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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27화 (12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7화

툭.

데구르르르.

프린스의 목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시몬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직이다! 방심하지 마라 소년!]

스스스스스.

목 없는 프린스의 몸뚱이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더니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그냥 데스랜드 지천에 널려 있는 일반 좀비의 몸뚱이였다.

'설마......!'

시몬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까 천장에서 내려온 좀비들, 지휘자를 잃고 멍하니 있던 그들 중 한 마리에 난데없이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쿠르르르릉!

좀비의 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영혼이 몸을 휘감는 것처럼 보였다.

새까매진 좀비의 몸이 수축하더니 이내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

[대단하네. 이렇게 목숨 하날 쉽게 잃을 줄은 몰랐어.]

그 좀비는 아까 목을 베인 프린스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심지어 입고 있던 옷차림에 왕관을 쓴 것까지 동일.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검을 고쳐 쥐었다.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걸.]

프린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메이린의 팔을 붙잡았다. 시몬이 뿌득 이를 갈았다.

"메이린에게 손대지 마!"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프린스는 메이린을 어깨에 가뿐히 들쳐메고는 히죽 웃었다.

[시몬이라고 했지? 이 애를 구하고 싶다면 아까 그 저택으로 와. 당연히 피어 없이 너 혼자 와야 해. 미리 말해두지만, 아공간에 숨겨봐야 소용없어.]

프린스가 발을 굴렀다. 단 한 번의 도약만으로 하수도의 천장 위로 훌쩍 올라갔다.

[그럼. 나중에 봐.]

"프린스!!"

프린스가 손을 흔들고는 사라졌다.

시몬이 뒤쫓으려 했지만 좀비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진 딕과 카미바레즈에게 달려들었다.

"망할!"

시몬이 급히 달려가서 대검을 휘둘렀고, 좀비들의 몸이 뭉텅뭉텅 썰려 나갔다.

모든 좀비들을 제거한 시몬이 프린스를 뒤쫓으려는 그때.

[진정해라 소년!]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프린스를 쫓아가 봐야 의미 없어! 그 소녀를 인질로 구질구질하게 굴 게 뻔하지 않으냐!]

"......."

[정보 수집이 우선이다! 내가 아까 그 저택에서 재미있는 인간 놈들을 붙잡았다. 놈들을 심문해 봐라!]

시몬의 눈이 커졌다.

"데스랜드에서 인간이요?"

* * *

프린스는 메이린을 어깨에 들쳐멘 채 저택에 도착했다.

'피어, 화려하게도 놀았네.'

곳곳에 좀비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흘러나온 검은 피가 정원을 검게 물들이고 강을 이루었다.

그래도 피어를 붙잡아두는 것으로 이 정도의 희생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프린스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저택에 들어갔다.

"두 명이나 끌려갔다고? 대체 네놈들은 뭘 하고 있었던 게냐!"

"죄, 죄송합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택에서 인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프린스가 인상을 구기며 문을 걷어찼다.

쾅!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인간이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긴 언제 온 거야? 하비에르.]

하비에르는 주름살이 자글한 노년의 네크로맨서였다.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었고, 입에는 언제나처럼 시가 두 개를 물고 있었다.

"허허허! 왔는가 프린스!"

하비에르가 헤실헤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방금 막 도착했다네. 매번 하는 거래 때문에 직접 들렀으이."

하비에르가 부하들에게 고개를 까닥하자, 그들은 카트에 실린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정량에서 두 개 더 얹었네. 확인해 보게나."

프린스가 다가가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숯덩이처럼 보이는 광석들이 들어 있었다. 고순도의 칠흑이 담겨있는 흑요석이었다.

[대충 숫자는 맞는 것 같네.]

"흘흘, 내가 언제 틀리게 준 적 있었는가?"

하비에르는 프로 네크로맨서에서 은퇴한 뒤, 시체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데스랜드 곳곳에 남아 있는 자연형 좀비가 되지 못한 시체들을 챙겨서 시장에 내다 팔고 수익을 낸다. 데스랜드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프린스가 이를 용인해주는 대가로 그에게 흑요석을 바치고 있다.

일종의 공생관계.

프린스도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흑요석을 섭취해야 했다.

[좋아.]

프린스가 손짓했다. 기다리고 있던 좀비들이 다가와 흑요석 상자를 들고 어딘가로 옮겼다.

"그보다 프린스. 그 여자는 뭔가?

[주웠어.]

프린스가 짊어지고 있던 메이린을 바닥에 털썩 내려놓았다. 하비에르가 침침한 눈으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이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키, 키젠 학생이 아닌가? 이렇게 귀한 여식을 어떻게 데스랜드에서......!"

[그놈들, 몇 년 전부터 1년에 한 번은 여기서 수업하는 것 같더라. 하여간 팔자 좋다니까.]

프린스가 소파에 털썩 앉아서 고개를 젖혔다.

"그런데 이 소녀는 왜......?"

[이 녀석을 미끼로 죽이고 싶은 놈이 있어. 놈이 저택까지 제 발로 찾아오면 죽일 거야.]

누굴 죽이고 싶단 거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하비에르는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메이린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던 하비에르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이 처자를 내게 팔게."

[시체쟁이는 시체만 거래하는 거 아니었어? 노예업도 병행할 줄은 몰랐는데.]

"가끔은 산 사람도 쓸모가 있는 법이라네. 흑요석 20개에 구매하고 싶네."

흑요석 20개면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방금 상자에서 받은 물량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었으니까.

[뭐, 마음대로 해. 나야 그 녀석을 끌어들이면 그만이니까.]

"흐흐흐!"

하비에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부하들이 쓰러진 메이린을 데리고 갔다.

* * *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차 안. 메이린은 두통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멍하고 목이 갈라질 것처럼 말랐다.

'뭐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왜 마차 안에 있는 거지?

기절하고 키젠에 돌아왔나?

수행평가는 어떻게 됐지?

시몬이랑 다른 애들은?

수많은 의문들을 품으며 멍하니 있는 그때.

"정신이 들었나?"

갑자기 주름살과 검버섯 가득한 노인의 얼굴이 확 다가왔다. 너무 놀란 메이린이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런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몸도 자유롭지 않았다.

입은 헝겊으로 물려 있었고 두 손은 등 뒤에 돌려져 단단히 묶여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칠흑도 운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노인에게서 떨어지며 다리를 모으고 몸을 움츠렸다.

"우웁! 우우우우웁!"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군."

하비에르가 그렇게 말하며 끌끌 혀를 찼다.

'뭐야, 뭐야, 뭐냐고! 이 사람 뭔데!'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녀가 급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둡다. 검은 하늘엔 그 특유의 붉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여긴 여전히 데스랜드였다.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도 사람이 아니라 스켈레톤이다.

그 이상한 좀비 꼬맹이와 싸우다가 기절한 뒤, 이 사람에게 발견돼서 옮겨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좀비에게 잡아먹히거나 물려 죽는 것도 아니고, 왜 데스랜드에 인간이?

하비에르는 별다른 말 없이 앞을 보고 있었다. 얼굴이 좀비처럼 생기긴 했지만 틀림없이 인간이다.

혹시 말이 통하지 않을까? 키젠 교복을 봤다면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단 거 알 거 아냐.

메이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주름살 가득한 손이 그녀의 허벅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

메이린이 기겁한 비명을 내지르며 하비에르의 얼굴을 걷어차 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

"크흘흘!"

이내 다시 하비에르가 고개를 되돌리며 웃었다. 코에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뱀처럼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피를 핥아 먹었다.

"젊은 처자답게 기운이 넘치는군. 아주 좋아!"

메이린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우붑! 웁우우웁! 우부부부웁!"

"응?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우우우웁!"

하비에르가 히죽 웃으며 다가와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헝겊을 풀었다.

후아! 하고 한번 숨을 내뱉은 그녀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이 더러운 X새끼야!"

"흘흘흘!"

하비에르는 주눅 드는 기색도 없이 혓바닥을 달싹였다. 그녀가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키젠 1학년이자 상아탑 소속의 메이린 블렌느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은 하는 거야?"

"정확히는."

하비에르가 히죽 웃었다.

"키젠이자 상아탑의 소속이었던 시체 한 구. 내 눈엔 그렇게 보이는데."

"......!"

"안타깝지만 이 늙은이는 키젠 학생을 붙잡아 몸값 흥정을 하고, 그럴 정도로 담이 세지 않아서 말일세. 자네는 아주 좋은 언데드가 될 게야."

하비에르가 기습적으로 메이린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어쩔 도리 없이 하비에르의 다리 위로 쓰러졌고, 하비에르가 그녀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큭......!"

"상아탑이라면 아주 좋은 재료지! 스켈레톤 메이지나 밴시가 될지도 모르겠군."

하비에르의 손가락이 메이린의 뺨을 쓸었다.

"물론 아깝지, 아깝긴 해.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과 머리카락이 사라지는 건 정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언데드가 되어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겠......."

꽈악!

메이린이 힘껏 하비에르의 손가락을 물었다.

"끄, 끄아아아아악!"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악물었다. 이빨이 손가락을 파고들며 비린 피 맛이 났다.

하비에르가 고통에 발버둥 치자 그녀는 입에서 손가락을 놓고 머리를 세웠다. 그리고.

꿍!

온 힘을 다해 하비에르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주름살이 자글거리는 노년의 남자가 곡소리를 내며 마차 바닥을 굴러다녔다.

'됐어!'

시간을 벌었다.

그녀의 시선이 마차의 창가 쪽으로 향했다.

칠흑도, 손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달리는 마차에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지만, 그래도 저런 놈에게 언데드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이 떨어지자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가 마차의 창밖을 향해 몸을 던졌다.

덥석!

"......!"

창밖까지 빠져나오려던 그녀의 발목을 억센 손길이 붙잡았다.

"으하하! 소용없네!"

그러곤 강한 힘으로 한 번에 마차 안으로 끌어 올려졌다.

쩍!

복부에 강한 충격이 느껴지며 그녀가 털썩 마차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내 메이린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붙잡은 하비에르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훌륭했네 처자! 손도, 칠흑도 못 쓰면서 용기를 내어 이런 기지를 발휘하다니! 역시 키젠은 아무나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 하지만!"

하비에르가 그녀의 교복 재킷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것도 이제 끝이야."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더럽게 억울했다. 키젠에 와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쿠우웅!

그때 마차의 천장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졌다. 마차의 말이 놀란 소리를 내며 방향을 꺾는 바람에 마차가 격하게 흔들렸다.

"음? 무슨 일이냐!"

퍽!

천장을 뚫고 새하얀 대검이 내려왔다. 메이린은 너무 놀라 딸꾹질을 했고 하비에르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다.

이내 대검이 천장에 삼각형을 그리더니 구멍을 냈다. 그 사이로 한 남자가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누, 누구?'

망토를 몸에 두르고, 안에는 카키색 작업복 같은 옷이 보인다. 몸 곳곳에는 뼈가 달라붙어 있었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자 메이린은 깜짝 놀라 마차 끝에 등을 딱 붙이며 몸을 떨었다.

'수, 숨도 못 쉬겠어......!'

사람이 기가 질리게 하는 위압감이었다.

그의 머리와 얼굴의 절반은 해골로 뒤덮여 있었고, 입만 드러났다. 해골의 한쪽 동공에는 푸른 기운이 횃불처럼 피어올라 있었다.

남자는 메이린의 손을 묶은 밧줄과, 풀어헤쳐진 옷차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하비에르를 보았다.

"다, 다시 묻겠다. 그대는 누구......!"

뻐어어억!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뻗어 나간 남자의 발이 하비에르의 복부에 꽂혔다. 몸이 기역 자로 꺾인 그가 쿨럭! 하고 피를 토했다.

쩌억!

이번에는 남자가 뒤통수를 짓밟았다. 마차 바닥이 뚫리고 하비에르의 머리만 아래로 들어갔다.

으적! 빠득! 쩍!

남자는 폭력을 멈추지 않았다.

"아, 아아......."

지켜보던 메이린이 공포에 벌벌 떨었다.

이내 피범벅이 된 하비에르의 몸통을 발만으로 세운 남자가, 반대쪽 다리로 그를 걷어찼다.

콰드드득!

하비에르의 몸뚱이가 마차의 차체를 박살 내며 밖으로 떨어졌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뼈가 박살 나는 듯한 적나라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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