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8화
딱히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딕의 말에 다들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은 조금 민망해서 옆머리를 긁적였고, 헥토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일 약팀은."
딕이 슬쩍 메이린의 눈치를 봤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너랑 내가 속해 있는 1팀, 이겠지?"
"야! 왜 우리가 최약체야!!"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항의했다.
"메이린, 너 강화계 흑마법 아는 거 있냐?"
"어, 음. 자잘한 거 몇 개는......."
"C반 애들 다 흑염으로 불태울 거 아니면, 이런 경기에서 활약하기는 좀 힘들지."
곳곳에서 자잘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메이린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딕은 설명을 계속했다.
"1팀이 메이린에 집중된 반면에, 3팀은 전력의 뎁스가 탄탄해."
A반 사령학 에이스 신디 비바체.
A반 저주학 에이스 제이미 빅토리아.
A반 소환학 에이스 피에르 버클러.
A반 맹독학 에이스 클라우디아 멘지스.
필기 성적에서 지망과목 90점대의 이들이 3팀에 몰려 있다.
그간 시몬이나 헥토르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3팀이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반면 외롭게 1팀을 이끌어야 할 메이린은 공을 가지고 하는 경기에서 그렇게 특화된 흑마법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반 구성은 최약. 강. 강중이지.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장 약한 메이린의 1팀을 세르네 팀에 붙여야 해."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딕을 한 차례 쏘아본 메이린이 팔짱을 끼며 몸을 돌렸다. 그러곤 뜨겁게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딕은 그 모습을 보며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효과 외에도 세르네가 상대라면 메이린이 어떻게든 더 분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 잘난 줄 알고 X나 나불거리네, 새끼가."
싸늘한 목소리에 활기찼던 반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헥토르가 살벌하게 눈을 번뜩이며 끼어들었다.
"그만 질질 끌고 본론이나 처 말해."
"아, 성격 참 급하네~ 조금만 기다려 봐."
딕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여유 있게 말했다.
'시몬 폴렌티아를 믿고 더럽게 나대는군.'
하지만 헥토르도 그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저런 쩌리에게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 사람에게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니까.
"알아냈어."
갑자기 허공에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허공이 사르륵 녹아내리며 안경을 쓴 학생이 딕의 옆에서 나타났다.
몸을 숨기는 위장계열 기술인 카모플라쥬(Camouflage)였다.
"말해줄래?"
딕이 씩 웃었다.
* * *
"자, 그럼 학생들. 경기 준비하십쇼."
심판을 맡은 브레드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학생들이 우르르 코트 앞으로 몰려왔다.
'아, 짜증 나.'
홍펭이랑 다른 조교들은 식사 준비한다면서 휙 떠나 버리고, 브레드와 선배 조교 둘이 남겨져 학생들이랑 놀아주면서 심판 노릇 따위나 해야 하는 상황.
물론 그 선배도 전부 브레드에게 떠맡겨 버리고는 어딘가에 짱박혀 버렸다.
'쓰읍, 진짜 미치겠네! 내가 이런 대우 받을 짬이야?'
브레드가 머리를 마구 쓸었다.
'시몬이랑 싸웠던 그 사건 이후에 홍펭 교수님께서 날 홀대하시는 게 느껴져! 다른 조교들도 은근히 날 무시해! 망할! 망할! 다들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시몬 그 새끼가 소문낸 거 아냐?'
물론 브레드 본인만의 피해의식일 뿐이었다.
'시몬 폴렌티아......!'
게다가 아까는 더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
시몬이 카미바레즈란 여자애를 데리고 왔다.
-조교 선생님. 카미가 약간 빈혈 증세가 있는 것 같아서, 약이 필요해요.
브레드는 퉁명스럽게 그런 거 없고 조금만 참으라고 대답했다.
그때 시몬이 싸늘하게 웃으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학생이 아프다는데. 없다고 하면 조교일 다 끝나시나 봐요?
심장이 철렁했다.
홍펭에게 비밀을 전부 말해 버리고 키젠 조교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겠다는 무언의 협박!
약점이 잡혀 있는 브레드는 결국 홍펭의 오두막까지 달려가서 약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아! 짜증 나! 그 새끼 X나 기어올라!'
달달달.
브레드가 분노로 다리를 떨었다. 동시에 시몬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졌다.
저놈 졸업하는 3년 동안 어떻게 버티지?
혹시 2학기 때 마투학 안 들으려나?
그럴 리가 없다. 홍펭 교수님께서 그렇게 공을 들이는 놈이고, 마투는 놈이 강력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영역이다.
뭣보다 신경 쓰이는 건 아까 놈이 '체내 칠흑 분화'를 성공시켰을 때, 저 멀리서 홍펭 교수님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표정을 지었었다.
5년간 교수님을 모시면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
'크윽!'
질투와 분노와 처량함으로 브레드는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직 파릇파릇한 20대 중반인데 벌써 스트레스로 머리털이 빠지고 있다.이대로는 꼼짝없이 아버지처럼.......
"조교쌤."
누군가의 목소리에 브레드가 눈을 떴다.
제이미가 그의 앞에 차렷 자세로 기립한 채 말을 걸고 있었다.
"A반 C반, 모두 모였는데요."
"흠흠."
브레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경기 시작하겠슴다. A반, C반 첫 번째 팀 앞으로."
A반에서는 메이린과 딕을 포함한 1팀이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C반에서는.
"세르네! 세르네다!"
"세르네가 첫 번째다!"
"와아아아!"
A반이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반면 C반 학생들은 시몬과 헥토르 쪽을 보고 있다가 그들이 나오지 않는 걸 알고는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A반의 입장에선 가장 이상적인 한 수, 상대의 필승 카드에 최약체 카드를 붙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저 팀으로 세르네 팀 빼는 거 개이득인데."
"나머지 애들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A반 학생들은 벌써부터 패배를 당연시하고 있었다.
"좋아하지 마! 이 미친놈들아!"
메이린이 A반 학생들을 돌아보며 빼액 소리쳤다.
"우리가 이길 거라고!"
A반 학생들은 짝짝 싱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물론 전혀 믿어주는 눈빛이 아니었다.
메이린은 오늘 몇 번 속이 뒤집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홱 고개를 돌렸다.
살랑살랑.
그곳에는 하얀 겉옷을 교복 위에 입고 있는 세르네가 손을 흔들며 메이린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가 빠직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넌 오늘 뒤졌다 진짜.'
각각 스무 명의 학생들이 코트로 들어왔다.
코트 밖에서는 각 반의 열렬한 응원전이 벌어졌다.
코트에 들어간 학생들이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며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브레드만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귀찮음 가득한 표정으로 목에 멘 호루라기를 불었다.
"조용! 양 팀 대표, 앞으로 나오십쇼."
메이린과 세르네가 걸어 나왔다. 브레드가 주머니에서 1실버짜리 동전을 꺼냈다.
"앞뒤, 어디로 할 겁니까?"
"무조건 앞!!"
메이린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그럼 저는 뒤로할게요~"
세르네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브레드가 대충 동전을 휙 던지더니 대충 동전을 착 붙잡았다.
"앞. A반 선공임다."
"예쓰!"
메이린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세르네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를 돌았다.
"귀여워~ 이런 거라도 이겨보고 싶었니?"
"니 뚝배기 공으로 부술 생각을 하니까 좋아서 그런다!"
불과 물 같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 와중에도 세르네는 쿡쿡거리며 웃고 있었다.
브레드가 공을 A반 쪽으로 휙 던졌다.
"시작하십쇼."
삐익.
그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메이린이 공을 딕에게로 넘겼다.
"야, 인챈트 셔틀. 빨리해."
"예이~ 예이~ 본부대로 합죠."
딕이 공에 인챈트를 거는 사이, 메이린은 마법진을 일으켰다. 딕이 슬쩍 그녀를 곁눈질로 살피며 말했다.
"상대에게 공격 마법 쓰면 바로 실격인 거 알지?"
"나도 알아!"
마법진을 그린 그녀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A반 학생들의 열렬한 응원 소리가 들렸다.
"선빵 멋지게 쳐라!"
"한 명 잡고 '그 포즈' 해줘!"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홱 고개를 돌렸다.
"아, 다들 시끄러! 입 다물어!!"
자꾸 멘탈 긁는 A반 학생들을 조용히 시킨 메이린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인챈트를 마친 딕이 위로 손짓하며 어깨를 으쓱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
딕이 인챈트를 건 공을 서브해 주듯 높게 던져주었다. 뒤로 물러나 있던 메이린이 체내 칠흑 운용을 발동한 채로 달려와 힘껏 도약했다.
부우우웅!
나비처럼 날아오른 그녀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공이 손바닥에 닿기 직전, 그녀의 손등에 그려진 마법진이 칠흑 화염계를 일으켰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불꽃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그녀가 힘껏 공을 때렸다.
쩍!!
공중에서 날아간 공이 C반의 한 남학생의 얼굴에 정통으로 적중했다. 남학생은 반응도 하지 못했다.
툭.
데구르르르.
공이 얼굴에서 떨어지고, 가뿐히 착지한 그녀가 하아! 하고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와아아아아아!"
"나이스 메이린!"
곳곳에서 환호성이 폭발했다.
"봤냐?"
메이린이 허리를 바로 세우며 딕을 돌아보았다.
"강화 마법 따위 없어도 이길 수 있다니까!"
"아휴, 그러믄유~ 니가 무조건 최고예유."
느물거리는 딕의 엉덩이를 걷어찬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구경하고 있던 시몬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야 좀 기분이 풀리며 콧대가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심판석에 올라가 있던 브레드가 턱을 괴며 휙휙 손짓했다.
"빨리빨리. 다음, C반 공격."
C반에서는 양 갈래 머리를 한 여학생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메이린이 지시를 내렸다.
"몸빵들! 다 앞으로 가!"
주력 공격수인 메이린과 몇몇 학생들이 뒤로 물러나고, 덩치 큰 남학생들이 앞으로 나왔다. 마투학 지망생들, 혹은 방어 흑마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양 갈래 머리의 소녀는 A반의 진형을 슬쩍 보더니 어색한 몸놀림으로 공을 휙 던졌다. 공은 코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하하! 어디로 던지는......!"
그때 코트 방향으로 나가던 공이 홱 틀어지더니 그대로 중간에 있는 학생의 가슴에 부딪혔다.
이번에는 C반 쪽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 밥팅아! 아까 교수님이 시범 보일 때 방향 꺾이는 거 봤잖아! 방심하지 말라고!"
메이린이 열을 올렸다. 공에 맞은 학생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코트 밖으로 나갔다.
"딕! 다시 인챈트 걸고 올려!"
메이린이 A반의 주포 역할을 했다. 공이 넘어오면 A반 모두 그녀에게 공을 몰아주었다.
확실히 그녀의 공격력은 탁월했다. 성공률 100%. 단 한 번도 떨어뜨리지 못한 학생이 없었다.
반면에 C반은 다양한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공격을 주도했다. 정작 세르네는 코트 구석에 서서 공격을 하지 않고 무심한 표정으로 손톱이나 다듬고 있었다. 다른 C반 학생들도 감히 그녀에게 나서라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빠악!
A반이 학생이 공을 붙잡으려다 팔에 부딪혀 아웃이 됐다.
코트 밖에서 지켜보던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사실 공격은 어지간하면 성공이구나.'
이 경기는 공격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물론 그런 부분을 떠나서, 1학년 키젠 학생들의 트렌드 자체가 방어를 경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1학년 땐 저주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상당해서, 결투평가에서 먼저 저주나 선공을 꽂는 쪽의 승률이 확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피차 기본기가 부족한 상태에서 선빵 필승의 트렌드가 짙게 깔려 있는 상황.
게다가 실전에서도 방어는 방호슈트나 키젠 교복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1학년들의 공격 만능 성향은 더 커졌다.
물론 고학년이나 교수급으로 올라갈수록 방어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커지게 된다.
터어업!
"오오오오오!"
그때 A반과 C반 모두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공격 성공률이 극도로 높은 이 경기에서, 슈퍼플레이는 누가 뭐라 해도 '방어'였다.
C반의 공격을 처음으로 A반 마투학 학생이 막아낸 것이다. 그의 몸에서 칠흑이 흐르고 있었다.
'체내 칠흑 분화를 쓴 거구나.'
선행 학습해 온 마투학 지망생. 그가 즉시 반격으로 공격을 던졌고 C반 학생이 잡혔다.
상대의 공격을 무효화하고 성공시킨 공격이라 가치가 두 배였다. 코트에 있는 모두가 그에게로 몰려들어 하이파이브했다.
방어 흑마법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강력한 마투 능력을 가진 학생이 이번 경기의 키였다.
'방어라.'
시몬의 눈이 빛났다.
간단한 공놀이만으로, 홍펭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