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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41화 (14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1화

"후웁."

짧게 숨을 내쉰 시몬이 공을 들어 올렸다. 공에 붙어 있던 뼈들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시몬의 오른발에 자석처럼 달라붙기 시작했다.

<본 아머 - 부츠 모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뼈들이 들러붙는 일반 본 아머와는 달리, 오른발 전체가 빈틈없이 빽빽하게 감싸지는 형태였다. 뼈라서 생각보다 무겁진 않고, 다리와 발을 단단히 잡아주는 느낌이 좋았다.

부츠 모드가 완성되고, 시몬은 손목 스냅만을 이용해 공을 높게 던졌다.

번들거리는 눈이 공의 궤적과 떨어지는 시간을 읽어내고, 마음속으로 2초를 쉬었다가, 바람을 가르며 몸을 회전시킨다.

단숨에 2회전까지 마치며 회전력이 극대화된 순간, 사선 끝에 있던 다리가 눈부신 궤적을 이끌며 떨어지는 공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회전력, 다리 힘, 체내 칠흑 분화, 본 아머의 인력까지.

시몬이 이를 악물고 공을 걷어차자 포문에서 대포알이 발사되는 듯한 격음과 함께 공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무너지기 직전의 유리벽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던 렉시오의 동공이 허망하게 흔들렸다.

'아 씨, 이건 못 막......!'

꽈아아앙!

위태롭던 유리벽이 일격에 박살 나며, 공이 렉시오의 안면에 직격했다.

크헉! 하는 소리와 함께 렉시오가 코피를 뿜으며 수 미터를 날아올라 바닥을 뒹굴었다.

툭.

이내 공이 바닥에 떨어지며 통통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면을 몇 번 튕기다가 멈춰 섰다. 코트 밖의 학생들은 시간이 멈춘 듯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이!"

"이겼다!"

"나이스으으으으!"

폭죽을 터뜨리듯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고 고개를 쭉 빼 밀고 있던 브레드가 무척이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호루라기를 불었다.

"......마지막 라운드 종료, 최종 승자는 A반."

"와아아아!"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를 필두로 A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시몬을 얼싸안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보고 있던 C반은 패배감에 몸을 떨었다. 몇몇은 삐쭉 입술이 튀어나와 있었다.

"쇼한다. 쇼해. 어차피 성적 반영도 안 되는 건데."

"친선전 좀 이긴 거 가지고 뭘."

"누가 보면 결평 1등 한 줄."

몇몇 C반 학생들이 틱틱대는 소릴 들은 메이린이 스윽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베- 하고 혀를 삐쭉 내밀고는 다른 A반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C반 학생들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성적이 반영되고 아니고는 상관없었다. 키젠 학생들에게 경쟁에서 지는 것만큼 굴욕적인 건 없었으니까.

"와글와글하는 걸 보니 경기 끝났나 보네요?"

"홍펭 교수님!"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홍펭과 커다란 솥을 든 조교들이 나타났다.

조교들은 착착 움직이며 나무를 깔고 불을 피우더니 솥을 세팅했다. 그리고 홍펭이 장갑을 낀 채 솥뚜껑을 열자.

"와아아아!"

하늘로 뿜어지듯 솟구치는 흰 수증기와 함께 자글자글 끓고 있는 국물이 드러났다. 살인적으로 맛있는 냄새에 귀족 학생들마저 체면을 잊고 입에 침이 마구 고였다.

"환경 파괴종인 너슬락 고기로 만든 스튜예요!"

홍펭의 말에 시몬이 쓰게 웃었다.

'이번에도 너슬락을 요리하셨구나.'

몬스터 고기란 말에 몇몇 학생들의 낯빛이 살짝 굳어지기도 했지만, 나쁜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은 없었다. 저 솥에서 풍기는 냄새 그 자체가 너무나 황홀했으니까.

오로지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걱정 마! 내가 한 그릇 먹어봤는데 진짜 예술이야!"

딕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학생이 니가 어떻게 아냐고 묻자 홍펭의 오두막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방에서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꽂혔다.

"아우! 저 관심종자 놈 또 시작이야."

메이린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눈을 마주하며 조용히 웃었다.

"환경을 해치는 나쁜 몬즈터니까 앞으로도 학쟁들이 많이 많이 먹어주제요!"

"네, 교수님!"

"자! A반은 앞으로 나오제요!"

학생들이 줄을 섰고 조교들이 토속적인 느낌의 질그릇을 나누어주었다.

홍펭이 직접 솥 앞에서 커다란 국자로 내용물을 휘휘 저으며 손수 한 그릇 한 그릇 퍼주었다. 고기를 듬뿍 올려주자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릇이 뜨거우니까 주의하제요!"

학생들은 음식을 받고 적당히 나무 그늘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며 음식 맛을 보았다.

"......!"

"미쳤다!"

막 오버스러운 리액션은 없었다. 맛을 본 학생들 하나같이 바로 다음 스푼을 뜨고 있었으니까.

C반 학생들은 부러운 눈으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그간 살면서 이렇게 뭔가에 절실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도 주겠지?"

"아, 당연한 소릴! 그게 훈훈한 마무리 아니겠냐?"

그때 염탐을 다녀온 한 C반 학생이 뛰어왔다.

"아직 좀 남았어! 한 명당 반 그릇은 먹을 수 있을 듯!"

"굿굿!"

모두가 행복회로를 돌렸지만, 키젠엔 그런 거 없었다.

남은 스튜는 모두 홍펭과 조교들의 차지였다.

조교들은 커다란 대야 같은 것에 스튜를 퍼갔고 홍펭은 아예 솥 앞에 앉아 박박 긁어먹었다. C반 학생들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아, C반 오지 말라고!"

"조교쌤! 여기 자꾸 애들 와서 구걸해요!"

"물러나세요 학생. 룰은 룰입니다."

C반의 입장에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시간이었다.

후룹.

그리고 세르네는 깃털로 A반 학생을 몰래 빼돌려서 스튜 맛을 보고 있었다.

"그냥 그러네. 이런 게 뭐가 맛있다고 난리야?"

그녀가 다시 깃털의 힘으로 명령해 학생을 돌려보냈다.

뚱한 표정으로 혼자 바위에 걸터앉은 그녀의 눈에 시몬과 카미바레즈, 딕, 그리고 메이린이 왁자지껄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시몬이 골렘으로 두들겨 패서 너슬락의 육질이 연해진 거라니까!"

"아하하! 말도 안 돼요!"

"오두막에서 먹었던 쪽이 더 맛있던 건 맞잖아?"

"어휴, 전형적인 과거 미화야."

메이린이 그렇게 말하다가 고개를 돌렸고, 딱 세르네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한껏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홱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하, 이런 기분이었구나?'

세르네가 씁쓸하게 웃으며 스튜를 한 스푼 떠서 먹었다.

먹다 보니 또 괜찮았다.

* * *

그날 밤.

모든 수업을 마치고 개인 훈련까지 끝낸 시몬은 기숙사 옥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학생 출입금지!>라고 적힌 표지판과 함께 통행금지 통제선이 처져 있었지만, 시몬은 관계자들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슬쩍 통제선을 넘었다.

옥상으로 향하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주위를 슥 둘러보던 시몬이 창문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창문 밖에 밧줄 하나가 덜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거구나.'

시몬은 망설임 없이 창문을 확 열고 창틀을 발로 디딘 다음, 두 손으로 밧줄을 강하게 붙잡고 뛰어내렸다. 그리고 팔 힘으로 쭉쭉 올라가 무사히 옥상 난간 위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아.'

달밤의 옥상에는 빛바랜 회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두 발바닥을 붙이고 앉아 고개를 쭉 치켜들어 보름달을 바라보는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치 한 마리 고독한 늑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휘이이잉.

바람결에 칼날 같은 머리카락이 나부끼며 가려졌던 귀와 뺨이 드러났다. 오래되어 보이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보였다.

"왔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씩 웃으며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언제부터 이러고 계셨어요? 카쟌."

"두 시간 전부터."

"방에 들어가 있으시지."

"달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한번 눈 붙이면 못 일어나."

카쟌은 조용히 아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꺼낸 건 와인 한 병과 유리잔 두 개였다.

'갑자기 술?'

능숙하게 와인의 코르크를 맨손으로 딴 그가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붉은 액체가 잔을 따라 흘러내렸다. 두 사람은 잔을 들어 맞부딪힌 다음, 입에 가져다 댔다.

"......좋군."

"그러네요."

"달을 보며 와인을 마시는 건 좋아한다."

보기보다 운치 있으시네. 라고 생각하며 시몬도 와인을 음미했다.

입안에서 춤추듯 구르는 풍미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냥 로체스트에서 대충 구한 와인이 아니다. 최상급이었다.

시몬이 향을 느끼며 와인을 음미하듯 마시자 카쟌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에르제베트를 빌려줘서 고마웠다."

"아뇨, 뭘요."

데스랜드에 에르제베트를 데리고 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금지된 숲 수색과 카쟌과의 협력수사 때문이었다.

에르제베트는 전투보다는 수색, 정찰, 정보 수집 등에 특화된 스파이형 에이션트 언데드다. 카쟌과 협력해서 밤에 의심스러운 곳들을 돌아다니도록 했다.

"그녀는 날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 듯하더군."

카쟌의 말에 시몬이 킥킥 웃었다.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음?"

에르제베트에게 왜 그렇게 카쟌에게만 틱틱대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유적에서 뒹굴거리던 그녀는 입술을 삐쭉이며 얼굴을 때렸다느니 뭐니 속사포로 불만을 쏟아냈는데, 아무래도 싸움 도중에 사소한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협력자로서 능력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카쟌이 품을 뒤적거렸다.

"수사의 성과가 없진 않았다."

그가 손가락에 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마력 기록기로 찍은 사진, 그것을 본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것은 제단의 모습.

질척이는 핏물이 주위를 시뻘겋게 적셨고, 짐승의 내장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보이는 커다란 십자가까지.

"서, 설마......!"

"그래, 프리스트가 출현했었다."

카쟌이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놈은 이미 의식을 마치고 자리를 비운 뒤였다. 그리고 우리가 제단에 다가가니, 뭔가가 틱 하고 걸리는 소리가 들리며 폭탄이 터졌지."

카쟌이 대뜸 셔츠 단추 몇 개를 풀더니 옷을 끌어 올렸다.

불끈불끈 벽돌처럼 잘 발달한 복부 근육이 보였는데, 복부의 오른쪽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상처가 난 곳을 포션으로 회복한 흔적이었다.

"전부 놈의 함정이었어."

"아......!"

"십자가에 여신상이 보이지 않았을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카쟌이 셔츠를 내렸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주기적으로 의식을 치러야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엔 의식을 치르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어."

밤하늘에 뜬 보름달을 물끄러미 보던 카쟌이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곧 키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정신 바짝 차려라."

"......네!"

시몬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와인잔을 부딪혔다.

술이 들어가서일까,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서로 키젠에서 정체를 숨기고 생활하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오늘따라 대화가 잘 통했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요 카쟌."

시몬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카쟌은 무슨 이유로 유급하게 된 거예요?"

"......."

그는 말없이 와인 한 잔을 비웠다.

"임무 때문이었지."

바로 작년의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야간에 로크섬을 수색하던 카쟌은, 금지된 숲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던 프리스트를 발견했다.

치열한 추격전 끝에 프리스트를 놓쳐 버렸지만, 후드 안의 얼굴을 보는 데 성공했다.

"그, 그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몬이 펄쩍 뛰었다.

"카쟌은 프리스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단 말씀이세요?"

"아직 이야기 안 끝났다."

다음 날, 카쟌은 수업에도 나가지 않고 학교 전체를 돌아다니며 어젯밤에 본 얼굴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쉬는 시간에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잡담하고 있는 1학년 남학생을 발견했다.

정확했다.

몇 번을 확인해도 기억 속 그 얼굴과 일치했다.

카쟌이 강의실로 들어왔고, 그 학생은 카쟌을 보자마자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이내 등을 돌려 도망쳤다.

확신이 생긴 카쟌은 그를 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주먹으로 미친 듯이 두들겨 팼다. 그는 온 얼굴에 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하지만.

"그는 프리스트가 아니었다."

카쟌이 잔에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부 프리스트의 함정이었다. 놈은 그 학생과 똑같이 만든 생체얼굴을 뒤집어쓰고 일부러 내게 얼굴을 노출한 거지."

"......아!"

생체얼굴은 네크로맨서들이 본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만든 위장도구 같은 거였다.

"나중에 그 학생에 찾아가 어째서 날 피했냐고 물어보니,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본인을 스토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밤마다 4층 기숙사 방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진술했지."

시몬은 어쩐지 소름이 끼쳐서 팔을 스르륵 쓸었다.

"나는 중징계를 받게 됐고, 네프티스 님의 도움으로 퇴학은 면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활동에 여러 제약이 생겼지."

카쟌이 주먹을 꽉 쥐었다.

"놈은 무척이나 치밀하고 용의주도해. 빈틈없이 계획을 짜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그런 것 같아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평가 때만 해도 그랬다. 사이클롭스에 나쁜 짓을 해서 자신을 해치려고 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교직원들과 하수인 등을 대상으로 정신계 흑마법까지 동원한 정밀조사를 시행했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그 프리스트는 이 로크섬에 실존한다는 사실이다. 현장을 급습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네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시몬은 와인잔을 들었다.

"이제 네 차례다. 한 번 마주쳤을 뿐이겠지만, 혹시 프리스트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정보는 없나?"

"으음. 저는 조금 애매하긴 한데요."

시몬이 굴러다니는 작은 돌조각을 보며 말을 이었다.

"프리스트에게 저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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