분노, 두려움, 긴장감이 살짝 걷히고 갑자기 묘한 본성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 녀석은 갖고 싶은데.'
적수임을 떠나서 경이롭다.
앞으로 소환학 전공의 네크로맨서로서 먹고살려면 좀비는 무조건 마스터해야 한다. 좀비 파트에서 활약해 줄 대장이 휘하에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조금 더 그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프린스."
[음?]
"이유는 알고 싸우자. 왜 날 적대하는 거지?"
프린스가 인상을 구겼다.
[내가 왜 그걸 말해야 하는데?]
"나는 아버지의 군단을 부활시킬 거야. 그 목적을 위해 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모으고 있어. 혹시 피차 오해가 있다면......."
[오해?]
프린스가 냉소했다.
[오해라니, 내게 무슨 오해를 할 게 있지? 너희 아버지가 프리스트에 눈이 돌아가 우릴 헌신짝처럼 버리고 군단을 해체한 게 오해?]
프린스가 분노한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시몬이 즉시 오버로드의 칼날을 보냈지만 프린스는 상처를 입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칼날에 베여도 화살에 맞아도 바닥에 검은 핏방울을 흩뿌리며 걸었다.
[이제 네크로맨서와 얽매이는 건 지긋지긋해.]
프린스가 말했다.
[나는, 이곳의 왕이 될 거다!]
프린스가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시몬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시몬이 즉시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터업!
바닥에서 솟구쳐 나오는 칼날을 손으로 붙들어낸 프린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시몬은 두 팔을 모으는 가드 자세를 취했다.
쩍!
"......!"
일격에 가드가 뚫리며 가슴에 주먹이 꽂혔다. 시몬의 몸이 수 미터 이상 밀려났다.
'크허억!'
폐부에 대못을 꽂은 듯한 격통이 몰아친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드는 불가능하다. 회피, 무조건 회피로만 가야 한다.
'달려!'
막지 않는다. 반격하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히트 앤드 런.
시몬은 무조건 도망치기만 하면서 칼날을 보내거나 아처로 화살을 발사하기만 했다. 태연하게 모든 공격을 맞으며 걸어오던 프린스의 표정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결정타 없이 이렇게 쥐어짜 봐야 자기 목을 스스로 죄는 일일 텐데.'
도망치듯 프린스의 공격을 피해내던 시몬이 기습적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이그저스트!'
범용성 최고의 탈진저주가 프린스의 몸에 적중했다. 하지만 저주가 프린스의 가슴에 닿자 쩡! 소리와 함께 파괴됐다.
[학생 수준의 저주는 안 먹혀.]
'저주 면역까지......!'
프린스가 히죽 웃으며 발차기를 날렸다. 시몬이 바닥을 구르듯 피해내고는 다시 칼날을 보내 프린스의 피부를 베었다.
"허억! 허억!"
정신없이 치고 빠지다 보니 결국 한계가 왔다.
어느새 왼손의 반지는 끓는 주전자처럼 뜨거워져 있었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뒤는 벽이고,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보아하니 한계네. 그럼 이제.]
프린스가 팔을 뻗어 시몬의 목을 덥석 붙잡았다.
[죽여줄게.]
프린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목이 점점 조여오는 가운데도, 시몬은 힘겨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프린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 와중에도 웃을 여유가 있나?]
"......죽긴, ......누가."
스륵.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프린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바닥에 기절해 있던 카미바레즈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솟아오르며 두 눈에는 피눈물 같은 칠흑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당장 그 손!"
그녀의 몸에서 맹렬한 칠흑이 뿜어져 나왔다.
"놔!!"
<대출혈 - 오버플로>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동안 시몬이 냈던 프린스의 모든 상처에서 새까만 피분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프린스의 동공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출혈 마법이라고?'
"시몬!"
딕의 외침이 들렸다. 공중에서 날아온 창을 붙잡은 시몬이 즉시 프린스의 왼팔을 찔렀다.
역시 딕의 인챈트는 달랐다. 창이 프린스의 팔을 어느 정도 파고들었고, 대출혈 마법의 효과로 피까지 빠지자 비로소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시몬이 바닥에 내려와 콜록거렸다.
"시몬, 물러나!"
어느새 하수도의 천장에 두 발을 딛고 있던 메이린이 내려오면서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다크 플레어에서 또 한 차원의 상위 칠흑 화염계.
<다크 프로미넌스(Dark Prominence>
쿠우우우우웅!
새까만 흑염의 분수가 프린스의 몸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마치 액체처럼 파도치며 프린스의 몸을 몇 번이고 불태웠다.
아슬아슬하게 범위에서 벗어난 시몬이 콜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카미바레즈의 힘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시, 시몬! 괜찮아요?"
"아, 응."
그렇게 대단한 설계가 있는 건 아니었다.
바로 몇 분 전, 프린스의 펀치에 맞아 가드가 깨지며 물러났을 때 시몬은 카미바레즈가 깨어난 모습을 캐치 했다.
그녀의 힘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최대한 프린스의 시선을 끌면서 그의 몸에 작은 상처들을 연달아냈다. 카미바레즈도 시몬의 생각을 읽었는지 조용히 대출혈 마법을 준비했고, 결정적인 순간에 발동시켰다.
물론 계속 기절해 있던 딕과 메이린까지 깨어나 준 건 시몬의 기대 이상이었다.
'이제 반격할 여지가 생긴 건가?'
하지만 그간 프린스의 맷집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로 쓰러질 녀석은 아니었다.
카미바레즈는 나쁜 컨디션에서 억지로 대출혈 마법을 쓴 반동이 왔는지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메이린과 딕도 기절했다가 바로 일어난 만큼 컨디션이 극도로 나빠 보였다.
화아아아아악!
바로 그때, 불길을 뚫고 나온 프린스의 몸이 메이린에게 화살처럼 쏘아져 나왔다.
터엉!
메이린이 프린스의 주먹에 맞고 날아갔다. 키젠 교복이 번쩍이며 방어 효과를 냈지만, 충격은 막을 수 없다.
그녀가 커헉! 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었다.
"메이린!"
딕이 손에 쥔 숏소드에 칠흑을 부여하고 뛰어들었다. 시몬이 소리쳤다.
"딕! 물러......!"
쩍!
늦었다. 딕 또한 반대편 벽에 부딪혀 기절했다.
[진짜로 날 이길 생각이었어?]
전신이 흑염에 타올라 끔찍하게 일그러졌으면서도, 프린스는 웃고 있었다.
[기어오르지 마.]
프린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콰콰콰쾅!
갑자기 하수구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그 아래에서 열 기가 족히 넘는 좀비들이 내려왔다.
[전부 먹어 치워!]
-어어어어어어어어!
좀비들이 내려와 시몬에게 달려왔다. 시몬은 길게 한숨을 쉬며 팔을 뒤로 뺐다.
"너무 늦는 거 아니에요?"
[뭐?]
차차착!
허공에서 날아온 뼈들이 시몬의 팔에 맞춰졌다.
[설마!]
차악!
바로 이어서 시몬의 손안으로 들어오는 파멸의 대검. 시몬이 가볍게 휘두르자 좀비들 여섯이 한 번에 갈라져 쓰러졌다.
[그 숫자를 뚫고 이렇게 빨리......?]
"프린스. 지금부터는 '학생'이 아니라 '군단장'으로서 싸울 건데."
공중에서 날아온 피어의 뼈들이 시몬의 몸을 착착 덮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완성체가 되어가는 시몬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군단에 들어올래? 아니면."
[웃기지 마아아아아!]
프린스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려는 순간.
슈슉!
시몬의 몸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프린스의 등 뒤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날아온 피어의 투구가 시몬의 머리에 덮였다.
'......이런!'
고개가 돌아가지 않는다. 아까 애송이들과의 싸움 때문에 체력이 고갈되어 반응할 수가 없다.
하얀 검격이 눈부신 궤적을 그리며 다가왔고.
쩌억!
목에 깊게 틀어박혔다.
이내 오른발로 바닥을 강하게 디딘 시몬이 거친 기합성을 토해내며 온 힘을 다해 검을 끝까지 밀어냈다.
파육음과 함께 붉은 속살이 두 갈래로 벌어지고 마침내.
스릉!
시몬의 대검이 허공으로 빠져나왔다.
프린스의 머리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