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화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A반 필승팀과 C반 최약팀의 경기.
C반에서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듯, 상당히 특이한 전략을 들고 나왔다.
바로 올인 전략. C반의 중간고사 1위에 빛나는 '렉시오'라는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의 칠흑을 몰빵하는 작전이었다.
렉시오는 머리카락이 마구 뒤엉킨 악성 곱슬에 피곤한 눈을 한 남학생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링크계열 흑마법을 쓸 수 있는 여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렉시오를 연결해 칠흑을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여섯 명 정도가 렉시오에 달라붙어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앞으로 나와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했다.
'뭔가 숨겨놓은 수가 있는 건 확실한데.'
'......저 녀석이 세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A반에서도 C반의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잠시 작전타임을 가졌고,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심플했다.
"니들은 뒤로 가 있어."
"초반엔 우리가 어떻게든 할게."
만의 하나에 상황을 대비해서, 이쪽도 에이스인 시몬과 헥토르의 체력을 안배시켜 놓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도 언제 나서든 별 상관이 없었기에, 뒤로 물러나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물론 시몬과 헥토르가 빠져도 A반의 공격이 느슨해지거나 하진 않았다.
여기 있는 모두가 1학기를 절반 이상 버텨낸 키젠 학생들이었고, 실력은 확실했다. 다채로운 공격 패턴으로 공격 성공률 100%를 기록했다.
"후웁!"
수비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밀러'라는 이름의 뚱뚱한 A반 학생이 몸에 그려놓은 부착 마법진으로 공을 받아낸 것이다.
"나이스 디펜스야! 밀러!"
"반격해!"
남학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손을 들어 신호하는 여학생에게 공을 토스해 주었다.
그녀가 팔에 두른 혈류계의 핏물로 둥근 모양의 테니스 채를 만들더니 그것으로 공을 후려쳤다. C반 학생이 얼굴에 공을 맞으며 쓰러졌다.
"마무리 좋다!"
"두 사람 다 멋져요!"
A반의 분위기는 좋았다. 시몬도 손뼉을 치며 열심히 반 친구들을 독려했다. 헥토르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C반은 철저하게 렉시오 올인이었다. 칠흑을 모두 소모한 학생들은 코트 제일 앞으로 나가서 상대의 공격권을 소모 시키고 아웃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A반 8명 생존.
C반 3명 생존.
이제는 양 팀 모두 인원수가 한 자리로 줄어들었다. 시몬도 몇 차례 공격에 가담했지만, 헥토르는 끝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퍽!
그때 렉시오에게 링크를 걸어주던 여학생이 A반의 공격에 잡혔다. 이제 남은 C반 학생은 둘뿐.
"어쩔 수 없네."
드디어 렉시오가 앞으로 나왔다.
"한번 해볼까."
그사이에 공격권을 가져온 C반 학생이 공을 던져서 A반 한 명을 잡으며 다시 7:2가 됐다.
이번엔 A반이 공격할 차례. 주포로 활동하던 A반의 테니스 채 여학생이 나섰다.
그녀가 공을 띄워 올리고 혈류계 능력으로 만든 채로 힘껏 렉시오에게 공을 날려 보냈다.
'절대 못 피해!'
그녀는 본인의 공격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자 렉시오도 준비해 둔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그의 사방을 커버하는 투명한 유리벽이 펼쳐졌다.
터엉!
정면으로 틀어박힌 공이 유리벽에 막혀 헛돌다 멈춰 섰다. 렉시오가 팔을 뻗어 그녀의 옆에 있는 남학생을 가리켰다.
투웅!
공이 갑자기 날아온 힘 그대로 날아가 남학생의 몸통을 맞춰 쓰러뜨렸다.
"뭐, 뭐야?"
"방금 반사된 거야?"
웅성 웅성 웅성.
평범한 흑마법은 절대 아니었다. 하렌 코크와 같은 가문 고유의 흑마법.
A반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누군가가 던진 공이 유리벽에 막히고 되돌아와 다른 학생이 아웃당했다.
곳곳에서 숨죽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저걸 어떻게 깨?"
"이 게임 한정 사기인데."
다음 공격 차례에 렉시오의 결계 밖에서 돌아다니던 학생 한 명을 잡았지만, 렉시오의 공격으로 다시 A반이 한 명 쓰러졌다.
순식간에 5:1이 됐다. 렉시오 혼자서 다섯 명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는 여유가 있었다.
"니들은 언제까지 뒤에서 폼만 잡을래?"
렉시오가 삐딱하게 웃었다.
"와봐."
하아아아암.
적나라한 하품 소리에 모두가 당황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헥토르가 하품을 쩍쩍하고 있었다.
"공."
헥토르의 말에 A반의 테니스 채 여학생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공 가져와."
"아, 응!"
그녀가 얼른 헥토르에게 공을 내밀었다. 헥토르는 스읍 하고 숨을 들이마신 다음 렉시오의 유리벽을 향해 공을 던졌다.
터어어엉!
"오오오오!"
보통 학생들과는 소리부터가 달렸다.
그러나 결국 헥토르마저도 유리벽을 뚫지 못하고 공이 반대로 튕겨 나가 공을 건네준 바로 그 여학생의 팔에 맞았다. 곳곳에서 '아!' 하고 아쉬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헥토르도 못 뚫는 거야?"
"졌네 이건."
아군을 맞추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공을 본 헥토르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가 다시 공을 쥐고 던졌다.
파앙!
이번엔 뒤에 숨어 있던 여학생이.
파앙!
방어를 몇 번 성공시키며 쏠쏠하게 활약했던 밀러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제 A반의 남은 사람은 단 두 명. 순식간에 2:1이 됐다.
"헤, 헥토르! 그만해!"
"그렇게 무작정 던진다고 될 게 아니야! 방법을 찾으라고!"
헥토르는 그런 목소리들을 가볍게 무시하며 공을 던졌다. 유리벽에 부딪힌 공이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왔고 그 대상은 시몬이었다.
헥토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잘 가라.'
터업!
순간, 주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시몬이 한 손을 뻗어 너무나도 간단히 공을 붙잡은 것이다.
끼리리릭.
시몬의 강한 악력에 붙들려진 공의 회전이 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멈췄다.
'......이 새끼가!'
헥토르 입술을 깨무는 그때, 이번엔 시몬이 공을 던졌다.
파아아아앙!
즉시 유리벽에 반사되어 날아온 공이 헥토르의 얼굴에 부딪혔다.
헥토르는 오만상을 쓰며 얼굴로 공을 받아낸 채 양손으로 틀어잡으며 버텨냈다. 그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
헥토르가 공을 떼어내자 얼굴에 둥근 자국이 남았다.
주위가 조용해진 가운데, 종종 풋! 하고 숨죽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헥토르가 격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분노보다도 의아함, 시몬의 마투가 상급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공을 쉽게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몬의 몸에서 칠흑으로 이루어진 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칠흑 체내 분화. 놈은 오늘 배운 저걸 벌써 실전에 써먹고 있었다.
'대체 뭔데......!'
자신은 죽을 힘을 다해 쌓은 노력의 결과물을, 그냥 재능이라는 한마디로 뒤덮어 버린다.
'이 새끼 뭐냐고!'
선행학습은 헥토르의 자랑이었다. 남들보다 더 일찍,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거의 산물. 더 노력한 학생이 노력하지 않은 학생을 누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시몬만큼은 달랐다. 키젠에서 배운 것만으로도 미친듯한 성장 속도를 보였고, 그를 보는 교수들이나 스카우터들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는 말이 입에 붙을 지경이었다.
울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선행학습을 해온 사람이 바보 취급당하고, 왜 시몬의 비교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헥토르에게 있어 시몬 폴렌티아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부정하는 것만 같은 존재였다.
"대체 왜!!"
헥토르가 거친 함성을 쏟아내며 공을 던졌다. 유리벽에 맞은 공이 다시 시몬을 향해 날아왔다.
터어엉!
시몬이 몸을 웅크려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받아냈다.
"잘 버틴다!"
"나이스 디펜스!"
A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시몬도 미소를 지었다.
'계속 관찰한 보람이 있어.'
공은 사람이 아무리 도망쳐도 유도탄처럼 날아온다. 이 경우, 공이 향하는 방향은 몸통, 정확히는 코어가 있는 쪽이다.
공이 날아오는 순간에, 시몬은 공의 궤적에서 살짝 비틀어진 위치에 섰다. 그러면 공이 현재 각도에서 꺾이며 시몬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게 되어 있다.
공의 타격점을 이쪽에서 정확히 알고 대비할 수만 있다면, 거기에 체내 칠흑 분화까지 더해진다면, '방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후웁!"
시몬이 힘껏 공을 던졌다.
터어어엉!
반사된 공을 헥토르가 밀려나며 공을 붙잡았다. 그 또한 이를 악물며 던졌다.
터엉!
터어엉!
터엉!
터어어어엉!
"야 이 미친놈들아!"
보다 못한 메이린이 버럭 소리쳤다.
"니네 지금 누구랑 싸우는 건데!"
시몬과 헥토르는 이미 렉시오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시몬은 본인의 성장에, 헥토르는 시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렉시오의 존재는 그냥 잘 튕겨 나오는 벽일 뿐이었다.
'아니, X발.'
렉시오 본인 또한 역력히 당황하고 있었다.
'뭐 이딴 놈들이 다 있어?!'
터엉!
터어어엉!
터어어어어어엉!
계속되는 충격으로 유리벽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지만 흑마법을 시전 중인 렉시오 본인에게도 이제 충격이 오고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아아아!"
헥토르가 분노를 토해내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시룡의 비늘들이 쏟아져 나와 오른팔에 다닥다닥 붙었다.
"죽여 버린다!!"
헥토르가 반대편에 있는 대상에게 엄포를 놓으며 공을 던졌다. 유리벽에 튕겨 나온 공이 그 힘 그대로 시몬에게 날아왔다.
터어어어어어엉!
시몬이 뒤로 주르륵 물러나며 버텼다. 바닥에 긴 신발 자국이 남았다.
"헹!"
헥토르가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시몬은 아무 표정 변화도 없이 몸을 일으키며 아공간을 열었다.
"본 아머."
분해된 스켈레톤들의 몸체가 시몬의 오른팔을 뒤덮으며 '건틀렛 모드'로 변형했다.
시몬은 건틀렛을 착용한 상태에서, 오른팔에 체내 칠흑 분화를 집중시킨 채 공을 던졌다.
터어어어어어어엉!
튕겨 나온 공을 받아낸 헥토르의 몸이 엄청나게 밀려났다.
이번에는 그의 뒤꿈치가 코트 선에 닿기 직전에 멈춰 섰다. 조금만 더 갔으면 아웃이었다.
"크으으으으!"
헥토르가 아공간을 더 열었다. 이내 그의 상반신과 하반신 전체에 비늘이 들러붙었다. 마치 헥토르의 살갗이 비늘을 원하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펄럭!
이내 커다란 날개가 헥토르의 등에 장착되었다. 헥토르의 등살이 마치 날개를 움켜쥐는 것처럼 붙잡았다.
촤아아아악!
헥토르가 공을 들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잘 봐둬라. 시몬 폴렌티아.'
그가 상공에서 시몬을 내려다보았다.
시몬도 태연한 얼굴로 헥토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다. 분명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건 난데, 대체 왜 내가 초조해지는 거지?
"크아아아아아!"
헥토르가 공중에서 공을 내리찍듯 던졌다. 하늘이 번쩍이더니 혜성처럼 공이 내려와 유리벽에 부딪혔다.
쿠구구구구구구!
"오우!"
"꺄아아아!"
거친 후폭풍이 몰아치며 코트 밖의 학생들이 자세를 낮추며 물러났다. 유리벽이 쩌저저적 큰 소리를 내며 갈라져 갔다.
그 모습을 본 시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직이야! 안 깨졌어!'
시몬은 빠르게 코트 앞으로 뛰어가며 아공간을 열었다.
"시몬! 피해요!"
"널 다치게 할 셈이야! 막지 말고 그냥 아웃당하라고 제발!"
카미바레즈와 메이린이 소리쳤다. 시몬이 입꼬리를 올리며 코트 앞에 섰다.
'미안하지만, 이 승부에선 못 물러나!'
터어어어엉!
이내 헥토르가 공을 내리꽂은 힘 그대로 시몬에게 공이 날아왔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고 소환형 스켈레톤 부대를 모조리 쏟아냈다.
콰앙!
쾅!
콰아앙!
스켈레톤들이 공에 부딪히며 도미노처럼 박살 났다. 그러는 동시에 뼈들이 공에 착착 들러붙고 있었다.
'전신, 칠흑 체내 분화.'
시몬의 온몸에서 칠흑이 흘러나왔다. 심호흡하며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세웠다.
터어어어어어엉!
즉시 공이 부딪혀왔다. 시몬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쭉 뻗은 두 팔도 밀려나 가슴에 철썩 붙었다.
엄청난 위력에 마치 두 발이 허공에 붕 떠버릴 것 같았지만, 이 악물고 버티며 절대명령을 발동했다.
'멈춰!'
공에 붙어있는 뼈들이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인력을 일으킨다.
'개문!'
두 번째 아공간에서 오버로드의 칼날이 튀어나와 시몬의 팔과 다리, 허리 등을 밧줄처럼 휘감았다. 오버로드에도 힘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시몬의 몸이 코트 밖으로 밀려나려는 그 순간.
차아악.
간발의 차이로 멈춰 섰다.
체내 칠흑 분화, 스켈레톤의 인력, 오버로드까지. 세 개의 힘이 절묘하게 삼박자를 맞추며 공을 받아낸 것이다.
뼈들이 투두둑 떨어지고, 칼날들이 아공간으로 회수됐다.
'.......'
일순간 주위에 정적이 깔렸다. A반이고 C반이고 하나같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공놀이하랬더니 무슨 영화를 처 찍고 앉았냐.'
'격이 다르긴 해.'
시몬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툭 치면 박살 날 것 같은 유리벽 너머로 렉시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친 새끼들 진짜! 키젠 학생 몇 명분의 칠흑을 쓴 건데 이걸 그냥 힘으로 깬다고?'
타아악.
시몬이 두 손으로 공을 붙잡고 자세를 잡았다.
체내 칠흑 분화가 꺼지기 30초 전.
이번이 바로 마지막 공격 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