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55화
성녀의 팔이 날아갔다.
조금만 더 제대로 조준했다면 그녀를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그녀를 맞춘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시몬은 조금씩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오른팔을 뻗었다.
'복원.'
멀리서 빛이 번뜩이더니, 피어의 대검이 공중에 체류 중인 시몬의 손안으로 착 들어왔다.
[이봐, 소년! 아직 정신을 잃을 때가 아니다!]
구멍 뚫린 산맥으로 시몬의 몸이 추락하고 있었다.
차착. 착.
마침 타이밍 좋게 세르네의 깃털 두 장이 날아와 시몬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등으로 떨어지고 있던 시몬의 몸이 뒤집히더니, 이제 제대로 비행하는 자세로 바뀌었다.
깃털의 힘으로 시몬은 산맥의 커다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암벽 곳곳에 깃털들이 날아와서 달라붙는 모습이 보인다. 시몬이 내려간 뒤에, 깃털들이 마법진의 형태로 분해되더니 흙과 암벽을 움직이며 휑한 구멍을 빈틈없이 메웠다.
이내 시몬이 지휘통제실에 내려올 즘엔, 그 커다란 구멍이 완전히 막혀 있었다.
"어쩐지 저번 일의 데쟈뷰 같은데요? 명색이 상아탑 후계자가 남 뒷바라지나 하고 있다니."
세르네가 피곤한 듯 웃으며 시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난리 치는 걸 도와줬더니 고작 팔 한 짝이에요? 앞으론 당신이 내 서포트나 하세요."
피어의 두개골이 요란하게 껄껄 웃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식 웃었고, 카쟌은 헝클어진 머리를 늘어뜨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놈들.'
키젠 학생 두 명이 힘을 합쳐 성녀를 몰아붙이다가 팔까지 날렸다.
누가 들었다면 코웃음 칠 이야기였다. 이 정보는 현실성이 너무 떨어져서 팔리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윽."
주저앉아 있던 시몬의 의식이 날아가려 했다. 그때 세르네가 깃털 몇 개를 시몬의 몸에 꽂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 차려. 아직 기절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휘통제실 전체가 격하게 흔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끈질기군."
카쟌이 중얼거렸다. 천장이 암벽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세르네가 혀를 차며 깃털들을 보내더니 그들의 머리 위로 방어 마법진을 펼쳤다.
콰콰콰콰콰쾅!
천장이 다시 박살 났다. 아까의 다섯 배가 넘는 큰 구멍을 만든 채, 하늘에서 성녀가 내려오고 있었다.
타악.
그녀의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오른팔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은 어쩐지 음침하기까지 했다.
[이제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여신의 뜻을 알겠노라.]
성의자락이 펄럭이며 그녀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일어났다. 세 사람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러섰다.
[신성이 통하지 않는 군단장의 존재.]
그녀의 시선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규격 외의 존재. 이레귤러다. 이것은 심각한 재앙이다. 심지어 그가 다루는 언데드도 신성에 면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완전히 성장하면 에프넬에게는 최악의 적이 생긴다. 여신께서 나를 키젠으로 인도하신 이유, 그것은 키젠을 테러하라는 것이 아니라.]
화아아아아아악!
그녀의 온몸이 눈부신 백염으로 뒤덮여 가기 시작했다.
[시몬 폴렌티아. 오로지 너 하나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플레마가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세르네가 쓴웃음을 흘리며 뒤를 가리켰다.
"일단 여기선 도망치죠?"
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려는 순간, 거대한 백염의 벽이 올라와 도망갈 수 있는 길을 차단했다.
[미천한 종의 불경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플레마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분의 힘이 통하지 않음은, 반드시 심판해야 할 대상을 우둔한 제게 깨우쳐 주시기 위함임을 깨달았나이다.]
"아, 이거 위험하네요. 다시 멘탈 잡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세르네가 말했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단순한 자기 합리를 깨달음으로 받아들여 버리는군."
카쟌도 혀를 찼다.
그때 백염으로 뒤덮인 플레마의 몸이 점점 커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하얗고 매끈한 천상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듯한 몸체, 허리가 실선으로 이루어졌다가 가슴에서 다시 흰색의 몸체로 변했다.
등 뒤로는 곡선 형태의 날개가 매달렸으며, 얼굴은 이목구비가 없이 매끈한 금속으로 덮인 채 눈동자 쪽만 푸른빛으로 빛났다. 그리고 머리 위로는 같은 재질의 원반 같은 것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위대한 여신의 뜻에 따라, 내 모든 것을 걸고 악의 싹을 뿌리 뽑겠다.]
플레마 본인의 수명을 백염으로 태우면서 유지해야 하는 집행자 모드. 그녀는 정말로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철컥.
플레마의 손목 위로 백염으로 이루어진 검이 솟아 나왔다. 금속 몸체도 백염으로 구성된 듯 열을 뿜었고 아지랑이가 흘러나왔다.
세 사람은 상대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이길 수 없다는 걸.
[이제.]
그녀가 오른팔을 높게 들어 올렸다. 백염의 검이 수십 미터로 솟구치며 거대한 화염을 폭발시켰다.
[영멸해라.]
불타는 검이 시몬의 머리로 떨어졌다. 시몬은 다급히 피어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이 몸 상태로는 못 막......!'
카아아아아앙!
청랑한 소리와 함께 플레마의 검이 막혔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막은 게 아니었다. 어느새 그의 몸 앞으로 이질적인 금빛의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이건 설마......!'
[이렇게 빨리!]
플레마의 시선이 돌아갔다.
허공에 금빛의 포털이 열리고 있었다.
* * *
20분 전.
"그의 진정한 강점은 광기(狂氣)!! 무언가에 진정으로 미칠 수 있는 재목이란 말입니다!"
바힐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론이 한심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냥 네놈과 닮은 점을 찾은 거잖아."
"광기는 천재의 덕목이기도 하죠."
바힐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A반 저주학 수업에서, 시몬 학생의 실습을 돕기 위해 잠시 그의 몸에 간섭한 적이 있습니다. 감각저주를 걸어서 집중력을 극대화해 줬죠. 그런데......."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 전투, 그리고 중요한 순간, 특히 제인 교수님의 사이클롭스 평가에서, 시몬 학생은 제가 저주를 걸어 만든 그 상태를 흉내 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걸 단순히 '심상을 재현'한다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사실은 그게 아니죠."
그의 입이 떨어졌다.
"콤펠로(compéllo)."
그 말에 아론은 물론, 홍펭과 실라지까지 눈이 커졌다.
"위대한 네크로맨서들이 간혹 체험한다는 바로 그 '콤펠로'를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네! 고작 17살 꼬맹이가! 그냥 저주학 시간에 느꼈던 그 집중력을 재현한답시고 콤펠로를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세 사람의 얼빠진 표정을 보며, 바힐은 우월한 승자처럼 미소 지었다.
"확질히."
홍펭이 턱을 짚었다.
"다른 학쟁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지몬 학쟁은 체내 칠흑 분화를 두 번 만에 익혔어요. 콤펠로의 문을 열어젖힌 건 정말인 것 같아요."
"오호, 그건 저도 처음 듣는 정보군요."
바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런 정보를 공유하는 이유는, 함께 시몬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그의 집중력에 나쁜 영향을 주지 말자는......."
"나는 반대일세."
실라지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콤펠로를 계속 열어젖히다 보면 정신이 망가져. 그는 이제 17살이야. 콤펠로에 중독된 네크로맨서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는 잘 알 텐데, 그들은 전부 단명했다."
"하지만."
바힐이 입꼬리를 남겼다.
"놀라운 업적을 이룩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죠."
"......바힐 교수!"
"오해하진 마시길, 저처럼 시몬 학생의 건강을 생각하는 교직원은 없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콤펠로를 자주 열어젖혀 망가지는 건 딱 그 정도. 그렇게 될 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몬 학생은 그 자질부터가 다르죠."
"그걸 세간에서는 혹사라고 부르는 걸세."
실라지의 말에 바힐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실라지 교수님, 실례지만 정말 네크로맨서 맞습니까?"
"실례라고 생각한다면 나불거리질 말아야지. 지금이라도 콤펠로를 줄이도록 지도하고, 그런 무리한 힘을 쓰지 않고도 이겨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실력을 구축하도록 돕는 게 교수의 역할일세.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그 소년은 충분히 위로 올라갈 수 있어."
바힐의 표정에 짜증이 섞였다.
"그의 가능성은 무한대입니다! 관리를 핑계로 천재의 날개를 꺾는 건 교육자 실격이고, 네크로맨서로서는 죄악인......."
"그만."
짝짝.
홍펭이 손뼉을 치며 중재했다.
"이러다 다투겠어요. 오늘은 랭 교주님의 장례. 때와 장조가 적절하지 않아요."
"......."
실라지가 시뻘게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바힐은 여전히 입이 근질거리는 눈치였다.
그때 아론의 시선이 움직였다.
"......밖이 소란스럽군."
킁킁.
실라지가 냄새를 맡더니 급히 달려갔다. 다른 교수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웅성 웅성 웅성.
영묘에서 입구에서 조문객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교수들이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카미바레즈!"
실라지가 뛰어갔다.
키젠 여학생 한 명이 피범벅이 되어 영묘로 들어오고 있었다. 눈과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고, 등 뒤의 커다란 날개는 축 늘어져 있었다.
"......아."
교수들을 보는 순간, 카미바레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교수님들! 제발!"
"진정하거라. 몸이 너무 망가졌어."
실라지가 쓰러지려는 그녀를 지탱하며 말했다.
"......제발 시몬을,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구해달라니. 무슨 말을 하는 게냐?"
그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카미바레즈의 옆으로 작은 소녀가 나타났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네."
네프티스 아크볼드.
그녀의 등장에 교수들을 비롯한 모든 조문객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너는......."
카미바레즈의 동공이 흔들렸다. 틀림없이 강의실에 놀러 와서 과자를 얻어먹었던 그 작은 소녀였다.
"안뇽! 그거 좀 보여줄래?"
소녀는 카미바레즈가 품에 끌어안고 있는 랭의 일기를 가리켰다.
카미바레즈는 약간 망설이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홍펭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는 일기를 네프티스에게 넘겼다.
촤르륵.
네프티스가 랭의 일기를 펼쳤다. 다른 교수들도 다가와 그녀의 등 너머로 내용을 살펴보았다.
<내 조교가 나를 죽이려 한다.>
첫 문장을 본 교수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랭의 필체야."
네프티스가 중얼거리며 다음 장을 넘겼다.
교수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놀라움, 경악, 혼란,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건 극도의 분노였다.
"응. 더 볼 필요도 없겠네."
네프티스는 차분하게 중얼거리며 일기를 다시 카미바레즈에게 돌려주었다.
카미바레즈가 일기를 다시 품에 꼭 끌어안자, 네프티스가 방긋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잔뜩 경계하고 있던 카미바레즈는 그녀의 목소리에 거짓말처럼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이 뒤는 우리에게 맡겨."
그 한마디가 너무나 안심되어서 그럴까.
비로소 긴장의 끈을 놓은 카미바레즈의 눈에 초점이 사라지더니 스스륵 눈이 감겼다.
피곤한 듯 한숨을 쉰 네프티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정말~"
새근새근 웃고 있던 그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다 찢어 죽이고 싶네.]
콰르르르르르르르르릉!
갑자기 대낮이었던 주위가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이며 연신 검은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조문객들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날씨가 단번에 바뀌어 버렸다.
네프티스가 몸을 돌렸다.
"실라지는 이 아이의 치료를 부탁해."
"예."
"그리고."
네프티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갈......."
처억! 척! 척!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론, 바힐, 홍펭이 살벌한 기세로 손을 들었다.
뒤에 다른 네크로맨서들이나 조문객 중에서도 손을 든 사람은 있었지만, 세 사람의 기세에 슬그머니 팔을 내리곤 했다.
"좋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잔상이 일더니 제인이 나타나서 고개를 숙였다.
"준비해 제인."
"예."
제인이 흑마법을 사용하자 그녀 본인과 아론, 바힐, 홍펭의 몸이 칠흑에 휩싸이며 작은 큐브의 형태로 바뀌었다. 큐브들은 네프티스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네프티스가 큐브들을 품에 넣고 손을 허공에 뻗었다.
째깍! 째깍! 째깍!
허공에 황금빛 시계가 회전하는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그것이 거대한 게이트로 바뀌었다.
"가볼까."
죽음의 마녀가 걸음을 옮겼다.
* * *
5분 후.
카아아아아앙!
청랑한 소리와 함께 플레마의 검이 막혔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그의 몸 앞으로 이질적인 금빛의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건 설마......!'
[이렇게 빨리!]
플레마의 시선이 돌아갔다.
허공에 금빛의 포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였다.
"오랜만이네."
네프티스가 삐딱하게 웃었다.
"정화의 성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