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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57화 (15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57화

퍽! 으적! 꾸득!

마법진에서 나온 악마의 손이 플레마를 짓이기고 다졌다. 네프티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꾸물럭거리다가 손바닥을 펼쳤다.

악마의 손도 따라서 손을 펼쳤다. 한때 플레마였었던 다짐육이 바닥에 철퍽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엄살 그만 부리고 일어나지?"

네프티스가 차갑게 말했다.

화르르륵!

다짐육에서 새하얀 불꽃이 올라왔다. 끔찍하게 뭉개진 살덩이가, 빠르게 본래 플레마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재생이 아닌 사실상 '부활'에 가까운 기적. 그녀는 창백해진 얼굴로 가슴을 붙든 채 헐떡이고 있었다.

[......끄으으으!]

백염의 진가는 자체 회복능력에 있다. 어떤 공격을 받아도 하얀 불꽃과 함께 무한히 재생한다. 심지어 뇌와 몸이 으스러져 자체적인 판단을 못 하는 상태가 된다고 해도, 하얀 불꽃은 그녀를 원래의 모습으로 구축해 버린다.

[죽여 버리......!]

댕강!

후면에서 날아온 검은 선이 그녀의 목을 날렸다. 이어서 네프티스가 지휘자처럼 손끝을 휘두르자 사방팔방에서 검은 선이 쏟아져 그녀의 몸을 파이 쪼개듯 수십 갈래로 베었다.

"고통스럽지?"

네프티스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맑고 청아한 어린 소녀의 것이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랭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투둑. 툭.

고깃덩이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하얀 불꽃이 일며 다시 고깃덩이가 플레마의 모습으로 재생했다.

[이런 망할!]

플레마는 재생되자마자 급하게 하늘로 날아오르며 백염을 쏟아냈다. 네프티스가 팔을 머리 위로 가리자, 아까의 검은 선들이 방패처럼 흰 불꽃을 막았다.

[하하하! 두고 봐라 네프티스! 다음엔 꼭......!]

덜컹!

위로 날아가던 그녀의 등이 거대한 뭔가에 부딪혔다. 어느새 그녀의 위로 커다란 관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언 메이든>

네프티스가 손짓하자 꽈드득 소리와 함께 관이 쪼그라들며 플레마의 몸에 딱 달라붙는 형태가 되었다.

이어서 사방에 나타난 말뚝들이 관을 연달아 관통했다. 구멍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화르르르르륵!

[크아아아!]

관을 하얀 불꽃으로 불태우며 다시 플레마가 나타났다. 그녀의 표정은 지독한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네프티스으으으으으!]

아직도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네프티스는 초월적인 화력으로 플레마를 가지고 놀았다.

플레마는 흐르는 유황불에 튀겨지기도 했고, 저주에 세포 하나하나가 썩어가기도 했으며, 칼날 같은 혈류마법에 갈기갈기 분쇄되기도 했다.

성녀의 하얀 불꽃은 싫든 좋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성녀를 부활시켰다. 더 데미지를 견딜 수 없었던 플레마가 결국 피부에 그린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파라푸리기스>

한번 신성 결계를 치면 자신조차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여차하면 빠져나가기 위해 공간이동 계열 백마법을 안배해 두고 있었다.

우우웅!

그녀의 몸이 일그러지더니 허공에 뚫린 진공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 * *

화아악!

눈부신 빛과 함께 그녀가 눈을 떴다.

이곳은 에프넬의 본부가 있는 '하늘섬'이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한 플레마를 보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땀과 오물로 범벅이 된 그녀가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다.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에프넬의 건물들이 보였다.

'돌아왔어......!'

그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살았다.

이제야 다 끝났다.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플레마 님!"

그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년의 프리스트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프, 플레마 님 맞으시죠? 연락도 없이 에프넬엔 어쩐 일로......."

[지금 당장 교황 성하께 연락해!]

그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죽음의 마녀가 올 거야! 빨리!]

"예, 예?"

그때 노년의 프리스트 옆으로 여성 프리스트가 한 명 다가왔다. 그녀의 손가락이 플레마를 가리켰다.

"플레마 님, 그런데 목에 거신 그건......?"

[뭐?]

그녀의 시선이 목으로 향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색의 목줄이 목에 걸려 있었다.

[......아, 아아아아......!]

그녀의 두 눈에 공포가 깃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어지럽히며 주위의 사람들이 정지되었다.

방금 그녀가 빠져나왔던 차원의 구멍이 다시 열린다. 그 새까만 심연에서 두 개의 소름 끼치는 푸른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 아아아아! 그만! 이제 제발 그만 해! 이만하면 됐잖아 이 악마 같은 새끼야아아아악!]

그 위대한 성녀가 체면도 잃고 악의 화신에게 자비를 빌 정도로, 그녀의 멘탈은 가루가 되어 있었다.

어느새 목줄에는 금빛의 사슬이 메여 있었고, 그것은 심연과 연결되어 있었다. 작고 하얀 손이 심연에서 빠져나와 사슬을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와."

화악!

네프티스가 사슬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에 그대로 끌려들어 가 공간을 넘어 다시 키젠 지휘통제실의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퍽!

네프티스가 쓰러져 있는 플레마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런 수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또 아까운 시간만 버렸네."

네프티스가 진득한 악의가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플레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간의 덫에 사로잡혀 있었고, <파라푸리기스>를 쓴 미래가 쓰지 않은 미래로 바뀌어 있었다.

"자, 맞던 거 계속 맞아야지?"

검은 선이 플레마의 목을 휘감았다.

[그마아아아아안!]

그녀의 몸이 물에 젖은 수건처럼 쥐어 짜였다.

죽었다.

몇 번이고 죽었다.

셀 수가 없을 만큼, 다채로운 방법으로 죽었다.

이제는 백염으로 되살아나도 정신이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해!'

으적으적!

그녀는 계속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나 몸이 산 채로 소환수에 잘근잘근 씹혀 먹고 있는 그때, 그녀는 육체를 포기하고 정신체로서 날아올랐다.

'됐다!'

소환수가 그녀의 몸을 씹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네프티스는 여전히 프란체스카 쪽을 보며 그녀가 백염으로 부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화의 성녀의 두 번째 능력.

신체를 초월한 정신체로서 움직이는 것.

투명한 그녀의 몸이 빠르게 지휘통제실의 동굴을 빠져나와 드높은 상공으로 올라갔다.

'이렇게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네프티스!'

이 수모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몸을 찾아내서 다음번엔 확실히 키젠을 몰락시킬 것이다.

다음번에는 꼭......!

'!'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플레마는 투명한 새장에 갇혀 있었다.

'뭐, 뭐야?'

그녀가 미친 듯이 철장을 흔들었지만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런 건 처음 듣는다. 신체를 초월한 정신체의 상태인데 어떻게 움직임이 제약당하는 거지?

"그거 알아?"

플레마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새장의 옆으로 네프티스가 나타나 있었다.

"너희 프리스트들이 신의 성체라고 하는 지금 네 모습. 사실 키젠의 혼령화와 원리는 거의 비슷해."

[뭐, 뭐라고?]

"물론 너처럼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드는 건 무리지만, 이렇게 정신체로 이동하는 정도야 어렵지 않지. 물론 우리는 이 기술을 무력화하고 파괴하는 방법도 가지고 있어."

네프티스가 새장에서 물러나 손을 휘저었다.

"네가 혼령화 상태로 날아오를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 이제 진정한 의미로 널 죽일 수 있게 됐네."

하늘에 나타난 것은 검은 낫을 든 사신.

그것이 낫을 들어 올렸다.

[그, 그만!]

최후를 직감한 플레마가 공포에 젖은 눈으로 벌벌 떨었다.

[그마아아아안!]

스거어억!

소름 끼치는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성녀는 영원히 침묵했다.

* * *

그 날 이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중간에 의식을 잃고 기절했던 시몬은 눈을 떴다.

"......?"

낯선 장소였고, 낯선 냄새가 났다.

환자복이 입혀져 있고 몸 곳곳에 수액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시몬이 눈을 비볐다.

"일어났어?"

옆에서 여자애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과일을 깎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보였다.

"로레인!"

시몬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자 그녀가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보였다.

"무리하지 마. 너 진짜 절대안정 취해야 해."

"......아."

"원래 면회도 금지된 거, 엄마빨로 밀어붙여서 들어온 거야."

상체를 일으킨 시몬은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긴 키젠 병동이었다.

"다들 무사한 거야?"

"응. 걱정 마. 네 조원들도 모두 괜찮아."

로레인은 나긋한 목소리로 뒷이야기를 전했다.

정화의 성녀는 네프티스에게 완전 소멸당했다.

키젠 교정을 뒤덮었던 신성결계는 해제되었고, 네프티스가 프리마 마테리아를 회수하는 것으로 흰색 괴물도 사라졌다.

테러 초기에 학생들 차원의 대처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부상자는 60명이 조금 넘었지만 기적적으로 사망자는 없었다.

시몬은 그 사태가 벌어진 뒤 이틀 뒤에 눈을 떴다. 현재 키젠에서는 단축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조금 부끄럽네."

그녀가 접시에 담긴 깎은 과일을 내밀며 말했다. 시몬은 포크를 들고 처음 보는 노란색 과일을 찍어 먹어보았다.

부드럽고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며 입안에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딱 환자들이 먹을 만한 과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부끄러운데?"

"에프넬의 성녀가 키젠을 공격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나만 아무것도 못 했잖아. 엄마 성화에 못 이겨서 영묘에 갔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역시 따라가는 게 아니었어."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자리에 없던 건 어쩔 수 없지."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네."

두 사람은 쿡쿡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될까?"

시몬이 물었다.

"뭐가?"

"대륙의 정세 말이야. 전쟁이 일어나려나?"

"글쎄, 일단 키젠 본부와 원로회 쪽은 분위기가 험악하긴 해."

로레인이 바구니에서 새 과일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기적적으로 학생 피해자는 없었지만, 랭 교수님께서 돌아가시고 키젠 전체가 속아 넘어간 사안이니까. 몇몇 원로들은 전쟁이라도 불사할 분위기야. 더 자세한 건......."

그녀의 시선이 병실의 문 쪽으로 향했다.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달칵.

문이 열리고, 은빛 머리의 조그만 소녀가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안뇽! 안뇽! 잘 있었어 시몬?"

"네프티스 님!"

네프티스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쪼르르 달려와 시몬의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녀의 목표는 로레인이 깎아놓은 과일 접시였다.

"나! 이거 먹어도 돼?"

"물론이죠. 드세요."

"......엄마. 이거 시몬 주려고 깎은 건데."

로레인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네프티스는 포크에 꽂은 과일을 냠냠 먹기 시작했다.

"네프티스 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뭐든 물어봐!"

"이제 대륙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헤헤, 다들 쫌 긴장해야 할지도?"

무슨 의미일까.

전쟁이 난다는 걸까. 아니면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냉전이 시작돼서 사람들이 긴장해야 한단 의미일까.

"전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에프넬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란 사실이야."

네프티스는 그렇게 말하며 과일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서 시몬 쪽으로 밀었다. 그녀의 팔이 짧아서 시몬은 힘껏 고개를 숙여야 했다.

시몬은 과일을 받아먹으면서 질문을 바꿔보았다.

"그럼 이번 테러는 에프넬의 선전포고인 게 맞나요?"

"일단 에프넬 쪽에선 꼬리를 잘랐어."

로레인이 말을 받았다.

"공식 입장으로는 에프넬의 지시가 아닌 정화의 성녀 돌발행동."

"헤헤,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신의 사자를 잃었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지만 뭐, 금방 또 새로운 정화의 성녀가 나타나겠지."

시몬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요?"

"성녀를 죽이면 '성녀의 정수'라는 게 흘러나와서 대기 중에 떠다니게 되거든! 곧 신성연방에서 정수 적합성이 높은 사람에게 깃들어 새로운 성녀가 탄생할 거야. 아무리 죽고 죽여도 성녀는 계속 탄생해서 우리 발목을 붙잡겠지. 아, 이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그녀가 몸을 일으켜 시몬의 이마를 슥슥 쓰다듬었다.

"네 일상이 깨지는 급진적인 변화는 당장 일어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시몬이 우려하는 걸 정확히 꿰차고 있는 듯한 네프티스의 말이었다.

"그래도 점진적인 변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겠지? 조금 이르지만, 방학이 열릴 거야."

시몬의 눈이 끔뻑였다. 로레인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방학이요?"

"응. 조금 앞당겼어! 건물들도 무너졌고, 학생들이 많이 다쳤고, 시국도 뒤숭숭해서 방학을 빠르게 가져가고 조금 긴 2학기를 시작하게 될 거야."

시몬의 멍한 표정을 보고 네프티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기대해도 좋아! 평소의 1학년 2학기보다 훨씬 빡셀 테니까!"

"......아하하하."

지금보다 더 빡세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몬은 벌써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 로레인이 물었다.

"근데, 엄마. 오늘 외출한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웃차. 이제 가야지."

과일을 다 먹은 그녀가 폴짝 바닥으로 내려왔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시몬의 물음에, 병동 문을 열어젖힌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신성연방."

"......네?"

"내가 말했지? 전쟁 일어나든 말든 에프넬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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