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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53화 (153/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53화

영묘(靈廟).

키젠의 위대한 네크로맨서들이 최후에 오는 장소.

영묘의 정체는 로크섬 끝에 있는 해저 동굴이었다. 자연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들끓는 곳으로 네크로맨서들의 성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영묘에서 이루어지는 장례식은 길고 긴 전통 절차들로 이루어졌다.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정을 진행해도 다음 날 해가 밝아올 즈음에야 끝날 정도였다. 이번엔 랭의 유언에 따라 간소화됐지만, 간소화됐어도 한밤중에 끝날 예정이었다.

이런 와중에 열정을 보이는 건 사령학 교수이자 장례의 총괄을 맡은 움브라뿐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닭 모이 춤', '오징어 구애춤'이라고 불리고 있는 의식의 춤을 조문객들에게도 추게 시키면서 사사건건 동작을 트집 잡곤 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빡빡한 스케쥴의 의식을 진행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지치는군.'

아론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터벅터벅 걸었다.

무엇이든 '뿌리'를 중시하는 그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저 동굴의 폭포에 머리를 집어넣는 행위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행위의 상관관계는 알 수 없었다.

'미리 유언을 써놔야 하나, 내가 죽으면 의식은 간소화가 아니라 전부 생략하라고.'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하며 터벅터벅 걷던 그는 아무도 없는 텅 빈 동굴의 방을 발견했다.

딱 좋았다.

안으로 들어와서 동굴 벽에 등을 기대어 앉은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 겉옷을 벗고 넥타이를 쭉 풀어버린 다음 바지 소매를 올렸다. 맨살에 바람이 통하니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지쳐서 한동안 그렇게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는 그때.

"교주님, 나 들어가도 괜찮아요?"

샤헤드의 남부, 혹은 극동 쪽 특유의 억센 방언이 귓가 들렸다. 아론이 고개를 돌리자 마투학의 홍펭이 빙긋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론은 괜찮다는 의미로 묵례했다. 홍펭은 정장 치마를 손으로 정리하고는, 벽에 등을 기대어 다리를 모으고 앉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가, 먼저 말을 꺼낸 건 홍펭이었다.

"요즘 지몬의 조환학 정취는 어떤가요?"

시몬의 소환학 성취를 묻는 건가. 역시 교수들의 주요 화젯거리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다.

"홍펭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이야기하기 귀찮았다.

성의 없는 대답이었지만 그녀가 싱긋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저는 지몬에게 마투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짚었져요."

아론은 무덤덤한 얼굴로 동굴 천장을 응시했다.

"키젠에서 많은 아이들을 가르쳐 봤지만, 그런 재목은 처음이었어요. 내가 온 힘을 다해 가공한다면 최고의 걸작이 탄쟁할 거란 강한 확진이 들었어요."

"......."

"아론 교주님은."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끈으로 고정한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렸다.

"언제 그 아이에게 확진을 느꼈나요?"

확신이라.

그딴 거.

"홍펭 교수님께서 확신을 느낀 순간과 동일하겠죠."

첫 수업부터 느끼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첫 수업을 끝내자마자 네프티스에게 단독면담을 요청해서 그의 부모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네프티스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 특유의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하는 표정으로 헤실거리며 넘어갈 뿐이었다.

갑자기 네프티스가 데려온, 대륙에 툭 튀어나온 천재. 출처에 대한 의문이 들긴 했지만 성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니, 누가 건드리든 성장했겠지.

그때 홍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아론 교주님은 지몬을......."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리네요."

저벅저벅.

아론의 표정이 굳어졌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건 평소의 하얀 슈트와 중절모가 아닌, 먹물을 펴 바른 듯한 검은 옷을 차려입은 바힐이었다.

"방금 시몬이란 이름을 들었는데."

느릿한 걸음걸이로 걸어온 바힐이 아론의 옆에 몸을 굽히고 앉아 모자를 벗어서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 학생의 이야기라면 제가 또 빠질 수 없지 않겠습니까."

아론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짜증이 일었다.

다른 자리도 많은데 꼭.

"자아, 선수들끼리 블러핑은 관두죠. 그 친구의 재능은 모두가 알고 있잖습니까? 그 아이는 우수하다. 그 아이는 천재다 블라블라. 뭐 이딴 당연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한 바힐이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들었다.

"네! 결론을 말하면 나도 시몬 폴렌티아를 원합니다."

"......."

등장하자마자 대놓고 교수들 앞에서 선전포고를 때려 박아버리는 바힐이었다.

홍펭이 웃는 얼굴로 바힐을 보았다.

"저주학 교주님이? 의외네요. 나는 지몬이 저주를 쓴 일은 본 적이 없어요."

"흐, 역시 홍펭 교수님이십니다. 바로 명치를 찌르는 말씀을 하시네요."

바힐이 장난스럽게 본인의 가슴을 매만지는 시늉을 했다.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주를 쓰지 않는 건 시몬 학생이 저주학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이 분야에 한번 맛을 들이면."

바힐의 혓바닥이 입술을 쓸었다.

"절대로. 헤어나올 수 없을 겁니다."

홍펭이 턱을 괴며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론은 떫은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보다, 조금 의외였습니다. 선배."

바힐이 입가를 샐쭉였다.

"직속제자를 안 받겠다는 선언 따위, 그냥 뒤엎어 버리고 낼름 시몬 학생을 먹을 줄 알았는데요."

직속제자 제안은 오로지 교수가 학생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

규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일종의 불문율. 학생들이 먼저 직속제자를 시켜달라고 조르는 건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시몬은 누가 봐도 소환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아론은 한 발짝 물러나서 그를 지도하고 있었다.

"한번 내뱉는 말은 반드시 지킨다. 뭐 그런 종류의 신념인 겁니까?"

바힐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아론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직 1학기도 다 안 끝났다. 학생의 재능을 완전히 발굴하지도 못한 이 시점에, 전공을 논하기엔 일러. 지금 섣불리 직속제자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비정상이고 사기꾼들이지."

바힐과 홍펭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바힐이 짝짝 손뼉을 쳤다.

"제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학생의 미래를 생각해 주는 모습! 진정 교육자의 귀감이십니다."

"......야."

아론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작작 까불어라."

"아하, 실례했습니다."

바힐은 사과했지만, 싱글벙글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아. 그런데."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아무래도 시몬 학생에게 꿀이라도 발라놓은 모양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구에서 혈류학 교수 실라지가 나타났다.

제자였던 아론과 바힐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실라지 쪽에서 먼저 손바닥을 보이며 막았다. 홍펭과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마침 1학년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여기 다 있어서 들러봤네."

실라지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편하게 했나?"

"아뇨, 무슨 말씀을. 편히 쉬다 가시죠 교수님."

바힐이 깍듯하게 말했지만, 아론은 정말로 불편해지기 시작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에이, 어디 가십니까 선배. 지금 정말 재미있는 구성이지 않습니까! 우리끼리 딱 모인 김에, 하나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바힐의 말에 세 사람의 시선이 모였다.

"시몬 폴렌티아의 진정한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갑자기 동굴에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론이 겉옷을 어깨에 메고 툭 내뱉듯 대꾸했다.

"통찰(洞察)."

뒤이어 홍팽이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건실(健實)."

들어온 자세 그대로 서 있던 실라지가 씩 웃으며 대꾸했다.

"유일(唯一)."

짝!

바힐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짝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러고는 스르륵 얼굴을 밀어 올렸다.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쓸려 나가며 물방울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부 다! 싸그리 틀렸습니다!"

"......?"

"당신들이 그러고도 키젠 교수입니까? 하하! 참! 그 아이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 아이를 올바른 길로 지도하겠단 겁니까?"

바힐이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젖은 머리를 휙휙 흔들며 물방울을 떨어뜨린 그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의 진정한 강점은 광기(狂氣)!!"

두 팔을 뻗으며 연설하듯 내뱉은 그가 동료 교수들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무언가에 진정으로 미칠 수 있는 재목이란 말입니다!"

* * *

쿠쿠쿵!

쾅!

화르르르르륵!

지휘통제실에서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시몬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가 뿌옇게 변해 있는 전면으로, 세르네와 성녀 플레마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인다.

[왜!]

플레마가 소리쳤다.

[왜 너 같은 존재가 키젠에 있는 것이냐!]

플레마는 무척 격분한 것 같았다. 당황하기도 했는지, 백염의 사출 정확도가 전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어머, 제가 어디에 있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요?"

세르네가 가뿐히 응수하며 손가락에 낀 깃털들을 수리검처럼 날려 보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깃털은 백염에 닿아도 꽤 오래 버텼다. 플레마가 신경 써서 화력을 올려야 깃털이 불타 사라졌고, 그런 상황이 플레마의 입장에선 무척이나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이건 신성 모독이야!]

격분한 플레마가 두 팔을 떨치며 원형의 백염을 산탄처럼 흩뿌렸고, 세르네는 최고속도로 비행하며 따돌렸다.

'......변했어.'

세르네와 플레마의 전투를 지켜보던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언데드나 네크로맨서에게만 타격을 주던 저 하얀 불꽃이, 갑자기 물리력을 발휘하며 사물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세르네가 시몬을 돌아보았다.

"시몬. 이거 쿠폰 1장짜리로는 안 되겠는데요? 상대가 성녀니까 두 장은 더......."

"조심해 세르네!"

화르르르륵!

백염이 줄기줄기 날아왔다.

세르네의 비행속도는 상당했지만, 지휘통제실이라는 장소 자체가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다. 잘 피하다가 한 줄기의 백염에 부딪힌 그녀가 바닥에 격추되었다.

쾅!

바닥에 떨어진 세르네를 몰아붙이려던 플레마의 시선이 짜증스럽게 돌아갔다. 어느새 달려온 시몬이 대검으로 플레마의 등 뒤를 공격한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그녀를 보호하는 백염에 박혔다.

[몇 번을 시도해도 똑같아.]

플레마가 거칠게 오른손을 휘둘렀다. 백염이 폭발하며 시몬의 몸이 다시 먼 거리를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끄으으윽!"

시몬은 백염이 닿은 곳을 붙잡고 고통스럽게 몸을 들썩였다.

[그래, 이게 바로 상성.]

세르네를 상대하며 짜증 가득하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돌아왔다.

[이것이야말로 여신께서 존재하시는 증거! 그분을 부정하는 존재들은 여신의 힘에 대적할 수 없다!]

그녀가 손가락을 기울이자 백염 덩어리가 시몬의 몸에 연달아 직격했다.

"이런, 시몬!"

세르네가 소리쳤다. 영입 최중요 대상이 실시간으로 죽어가고 있다.

"빌어먹을!"

고통에 힘겹게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던 카쟌도 이를 갈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적을 만나왔지만, 저 성녀만큼은 도저히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최후의 발버둥 치고는 썩 괜찮았어.]

플레마가 팔을 뻗었다. 그녀는 일단은 무력화된 카쟌부터 확실히 마무리하기 위해 하얀 불꽃을 일으켰다.

스륵.

그때 백염에 구워져 몸 곳곳에 하얀 불길이 남아 있는 시몬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소년!]

유일하게 피어의 본 아머가 남아 있는 오른손만 뒤로 빼서 지켰다.

시몬이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곧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크으!"

몸에 쌓인 데미지는 물론, 정신력이 산산조각 나도 모자랄 타격이었을 터. 그러고도 다리를 질질 끌며 억지로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상체를 세우고 몇 걸음 걷다가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머리부터 바닥에 부딪히며 쓰러진다.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산송장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플레마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의 정신력이 아니다.

"물러나요 시몬. 당신의 힘으론 못 이겨."

최중요 영입 대상자의 죽음은 세르네도 피하고 싶은 전개였다.

그녀가 전력을 발휘했다. 하늘로 붕 떠오른 그녀의 앞으로 깃털들이 열 개의 대형 마법진들을 만들어냈다.

<깃털의 광란>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이내 수백, 수천 개의 깃털이 마법진을 통과하자, 그것들은 금빛 섬광이 되어 플레마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백염에 닿아도 산화되지 않는 깃털들이 무려 수천 장이다.

플레마가 즉시 두 팔을 앞세우며 백염의 벽을 최고 화력으로 일으켰다. 벽과 깃털들이 부딪히며 연신 굉음을 터뜨렸다.

"하아아아!"

그사이에 시몬이 또다시 좀비처럼 몸을 일으켜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플레마는 짜증 나는 걸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작작하고 죽어!]

시몬이 대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백염이 쏘아져 시몬의 몸을 휩쓸었다. 플레마가 다시 시선을 돌려 방패에 집중했다.

터업.

[......!]

플레마는 순간 등줄기가 차가워지며 소름이 쭉 돋는 것을 느꼈다.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해야 할 시몬이 멀쩡히 그녀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뭐야, 어떻게?'

"크아아아아아아아!"

그녀가 다시 한번 일으킨 백염에 일순간 시몬의 전신이 삼켜지는 듯했지만, 그 직후 전신에 불꽃을 꼬리처럼 달고 튀어나온 시몬이 광기가 깃든 눈으로 돌진해 왔다.

"이제 그 공격은!"

촤아아아아악!

시몬이 휘두른 파멸의 대검이 성녀의 등을 대각선으로 베어 갈랐다.

솟아오르는 성녀의 피 분수 너머로 경악하는 세르네와 카쟌의 모습과, 공포에 질린 성녀의 눈이 아른거렸다.

"미적지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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