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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42화 (14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2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 그게 뭐지?"

카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사실 그게요."

시몬의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갔다.

금지된 숲에서 프리스트와 싸우던 도중, 바닥에 널린 돌 하나를 집고 '칠흑 부여'를 한 다음 던졌었다.

-닿아라! 얼굴을 드러내!

그때 진짜 절실한 마음으로 던졌던 기억이 난다.

차마 시몬이 반격할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프리스트는 조금 늦게 고개를 꺾었다. 그 공격으로 오른편의 후드 자락이 살짝 찢어졌다.

"피."

그때 프리스트의 후드 자락에 붉은 핏물이 묻어나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프리스트는 뺨에 긁힌 흉터가 있을 거예요."

물론 포션으로 상처는 치료했겠지만, 상처가 깊었다면 희미하게나마 흉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시몬의 생각이었다.

카쟌이 팔짱을 끼며 고민에 빠졌다. 용의 선상의 인물 중, 뺨에 흉터가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애매하군."

카쟌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흉터가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숨길 방법도 많아. 뭣보다 흉터 하나로 범인을 단정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 그렇긴 해요."

이미 시몬도 여러 사람들을 체크해 봤지만, 의심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카쟌은 아공간을 열더니 작은 안경을 꺼냈다.

"혹시 모르니 이걸 주지."

"이게 뭐예요?"

"내가 프리스트의 함정에 당한 뒤로 쭉 들고 다니던 물건이다."

시몬은 바로 안경을 받아서 써보았다. 도수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그걸 쓰면 생체얼굴 너머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다. 만약 흉터를 가리려고 생체얼굴을 썼다면, 티가 나겠지."

"오, 좋네요."

이걸로 프리스트를 딱 발견할 가능성은 낮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아 보였다.

시몬은 안경을 소중히 품에 챙겼다.

* * *

다시금 키젠의 바쁜 하루하루가 시작됐다.

수행평가 준비에 결투평가 준비에 몇 달 후에 있을 기말고사 준비까지.

"아! 정말 훌륭합니다."

저주학 교수 바힐이 박수를 짝짝 쳤다.

그는 시몬을 강단 앞으로 불러와서 칠판에 저주 방정식을 쓰게 했다. 그리고 시몬이 쓴 이 저주 방정식이 얼마나 완벽하고 창의적이며 독창적인지를 학생들에게 줄줄이 설명하고 있었다.

"시몬 학생. 시크니스에서 진동 수식을 배제한 이유가 뭡니까?"

"아...... 그."

시몬이 옆머리를 긁적였다.

둘러댈까, 솔직하게 말할까. 고민하던 시몬은 이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진동 수식을 잘 몰라서 불균형 수식을 더하는 형태로 바꿔봤는데요."

곳곳에서 자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특례 1번이 진동 수식도 모르다니."

"소환학만 잘하지, 기본기가 없다니까."

기다렸다는 듯 헥토르의 파벌들이 한마디씩 했다. 바로 그때.

"독창적이야! 훌륭해!"

바힐이 열을 올렸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식과 공식에 찌들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 같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독창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탕탕!

바힐이 칠판을 두들기며 흥분한 얼굴로 설명을 쏟아냈다.

"멀미저주는 당연히 진동 수식으로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에 뇌가 절어져 있는 거죠! 멀미는 진동으로만 일으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몸이 느끼는 움직임과 시각정보의 불일치로도 멀미를 일으키지요! 포장도로 위에서 빠르게 달리는 마차를 타고 갈 때 느끼는 멀미, 그리고 마나 스크린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 때 느끼는 멀미가 바로 이런 유형입니다!"

바힐은 이어서 시크니스 저주의 불균형 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시각성 멀미효과에 대해 줄줄 설명했다.

"아주 훌륭합니다. 저주 방정식은 바로 이렇게 전개하는 겁니다! 자, 박수!"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극도의 칭찬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바힐이 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시몬 학생의 아이디어는 정말 좋습니다. 하지만 저주는 빠른 시전속도가 생명이니, 학생은 일단은 진동 수식으로 천천히 시작해 보죠."

"아, 넵!"

'결국 진동으로 가는 거 맞잖아!'

저주 지망생들이 속으로 항의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바힐은 자리로 돌아가는 시몬의 등을 애정 있게 두들겨 주었다.

'아주 눈에서 꿀 뚝뚝 떨어지시네요. 교수님.'

강단 아래에 서 있는 수석조교 체헤클이 한숨을 쉬었다.

제자에 대한 키젠 교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라. 희귀한 광경이긴 했다.

'그래도 천하의 바힐이 안달 나서 몸 베베 꼬는 걸 지켜보는 재미는...... 각별하긴 하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방심할 순 없다. 바힐은 언제 어떻게 급발진할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사실 이쯤 되면 시몬의 몸에 저주를 걸어 꼭두각시 제자로 만들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시몬의 천재성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그러지는 않았다.

"체헤클."

바힐의 목소리에 그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았다.

"아, 네. 교수님."

"남은 시간은 조교가 실습 진행하세요."

웬일이지? A반 수업은 꼭 실습지도까지 본인이 직접 했으면서.

체헤클은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힐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떠나고 체헤클이 강단으로 올라왔다.

"15분 휴식하고 실습 시작하겠습니다. 조교들은 내 앞으로 집합."

* * *

학생들을 실습시키고 무사히 수업을 끝낸 체헤클이 바힐의 연구실 앞으로 왔다. 그녀가 가볍게 손등으로 노크했다.

"교수님, 체헤클입니다."

"......."

들어오란 말은 없었지만, 체헤클은 익숙한 듯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연구실 뒤쪽의 벽면 전체를 자치하는 대형 칠판 위로, 바힐이 미친 듯이 분필을 움직여 수식을 줄줄 써내려가고 있었다.

'이 인간, 오랜만에 발동 걸렸네.'

체헤클은 잠자코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칠판을 수식으로 빼곡하게 채운 바힐이 이마에 땀을 훔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습니까 체헤클."

"한 시간 전에요."

"수업은?"

"잘 끝냈습니다. 그보다 그 수식은 뭔가요?"

바힐이 씩 웃으며 칠판을 한 차례 탕 쳤다.

"최근 야생 하피들의 공격으로 드레스덴 왕국이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행형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시크니스 저주인 거죠."

그녀의 눈이 커졌다.

"새로운 버전의 '리메이크 시크니스'네요."

"바로 그렇습니다! 공중형 몬스터는 의외로 진동성 수식을 포함한 시크니스가 잘 통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하피의 평형감각을 고려하지 않은, 단지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저주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차성 멀미를 이용한 저주를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설명을 하는 바힐의 손가락이 춤을 추었다.

"시각 정보와 균형 정보의 불일치! 이 수식을 이용하면 하피들은 정면으로 날아가고 있을 때, 아래로 꺾여 내려가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결국 하피들은 비행을 하면 할수록 지독한 괴리감에 휩싸이게 되고, 이내 지독한 멀미로 바닥에 추락할 겁니다."

"......."

진짜 괴짜에 변태 같은 사람이긴 한데 저 능력은 진짜긴 하다. 체헤클은 저주학도로서 순수하게 감탄했다.

"잠깐, 그러면 아까 시몬 학생에게 칭찬한 건 입 발린 소리가 아니었나요?"

"하하! 나와 몇 년을 함께 일했으면서 아직도 나를 모릅니까? 체헤클."

바힐이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두 손을 세워 들었다.

"그에 대한 내 칭찬은 100% 진심입니다!"

"......."

"그냥 일반 학생들과 수식을 접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 어딘가 사고가 살짝 비틀어져 있어요! 그의 대답을 듣다 보면 나조차도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바힐이 콧김을 뿜으며 말을 이었다.

"초급 흑마법 첫날 제인 교수의 테스트에서 칠흑역학의 고대 룬어, 소환학의 인스턴스 스켈레톤 수식, 저주학의 이그저스트로 테론 공식을 쓰지 않고 1,200,146을 도출해 낸 사건은 교수들에게도 이슈였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런 거예요!"

타악! 타악!

바힐이 손끝으로 팔걸이를 리드미컬하게 내리쳤다.

"수식을 다루는 그의 창의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프링을 연상케 합니다! 만약 그의 부모님이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은 이유가, 시몬의 천재성이 폭발하는 순간에 독창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면...... 아아! 나는 그들의 생각과 뚝심에 경의를 넘어 공포마저 느끼고 말 겁니다!"

"네에, 네, 교수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시몬의 부모님들이 있는 방향으로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체헤클이 서류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리메이크 시크니스의 이름은 어떻게?"

"음."

잠시 고민하던 바힐이 말했다.

"시몬크니스......."

"구려요."

바힐이 킥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웃음기가 쑥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실라지 교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

"최근 SM-1이라는 혈액 연구에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났다고 하더군요."

시몬은 그간 혈류학 수업에서 아무런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시몬의 SM-1 혈액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유형. 기존의 혈류 기술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였고 아직 연구된 바가 없기 때문에 실라지도 그를 가르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실라지는 대륙 곳곳에 있는 자신들의 제자들을 움직여 연구를 진행시켰고 이제 막 그 성과가 드러나려고 하는 참이었다.

"실라지가 시몬을 위한 SM-1의 커리큘럼을 완성하는 데, 나는 보름 정도 생각합니다."

"위기네요."

체헤클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요. 위기지요! 거기에 홍펭 교수의 반격도 무섭습니다!"

바힐이 손에 깍지를 끼며 무겁게 말했다.

"그녀가 이번 마투학 수업에 '체내 칠흑 분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더군요. 이렇게 진도를 빠르게 빼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 수업에서 분화를 익힌 건 시몬 폴렌티아 뿐이었습니다! 시몬의 마투를 쭉쭉 성장시킬 의도겠지요!"

체헤클이 미간을 좁혔다.

"글쎄요. 제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시몬 학생은 홍펭 교수님의 직속제자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던데요."

그 말에 바힐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뻔한 블러핑을 믿습니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홍펭은 그 정도로 포기할 여자가 아니야. 어눌한 대륙어 발음과 순진한 표정에 다들 속고 있지만 무척이나 집요하고 욕심 많은 인물이죠."

"기존 소환학에 더해, 마투학과 혈류학까지......."

학생 하나에 붙은 경쟁이 미친 수준이다. 체헤클은 한숨을 푹 쉬다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바힐 교수님? 저번 시몬과 말콤의 결투평가에서 말씀하셨지 않나요? 조급해할 필요 없다고, 어차피 내 손에 들어올 인재라고. 그렇게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물론입니다. 체헤클!"

바힐이 칠판 끝으로 가서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몇 겹의 종이들이 칠판 아래로 뭉텅이로 쏟아졌다.

"오로지 '나의 시몬'을 위한 저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우욱, 호칭 역겨워요."

"내가 그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시몬 폴렌티아 오리지널'! 그 시시껄렁한 본 아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격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면, 시몬은 현재 소환학으로 선전하고 있다. 결투평가에서도 특례 10번을 찍어누를 정도.

그런 시몬이 다른 학문의 성장에 큰 관심이 없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다른 공격수단을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장기에 집중하는 건 학생으로서 현명한 판단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냥 제자리에 서서 오버로드만 휘둘러도 다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를, 굳이 저주를 사용해서 약화시키는 건 불필요한 수고로움이니까요!"

그래서 바힐은 방향을 선회했다.

전투적인 측면을 강조한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저주, 그의 관심을 잡아끌 한 수가 필요했다.

"이 연구가 완성되면 틀림없이 시몬이 내 것이 되리라 장담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로군요."

바힐이 턱을 슥슥 문질렀다.

"실라지가 SM-1의 스타일을 먼저 정립시키느냐, 내가 시몬 오리지널의 저주를 개발하는 게 먼저냐."

체헤클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시몬 학생이 알았다면 아주 좋아 죽을려고 하겠네요. 천하의 키젠 교수들이 몸에 달아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 하고 있으니. 대체 다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요?"

"그야 뻔한 거 아닙니까."

바힐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그가 제자로 들어왔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몇 배."

바힐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아니, 몇십 배는 더 크기 때문일 겁니다."

* * *

저주학 수업을 마친 시몬의 7조는 다 같이 식당으로 왔다.

오늘도 한정 메뉴인 햄버그 스테이크 세트를 내려놓은 네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카미바레즈가 방긋 웃었다.

"휴우~ 오늘은 아슬아슬했네요! 뒤에 딱 두 명까지였으니까요!"

"그러게."

딕이 턱을 괴며 감자튀김을 포크로 찍었다.

"애들 정보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내가 모르는 커뮤니티가 신설된 것 같은데,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네."

"별거 아닌 거 가지고 난리야."

메이린이 콧방귀를 뀌며 햄버그 스테이크를 잘랐다.

그러면서 한정 메뉴는 제일 맛있게 먹는 그녀였다.

"근데."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위기가 좀 뒤숭숭한 것 같지 않아?"

"그, 그러네요."

학생들은 물론, 식사하러 온 조교들까지 굳은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딕이 '잠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문을 주워들으러 갔다.

"무슨 일 있나?"

"혹시 에프넬 측에서 뭐 하나 터뜨린 거 아냐? 선제공격이라든가."

"서, 설마요!"

그때 딕이 땀을 뻘뻘 흘리며 조원들에게 달려왔다.

"딕! 무슨 일이야?"

"하아아, 확실히 빅 뉴스긴 하네."

딕이 착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맹독학의 랭 교수님이 돌아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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