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2화
뚝. 뚝. 뚝.
이단 심문관 메틴의 메이스에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메틴에게 덤벼든 덩치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메이스를 손에서 놓은 그는 이제야 의식이 돌아왔다.
'아, 또 홧김에.'
눈이 회까닥 돌아가서 괜한 사람 한 명 죽일 뻔했다.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라 이단과 네크로맨서였다.
메틴은 쓰러진 덩치 위로 올라가 앉더니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힐(Heal)>
우우웅!
피범벅이 된 덩치의 얼굴이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메틴은 반대쪽 손으로 통신 수정구를 꺼내 입 앞에 댔다.
"여기는 심문관 메틴. 대기 중인 인원 모두 출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잠시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더니 이내 피곤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뭐냐? 오늘은 일하는 날도 아니잖아.
"아무래도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냄새가 났습니다."
-.......
잠시 잡음이 들리다가, 남자가 대답했다.
-다섯 명. 그쪽으로 보내겠다.
* * *
무수한 인파 속에 파묻힌 시몬은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주위가 시끄럽기도 했고, 이런 장소가 늘 그렇듯 술 취한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충 또 어디서 싸움 났겠거니 생각했다.
'얼굴을 가릴 건 샀고, 여행 중에 입고 다닐 옷도 한 벌 있어야겠는데.'
가면을 구매한 시몬의 다음 목표는 로브였다.
지금 시몬이 입고 있는 건 아무런 특징 없는 갈색 로브. 집에서 아무거나 들고 나왔는데 벌써 해지고 찢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이참에 좋은 거로 하나 바꿀 생각이었다. 이 2천만 블랑은 되도록 이번 여행에서 다 쓰고 가고 싶었다. 돌아가면 쓸 수 없는 화폐였으니 말이다.
시몬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노점이 아닌 꽤 큰 규모의 고급스러운 의상 상점으로 들어갔다. 부티나는 상점 주인이 활짝 웃으며 시몬을 맞아주었다.
"사제용 로브가 필요해요. 후드가 달린 거로."
그 말에 상점 주인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수직적 신분제를 가진 신성연방인 만큼, 사제용 로브는 프리스트만 구매할 수 있었다.
'그냥 옷을 사는 것도 신분에 따라 통제되다니, 좀 낯설긴 하네.'
시몬의 가짜 신분증을 확인한 상점 주인은 간단한 옷 치수를 물어보고는, 바로 옷장 속에서 하얀 로브 한 벌을 가지고 왔다.
복잡한 무늬 없이 깔끔한 디자인, 수습사제 연기를 해야 하다 보니 흰 로브도 있으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로브의 가장 큰 특징이죠! 이렇게 뒤집어 입을 수 있답니다!"
펄럭!
상점 주인이 로브를 뒤집자 멋스러운 코트 스타일로 바뀌었다. 색상은 똑같이 흰색이었다.
"여기에 마나를 살짝 부여하면."
그녀가 수정구 하나를 손에 쥐고 코트에 올리자, 코트 전체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색상도 바뀐답니다!"
"멋지네요."
색깔이 바뀌고 뒤집어 입을 수 있는 로브인가.
이건 꽤 쓸모가 있어 보였다.
상점 주인이 열심히 재질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는데, 시몬은 슬쩍 코트 끝을 붙잡고 소량의 칠흑만 흘려보았다.
'오.'
과연, 코트 색이 검은빛으로 바뀌었다. 안은 흰색 로브에, 뒤집어 입으면 검은색의 코트라. 마음에 쏙 들었다.
"이걸로 할게요."
마법 아이템이라 가격이 좀 세긴 했지만, 시몬은 이 옷이 마음에 들었다.
200만 블랑을 지불하고, 하얀색 로브로 뒤집어서 몸에 두른 시몬은 뿌듯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수중에는 1,800만 블랑이나 남아 있었다.
웅성 웅성 웅성.
그런데 바깥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시몬은 얼른 관중 속으로 숨어들었다. 무슨 일이 터진 거라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이단 심문관이다!"
"피해, 피해."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한 무리의 프리스트들이 야시장 한복판의 인파들 사이로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철퇴, 가시관, 고문 바퀴 등 끔찍한 물건들을 몸에 차거나 손에 들고 질질 끌고 있었다.
음기가 깃든 듯한 퀭한 눈에, 흰옷에는 핏자국이 튀어 있었으며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냥 건드리기만 해도 사람을 찢어 죽일 것만 같았다.
'......저게 이단 심문관이라고?'
시몬의 눈에는 그냥 피에 미친 살인자 무리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미 몇몇 사람들에게 '심문'을 하고 있었다. 그냥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사람을 고문 기계에 집어넣고 있었다. 심문당하는 사람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너 뭐야, 뭐야."
주둥이가 새 부리처럼 튀어나온 심문관이 주민을 가시관으로 고문하며 말했다.
"진짜 이단 아니야? 아니야?"
"아,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광경을 본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나려 했다. 그러자 이단 심문관들이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 너 왜 도망가? 이단이야?"
"잡아. 잡아. 잡아."
심문관들이 신성을 일으켜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 인파 속에 떨어졌다. 곳곳에서 혼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해하지 마. 다 바닥에 엎드려."
"일로 와. 일로 와."
주둥이가 튀어나온 이단 심문관이, 기어이 도망치려던 한 여성을 인파 속에서 찾아내 머리채를 붙잡아 끌고 왔다.
"저, 전 이단이 아니에요! 로헨 마을의 신도라고요! 여, 여기 신분증도 있어요!"
그녀가 울먹이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심문관이 그걸 들고 대충 눈으로 훑더니 이내 바닥에 떨어뜨리고 신발로 콱 밟았다.
"그런 종이 쪼가리. 어떻게 믿어 믿어? 우린 우리의 방식대로 심문해."
"꺄아아아! 누가 제발 좀!"
그녀가 울먹이며 외쳤지만 사람들은 애써 시선을 피하며 무력하게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이건.......'
시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심문 따위가 아니야.'
이단 심문을 핑계 삼은 지독한 공포 분위기 연출. 왜 이곳의 사람들이 프리스트만 보면 벌벌 떠는지 알 것 같았다.
"들어가. 들어가."
"아아, 제발!"
이단 심문관이 아공간에서 커다란 고문 바퀴를 꺼냈다. 그 바퀴에 여자를 밀어붙여 두 팔과 다리를 고정시켜 버렸다.
바퀴가 돌아가면, 뒤쪽의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에 온몸이 긁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가 비명을 질러댔다.
"말해 말해. 너 이단이지?"
"저, 저, 저는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여신님만을 섬겼습니다! 부모님은 클레릭이셨어요! 제발!"
"믿을 수 없어. 분장했을 수도 있잖아 있잖아."
이단 심문관이 바퀴를 붙잡았다.
"여신에 대한 믿음이 정말로 진심이라면 이것도 버틸 수 있겠지?"
"아아아아, 제발......!"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시몬도 바보는 아니었고, 여기서 나가서 모습을 드러내면 모든 게 허사가 되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들키지 않게. 기회는 한 번뿐이야.'
시몬이 조심스럽게 손을 펼쳐 마법진을 일으키려는 바로 그때.
"아―"
인파가 파도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폭죽처럼 들렸다.
"니들 지금 뭐 함까?"
시몬의 눈도 동그랗게 변했다. 에프넬의 교복을 입은 소녀가 이단 심문관들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레테!'
그녀는 인파에 섞여 있는 시몬 쪽을 슬쩍 보더니,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손가락으로 신호했다.
이단 심문관들은 갑작스러운 에프넬의 등장에 당황한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야, 니들."
그녀가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씹냐?"
"......."
그때 다섯 명의 이단 심문관 중, 가시 달린 사슬낫을 든 남자가 설렁거리며 앞으로 나왔다. 그는 노골적인 불쾌감을 흘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공무 집행 중입니다. 사제님."
그의 입술이 열리며 괴물처럼 삐쭉삐쭉 튀어나온 이빨이 보였다.
"아무리 에프넬이라고 해도 이단 심문에는 관여하실 수 없습니다. 좋게좋게 물러가 주시면......."
퍽!
레테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남자가 휘청이며 한쪽 무릎을 꿇자 바로 이어서 뺨을 올려붙였다.
짜악!
거의 천 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있는 이곳에서, 뺨을 때리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일어나 새꺄."
"......."
붉어진 뺨의 이단 심문관이 레테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뒤쪽의 후배 심문관들은 분노보다는 기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주둥이가 튀어나온 남자는 헤실거렸다.
"저 여자. 심문해야 해. 벗기고, 가두고, 가죽을 찢어서......."
"넌 입 다물어 좀!"
동료 심문관이 기겁하며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때 레테에게 뺨을 맞은 선임 심문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드높은 에프넬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막 나가시는데. 용이든 지렁이든 각자 자기 역할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우리 일 좀 합시다, 일."
"내가 왜 막 나가겠어요?"
레테가 픽 웃으며 팔짱을 꼈다.
"당신들, 정확히 여기 관할 맞고 오늘 이 시간에 이단 심문하는 거 맞아요?"
"......."
선임 심문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레테가 손목에 찬 시계를 두들겼다.
"혹시 상부 승인도 안 받고 니들끼리 들어와서 주민들 고문하고 이 난리 치는 거라면, 우리 할 이야기가 참 많겠네요. 그죠?"
"......."
"내가 일정 싹 다 체크해서 다 뒤집어엎고 니네 상사 머리 박게 할까? 아님 지금 그냥 꼬리 말고 꺼질래?"
선임 심문관이 이를 악물었다.
'에프넬 소속인 것만 빼면 신분은 그냥 평사제인 학생 새끼가.......'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날뛰기에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여기서 무슨 행동을 더 취해서 에프넬을 자극하는 것보다는, 물러나는 게 최선이었다.
"가자."
선임 심문관이 등을 돌리며 말했다. 후배들이 당황하며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선임 심문관은 그 말을 묵살하며 말했다.
"다 풀어줘. 복귀다."
비로소 고문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풀려났다. 고문 바퀴에 묶여 있던 여자는 연신 레테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레테는 몸조리 잘하라고 말하고는 고문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러 다가갔다.
'근데 그 인간은 어딨지?'
동시에 선임 재판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우릴 부른 메틴 그 새끼는 어딨는 거야?'
* * *
"큭!"
시장 길목을 내달리던 시몬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짐승의 이빨 같은 것들이 날아와 벽에 연달아 틀어박혔다.
"찾았다! 악취의 원이이이인!"
갑자기 웬 미친놈이 뭔 냄새가 난다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시몬은 급히 도망쳤고, 미친놈은 사람들을 밀치고 내던지며 달려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신성마법인지 허공에서 마구 이빨을 만들어내 뿌리고 있었다.
'이러면 애꿎은 사람들만 휘말리겠는데.'
시몬은 거리를 빠져나가 인적이 드문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하하! 도망치는 건 포기한 거냐!"
쿵!
어느새 시몬을 앞지른 프리스트가 바닥에 착지했다.
"네놈을 심판하겠다. 네크로맨서!"
시몬은 웃는 얼굴로 성호를 그리며 두 손을 모았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저는 수습사제 스카 세라피노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단 심문관 아니신가요? 공격은 그만두시고 일단 심문을 하시는 게......."
"심문 따위!"
메틴이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시몬의 시선도 위로 올라갔다.
어느새 머리 위의 하늘에 백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아차!'
"내 '코' 앞에선 그 어떤 심문도 필요 없다!"
<엑소시즘>
쿠르르르르릉!
마법진에서 내려온 한 줄기 신성벼락이 시몬의 몸에 내리꽂혔다. 시몬의 몸이 순식간에 빛으로 뒤덮이며 폭발을 일으켰다.
"크하하!"
네크로맨서에게 극히 치명적인 신성마법인 엑소시즘. 제대로 맞으면 코어와 몸이 동시에 신성으로 정화된다.
"오늘도 한 건 해......."
하지만 메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결?"
갑자기 광풍이 휘몰아치며, 신발 밑창이 자신의 눈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쩌어어어어엉!
메틴이 코에서 코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쿠쿠쿵!
메틴의 몸이 골목의 쓰레기더미에 떨어졌다. 바닥에 가뿐히 착지한 시몬이 탁탁 로브를 털었다.
"아니라니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