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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54화 (15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54화

플레마의 백염에 처음 접촉했을 때, 시몬은 당황했다.

아팠다.

더럽게 아프긴 했다.

근데 이게 그렇게 못 견딜 정도인가?

카쟌과 피어는 거의 생지옥이 펼쳐진 것 같은 반응이었는데, 이게 그 정도라고?

시몬은 작은 의문을 느꼈다.

화륵!

두 번째 백염에 맞았다.

더럽게 아프던 게 그냥 아픈 정도로 줄어들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견딜 만했다.

화아악!

바로 이어서 세 번째 백염에 노출되었다.

키젠 기숙사의 뜨겁기로 소문난 열탕에 들어온 기분.

에프넬의 일곱뿐인 성녀의 공격을 열탕에 묘사할 만큼 시몬은 잘 버티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라.

'왜 상처가 회복되는데?'

플레마의 백염은 시몬의 무릎과 팔꿈치에 난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시몬은 놀란 티를 내진 않았다.

이건 다시 오지 않을 찬스였으니까.

플레마는 지독한 광신도다. 자신이 성녀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을 품고 있으며, 여신이 내린 이 '백염'이라는 권능은 사악한 것을 모조리 멸할 수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이 힘이 그녀가 생각하는 신의 증명이었으니까.

하나의 능력에 그녀 개인의 신앙까지 결합된 형태. 하지만 그 신앙이 흔들린다면? 플레마의 정서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된다.

그녀의 근간을 꿰뚫어 본 시몬은 기만술을 펼치기로 했다.

백염에 닿자 카쟌이나 피어처럼 대굴대굴 굴러다니며 비명을 지르고 입에서 침을 줄줄 흘렸다. 이래도 의심받을까 일부로 혀를 깨물어서 피 섞인 침을 흘리기도 했다. 신에게 징벌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네크로맨서의 모습에, 플레마는 흡족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세르네가 끼어들었을 때, 플레마는 그녀의 깃털을 한 번에 불태울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세르네는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했는지, 시몬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몬은 무식하게 돌진했다. 대검을 휘두르고, 백염에 막히고, 바닥을 구르고.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아직 피어의 대검이 직접 그녀의 몸에 닿을 정도의 거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세르네가 수천 장의 깃털을 날려 보내는 강공을 시전할 때, 플레마도 백염을 일으켜 방어에 올인했다. 이때 시몬은 같은 방식으로 플레마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빌드업을 철저히 쌓아놓은 덕분에 플레마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적당히 백염을 일으켜 시몬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시몬은 보란 듯이 미지근한 불꽃을 온몸으로 돌파해서 대검을 휘둘렀다.

[......!!]

지금까지의 공격 중 가장 확실한 유효타.

그녀의 어깨에서 등까지 깊은 검상이 생겼다. 완전히 몸을 가르진 못했지만 솟구치는 피분수가 상처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째서!]

플레마는 동요했다.

그녀는 급히 물러나 베인 상처를 회복하려 했지만, 파멸의 대검에 당한 상처는 백염으로도 복구되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플레마라는 인간을 지탱하던 가장 큰 요소.

'믿음'이 깨져 나간다.

[왜!!!]

목청이 터질 듯 소리친 그녀가 자세를 낮추고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흔들리는 동공이 시몬 쪽으로 향했다.

[넌 대체.......]

이때 성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뭐지?]

공포였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에서 기인한 공포.

"나도 몰라."

시몬이 대검을 고쳐잡으며 담백하게 대답했다.

사실 시몬도 왜 성녀의 불꽃에 당하고도 무사한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맞아도 멀쩡하니까 그 방법을 이용했을 뿐, 인과에 대해 고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은 무언가를 목격하는 순간.

[죽어!!]

그것을 없애고 싶어 한다.

플레마의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백염이, 지금까지 본 최고 화력으로 시몬을 뒤덮었다.

'끄윽!'

시몬은 즉시 오른팔을 등 뒤로 보내서 본 아머 상태의 피어를 보호했다. 그리고 백염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카쟌과 세르네의 기겁한 외침이 들린다.

신성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다지만, 결국 시몬의 본질은 네크로맨서였다. 압도적인 화력에 몸의 내구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소년! 뭐 하는 거냐? 거기서 빠져나와라!]

'피어.'

화염을 견디면서 시몬이 힘겹게 미소 지었다.

'언제까지 망설일 거예요?'

[.......]

피어의 목소리가 멈췄다.

'에프넬의 성녀를 이기고 싶다면 본질부터 바뀌어야 해요. 당신이 정말로 내 군단의 관리자라면.'

시몬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따라오세요 피어.'

[크흐흐흐흐!]

피어가 웃었다.

[크흫! 크흐흐흐흡! 으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머릿속에서 피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꺼이꺼이 목놓아 웃는 것 같은 광기의 목소리였다.

[망자에 대한 모욕도 정도가 있다 소년!]

그렇게 말하는 피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이건 모욕이 아니라.'

시몬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걸렸다. 백염을 발사하고 있는 플레마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진화라고 하는 거예요.'

뚝. 하고.

물방울이 연못에 떨어진다.

시몬은 그저 한없이 작은 물방울 하나였을 따름이었다.

피어는 연못이었다.

백색의 물방울은, 고여서 썩은 검은 연못에 떨어지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뚝.

다시 한번 하얀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달랐다. 물방울이 연못에 떨어지는 순간, 고농도의 잉크처럼 사방으로 흰색이 퍼져나가며 연못을 하얗게 물들였다.

[크흐흐흐흐흐흐흫! 으하하하하!]

스륵.

슥.

바닥 어딘가에 떨어져 있던 뼈들이 허공에 떠오르더니, 백염을 견디고 있는 시몬의 몸에 부착되기 시작했다.

차악.

착.

차차착.

뼈들은 빈틈없이 갑옷의 형태를 맞춰 나가고, 오른팔을 뒤덮고, 몸통과 다리를 연결했다. 망토가 다시 시몬의 몸을 휘감았다. 마지막으로.

[좋다! 리처드의 아들!]

차아악!

피어의 두개골 투구가 시몬의 머리에 안착했다. 시몬이 두개골을 손으로 붙잡아 깊게 내려썼다. 눈이 두개골에 뒤덮이고 코와 입만 남았다.

[네 승리를 위해! 나는 이제 망자라는 정체성까지 버리겠다!!]

화륵.

오른쪽 눈구덩이에 평소처럼 검푸른 불꽃이 횃불처럼 타올랐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왼쪽 눈구덩이에는 새하얀 불꽃이 올라왔다.

두 눈에서의 불꽃. 비로소 피어가 시몬의 성장을 따라잡았다.

"가죠, 피어."

[크하하하하!]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이 대검을 휘둘렀다. 검격이 일자로 그어지며 방사되는 백염을 찢고 플레마의 복부에 상처를 냈다.

[대체......!]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백염을 견디는 네크로맨서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신성을 쓰는 언데드라고?

너무나 큰 충격이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들어오며, 그녀의 이성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플레마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있을 수 없다.

공포. 공포. 공포.

그 무엇보다 순수한 공포가 그녀의 머릿속을 장악했다.

프리스트들에게 있어 이것은, 평생을 쌓아온 믿음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앗!

시몬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본 아머의 효과가 완전히 발휘되며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크으윽!]

그녀는 더러운 것을 보듯 질색하며 날아올라 지상으로 백염을 쏟아냈다. 시몬은 바닥을 강하게 디디며 허공에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원거리 참격으로 백염째로 그녀의 몸을 베어냈지만, 상처에 백염이 일어나 빠르게 회복했다.

[역시! 저 성녀를 상대론 직접 파멸의 칼날로 베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

'네, 하지만.'

시몬에게는 공중전 기술이 없었다. 도약으로 뛰어올라 따라잡는 수밖에 없었다.

시몬이 내달리면서 디딤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굴리는 그때.

'?'

그의 주위로 세르네의 깃털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도와줄게요.

세르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의 속도를 따라잡은 깃털들이 어깨와 등에 차착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

시몬은 순식간에 집중력이 몇 단계나 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투학 시간에서 세르네가 보여줬던 바로 그 심상이 재현되고 있다. 거기에 등 뒤에 붙은 깃털들이 부스터처럼 강한 출력을 내뿜으며 시몬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고 있었다.

'오케이.'

감을 잡은 시몬이 바닥을 걷어차며 날아올랐다.

스릉!

시몬이 날아오는 힘 그대로 플레마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플레마의 얼굴이 지독한 공포로 일그러졌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플레마가 더 높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성녀를 보호하듯 감싼 백염의 방어막은 동굴의 천장과 암벽을 무너뜨리고 구멍을 내며 더욱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후읍!'

그 모습을 본 시몬이 눈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놓칠 수는 없다.

지금 체력이나 정신력이나 쥐어 짜낼 대로 짜내는 중이고, 긴장이 풀리면 그 모든 반동이 들어올 것이다.

그전에.

'쓰러뜨린다!'

시몬은 깃털의 비행속도를 최고속도로 높이며 플레마를 뒤쫓았다.

후두두두둑!

신성구체와 집채만 한 암석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이에 시몬은 사고하는 것을 포기하고 광기에 영역으로 치달았다.

'눈앞에 보이는 건 전부 벤다!'

날아오르면서 검을 휘두른다. 하얀 검격이 허공을 미친 듯이 난도질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전장의 파편, 그림자, 그리고 신성 구체의 세례를 마주하며 시몬은 자신의 사고를 아득히 초월하여 베고 또 베었다.

마침내.

휘이이이잉!

시몬의 시선을 가로막는 모든 방해물이 사라졌다. 번뜩이는 태양광을 받으며 시몬의 몸이 수천 미터 상공에 떠올랐다.

거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아래를 보면 지휘통제실에 있던 산꼭대기에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그 옆으로 키젠 캠퍼스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제발 좀 죽어어어어어어!]

상공의 플레마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백염으로 조형한 끝이 뾰족한 십자가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이제야 사고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여신의 힘으로 태워 죽이려는 고집을 버리고 물리력으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니다 피어."

[크흐흐흐! 마음껏 해봐라!]

시몬이 날아올랐고, 수백 개의 십자가들이 떨어졌다. 하얀 검격이 하늘을 수없이 갈라냈고 그 틈을 다시 십자가들이 빽빽하게 뒤덮었다.

지상에서 프리마 마테리아의 괴물들과 싸우고 있던 키젠 학생들도 연신 터져 나오는 굉음에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십자가다!"

학생들이 손을 뻗어 하늘을 가리켰다.

"저거 프리스트 맞지?"

"근데 누구랑 싸우는......."

"야, 비켜봐!"

딕의 머리를 확 밀치고 나온 메이린이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뺨이 붉게 상기되었다.

'피온 님......!'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시몬의 검격이 십자가들을 연달아 베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멘탈이 무너졌다지만 성녀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기적, 장기전으로 가고 그녀가 평정을 되찾으면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이게 마지막 공격이야.'

까드득!

이를 악물었다. 잇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공중에 뜬 채로 대검을 등 뒤로 보내며 허리를 뒤틀고 자세를 낮췄다.

참격의 자세.

대검에 모든 힘을 다 때려 박는다. 검이 일렁이며 노도 같은 기세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찬란한 빛의 광채가 쏟아진다.

"뭐야?"

"누, 눈부셔!"

지면에 있는 키젠 학생들도 눈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섬광이 검에 몰아치고 있었다.

'공간째로―'

양팔이 휘둘러지고 허리가 돌아간다. 몸에 부착된 피어의 뼈들이 그간 쌓아온 업을 시몬의 몸에 재현해 낸다.

시몬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끼며 입꼬리를 올렸다.

'베어내는 감각!'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순백의 궤적이 바람과 허공을 일자로 찢어발기고, 한참을 떨어진 구름마저도 베어버리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이어지는 거대한 후폭풍이 키젠 교정 전체를 뒤흔들었다.

[커헉!]

주위의 십자가들과 함께 성녀의 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에프넬의 성녀는 절대적인 존재. 두 갈래로 찢어진 그녀의 몸뚱이에 백염이 휘몰아치며 다시 붙으려 하고 있었다.

'아직!'

촤르르르륵!

'안 끝났어!'

초대형 참격을 일으킨 시몬이 다시 한번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고 있었다. 그 회전하는 사이에 전신에 달라붙어 있던 피어의 뼈들이 전부 손목 쪽으로 향했다.

처억!

한 바퀴 회전한 시몬이 팔을 뻗으며 플레마를 향해 검 끝을 겨누었다.

대검을 붙잡은 시몬의 양손과, 그의 팔을 마구 뒤덮은 피어의 뼈들이 거친 진동을 일으키며 부르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치 끌어모은 힘을 참고 있는 듯한 모습.

바로 여기에.

'무조건 맞춘다!'

시몬의 절대명령이 더해진다.

<시몬&피어 오리지널 - 투사>

투콰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져 버릴 것 같은 포성과 함께 시몬의 두 팔이 쳐올라가고 팔을 감싼 피어의 뼈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두 갈래로 갈라진 몸의 회복에 전념하고 있던 플레마의 시선이 위로 움직인다.

[무슨―!]

인지하지도 못하는 순간.

그녀의 고개 옆으로 파멸의 대검이 지나갔다.

멍한 표정의 그녀가 시선을 움직이자 대검은 저 멀리 아득한 곳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

그녀의 오른팔이, 하늘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성녀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키젠 전체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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