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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66화 (16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66화

다음 날 아침.

허억! 허억!

시몬은 양팔과 다리에 저주 팔찌와 발찌를 차고 경사진 산맥을 올라가고 있었다.

사실상 칠흑 운용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한 걸음 내딛기도 힘겨운 상태였지만, 시몬은 꿋꿋이 다리를 움직였다.

'신성연방에 갈 때까지 쉴 시간 따윈 없어!'

체내 칠흑 운용으로 달리면서, 한 손으로는 신성의 On&OFF 연습. 다른 한 손으로는 안나의 방에 있던 신성연방의 문화에 관한 책을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거의 묘기라도 부리는 듯한 광경. 시야도 책으로 가리고 있으면서도 빼곡한 나무들을 잘도 피해가며 무사히 산맥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넌 왜 따라오는 거야?

시몬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다리에 신성을 일으킨 채 달리고 있는 레테가 있었다. 그녀가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심심해서 산책 겸 따라나섰죠. 불만임까?"

"불만은 없는데. 그냥 일하는 거라 재미는 없을 거야."

"괜찮습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하시죠."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다시 책을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레테는 그의 훈련법을 바라보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브탄트 마을부터.'

산맥 중턱에 위치한 브탄트 마을은 대규모 화전을 일구어 농사하는 산지 지형에 위치해 있었다. 고지대에 집들이 쭉 들어선 모습은 아슬아슬해 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도련님!"

"시몬 오빠다!"

근래 보이지 않던 영주 후계자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쿨럭쿨럭! 아이구, 도련님."

나이 지긋한 노인이 다가와 주름살이 가득한 두 손으로 시몬의 손을 꼭 붙잡았다.

"쇤네는 도련님이 쪼끄만 때부터 봐왔습죠. 벌써 이렇게 키젠 학생이 됐다고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감사해요 넬튼."

"역시 그 두 분의 아들이라니까! 도련님은 레스힐의 자랑이에요!"

"무슨 말씀을요 부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얌마, 시몬! 혼자 입학하니까 좋냐? 어? 그리고 키젠에 예쁜 여자 많아?"

"어어, 음. 그런 것 같아. 그보다 톰."

시몬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뒤를 가리켰다.

"저기 뒤에 캐서린 온다."

"아, 미친!"

와하하하하!

작은 산골 마을이었지만 무척 분위기는 좋았다. 시몬도 한 사람 한 사람 영지민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과 교감했다.

"피터 아저씨. 요즘 뭐 어려운 거 없어요?"

"최근 번식기라 그런가, 산에 고블린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계속 밭을 망가뜨려요."

"제가 돌아가는 길에 개체 수를 좀 줄여놓고 갈게요."

영주민들의 건의사항을 듣는 것도 시몬의 역할이었다. 아버지 리처드에게 보고할 건 보고하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거라면 직접 해결한다.

'흐음.'

그리고 멀찍이 뒤따른 채 지켜보던 레테는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끔찍한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무척이나 시몬을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다들 스켈레톤이 되는 게 두렵지 않은 건가? 이런 놈들이 얼굴은 웃고 있지만, 뒤꽁무니로는 몰래 선량한 사람들을 납치해서 언데드로 만든다고 했는데.

'조금 더 지켜보면 알겠지.'

속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시몬을 믿고 따르고 있었다.

"캬하, 시몬!"

그때 캐서린을 피해 다가온 톰이 시몬의 목에 팔을 둘렀다. 시몬보다 네 살은 많지만, 의형제처럼 지냈던 톰이었다.

"......목 아파 톰."

"새끼가 엄살은! 아니, 그보다."

톰이 시몬의 목을 두른 채 자세를 낮췄다. 그러곤 입꼬리를 쭉 올리며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여자앤 누구냐?"

겨울눈 같은 순백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마을을 거닐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 피부는 백옥처럼 희고, 큼지막한 눈동자는 옅은 황금빛이었으며 갈색 로브를 나부끼면서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있었다.

"새끼, 벌써 키젠에서 사귄 여친 부모님께 데려왔냐? 개빠졌네 진짜."

"......그런 거 아냐."

"그럼 누군데?"

시몬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엄마 친구 딸."

"그렇구만. 그래서 딱 말해. 임마."

톰이 시몬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 여자야 아니야? 아무리 내가 막장이라도 의형제의 여자를 건드릴 순 없으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오케이 오케이."

그제야 시몬의 목에 감긴 팔을 푼 톰이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레테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가씨."

"......?"

레테가 하얀 머리카락을 흔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촌뜨기 톰의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와, 미친 X라 예뻐. 살면서 저런 미모는 시몬 어머님 외엔 본 적이 없는데!'

톰은 심장이 마구 날뛰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신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

그 말에 레테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이거 그건가? 이 남자 날 의심하는 건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으로 시몬을 쏘아보았다. 시몬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톰이 성큼성큼 레테에게 다가왔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본인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지만 어느새 담벽이 등 뒤에 닿아 있었다.

"저는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톰이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낮추었다. 레테는 만약에 사태에 대비해 신성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톰의 손가락에는 방금 꺾은 들꽃이 들려 있었다.

"바로 당'신'이라는 신을."

"......."

휘잉― 하고 찬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아, 미치겠다.'

시몬은 괜히 자기가 다 부끄러워져서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찬가지로 당황한 표정의 레테가 들꽃과 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작업 거신 거예요?"

"하하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느끼신다면야 어쩔 수 없죠. 하핫!"

레테는 속으로 안도한 다음 얇은 손가락 두 개를 척 뻗었다.

'?'

저게 무슨 대답이지? 톰이 그런 의문을 느끼는 그때, 레테가 손가락을 휙휙 흔들며 질문했다.

"잘 보여요? 이거 몇 개?"

"두, 두 개요."

"이건 몇 개?"

"세 개."

"이건?"

"하나도 안 폈어요."

"어, 잘 보이시는 것 같은데 이상하시다."

레테가 요조숙녀 같은 걸음으로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은은한 향취가 훅 밀려들며 톰이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레테는 진지한 얼굴로 손을 뻗어 톰의 오른쪽 눈을 벌렸다.

"눈이 삔 건 아닌 것 같은데."

"......뭐, 뭐?"

손을 거둔 그녀가 뒷짐을 지고 미소 지었다.

"당신처럼 근사하고 멋진 남자는 나랑 안 어울려요."

"무, 무슨......!"

"아까 그 캐서린이란 분에 더 집중하는 게 어때요? 저보다 훨씬 아름다우시던데~ 그럼, 안녕!"

레테는 가뿐히 톰을 차버리고는 시몬의 옆으로 다가왔다. 시몬이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표정을 확 굳혔다.

"아, 뭘 꼬라봐? 뒤질라고. 일하던 거나 마저 하십쇼."

방금 사근거리는 목소리는 어디 가고 순식간에 평소의 냉기 날리는 목소리로 돌아왔다. 시몬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너 진짜 성격 특이한 것 같아."

"너만 할까요. 빨리 일이나 해요. 나 여기 길 모르니까 따라다녀야 한다고."

"알았어."

시몬은 마지막으로 촌장 집에 방문했다. 건의사항을 듣고 장부도 체크하고 세금도 수금한 시몬은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밖으로 나왔다.

"또 달릴 건데, 괜찮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달리기나 하십쇼."

시몬은 다음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 마을, 또 다음 마을.

조금도 쉬지 않았다. 네 개의 저주 팔찌와 발찌를 차고 있으면서도 힘든 기색 한번 보이지 않고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다.

그렇게 기어이 리처드가 말한 일곱 개의 마을을 전부 돈 시몬과 레테는 리처드가 기다리고 있는 별관으로 복귀했다.

"어서 오거라 시몬."

리처드가 말했다. 레테는 팔로 뒷머리를 받친 채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레테도 수고 많았다."

"......저야 뭐 딱히 한 일도 없었슴다."

그렇게 대꾸한 레테는 언제나처럼 안나가 누워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리처드의 앞에 왔다.

"말씀하신 마을들 전부 다 돌았어요."

시몬은 영지민들에게 직접 들은 건의사항과 문제점을 전부 리처드에게 보고했다.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블린 부락의 위치는 파악해 뒀다. 오늘 안에 토벌할 테니 걱정 말아라."

리처드가 허공에 칠흑 마법진을 일으켰다. 시몬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집 밖의 마당 바닥에서 대규모 스켈레톤 부대가 일어나 산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버지, 그러면......."

"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리처드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내일부터 두 시간씩 시체폭발을 가르쳐 주마."

"아! 감사합니다!"

시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때 안방에서 레테가 고개를 휙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됐고, 좀 이따 백마법 수업인 건 기억나죠? 임무고 뭐고, 내 수업 때 힘들다고 찡찡대면 대가리 밟을 겁니다."

"그럴 리가. 레테의 수업도 지장 없도록 준비할게."

시몬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백마법 책들을 챙기고는 샤워하러 떠났다. 리처드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았다.

'새로운 걸 배우는 일에 이렇게 행복해하는 아이가 또 있을까.'

아직은 너무 이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시몬이 성인이 됐을 때의 상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몬이야말로 이 경직되고 질질 끌리는 대륙의 오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키가 되지 않을까.

* * *

"똑바로 펼쳐!"

언제나처럼 시몬과 레테는 언덕에서 수업을 재개했다. 다음 배울 학문은 '수호학'이었다.

신성을 이용해 방어막이나 결계 등을 치는 학문. 에프넬에서는 이렇게 방어 전문 과목까지 있었다.

특히 저번 키젠 테러 사건 때 플레마가 친 수호결계는 네프티스마저도 대가를 치르고 통과해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키젠은 7개 과목 전부 공격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런 점은 아쉽단 말이야.'

시몬은 그렇게 생각하며 팔을 뻗었다. 손바닥을 중심으로 신성이 뻗어 나가 얇은 막이 펼쳐졌고, 레테가 물리력을 더한 신성화살을 꺼내 날렸다.

터어엉! 터엉!

'큭!'

공격이 가해질수록 집중력이 흔들린다. 이내 결계 한쪽이 무너져 내리며 시몬의 몸 곳곳에 화살에 긁힌 상처가 났지만, 빠르게 신성을 끌어올려 결계의 무너진 부분을 수복했다.

"이제 좀 쓸 만해졌네요. 바로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죠."

몸에 상처가 나면 내친김에 치료학 수업이었다. 시몬은 피부에 피가 흐르는 상처에 손을 가져다 댔다.

'힐(Heal).'

우웅!

손안에서 하얀빛이 일며 상처가 아물어갔다. 시몬은 신기한 듯 상처가 사라진 부위를 슥슥 만져보았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슴다."

수업의 시작과 마지막은 항상 같은 의식으로 진행했다. 서로 마주 보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문을 외운 다음 오늘도 여신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배꼽 위에 손을 올리고 서로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개를 든 시몬이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계속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난 여신을 믿는 것도 아닌데."

즉시 그녀가 왁! 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건 기본적인 예의라고! 임마! 이것도 거절할 거면 나한테 수업 듣는 거 포기하든가!"

"알았어, 알았어."

괜히 말해봤다가 찍히기만 했다.

시몬은 짐을 챙기면서 백마법에 대해 정리해 둔 노트를 눈으로 한번 쭉 살폈다.

축복학 : 자신이나 타인을 강화하는 버프계통의 백마법.

신성역학 : 7개 과목 중 가장 공격적. 백마법으로 물리력을 구사하거나 폭발시키는 등의 공격마법이 많다.

치유학 : 상처를 회복하고, 독을 해독하고, 병을 낫게 하거나 저주를 푸는 등 회복과 관련된 학문.

성령학 : 에프넬 버전의 사령학. 신성이 아닌 '광휘'를 소모해서 성령이라는 존재를 다루는 백마법. 성령과 연결되지 않은 프리스트는 사용 불가.

수호학 : 보호막이나 결계 등을 펼치는 방어에 특화된 학문.

신수학 : 신수라는 특별한 생명체를 다루고 활용하는 학문.

성투학 : '몽크'라고 불리는 전투 프리스트들이 익히는 격투에 관련된 기술들.

"수업에 대한 거 말고, 혹시 개인적인 질문도 해도 될까?"

"......뭡니까."

"축신치, 성수신투. 에프넬의 일곱 과목 중에 네 지망과목은 뭐야? 에프넬에서도 나중에 전공을 정해야 하잖아."

"아, 그건 그렇죠."

그녀도 편하게 앉아서 두 손을 풀밭에 대고 등을 기울였다.

"전 사실 입학 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신수학' 전공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수학? 그러고 보니 이쪽은 배운 게 없네."

"지금의 당신은 배울 수 없는 학문이니까요."

그녀가 잘난 척하며 검지를 휘휘 흔들었다.

"일단 신수가 있어야 합니다."

"신수?"

신수는 몸에서 신성을 일으킬 수 있는 성스러운 생물들이다. 언데드는 대륙 전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개체 수가 확 늘어나 있지만, 신수의 수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오염되지 않은 맑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한두 마리씩 태어난다고 하는 희귀종이었다.

"......설명만 들어도 엄청 비싸 보이네. 에프넬에서도 그렇게 인기 있는 학문은 아니지?"

"네, 그래요."

그녀가 말도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신수를 구하기도 어렵고 들어가는 사료비에 관리비, 신경 쓸 것도 엄청 많아요. 뭣보다 적의 공격에 죽어버리거나 신수의 수명이 다해 버리면, 그냥 술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게 되니까요."

"어, 그거 어쩐지......."

소환학이랑 비슷하다.

시몬은 아주 잠시 그녀에게서 동질감을 느겼다.

"아, 잠깐! 그럼 넌 신수가 있단 소리잖아."

"네."

궁금증이 확 몰아친 시몬이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여기서 보여줄 수 있어?"

레테는 다름 아닌 에프넬 1학년 수석이다.

대체 어떤 신수를 가지고 있길래 수석이 입학 때부터 신수학으로 전공을 정했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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