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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62화 (162/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62화

"......?"

난데없는 제안에 시몬은 당황했다. 레테가 접시를 내려놓으며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왜? 쫄려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부모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과의 대결. 들키면 혼나는 정도론 안 끝나겠지만, 시몬은 순수하게 마음이 혹하는 걸 느꼈다.

키젠에서 제시한 이번 방학 최대의 과제는 '대 프리스트전에서의 경쟁력'이었다.

에프넬 1학년 1위와 싸워볼 기회가 생긴다면,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장소는 어디로?"

일단 물어나 보기로 했다.

"안나 선생님이 걱정하실 테니까. 여기서 좀 떨어진 곳이면 괜찮지 않겠슴까."

레테가 접시를 닦으며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근데 괜찮겠어? 나 좀 특이체질인데."

"아- 자꾸 개소리하네 이거."

그녀가 눈을 치켜뜨며 으르릉거렸다.

"아까 신성 공격 맞고 멀쩡해서 그 지랄하는 거야? 넌 진짜 뒈졌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시몬도 승부욕이 불탈 수밖에 없었다.

"그 혈기를 꺾으면 좀 고분고분해지려나."

"뭐어어? 고분고부운? 너 당장 밖으로 따라 나......!"

스윽.

갑자기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에,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내 고장 난 인형처럼 삐꺽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두 사람."

안나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나도 들을 수 있을까?"

결국 두 사람 다 안방으로 불려가서 엄청나게 혼났다.

폴렌티아 가(家)에는 새로운 금기어가 생겼다. 결투의 결 자도 이 집에서 꺼낼 수 없게 됐다.

* * *

타닥타닥.

배부른 저녁 만찬을 먹고 설거지도 끝났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벽난로의 소파 앞에 자리 잡은 시몬은 칠흑역학 과제를 꺼내 풀고 있었다.

깃펜으로 종이의 빈 공간을 툭툭 치던 그가 마지못해 답을 써내려갔다.

좀처럼 집중이 잘 안 됐다. 밥을 먹은 참이라 그런지 배도 부르고 졸렸다.

'내일 다시 하는 게 낫겠어.'

시몬이 과제를 덮고 하품을 하고 있는데 파자마 차림의 레테가 거실로 나왔다.

"어? 그 옷......."

"네, 보다시피 안나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옷임다. 어울립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생각보다 또래 소녀 같은 면모도 있다고 생각하며 시몬이 대답했다.

"응. 어울......."

"닥쳐. 너 따위한테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뭐 어쩌란 걸까.

"그보다 안나 선생님께서 목마르시답니다. 물 두 잔만 떠 오십쇼."

레테는 그 말만 남기고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부모님의 생명의 은인만 아니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시몬은 몸을 일으켰다.

"아."

몇 발자국 가기 무섭게 레테가 다시 안방에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설마 진짜 물 떠 오라고 물만 떠오진 않겠죠? 쓰레기 같은 네크로맨서들도 과일을 쟁반에 담아 오는 센스 정도는 갖췄으리라 믿습니다."

"......너 말이야."

레테는 반박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다시 안방으로 샥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벽 너머로 안나에게 온갖 앙탈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레테는 귀한 손님 신분으로 와 있는 거였다. 시몬이 한숨을 쉬며 과일을 가지러 가려는 그때.

"야."

어느새 레테가 다시 휙 고개를 내밀었다.

"물에 침 타면 죽인다."

"......."

그녀는 지켜보고 있다는 듯 검지와 중지로 제 눈을 가리키다가 시몬 쪽을 향하게 하고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학생들의 인성교육이 시급합니다. 에프넬의 교직원 여러분.'

시몬은 시키는 대로 물 두 잔을 뜨고 과일까지 잘 깎아서 준비한 다음 안방으로 넘어왔다.

그곳에서는 침대에 누워서 미소 짓고 있는 안나와, 파자마 차림으로 엎드린 채 두 다리를 흔들며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레테가 보였다. 안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레테는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헤실거리며 웃었다.

'왜 엄마를 빼앗긴 기분이 들지.'

시몬이 찝찝한 표정으로 쟁반을 내려놓고 있는데 레테가 홱 고개를 돌렸다.

"여자 방에 들어오면서 노크도 안 하는 겁니까? 매너 밥 말아 먹었네. 키젠에선 흑마법보다 예절교육이 시급해 보입니다만."

"......아니, 문 열려 있었잖아."

"너무 그러지 말렴. 레테."

"네에~ 선생님."

레테가 놀라운 태세전환을 보이며 안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시몬은 이제 그러려니 하며 방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잘 자렴, 우리 아들."

안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시몬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걸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 * *

시몬은 키젠 교정을 걷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 익숙한 골목, 익숙한 복장의 사람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드니 건물 2층 창밖으로 메이린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옆에는 그녀의 동아리 친구들도 있었다.

시몬도 팔을 들어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주려는 순간.

쾅, 하고.

건물이 폭발했다. 그 안에 있던 메이린의 몸이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에는 등 뒤에서 떠들썩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딕이 A반 학생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며 깔깔대고 있었다. 시몬이 그쪽으로 달리며 도망치라고 외쳤다.

쾅.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딕과 A반 학생들이 돌 더미에 파묻힌 채 사라졌다.

시몬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

이번엔 어둠 속에서 카미바레즈가 부상을 입은 듯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안 돼. 카미!'

이번만큼은 구해야 한다. 시몬이 이를 악물고 뛰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콰악!

그녀가 시몬의 팔을 덥석 깨물었다. 어느새 그녀는 온몸이 회색빛으로 창백해진 좀비가 되어 있었다.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푸우우욱!

마지막으로.

검은 십자가가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몸을 꿰뚫었다.

시몬이 쿨럭 피를 토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들린다. 검은 정장을 입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과한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지.]

그녀를 중심으로 하얀 불꽃이 거대한 해일처럼 몰아친다. 백염은 키젠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다가왔다.

[너희는 그때, 키젠에서 나와야 했어.]

이 세상이 흰 불꽃으로 뒤덮이며 시몬의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말살하기 시작했다.

시몬이 비명을 질렀다.

"......허어어억!"

정신이 들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방이었다. 온몸이 땀범벅. 등까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꿈이었구나.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왜 그런 악몽을.......'

시몬은 갑자기 목이 급격히 타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그의 방은 2층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데 얼굴이 후끈거리며 열기가 느껴졌다.

'왜 이렇게 덥지?'

그리고 계단을 모두 내려와 거실로 나오자.

화르르르르르륵!

거실 전체에 새하얀 불꽃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꿈의 연장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집의 벽이 불타 전소되며 뻥 뚫린 곳으로 밤하늘이 보인다.

"......아."

틀림없다.

틀림없이 이건 플레마의 백염이다.

거실 바닥에는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레테가 보였다. 시몬이 얼른 달려가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왜 그래? 레테! 무슨 일이야?"

그녀가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안방을 가리켰다.

"안나 선생님이......."

"!"

화르르르륵!

안나가 백염에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흔들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백염도 같이 움직이며 집 곳곳에 불이 옮겨붙었다.

"엄마!"

거대한 충격에 휩싸이는 동시에 시몬의 사고가 신속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플레마가 사실 살아 있고, 보복으로 우리 집을 습격한 건가? 아니다. 네프티스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그리고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플레마의 공격이 아니라 안나 본인이 백염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 레테가 사실 흑막인 건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바닥에 힘이 쭉 빠진 채 주저앉아 선생님을 목놓아 울부짖고 있는 그녀의 모습엔 어떤 가식도 느껴지지 않는다.

"둘 다 물러서거라."

우우우우우웅!

집 전체에 새까만 칠흑 마법진이 펼쳐졌다.

<봉마의 관>

마법진 위로 커다란 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관에 새까만 칠흑으로 이루어진 천들이 휘날렸다.

"흐음!"

리처드가 두 팔을 휘둘렀다. 관에서 흘러나온 검은 천들이 안나의 주위로 다가갔다.

"잠깐! 당신 미쳤어?"

레테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리처드의 멱살을 붙잡았다.

"안나 선생님은 프리스트야! 칠흑으로 뭘 어쩔 셈인데?"

"백염은 성녀의 기술. 칠흑을 불태우는 권능이다."

리처드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럴 때는 역속성인 칠흑을 투여해서 백염의 기세를 낮추는 수밖에 없어."

"......."

이미 레테도 온갖 신성마법이고 축복이나 회복마법을 다 때려 박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가 리처드의 멱살을 놓고 물러났다.

촤르르르르르륵!

리처드의 명령에 따라 검은 천들이 안나의 몸을 휘감았다. 이내 백염이 올라와 천을 불태웠지만 관에서 흘러나오는 천은 불타 없어져도 끊임없이 안나의 몸을 칭칭 휘감았다.

백염이 천을 불태우고, 천이 안나를 감싸는 상황이 무수히 반복됐다.

결국 이 싸움은 리처드의 승리였다. 불길이 서서히 잡히더니 안나의 몸은 얼굴만 남은 채 미라처럼 붕대에 감싸진 상태가 되었다.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시몬이 입술을 깨물었고, 레테는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안나. 봉인하겠다."

스르르르.

안나의 몸을 감싼 천 위로 무수한 봉인수식이 새겨지자, 백염의 기세가 약해졌다. 리처드는 크게 숨을 내뱉으며 다가가 안나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안나 선생님!!"

레테가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왔다. 붕대에 전신이 감싸진 채 얼굴만 남았지만, 안나는 힘겨운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난 괜찮아 레테."

"호, 혹시 저 때문에...... 제가 가져온 약이 무슨 문제가......!"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어 보인 후, 레테의 뒤를 응시했다.

"우리 아들."

털썩.

다리에 힘이 빠진 시몬도 한쪽 무릎을 꿇으며 비틀거렸다.

"......엄마."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자꾸 약한 모습만 보여줘서 미안하구나."

시몬은 힘겹게,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푹 쉬세요 엄마."

이내 안나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역력히 지친 기색의 리처드가 불타버린 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말했다.

"장소를 옮겨서 이야기하자꾸나."

* * *

불타 버린 나무집을 떠나 리처드가 향한 곳은 찰스의 집이었다.

시몬의 집에서 가깝기도 했고, 찰스의 집 옆에는 별관으로 쓰이던 빈 건물이 한 채 있었다. 당분간 여기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을 텐데, 들어줘서 고맙네 찰스."

"무슨 말씀을요 영주님! 원하시는 만큼 편히 지내셔도 됩니다. 저번 주에 대청소를 한번 해서 깨끗할 겁니다!"

찰스와 이야기를 나눈 리처드가 건물로 들어왔다.

검은 붕대로 전신이 칭칭 감싸진 안나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 앞에는 시몬과 레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

시몬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그래."

리처드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안나는 정화의 성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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