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64화
"뭐야 이게......."
레테는 시몬이 일으킨 신성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래! 당신도 드디어 위대한 여신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겁니다! 경전의 말씀을 읽어준 보람이 있네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왼손에 피어난 그건 뭐죠? 당신의 믿음이 충만해졌다는 증겁니다!"
시몬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신은 거짓말쟁이."
"뭐, 뭐? 야 이 새끼야! 너 방금 뭐라고......."
화아악!
그러나 시몬의 왼손에 머물고 있던 신성은 한층 더 크고 밝아졌다. 그 모습을 본 레테의 입이 쑥 들어갔다.
"증명했네."
시몬이 빙글빙글 웃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신성은 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게 아냐."
"말도 안 돼!"
그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신성은 여신에게서 오는 힘이고, 그 어떠한 예외도 없어야 했다. 레테는 그동안 쌓아 올린 믿음의 탑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 시몬이 민망하게 웃으며 물었다.
"근데 이거 어떻게 꺼?"
"......."
머리를 무릎에 박고 괴로워하던 그녀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여신께 허락받는 거죠 뭐....... 오늘도 위대한 권능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그래?"
시몬은 일단 레테가 말한 대로 시도해 보았다.
'될 턱이 있나.'
다음은 아까의 노하우를 살렸다. 신이 아닌 나 자신에게 권능을 그만두겠다는 허락을 구해보았다. 하지만 실패.
'이게 아닌가? 뭔가 살짝 다른 느낌이긴 한데.'
시몬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사실 난 신성을 못 쓰는 게 정상이다.'
화륵!
그렇게 마음먹자, 거짓말처럼 손바닥의 신성이 꺼졌다.
"오."
레테가 눈을 빛냈다.
"여신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나요?"
"아니, 그냥 자기최면처럼 난 신성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꺼지던데."
부들부들.
꿇어앉아 있는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살짝 위기감을 느낀 시몬이 물러나려 했지만 그녀가 한발 앞섰다.
시뻘게진 얼굴로 '와악!' 하고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시몬을 풀밭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너 이 새끼! 일부러 그러는 거지?"
파앗!
그녀가 머리 위로 뻗은 손안에 새하얀 신성의 창이 생겨났다.
"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에프넬 수석인 내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거잖아! 어림도 없어! 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러는 거야?"
"......뭔 소리야. 난 수업 내내 한 치의 거짓말도 한 적 없어."
시몬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의 목숨이 걸린 일에 무슨 거짓말을 하겠어? 난 지금 누구보다 진지해. 만약 내가 널 견제해야 한다면 생명의 나무에서 온 재료를 얻은 뒤겠지. 지금 여기서 널 흔들어봐야 내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
"......."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부들부들 떨었다. 결국은 시몬에게서 물러나 풀밭에 앉았다.
"하아아."
짙은 고뇌가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레테."
"잠깐."
그녀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쇼."
"......어? 어."
그렇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채로 20분이 지났다.
걱정됐던 시몬이 다시 물었다.
"힘들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아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바보 같았습니다."
"응?"
"나는 아직 여신님의 위대한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 뿐이에요. 여신님이 보시기엔 지극히 당연한 인과도, 수행이 부족한 제 좁은 시야로는 틀어져서 보이는 거겠죠. 고작 이딴 일로 믿음이 흔들리다니, 수행 부족입니다. 에프넬 수석이라는 교만함 때문에 근본적인 뭔가를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몬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그냥 자기 합리화 같았지만,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죠."
이어서 레테는 시몬이 신성을 자유자재로 켜고 끌 수 있도록 숙달시켰다. 신성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원리를 설명해 주고 흐름을 느껴보도록 했다.
"모든 건 마나를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신성이든 칠흑이든 베이스는 마나였다.
네크로맨서가 몸속의 '코어'라는 기관을 이용해 마나를 칠흑이란 힘으로 가공하는 거라면.
프리스트는 그냥 온몸이 코어라는 느낌이었다. 체내의 마나가 체외로 방출되는 순간, 마나는 탈색되며 신성이 된다.
"조금 더 머리로 의식하세요."
물론 아무 생각 없이 마나를 방출해선 소용없다. 마나를 신성으로 만들기 위해선 정신적으로 아주 강한, 사실상 세뇌라고 해도 될 정도로 확고한 인식이 필요했다.
레테가 계속 강조하는 '믿음'. 시몬은 신성을 쓸 수 있다고 확실히 자각하는 게 신성을 일으키는 스위치였다.
'......왜 에프넬에 광신도들이 그렇게 많은지 알 것 같네.'
어떻게 보면 신성은 광기의 영역이었다. 내가 아직 갖지 못한 힘을, 반드시 가졌다고 자각해야 했다.
없어도 내가 있다고 자각하면 있는 거였고, 있어도 없다고 의심하면 없는 거였다.
정말로 세뇌에 가까운 광적인 믿음. 바로 그 믿음을 채우기 위해 신성력 사용자들이 채택한 시스템이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복잡한 사고는 전부 생략한다. 오로지 '신'이라는 절대적이고, 완전하며, 무한한 선(善)을 놓는다. 그러면 그 뒤로는 모든 게 명료해진다.
신앙을 중심으로 믿음을 쌓아가고, 그것을 신성력을 일으키기 위한 토대로 삼는다면 사용자는 자유자재로 신성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믿음이 흔들린다면, 플레마처럼 한없이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레테."
잠시 쉬는 시간, 믿음을 되새길 겸 경전을 읽고 있던 레테가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뭡니까."
"일반적인 경우에, 신성연방의 프리스트들은 어떻게 신성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이건 여신께서 내려주시는 권능임다. 믿음을 위한 수행밖에 답이 없어요."
레테의 말에 따르면, 신성연방의 모든 마을에는 수도원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7세가 되면 수도원에 가서 '신성적합도'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기준치 이상의 적합도가 있는 아이들은 데바의 신도가 되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들은 매일 일정 시간 동안 수도원에서 신학 교육을 받게 되며, 여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 나가게 된다.
"하지만 평신도에서 사제신분인 프리스트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죠. 프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19고행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건 또 뭐야?"
레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로 '고행'이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순례길 걷기, 세 달간 금식 수행하기, 벌거벗고 믿음만으로 가시숲 통과하기, 불속에 들어가기 등등. 말만 들어도 진저리쳐지는 내용들뿐이었다.
"그걸 너도 다 해낸 거야?"
"당연하죠."
그녀가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팔짱을 꼈다.
"그 모든 걸 해낸 뒤에야 비로소 신성관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니까요."
신성관이 바로 마지막 19번째 고행이다. 끝없이 신성이 흐르는 관 안에 갇힌 채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그쪽은 뭐 이렇게 다 비인간적이고 잔인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시몬의 말에 그녀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게 바로 신앙이고, 믿음이란 겁니다. 그냥 몸 좀 더럽혀서 코어라는 것만 만들면, 개나 소나 네크로맨서라고 설치는 당신들과는 차원이 다르죠."
"그래, 그래. 근데 일반인이 그런 대량의 신성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적은 양의 신성은 상처를 회복해 줄 수 있겠지만, 일주일 내내 신성에 노출되게 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신성은 일반의 몸에선 '이질'이니까요. 못 버티면 죽는 거죠 뭐."
"......미친."
이 무식한 의식을 통해, 인간의 몸에는 일종의 '변이'가 일어나게 되며 신성적합도가 극도로 높아지는 인간들이 탄생한다. 바로 이들이 세례를 받고 프리스트가 된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부족하다며 다시 평신도로 돌아가 첫 고행부터 쌓아야 한다. 그리고 일주일을 버텨냈어도 변이가 일어나지 않아 신성적합도의 기준치가 미달되는 사람은 '클레릭'이 된다.
"클레릭은 또 처음 들어보네."
"걔들은 그냥 쫄...... 크흠, 성당이나 수도원의 실무를 맡는 사람들이에요. 신성은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 프리스트만은 못하죠."
신성연방은 엄격한 계급제 사회였다.
일반인. 신도. 클레릭. 프리스트.
하위 계급은 상위 계급에 절대적으로 순명(順命)해야 한다.
물론 암흑연합도 평민과 귀족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그렇게까지 신분의 차이가 엄격한 편은 아니었다.
평민들 중에서도 군인이나 상인, 그리고 네크로맨서들은 어지간한 귀족들보다 큰 사회적 권한을 가지기도 했다. 키젠에서도 신분보다 실력과 학년이 더 중요했다.
다만 암흑연합은 신분이 세습되고, 신성연방은 다 같은 평민으로 시작해서 본인이 얻어낸 직위에 따라 신분도 바뀌는 게 차이점이었다.
"확실히, 제대로 수습사제인 척하려면 신성연방의 문화도 공부해 두는 게 좋겠네."
시몬의 말에 레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신성을 쓸 줄은 아는데 클레릭이 뭔지도 모르면 이단심문관들에게 의심받을 테니까요."
"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문이 생기는 게 하나 있는데."
"뭡니까."
"신성은 여신의 믿음에 대해서 나온다고 했잖아. 사실은 그냥 신앙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신성적합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냐?"
레테가 즉시 으르릉거렸다.
"아, 진짜! 그렇게 따지면 신성적합도가 비슷한 에프넬의 프리스트들 중에서도! 누구는 주교까지 오르는데 누구는 그냥 평생 프리스트로 남아요!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본인의 노력과 신성을 다루는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
"신앙의! 차이라고!"
그녀가 소리쳤다.
"여신에 대한 신앙과 믿음이 굳건할수록 다룰 수 있는 신성의 양과 컨트롤 능력이 달라져! 이건 네 반박 따위로 흔들릴 게 아니라 오랜 역사로 증명된 사실이라니까 임마!"
그렇게 따지면 신성연방의 고위층들은 사적인 이득을 취하거나 뇌물을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하지 않나? 전부 다 청렴한 건 또 아닌 것 같던데.
하지만 더 반박하면 진짜 싸울 것 같아서, 뒷말은 삼키는 시몬이었다.
'......그래, 레테는 레테 나름의 가치관이 있는 거니까.'
그녀도 그간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가치관을 나와 다르단 이유로 무작정 부정하거나 깎아내리면 반발이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쉬는 시간은 여기까지 하겠슴다."
레테가 양 무릎에 손을 올리며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인정하긴 싫은데, 당신 정도의 신성이면 신성관을 통과한 프리스트들에 비해 뒤처지진 않아. 그러니 바로 기본교육과정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당신이 연기해야 할 수습사제들이 배우는 수준임다."
"바로 그걸 기다렸어."
시몬이 눈을 빛냈다. 레테는 가져온 배낭을 뒤적거리더니 에프넬에서 직접 쓰던 교재들을 쭉 늘여놓았다.
"에프넬을 비롯한 모든 신성학교에서는 총 9개 과목을 배웁니다."
축복학.
신성역학.
치유학.
성령학.
수호학.
신수학.
성투학.
암흑 방어학.
미사 수업.
그녀가 근처의 나뭇가지를 집어서 바닥에 글자를 써내려갔다. 그것을 보는 시몬의 동공이 흔들렸다.
분명히 처음 듣는 내용인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에프넬의 3대 필수과목, 학생들은 줄여서 축신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아래에 4대 보조과목으로 성수신투가 있죠."
시몬이 피식 웃자, 레테가 인상을 썼다.
"또 뭘 실실 쪼개는 겁니까? 기분 나쁘게."
"아니, 사람 사는 건 결국 거기서 거기란 생각이 들어서."
"뭐가요?"
"아무것도 아냐."
아까 고행이니 신성관이니 문화적 이질감이 팍팍 느껴지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엄청나게 친밀한 기분이 들었다.
저주학과 축복학, 신성역학과 칠흑역학, 마투학과 성투학 등 대비되면서 흡사한 부분이 많았다.
"아, 왜 자꾸 웃는데요!"
발끈하며 화내는 레테의 말에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아니 뭐. 내가 키젠이 아니라 에프넬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 미친 소리."
레테가 입술을 삐쭉였지만, 시몬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왕 에프넬 1위에게 신성을 배우게 됐으니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어떤 과목부터 가르쳐 줄 거야?"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빨리 내게 배울 걸 내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