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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68화 (16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68화

오늘 국경을 넘는다.

그 사실에 시몬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일찍 일어나서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짐을 챙겼다. 긴 여정이 될지도 모르니 각종 생필품과 여분의 옷, 식량까지 빠짐없이 아공간에 넣었다.

출발 한 시간 전, 리처드는 시몬의 방으로 올라와서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을 해주었다.

이단 심문관들에게 들켰을 때의 대처, 암흑연방에게 우호적인 프리스트들과 그렇지 않은 프리스트들,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국경을 넘어 돌아오는 방법 등등.

어떻게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알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험과 지식이 뚝뚝 묻어져 나오는 조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리처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레테가 널 배신하고 에프넬에게 넘기려 할 때의 이야기다만."

시몬은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건 안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버지."

"......나도 안나를 위해 목숨 걸고 이곳에 와준 레테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시몬은 손을 내리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레테를 100% 믿겠다고 결심했어요. 지금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버리면, 앞으로의 제 행동이나 말투에 레테에 대한 의심이 저도 모르게 나올지도 몰라요. 지금 제 안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레테에게 일관적인 모습만 보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어지는 리처드의 모습에, 시몬은 깜짝 놀랐다.

평소 너무나도 보기 힘든 모습. 리처드가 이를 드러내며 입이 찢어질 듯 미소 짓고 있었다.

"너는 내 걸작이다 시몬."

리처드가 시몬을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버지의 품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부디 몸 무사히 다녀오거라."

"네, 다녀오겠습니다."

시몬이 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도착했다. 현관문 옆에 기대어 초조하게 발을 구르는 레테의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슴까! 마차 시간 맞추려면 서둘러 출발해야 해요."

"미안해. 바로 출발할까?"

"당신이 뭉그적거렸으니까 나도 잠깐만."

레테가 후다닥 안나가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새벽 내내 안나 옆에서 잠들었으면서, 마지막으로 또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안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경건함과 비장함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을 구해드리겠어요."

안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한 레테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다음, 등을 돌려 걸어갔다.

"나도 보고 갈게."

"하여간."

시몬이 안나에게 인사하러 가는 사이, 레테가 밖으로 나왔다. 언제 내려왔는지 리처드가 마당에 있었다.

"네겐 정말로 큰 신세를 지는구나 레테."

"네크로맨서랑 나눌 신세 따윈 없슴다."

그녀가 차갑게 대꾸하며 걸어 나왔다.

아직은 이른 새벽, 주위는 어두웠다. 그녀가 신발 끝을 바닥에 대고 쿵쿵 두들겨본 다음 '흡'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명심하십쇼 네크로맨서. 안나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날 겁니다."

가시가 있는 말이었지만 리처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진심으로 고맙구나. 레테."

"......."

레테가 휙 등을 돌려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갔다. 막 집에서 나온 시몬도 리처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서두르죠. 30분 늦어졌으니까 속도를 더 올려야겠슴다."

"좋아."

두 사람은 각자 칠흑과 신성을 일으키며 눈부신 속도로 산맥을 올랐다. 밝아오는 남색의 새벽하늘은 아름답고, 새벽바람은 상쾌했다.

'드디어 가는구나. 신성연방에.'

키젠 학생들 중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할 방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레스힐의 험난한 산맥을 넘은 시몬과 레테는, 리처드가 미리 예약해 둔 마차를 타고 레스힐의 이웃 영지인 '호브'로 향했다.

두 사람은 마차 안에 나란히 마주 앉았다. 레테는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방음 마법진을 펼치고는, 빠른 템포로 시몬을 테스트했다.

"신도들을 만났을 때 인사는?"

시몬은 두 손을 모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라우스(Laus). 여신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하시길."

"주교급 고위 프리스트를 만났을 때 인사."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위대한 여신께 영광 있으라."

"19고행 중 10번째."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며, 자지 않는 절욕의 고행."

막힘없이 줄줄 대답해 내는 시몬의 모습이 레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 신성연방의 문화에 대해 관심 있었슴까?"

"딱 2주 전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어."

4개 왕국 예법을 분할해서 달달 외우고 다니는 시몬에게 이 정도는 간단했다.

신성연방은 교황이 통치하는 하나의 나라였고, 예법도 거의 통일이었으니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편했다. 집에서 안나의 행동들을 보고 자라서 익숙한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마차에 탄 지 몇 시간이 흘렀다. 슬슬 엉덩이의 감각이 사라지려고 할 즈음, 울퉁불퉁한 숲길에서 매끄럽게 포장된 마차 도로로 넘어왔다.

잠시 후 마부의 외침이 들렸다.

"호브 영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드디어 도착했다. 호브는 레스힐과는 다르게 꽤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시몬은 마부에게 삯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땅에 발을 디디니 이제 좀 멀미도 가시고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쉴 시간 없슴다. 서둘러요."

레테는 처음 레스힐에 들어올 때도 이 호브 루트를 이용했기에, 걸음걸이에 거침이 없었다.

두 사람은 겉에 걸친 로브를 머리까지 꾹 눌러쓰고 도시 외곽의 어두운 골목을 성큼성큼 걸었다.

간혹 뒷골목의 갱들이 레테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발차기 한 방에 5미터를 날아올라 건물 지붕에 머리부터 꽂히는 사건이 있었지만, 별일은 아니었다.

"여기네요."

그렇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골목의 가장 끝에 자리 잡은,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낡은 주점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레테는 일단 시몬을 데리고 빈 테이블에 앉았다.

몇 분 정도 숨을 돌리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주점에 들어온 로브를 입은 남자가 두 사람의 자리에 합석했다.

"늑대의 고백은."

남자가 조용히 말했고.

"미련한 양에게."

레테가 대답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바로 이 남자가 레테를 데려다준 브로커였다.

그를 따라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인적이 닿지 않고 관리가 전혀 안 된 우거진 정원이 보였다. 벽이나 기둥이 넝쿨 식물로 엉망진창 뒤덮여 있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남은 금액부터 정산하겠습니다."

브로커가 등을 돌리며 말했다. 돈을 내란 소리였다.

레테가 옷을 뒤적거리는데 그보다 빨리 시몬이 동전 하나를 꺼내 튕겼다.

"이걸로 비용 치를게요."

브로커가 동전을 받자, 레테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뭡니까? 당신이 왜 내요?"

"아버지가 주신 거야. 교통비 정도는 우리가 내게 해줘."

브로커는 익숙한 상황인 듯 돋보기를 꺼내 동전을 살폈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이 귀한 걸 어떻게......!"

"당신이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이라면."

시몬이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현금으로 지불하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할까요?"

"......진품이 확실하군요. 값은 이걸로 받겠습니다."

브로커는 시몬이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봐 얼른 동전을 품에 넣었다.

"저 낡은 동전이 뭔데 호들갑이래요?"

레테가 물었다.

"옛 제국에서 찍어낸 화폐. 실물가치는 없지만 귀족들이 환장하는 사치품이래."

"아하."

브로커가 손을 싹싹 비볐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까보다 좀 더 공손해진 느낌이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만, 위장 신분은 어느 분께서?"

"이 애요."

레테가 손짓했다. 브로커가 품에서 꺼낸 위조 신분증을 시몬에게 건넸다.

<수습사제. 스카 세라피노>

'앞으로 내 이름은 스카 세라피노구나.'

시몬이 새로운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놓고 있는데 브로커가 옆에서 설명을 곁들였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산행 중 몬스터 공격으로 급사한 인물입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6개월 정도는 무리 없이 신분증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네."

두 사람은 낡은 폐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바닥에 텔레포트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이동 후 뵙겠습니다."

브로커가 먼저 아공간을 밟고 들어갔다. 시몬과 레테도 뒤따라 마법진을 밟았다.

우우웅!

키젠의 편안한 텔레포트 마법진과는 달랐다. 고용된 프리랜서가 작성해서 그런지 탑승감이 최악이었다. 몸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몇 번을 속이 뒤집혔다.

시몬은 휘청거리며 새로운 장소에서 눈을 떴다.

'여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드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에는 대머리독수리 두 마리가 괴성을 내지르며 비행하고 있었다.

"윽."

뒤이어 레테도 이마를 짚은 채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중립지대 할리 사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브로커가 말했다. 시몬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빨간색 의뢰서로 갈 수 있는 중립지대구나!'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할리 사막을 중심으로 전개된 중립지대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지역이었다. 프리스트도, 네크로맨서도 이곳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끝없는 분쟁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브로커가 설명했다.

"암흑연합에서 신성연방으로 바로 이동하는 루트는 완전히 차단됐지만, 중립지대에서 신성연방으로 가는 루트는 필수품 운송에 한해서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성연방으로 향하는 상단에 섞여 이동할 겁니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들어가시죠."

브로커가 앞에 보이는 짐마차에 실린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는데, 무척이나 비좁아 보였다.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기 들어가서 국경을 넘는 거예요?"

"예. 이동에 네 시간쯤 소요됩니다."

시몬은 이제야 상황파악을 마쳤다.

'과연, 이게 밀수란 거구나.'

텔레포트는 막혔고, 그렇다고 아공간에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다. 이런 전통적인 방법이 최선이었다.

"아, 뭐야. 내가 암흑연합으로 넘어올 때는 그냥 상인으로 분장시켜 줬지 않슴까."

레테가 투덜거렸다.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경계가 세 배는 강화됐고, 상인들에 대한 조사도 강해졌어요. 상부에서 감찰까지 파견하는 바람에 검사관에게 뇌물을 먹이는 것도 이제는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아아."

손가락으로 제 미간을 툭툭 두들기던 레테가 고개를 들어 시몬을 보았다.

"당신 먼저 들어가십쇼. 나는 다른 상자에......."

"죄송하지만 고객님."

브로커가 두 손을 비볐다.

"한 상자에 두 분이 들어가셔야 합니다."

"뭐어어어어?!"

레테가 기겁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곤 성큼성큼 다가와 브로커의 멱살을 붙잡았다.

"이런 씁! 너 뭐 하는 새끼야?"

그녀가 팔을 들자 브로커의 두 발이 붕 떠올랐다.

"허억! 이, 이러지 마십시오!"

"니네 지금 나 엿 먹이는 거지? 이 좁은 곳에 저딴 새끼랑 같이 들어가라고?"

"어, 어쩔 수 없습니다! 화물 리스트에 이 빈 상자 하나 마련하는 것도 정말 큰 수고를 들였습니다! 좀 더 편한 루트로 들어가시겠다면 석 달 정도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큭!"

아무리 리처드가 같이 있다고 해도 석 달이나 지체되면 안나가 위험하다. 레테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이내 브로커를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그만해 레테. 4시간만 참으면 되잖아."

반면 빠르게 상황에 수긍한 시몬은 직접 상자에 들어가 앉아보기까지 했다.

"오, 들어오니까 보기보단 아늑한데."

시몬이 상자를 가볍게 두들기며 긍정적으로 말했다.

레테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아, 여신이시여.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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