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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28화 (12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8화

발차기 한 번에 마차 벽이 휑하니 뚫려 버렸다. 메이린은 덜덜 떨면서 해골 갑주를 입은 남자를 응시했다.

'이 사람, 대체 뭐야?'

그녀가 공포에 질려 있는데 남자가 메이린을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거침없이 다가와 팔을 뻗었다.

'큭!'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에 팔이 감겨오더니, 두 다리가 번쩍 바닥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뒤늦게 자신의 몸이 남자의 옆구리에 낀 채 들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으악! 이 자세 뭔데? 사람 민망하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중압감 때문에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그냥 저항하지 않는 게 최선일까? 남자는 허리에 낀 메이린이 잘 있는지 한번 확인하고는, 이내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꺄아아아아악!"

거친 속도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주위의 배경들이 빠르게 밀려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내 차악. 하고 남자의 두 발이 흙바닥에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메이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앞을 보니 아까 마차에 내던져졌던 그 노인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쏟으며 다리 한쪽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그가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크으으으! 망할! 뭐 하는 놈이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온 게야!"

"......."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선 채로 서서히 자세를 낮춰 메이린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러곤 오른손에 쥐고 있던 하얀 대검을 세워 들고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남자의 온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감히......!'

지금은 은퇴했지만, 현역 시절엔 하비에르 또한 무수한 악명을 남겼던 네크로맨서였다.

그가 손에 쥔 지팡이를 바닥에 쿵! 소리가 나게 내려치자,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메이린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같이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장창을 짊어진 중형 스켈레톤들, 머릿수도 스무 기가 넘는다. 최소 소대 단위 운용이 가능한 네크로맨서였다.

'저 변태 영감, 역시 보통이 아니야!'

촤아아아아아아악!

허공에 백색의 검격이 일자로 그어졌다.

맹렬한 바람에 부는가 싶더니 갑자기 모든 스켈레톤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

하비에르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메이린도 경악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바, 방금 뭐 한 건데?'

남자는 태연하게 대검을 어깨에 툭 올리며 하비에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하비에르가 급히 팔을 뻗었다.

'복원!'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스켈레톤들은 잠잠했다.

몇 번이고 복원을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 스켈레톤이 달칵거리는 소리만 날 뿐,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검에 이상한 흑마법이 걸려 있군. 이 정도의 강자라니!'

주력 소환수인 미트골렘들을 마누스 쪽에 전부 보내놓고 온 게 실수였다. 설마 여기서 교전이 벌어지게 될 줄이야.

하는 수 없다. 최후의 수단을 써야 했다.

그가 자신의 옷 안에 손을 넣어 가슴에 그려져 있던 칠흑 마법진을 가동시켰다.

"우욱!"

하비에르가 목을 붙잡고 휘청거리더니 입안에서 이상한 살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마치 영양분이 빨려 나가듯 하비에르의 몸은 점점 말라비틀어지며 미라처럼 변했고, 입에서 토해낸 살점은 하비에르를 양분으로 점점 더 덩치가 부풀었다.

메이린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몸속에 뭘 키우고 있었던 거야!'

꾸득! 꾸드드드드득!

그것은 마치 장기들로 이루어진 듯한 괴생명체였다. 몸길이는 삼 미터를 넘어가고 있었고, 팔다리가 장기 뭉치들로 불끈거렸다.

-크워어어어어!

괴생명체가 괴성을 내질렀다. 온몸이 칠흑으로 새까맣게 물들며 양팔에서는 날카로운 뼈가 튀어나왔다.

"피해요!"

메이린이 소리쳤다.

"저건 이동이 불가능한 개체예요! 굳이 싸워줄 필요 없이 여기서는......!"

스릉!

남자가 대검을 휘둘렀다.

괴생명체의 어깨에서 허리까지 하얀 실선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상체가 깨끗하게 잘려 나가 비스듬히 미끄러졌다.

'이, 일격에?!'

메이린의 동공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남자는 휘두른 대검을 반대로 고쳐잡고 어깨를 낮췄다.

파바바밧!

좌 베기 우 베기, 몸을 빙글 돌리며 사선 베기까지.

괴물의 몸에 실선이 무수하게 그어졌다.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이 무수한 살점으로 변해 후두두둑 떨어졌다.

"아......."

메이린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압도적인 강함.

프로급의 네크로맨서가 목숨을 바쳐 만든 괴물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간단히 쓰러뜨렸다.

'대체 이 사람은 정체가 뭘까?'

남자가 다시 대검을 어깨에 툭 얹고는 메이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저 해골 투구만 봐도, 눈에 푸른 연기가 흐르는 것만 봐도 공포심이 싹텄다. 완전히 인외의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남자가 다가오자 그녀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씨! 나 왜 이렇게 갑자기 쫄보가 된 거야?'

물론 남자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이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동안 키젠 교복을 무적의 갑옷처럼 생각하고 지내왔다. 실제로 암흑연합 안에서는 이 교복만 입고 있으면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관념이 방금 막 하비에르에게 깨진 찰나였다. 하마터면 지저분한 짓을 당할 뻔한 걸 넘어서, 시체가 되어 팔려 나갈 뻔했다.

데스랜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 키젠 학생이라고 무적이 아니었다. 이 남자도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슥.

'또 그거야?!'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이번에도 메이린을 옆구리에 낀 남자가 다시 흙바닥을 내려 앉히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메이린의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 * *

메이린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끌려갔다.

주위의 배경이 슝슝 지나갔다. 거친 맞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

이내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남자가 바닥에 착지했다.

메이린이 재빨리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저 멀리 하수도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스윽.

남자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손짓했다.

'뒤 돌라고?'

그녀에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엎드려 있던 그녀가 상체를 일으켜 무릎을 꿇고는 뒤를 돌자 남자가 대검을 움직였다.

스슥.

칼날이 밧줄을 베며 지나갔다. 이내 그녀의 손등을 대검 끝으로 살짝 찌르자 마법진이 쨍 소리를 내며 파괴됐다.

아무래도 그게 저주였던 모양이다. 다시 코어가 활성화되며 칠흑이 온몸에 돌기 시작했다.

자유의 몸이 된 메이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냥 순수하게 날 구해주는 거야?'

남자는 미련 없이 망토를 휘날리며 등을 돌렸다.

"자, 잠깐만요!"

메이린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괜찮으시다면 꼭 사례를 하고 싶어요!"

남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만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몇 번을 봐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녀는 용기를 쥐어짜 내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나는 키젠의 학생이자, 상아탑 소속의 메이린 빌렌느라고 해요. 당신이 바라는 거라면 뭐든......."

[친구들에게 돌아가라.]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에 메이린은 깜짝 놀랐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낮고 차가운 음성이었다.

[두 명이 하수도에 쓰러져 있다.]

"아......!"

그녀의 머릿속에 조원들이 떠올랐다.

다들 괜찮은 건가? 그런데 두 명이라고? 남은 한 명은?

[남자 한 명도 너처럼 붙잡혔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력으로 탈출해 하수도로 들어갔다. 몇 시간 뒤면 도착하겠지.]

당연한 듯이 자력 탈출.

이 녀석은 시몬이다.

메이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때,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메이린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 떠나 버리려고? 뭐라도, 이 남자에 대해 최소한의 뭐라도 알고 싶었다.

"이름!!"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부탁드릴게요!"

[.......]

남자는 말 없이 가만히 멈춰 섰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짤막하게 답했다.

[피온.]

터어엉!

굽힌 무릎을 펴자 그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메이린은 상기된 얼굴로 두 손을 맞잡았다.

'......또 만날 수 있겠죠?'

사라져 가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심장은 연신 콩닥거리고 있었다.

* * *

나무를 밟고 달리던 시몬이 피어의 두개골 투구를 벗어서 등 뒤로 넘겼다. 그러곤 속 시원하다는 크게 숨을 토해냈다.

"후아아, 들키는 줄 알았네!"

[크흐흐흐흐! 수고했다 소년!]

발단은 이랬다.

프린스가 메이린을 납치한 뒤, 시몬은 피어가 저택에서 붙잡은 인간들을 심문하러 갔다.

그들의 입을 열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위협 전문인 피어가 목을 칼로 툭툭 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자 금방 실토했다.

그들은 '하비에르'라는 은퇴한 네크로맨서를 따르는 직원들이며, 대규모 시체 납품 사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몬이 키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을 본 적 있냐고 묻자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만약 그 여학생이 프린스로부터 하비에르의 손에 넘어간다면, 마차에 태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야영지로 보내질 거라고 말했다.

저택은 이제 곧 전쟁터가 된다면서.

-전쟁터가 된다는 게 무슨 말이죠?

이 물음에 포로들은 대답을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잠시 피어가 칼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고, 그들은 오들오들 떨며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었다.

하비에르는 데스랜드의 에이션트 언데드이자 양대산맥인 '프린스'와 '마누스', 두 언데드들과 동시에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누스로 하여금 프린스를 제거하게 하고, 마지막엔 본인이 마누스까지 제거하는 것으로 프린스의 '왕관'을 손에 넣는 게 그의 최종목표였다.

그렇게 사건의 전말을 다 알게 됐지만, 시몬의 입장에선 납치당한 메이린을 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당장 저택으로 가는 것보다는, 곧 있을 프린스와 마누스의 전쟁이 벌어질 때 저택에 잠입하는 쪽이 구출 성공률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시몬은 포로들이 말한 야영지도 한번 체크해 보기로 했다.

키젠 교복은 벗고 포로들의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하비에르의 야영지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동 중에 딱 야영지로 가는 마차 한 대를 발견했다.

시몬은 망설임 없이 마차를 습격했고, 그곳에서 간발의 차이로 메이린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크흐흐! 그런데 말이다 소년!]

피어가 말했다.

[아까 소녀가 이름을 밝히라고 했을 때 그 '피온'은 뭐냐?]

그 물음에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아, 그냥...... 처음엔 피어라고 대답하려 했는데 괜히 상황이 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적당히 피어랑 제 이름 시몬을 섞어서 피온이라고 했죠 뭐."

[크흐흐흐!]

"그 이야긴 그만두고, 빨리 저택으로 가요!"

프린스와 마누스의 전쟁. 이건 시몬의 입장에선 행운이었다.

군단 합류에 비협조적인 세 번째 에이션트 언데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이 고개를 들자 울창한 숲 너머로 저택이 불타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벌써 전쟁이 시작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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