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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48화 (14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8화

에르제베트의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한숨을 한번 푹 쉬며 사방으로 거미줄을 퍼뜨리려는 순간.

"잠깐."

카쟌이 그녀를 막아 세웠다.

[뭐죠?]

"아무래도 프란체스카는 여기 없는 것 같다."

뭔가를 발견했는지 카쟌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비밀 위험물 보관고의 끝에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이쪽은 특히 신경을 썼는지 수 겹의 보안마법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정작 위에 있어야 할 내용물이 텅 비어 있었다.

카쟌은 집중해서 빈자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줄자를 비롯한 각종 도구까지 꺼내는 걸 보니 원래 있던 물건이 무엇인지 가늠해 보려는 것 같았다.

[주인님!]

벽면에 설치된 마법진을 살펴본 에르제베트가 시몬에게 뛰어와서 보고했다.

[마법진을 설치한 지 최소 하루 정도는 지난 것 같아요!]

"함정만 설치해 놓고 도망쳤나 보네."

"우리가 당한 것 같다."

카쟌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비밀 위험물 보관고에 들어오지 않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플랜 A인 데솔레이터가 네 발 모두 터지지 않을 상황을 대비한 플랜 B를 세워뒀던 것 같다. 아마 너도 그 미래는 못 본 모양이군."

"......!"

시몬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아직도 프리스트의 대규모 살해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대체 사라진 물건이 뭔데 그래요?"

"프리마 마테리아(Prima Materia)."

카쟌이 대답했다.

"끔찍할 정도로 복잡한 물건이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질적인 괴물들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물건이다."

"설마 그걸로......."

"그래, 이걸로 키젠을 공격할 생각이겠지."

카쟌이 손목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프란체스카의 결계가 절반 이상은 완성됐을 거다. 결계가 100% 완성되면 교수급들도 돌파하는 데 시간이 걸려. 그사이에 프리마 마테리아의 괴물들은 결계에 갇힌 키젠의 모든 1학년들을 학살하겠지."

"무조건 막아야 해요."

시몬이 이를 갈며 말했다. 카쟌도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스카가 그 물건을 사용할 장소로 짐작되는 곳이 있다. 따라와라."

"네!"

* * *

같은 시간, 본인 담당의 데솔레이터를 해결한 메이린은 마지막 장소인 학습관에 도착했다.

벌컥!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데솔레이터를 지키고 있어야 할 식물형 몬스터들이 갈기갈기 찢기거나 말라붙은 채 바닥에 쌓여 있었다.

메이린은 빠르게 상황파악을 마쳤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었구나! 카미인가? 그게 아니면.......'

와장창!

갑자기 유리창이 박살 나며 누군가 강의실 안으로 훌쩍 뛰어들어 왔다.

메이린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괴상한 똥폼을 잡으며 몸을 일으킨 남자는 무척 알기 쉬운 얼굴이었다.

"아으, 깜짝아! 멀쩡한 문 냅두고 왜 이 지랄이야!"

"상황의 급박함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요원놀이에 심취한 듯한 딕이 카쟌의 안경을 쓰고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식물들은 모두 죽어 있었지만 데솔레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1등일 줄 알았는데. 네가 처리했냐?"

"난 아냐. 우리가 아니면 카미가 먼저 왔겠지."

"오케이."

딕이 안경을 벗어서 품에 넣었다.

"그럼 이걸로 데솔레이터는 완전 해결이네?"

그 물음에 메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장소에서 데솔레이터를 하나씩 해결한 다음, 학습관으로 오기로 했다. 카미바레즈가 먼저 와서 클리어했다면 이제 네 개의 폭탄 모두 무력화한 게 된다.

"으하하!"

딕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우리가 키젠의 평화를 구했다!

"......또, 또 나댄다.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봐."

그녀가 착잡한 숨결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시몬과 카쟌이 프란체스카를 쓰러뜨려야 비로소 상황이 해결된다. 그때까지는 어떤 방심도 할 수 없었다.

"그보다 난 조금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는데."

메이린이 팔짱을 꼈다.

"시몬과 카쟌. 1학년 두 명이서 어떻게 수석조교급 이상의 네크로맨서를 쓰러뜨린다는 거야?"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시몬도 특례 1번이고, 뭣보다 카쟌이 진짜 강해."

"그 사람이?"

"어. 이건 비밀인데, 저번 서바이벌 아일랜드에서 카쟌을 만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대."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으스스하게 말했다.

"2학년들 사이에서는 작년의 결평 무패기록으로 유명해. 그리고 키젠에 흔치 않은 유급생에, 도둑길드 소속인 걸 보면 감이 오지 않냐? 임무 때문에 키젠에 잠입한 프로 네크로맨서가 틀림없어!"

"......."

딕의 말을 다 믿을 순 없지만, 저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지금의 키젠에서는 프란체스카를 쓰러뜨릴 가능성이 가장 큰 조합일지도 모른다.

지금 키젠에 남은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학생들이랑 하수인들, 그리고 짬 안 되는 조교들뿐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무슨 일?"

"방송실을 장악해서 학생들에게 위험을 알려야지. 모든 데솔레이터를 제거했으니까 이제 상황을 체크하면서 위험을 경고하는 정도는 괜찮잖아."

메이린은 위험이 끝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명색이 키젠을 상대로 하는 테러인데 데솔레이터의 방비가 너무 허술하단 점이 맘에 걸렸다.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같은 느낌? 틀림없이 프란체스카의 메인 플랜은 따로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딕이 손뼉을 한번 짝 쳤다.

"올, 거기까진 생각 못 했네!"

"빨랑 따라와. 방송실의 하수인들을 설득 못 하면 힘으로라도 제압하고 들어갈 테니까."

"오케이!"

두 사람은 서둘러 강의실과 건물을 빠져나와 방송실이 있는 방송통신관으로 달렸다. 캠퍼스에서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려는 학생들이 분주하게 떠들며 이동하고 있었다.

"야, 메이린! 근데 우리 진짜 멋진 거 같지 않냐?"

딕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다른 학생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데, 사실은 중대한 사건이 학교 밑에서 도사리고 있는 거야! 바로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요원의 부탁을 받아 움직이는 우리들! 이거 진짜 비밀요원이 된 기분인......."

푹.

딕의 말이 멈췄다. 메이린은 개소리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달리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눈에 초점이 사라진 딕은 슬쩍 옆으로 빠져나가더니 홀로 좁은 골목에 들어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네요~"

골목 안에는 상아빛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뒷덜미에 깃털이 꽂힌 딕은 그녀를 보자마자 헬렐레한 얼굴이 되었다.

"시몬이랑 같이 다니는 친구님. 맞죠?"

"으, 응!"

"그 중대한 사건이 뭔지, 저한테도 몰래 알려주실래요?"

두 손을 모은 세르네가 귀엽게 윙크하며 부탁했다.

홀린 듯한 표정의 딕이 위아래로 휙휙 고개를 끄덕였다.

* * *

"하아! 하아!"

카미바레즈가 구슬땀을 흘리며 키젠의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달리면서 일기장을 몇 구절만 훑어보았다.

그것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프란체스카가 신성연방의 프리스트였고, 키젠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

모두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어도 멈출 수 없었다.

터엉!

"윽!"

정신없이 달려가던 그녀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투명한 뭔가에 부딪혀서 뒤로 튕겨 나왔다.

얼른 일어나 주위를 훑어보니 허공에 불그스름하고 단단한 결계 같은 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빈틈이 있는지 손바닥으로 살펴보거나 다른 곳으로 달려가 봐도, 이 결계는 넓은 범위를 빈틈없이 커버하며 외부와의 연결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안 돼......."

그녀가 위태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제발......!"

두 손을 말아쥐고는 연신 혈류마법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흔들림도 없고, 금도 가지 않는다. 부서질 일말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보내줘!"

그녀가 작은 주먹에 칠흑을 끌어모아 쾅! 쾅! 쾅! 내리쳤다. 주먹으로 내리치고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받고 다 했지만 결계는 뚫리지 않았다.

"왜......."

그녀가 결계 앞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왜 나는 도망치는 거 하나 못 하는 거야?"

지독한 무력감이 몸을 지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몬과 딕, 메이린은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수행하며 열심히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초조했다. 가끔은 넷이서 사이좋게 웃고 떠들고 있을 때도, 그 세 사람이 너무나 높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시몬은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자체로 빛나는 사람이었고, 메이린은 머리도 똑똑하고 뭐든 척척 해내는 초인 같은 사람이었다. 딕은 자신만의 강점을 확고히 살리며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몫을 해냈다.

앞으로의 3년 동안, 그 세 사람은 어떤 난관이든 헤치고 나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잘하는 거 하나 없고 불안정했다. 자신이 저 사람들 사이에 껴도 될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고, 나중엔 뒤처진 자신을 버리고 더 높은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녀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더 이상 이렇게 좌절하는 건 싫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그녀가 충혈된 붉은 눈으로 결계를 가만히 응시했다.

-안타까운 일이로다.

안갯속처럼 흐릿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극상의 피를 타고났으나, 신체는 빈약한 어미 쪽을 물려받았군.

-고귀한 피가 이런 반쪽짜리에게 흐르다니. 하늘도 무심하네요.

-이런 연약한 육체로는 피의 힘을 견딜 수가 없을 거야. 점점 죽어가겠지.

-차라리 반대의 경우였다면 기대의 여지는 있었을 것을.

-말세로다. 말세야.

툭.

그녀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교복 재킷이 풀밭에 떨어졌다.

-내 딸아.

수많은 목소리들 가운데, 위대한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어미의 부탁이다. 지금부터 널 지키기 위해 네 피를 봉인하겠다.

그녀가 셔츠 단추를 풀고 옆으로 젖혔다. 그녀의 가슴과 배꼽 사이에 피로 그려진 붉은 마법진이 보였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법진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내게서 물려받은 피는 끝내 너를 죽일 것이다. 네가 살기 위해선 이런 방법밖엔 없다.

각오를 마치고 스읍하고 숨을 들이마신 그녀가 힘주어 마법진을 옆으로 돌렸다.

찰칵!

마법진이 돌아가며 온몸의 피가 용암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큭!"

그녀가 휘청였다.

봉인이 풀리고 몸에서 불그스름한 마력이 올라온다. 붉어진 눈에서는 피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온몸이 찢어졌다가 재조립되는 듯한 고통에 그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결계에 달라붙었다.

그러곤 입을 벌려, 송곳니를 결계에 힘껏 박아 넣었다.

콰직!

어떤 공격에 꿈쩍도 하지 않던 결계에 단번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그녀의 송곳니 끝이 조금씩 결계를 파고들어 갔다.

그녀는 온몸을 꽉 붙이고 송곳니에 더 힘을 주었다. 송곳니가 점점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가며 결계가 쩍쩍 소리를 내며 유리처럼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

쩌적! 쩍! 쩌적!

결계의 균열이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침내.

쩡!

송곳니를 중심으로 결계가 깨져 나가며 구멍이 생겼다. 카미바레즈가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즉시, 결계는 복구되어 흔적도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아! 하아!"

그녀는 붉은 눈동자를 부릅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다들 무사해 주세요!'

랭의 일기를 품에 껴안은 그녀가 몸에 붉은 기운을 흩뿌렸다. 그녀의 등에 달려 있던 조그만 날개가 갑자기 피를 먹은 것처럼 커졌다.

이내 지면을 도약한 그녀가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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