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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37화 (13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7화

완벽한 정적.

필요한 것 외에 소거된 시각자료와 소리.

이 세상에서는 온전히 나만이 주인공이었다.

'이 심상을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전투 중에 시몬은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이 상태를 임의로 '재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역시 바힐의 저주나, 세르네의 깃털을 사용해 만든 이 집중의 요람은 차원이 달랐다.

느껴지는 건 나 자신의 몸과, 소름 끼칠 정도로 잘 느껴지는 칠흑의 흐름. 그리고 옅게 남아 있는 등 뒤에 밀착한 세르네의 존재.

[시작해 볼까요?]

듣기 좋은 미성이 또렷하게 울려 퍼진다. 시몬도 바짝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코어를 가동시켰다.

평소의 세 배.

불어난 강물이 주위를 범람하는 것처럼, 많은 양의 칠흑은 신체에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통제력을 더 높여야 해요.]

자꾸 다른 길로 세지 말고 똑바로 흐르도록 가이드를 제시했다.

코어는 멈추지 않는다. 칠흑의 양이 점점 불어난다. 통제가 어려워진다.

[배출구를 만들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며 몸속에서 칠흑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제야 밸런스가 맞는다. 시몬은 안심하며 코어를 끌어올렸다.

몸이 뜨겁다.

피가 끓어오르고 세포 하나하나 힘을 부르짖는다. 체내 칠흑 운용과는 차원이 다른 활력이 느껴진다.

[천천히-]

이제는 칠흑 운용과 방출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힘이 넘쳐서 주체할 수가 없다.

바로 그때.

등 뒤로 백허그를 한 채 붙어 있던 세르네가 물러났다. 시몬의 세계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르네?"

주위의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몬이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는 뒷짐을 진 채 미소 짓다가 턱짓했다.

"......!"

몸에서 칠흑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체내 칠흑 분화를 구현해 냈을 뿐만 아니라 어느새 배출까지 마스터.

학생들의 부러운 시선이 꽂힌다.

"와! 성공한 거 맞지?"

"벌써 저게 저렇게 돼? 외계인이야 뭐야?"

"역시 특례 1번이네."

아니다, 나 혼자서 한 게 아니다.

시몬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세르네가 봄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걸로 빚 하나 더 추가. 오케이죠?"

"......."

시몬이 픽 웃음을 올렸다.

"그래, 고맙다."

그녀가 백금발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쓸어넘겼다.

"이렇게 해서 빚 열 개 모으면, 진짜 큰 소원으로 할 거예요?"

"......이게 무슨 교내 카페 쿠폰이야?"

"아하하!"

그렇게 두 사람이 쿡쿡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그때.

고오오오오오!

화산 같은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남녀가 있었다.

메이린이 이글이글 불타는 표정으로 분위기 좋게 웃고 있는 시몬과 세르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답답해 진짜! 내가 입 아프게 경고했잖아! 저 여자는 무조건 피하라고! 널 이용하고 조종할 뿐이라니까!'

메이린은 시몬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왜 그녀의 본색을 모르는 걸까? 쟤도 꼴에 남자라고 겉모습에 홀라당 넘어가서 헤헤거리고 있는 꼴을 보니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맘 같아선 당장에라도 들이닥쳐 두 사람의 머리를 붙잡고 박치기하게 만들고 싶었다.

터억.

그리고 바로 옆에, 한 발짝 나온 헥토르는 그야말로 화신처럼 전신에서 분노를 뿜어내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아아아!'

헥토르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네놈은! 대체 어디까지 날 우롱할 셈이냐!'

시몬보다 몇 년은 일찍 흑마법에 입문한 헥토르는 당연히 '체내 칠흑 분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수많은 시간을 쏟고 생사를 뛰어넘어 체득한 저 기술을, 시몬은 그냥 이 수업 시간 한 번에 보란 듯이 익혀 버린 것이다.

고오오오오오!

시몬을 바라보는 두 학생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주위의 몇몇 학생들은 애써 모른 척하며 다시 훈련을 재개했다.

그때 분노가 최고치에 달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야, 뭘 꼬나봐?"

메이린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게 쳐 돌았나. 눈 안 깔아?"

헥토르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두 사람이 당장에라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는 그때.

"메이린! 안 돼요!"

카미바레즈가 기겁하며 뛰어와 메이린을 끌어안았다. 헥토르도 파벌들이 달려와 그의 허리를 붙잡고 말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조교들이 가까이 오는 걸 보고 결국 등을 돌렸다.

'무슨 일 있나?'

웅성거리는 소리에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이미 메이린과 헥토르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조교들이 와서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있었다.

다시 훈련이 재개됐다.

이제 시몬은 의도한 순간에 체내 칠흑 분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리스크가 커.'

단시간에 강한 힘을 얻는 건 좋은데, 칠흑 소모의 몸의 부담이 심각할 정도로 크다. 이걸 써서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패배 확정이다.

게다가 칠흑을 거의 가져다 버리듯 체내 밖으로 뿜어내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딱 '결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 네크로맨서들 중에서도 칠흑 분화를 주력기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해요."

세르네가 검지를 휘휘 흔들며 말했다.

"지금 홍펭 교수가 이걸 가르쳐 주는 건 다음 기술들을 위한 안배겠죠. 분화를 이용한 응용기가 많거든요."

"아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쓸 수 있는 거야?"

"쓰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요."

그녀가 검지를 시몬을 향해 쭉 뻗었다. 검지 부분만 연기가 치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만스럽고 무식하잖아요? 마투는 굳이 쓰고 싶진 않네요."

하긴 마투가 아니더라도 세르네의 공격 루트는 무궁무진했다.

깃털을 날리는 건 물론, 깃털에 칠흑을 담아 먼 허공에서 마법진을 펼치는 것도, 깃털 스무 장으로 스무 개의 마법진을 동시에 펼치는 것도 가능했다. 깃털을 다른 사물로 바꾸는 것도 봤다.

그녀가 마투학 시간을 대충 흘려듣는 건, 어떻게 보면 여유였다.

"그래도 뭐, 배워둬서 쓸모없는 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

시몬이 평소 지론을 말했다.

"메이린도 마투가 약점인 유리대포 타입이었다가, 요즘 마투 보완하면서 폼이 훨씬 좋아지기도 했고."

"그건 그렇죠."

세르네가 팔짱을 끼며 미소 지었다. 시몬은 그녀의 표정을 읽으며 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메이린과 친해지고 싶다면, 사람을 그렇게 자기 아래로 깔고 보는 버릇은 고치는 게 좋아."

"무슨 말씀이실까~ 메이린이 제 아래인 건 사실인데 뭘 고쳐요?"

시몬이 헛웃음을 흘렸다.

"넌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제일 이상한 사람 중 하나야."

세르네도 미소 지었다.

"아, 의견이 일치하네요~ 저도 당신처럼 이상한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두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가운데, 홍펭이 박수를 짝짝 치며 집합을 알렸다. A반과 C반 모든 학생들이 그녀에게로 몰려들었다.

"편히 앉으제요."

학생들이 풀밭에 앉자 홍펭이 설명했다.

"바로 해내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칠흑 운용기들은 꾸준한 연즙이 가장 중요해요. 다들 고쟁했으니 20분 쉬고, 이다음은 재미있는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재미있는 이벤트라는 말에 모든 학생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한 발로만 하마 타기 같은 거 하려나?'

'보나 마나 모래주머니 차고 언덕 오르기겠지.'

그때 홍펭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던 조교 브레드가 공을 그녀에게 던졌다. 한 손으로 공을 가뿐히 받은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 대항전 공놀이. 어때요?"

"!!!!"

"진짜??!"

진짜로 정상적인 이벤트라니! 사방에서 기쁨 반 경악 반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공은 키젠에 온 뒤로 정말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제대로 된 스포츠의 등장에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별로 공놀이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하마 타기나 언덕 오르기가 아닌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자, 게임에 대해 절명할게요."

홍펭이 공을 허리에 끼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넘어갔다.

간단히 말하면 룰은 피구와 흡사했다. 코트에 들어가서 공을 던져 상대에게 맞추면 된다.

공이 몸에 닿는 순간, 놓치지 않고 무사히 붙잡은 채로 버티면 공격권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다만 아웃된 사람이 코트 밖에서 팀을 돕는 자유공격은 없었다. 아웃당하면 그대로 경기에서 완전 이탈된다.

"물론! 그냥 하면 재미없겠죠?"

학생들은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공을 들어 올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브레드에게 던졌다. 그런데 방향 조절을 잘못했는지 브레드 쪽이 아닌 숲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쐐애액!

그런데 난데없이 공의 방향이 홱 틀어져 브레드에게 날아갔다.

브레드가 자세를 낮추고 안정적으로 공을 받아냈다. 그의 두 다리가 및 미터나 주르륵 밀려난 뒤에야 멈췄다.

"이 공에는 흑마법이 걸려 있어요."

학생들이 기겁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어디로 던지든, 코어를 보유한 자람에게로 무조건 날아가죠. 즉. 공을 잘못 던져 빗나가는 경우는 없어요."

브레드가 다시 공을 던졌다. 그것은 한참을 먼 곳에서 날아가다가, 사냥감을 쫓는 매처럼 방향을 틀어 홍펭에게로 날아갔다.

홍펭은 이번에도 가볍게 한 손으로 공을 받아냈다.

"회피는 불가능해요. 오로지 공격과 방어만이 가능한 운동. 제대로 못 막으면 아웃이에요!"

이게 무슨 공놀이인가요!

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오는 학생들이었다. 몇몇은 그럼 그렇지 하고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재밌긴 하겠다."

"응. C반한테 질 수 없지!"

"교수님!"

이번에도 질문 장인, A반의 제이미 빅토리아가 손을 들었다.

"흑마법을 사용해도 되나요?"

"네. 흑마법으로 본인이나 아군, 공을 강화하는 건 가능하지만 상대팀 학쟁에 대해 그 어떤 영향도 줘서는 안 돼요. 룰을 어기면 바로 탈락 처리될 거예요. 그리고 몸을 영체화하는 '혼령화' 기술은 금지. 공을 넘기기만 하면 게임이 끝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신디 비바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한 코트에 20명. 3판 2전승제. 이긴 반은 맛있는 밥을 제공하겠어요. 그리고 진 팀은."

그녀가 활짝 웃었다.

"승자가 먹는 걸 지켜보며 체력 드링크로 배를 채워야겠네요~"

그 말에 모든 학생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경쟁!

공기가 확 달라지며 키젠 특유의 경쟁심리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A반 다 모여!"

"이건 죽어도 못 지지!"

"C반은 이쪽으로!"

"부총장 빨 세우는 애들 드디어 밟아보겠네!"

다들 경쟁심을 불태우는 가운데 시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시몬."

덥석.

언제 왔는지 메이린이 시몬의 손목을 붙잡았다. 시몬이 조금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

"메, 메이린?"

"반장이 너 오래. A반 작전 짠다고."

그녀가 성큼성큼 시몬을 데리고 갔다.

시몬이 뒤를 돌아보자 세르네가 여유로운 미소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곧 그녀의 주위로도 C반 학생들이 몰려왔다.

"카미는 어딨어?"

"......."

"메이린?"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다. 얘는 왜 또 화난 것 같지?

"자, 자. 시몬! 어서 와~"

A반 모두가 몰려 있는 가운데, 중앙에는 제이미 빅토리아가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딕이 서 있었다.

제이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딕이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옙! A반의 브레인인 딕 헤이워듭니다."

우우우.

곳곳에서 장난스러운 야유가 들렸지만 딕은 많은 성화에 감사하다며 사회자처럼 인사하는 것으로 재치 있게 받아넘겼다.

"내가 반장을 대신해서 설명할게. 일단 팀은 이미 조교쌤들이 정해놨어."

딕은 아공간에서 저런 건 왜 들고 다니나 싶은 접이식 테이블을 꺼내 펼치더니, 그 위에 종이들을 내려놓았다.

학생들이 몰려와 리스트를 살폈다. 시몬도 가까이 와서 명단을 확인했다.

'난 2팀이네.'

시몬은 일단 본인이 잘 아는 학생들의 이름 위주로만 확인했다.

1팀 : 메이린, 딕, 토토.

2팀 : 시몬, 헥토르.

3팀 : 신디, 제이미, 카미바레즈.

'밸런스는 나쁘지 않네.'

시몬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팔짱을 낀 채 표정을 확 구기고 있는 헥토르는, 팀 구성이 무척이나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자, 얘들아. 잠깐만 들어줘."

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전략의 폭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1, 2, 3라운드에 어떤 팀을 내보내느냐야. 이러면 심리전이지. C반의 필승팀이 나오는 때에, 우리는 최약 팀을 상대하게 해서 소모시키고. 우리 쪽 필승팀으로 상대의 중간 팀을 잡는 게 가장 이상적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3전 2선승제잖아. 그냥 강팀 두 개를 연달아 내서 한 번에 이기는 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냐?"

"당연히."

딕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C반에서는 세르네가 있는 필승팀을 최소 1, 2라운드 중 하나에 내겠지? 완전 변칙전략이 아니라면 말이야."

"......음."

세르네라는 말에 모두가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L반 로레인과 함께 키젠 투톱이라는 세르네의 존재는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이번에는 제이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도 빨리 강팀이랑 약팀을 정해야겠네."

"어. 우린 밸런스가 좋긴 한데, 굳이 꼽자면......."

딕의 시선이 돌아갔다.

"시몬이랑 헥토르가 붙어 있는 2팀이 최강인 것 같아. 이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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