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4화
"혹시 그 피온이란 분이 시몬은 아닐까요?"
"......."
잠시 멍하니 있던 메이린이 빵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뭐? 시몬? 그럴 리가 없잖아!"
메이린은 허리까지 굽혀가며 웃었다. 카미바레즈와 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근데 카미 말이 아주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아? 얼추 타이밍은 맞긴 하는데."
"절대."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절대, 저얼대, 절-대! 시몬은 아냐."
"그, 그런가요?"
"일단 체격이랑 키 이런 것도 다르고, 목소리나 억양도 달랐고! 아니, 내가 지금 이런 거 설명하고 있는 게 웃기네."
그녀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슥 닦았다.
"그냥 딱 보면 알아. 시몬은 막 그런 이미지잖아?"
"어떤 이미지?"
"아니 뭐, 그냥 시몬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거 있잖아. 반듯하고, 싹싹하고, 성실하고, 스마트하고."
카미바레즈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네, 맞아요! 상냥하고! 젠틀하고! 배려심 있고! 친절하고! 그러다 가끔은 터프하면서도 열정적인......."
"?"
"아, 아무튼! 그런데 그게 왜요?!"
메이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근데 피온, 그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하나. 엄청 살벌해. 무서워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겠더라고."
"메, 메이린이요?"
"응. 그냥 막 느낌적인 느낌으로 말하면......."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폭군? 진짜 마음에 안 들고 수틀리면 다 뒤엎고 죽이고 할 것 같은 사람이었어."
"......아."
카미바레즈가 방금 메이린이 말한 것과 시몬의 이미지를 겹쳐보았다.
전혀, 이질감이 들 정도로 안 어울렸다.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니까. 이걸 설명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야."
"흐음-"
딕이 팔짱을 꼈다.
'또 가만 지켜보면 그런 모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런 것보다!"
메이린이 고개를 돌렸다.
"시몬 얘는 왜 이렇게 늦냐고!"
메이린이 초조한 얼굴로 캠프에 길게 서 있는 줄을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검사도 못 맡고 수행평가 시간이 다 끝나 버릴 것 같았다.
"우, 우리가 가서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10분 뒤에도 안 오면 그러려고 했는데."
딕이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을 뻗었다.
"그럴 필요는 없겠네~"
딕이 가리킨 방향에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이쪽으로 전력 질주하고 있었다.
"시몬! 여기야 여기!"
"아, 저 멍충이 땜에 못살아 진짜! 탈출했다면서 왤케 늦었냐고!"
"시몬! 다행이에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세 사람 앞에 도착했다.
잠시 무릎에 손을 얹고 숨을 몇 차례 헐떡이더니, 즉시 아공간을 열어젖혔다.
"우리 과제, 이걸로 하자."
그리고 시몬이 꺼낸 것은 하얀 붕대로 감싸진 몸뚱이였다. 냉동실에 있었는지 살얼음이 껴 있고 차갑기까지 했다.
시몬이 빠르게 붕대를 풀었다.
"이, 이건?"
"사람이 아니야."
시몬이 설명했다.
"백귀(白鬼)라고 부르는 몬스터. 이걸로 좀비를 만드는 거야."
"와!"
메이린이 너무 기뻐서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최상급 좀비 재료잖아! 이 귀한 걸 어떻게 구한 거야?"
"내가 잡혀 있던 저택 지하실에 있었어."
"시체쟁이들한테 잡힌 와중에 수행평가 생각을 한 거야? 으하하! 기특한데?"
시몬이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운이 좋았지."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시작하자!"
네 사람은 다시 한번 백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번에도 시몬이 메인이었다. 그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시작할게."
마법진을 심는 건 수월했다. 전에 프린스의 저택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뒤라 그런지, 훨씬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벌떡.
마법진이 완성되자마자 백귀였던 좀비가 몸을 일으켰다. 네 사람은 비로소 환호하며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거기 학생들! 이제 평가 마감해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갈게요!"
좀비를 아공간에 넣고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줄에 섰다.
"아, 조금 걱정이네."
메이린이 초조한 얼굴로 손가락 끝을 살짝 깨물었다.
"마지막에 백귀의 종족 특성을 완벽히 못 살리고, 그냥 일반 좀비처럼 만들어 버린 게 맘에 걸려."
"괜찮을 거야."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그의 시선이 메이린의 교복에 묻은 흙으로 향했다.
"잠깐만. 너 뒤에 흙 엄청 묻었어."
시몬이 그녀의 교복을 세심하게 툭툭 털어주었다.
그녀의 시선이 시몬의 팔로 향했다. 방금 팔을 걷어서 그런지 팔의 근육과 핏줄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메이린은 무심코, 저 튼튼한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는 상상을 했다.
피온이 자신을 안았을 때도 대충 저 정도의 팔 굵기인.......
"&%$@^*@$!!!"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그녀가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확 뒷걸음질 쳤다.
순수하게 친구의 교복을 털어주고 있던 시몬이 멈칫했다. 그러곤 뻘쭘하게 손을 내렸다.
"아, 미안. 난 그냥......."
"응? 아, 아니! 아니! 너 때문에 놀란 거 아냐."
그녀가 대충 얼버무리곤 힐끔 시몬을 바라보았다.
무안한 듯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뒷목을 긁적이고 있는 그의 모습.
그리고 아까 변태 영감을 무섭게 걷어차며 기계처럼 차갑고 살벌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하던 피온을 떠올렸다.
'.......'
확신할 수 있었다.
카미바레즈가 제기한 일말의 의문조차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하나도 안 닮았다.
"학생들, 들어오세요."
잠시 후 7조의 차례가 되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아론이 나른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자, 네 사람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너희가 마지막이군."
"넵. 7조입니다!"
조장인 메이린이 대표로 말했다. 아론이 고개를 까닥했다.
"보여봐라."
시몬이 아공간을 열고 백귀로 만든 좀비를 꺼냈다.
오오-
백귀를 알아본 조교들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아론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건 어디서 구했지?"
"데스랜드 외곽 지역의 오래된 저택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잘도 백귀를 찾아냈군."
아론이 일어나 좀비의 곳곳을 만지고 살폈다. 손으로 눈을 벌리거나 심지어는 입 냄새를 맡기도 했다.
이어서 아론이 이 좀비를 만드는 데 사용한 수식을 묻자 시몬이 줄줄 대답했다.
"지속 수식을 뺀 이유는?"
"데스랜드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사물이 썩지 않는 장소란 점을 고려했습니다."
아론이 다른 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좀비의 중요한 요소인 시독(屍毒) 효과를 제외한 이유는?"
이번엔 메이린이 답했다.
"백귀는 냉기속성의 몬스터. 시독으로 인한 감염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쁘지 않군. 악토미오신 체크는 누가 했지?"
"제, 제가 했습니다!"
"소환 마법 전후의 근육 경직 상태에 대해 설명해라."
아론은 카미바레즈과 딕에게도 하나씩 질문을 던졌고, 두 사람도 긴장은 했지만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재료가 워낙 좋았다. 너희들도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으로 처리한 것 같군. 조금 급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
그 말에 네 사람은 속으로 뜨끔했다.
조교가 아론에게 서류철과 깃펜을 넘겼다. 아론이 네 사람의 이름에 체크표시를 했다.
"7조는 A+다. 가라."
"와!"
네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조교들도 가볍게 손뼉을 짝짝 쳐주었다.
"전원, 집합해라."
마지막 7조의 평가를 끝으로 아론이 천막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자신들이 만든 좀비를 자랑하고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기립했다.
빠르게 평가를 받고 휴식전용으로 만든 천막에서도 학생들이 뛰어나왔다.
"수고했다."
아론이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 수행평가로 느낀 점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시키냐고 날 원망하는 녀석들도 있겠지."
몇몇 학생들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데스랜드의 시신들은 하나같이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었다.
그것을 좀비로 만드는 것은, 몇몇 학생들에게는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내 교육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좀비든 스켈레톤이든 돈만 있으면 시내에 들려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까. 하지만, 너희는 키젠이다."
아론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이 분야의 엘리트로서 뿌리를 알고 근본을 이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전통과 뿌리를 낡은 것 취급하며 외면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겉으론 잎과 꽃이 무성해 보여도, 뿌리가 썩어 있는 나무는 태풍이 오면 살아남지 못해."
아론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아마도, 이 평화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시체 공장이나 보급 기지가 프리스트에게 파괴당해서 언데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쩔쩔매는 놈은 네크로맨서를 칭할 자격이 없다. 어떤 상황이 와도 냉철해지고, 효율적인 수단을 정립해라."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시중의 시체가 없다면 근처의 폭격 당한 마을이라도 다녀와서 그들의 시체를 군대로 만들어라. 머릿수가 부족하다면 죽은 친구의 시체라도 일으켜서 이겨라. 그게 실용이고, 그게 네크로맨서다."
펄럭!
아론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갔다.
"A반 전원, 데스랜드에서 가져온 좀비들을 모두 꺼내도록. 평가를 받지 않은 것도, 실패작도 전부 다."
"네!"
학생들은 시키는 대로 데스랜드에서 구한 모든 좀비를 아공간에서 꺼내놓았다.
조교들이 체크를 마치고 고개를 끄덕이자, 아론이 바닥을 한번 쿵! 소리가 나게 밟았다.
화아아아아아악!
칠흑 마법진이 그의 발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 캠프 전체를 뒤덮었다. 좀비들의 눈에 불이 들어오더니, 갑자기 통제를 잃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
시몬의 백귀 좀비와 경비병 좀비도 마찬가지였다.
'사념의 컨트롤을 빼앗겼어! 이렇게 쉽게......!'
새삼 키젠 교수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모든 좀비들이 공터로 모여들었다. 자기들끼리 뭉치고 뭉쳐서 커다란 언덕을 형성했다.
"너희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데스랜드에서 들여온 좀비들은 부작용이 있다."
아론이 손바닥을 펼쳤다. 칠흑 마법진이 찰칵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립되기 시작했다.
"데스랜드 밖으로 나가면, 간헐적으로 극도의 공격성을 띤다는 점이지. 학생들이 사념으로 통제하기엔 역부족이라 가자마자 학교 측에 압수당하게 될 거다."
마침내 아론의 마법진이 완성되며 순수한 검은빛을 흩뿌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시몬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왜지?'
지금 아론이 펼치고 있는 흑마법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체(Corpse)-"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입술을 달싹였다.
"-폭발(Explosion)."
모든 좀비들의 코어가 거대한 빛을 뿜어내더니,
일제히 대폭발을 일으켰다.
후끈한 열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숙이고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입고 있는 교복이 정신없이 펄럭거렸고 나무들도 휘청휘청했다.
"......아."
시몬은 크게 뜬 눈으로 그 광경을 담았다. 프린스에게 빌린 백귀 생각은 깨끗하게 날아갔다.
새까만 밤하늘 속에서 펼쳐지는 잿더미와 검은 폭발이 버섯구름을 만들며 흩어져 나갔다. 다른 학생들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고개를 들었다.
마치 세상이 잿더미가 되어 흩날리는 것 같았다.
압도당해서,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론은 마치 명복을 비는 퇴마사처럼 고개를 까닥하고는, 뒤를 돌았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아론이 미소를 지었다.
"찰나라도 그렇게 느꼈다면, 너희들도 이제 네크로맨서로서 한 발을 내디딘 거다."
시몬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