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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74화 (174/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4화

짝퉁 교복을 입은 에프넬 2학년이라.

재미있어 보이니 잠시 장단에 놀아나 주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테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선배님께서 객실에 계신지 몰랐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엘렌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내, 내가 선배님...... 이라고요?"

"네."

레테는 겉에 걸치고 있던 로브의 단추를 풀어서 옆으로 벗었다.

엘렌과 같은 하얀 상의와 스커트로 이루어진 에프넬의 교복이었지만, 옷에서 나는 광채부터가 달랐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니 누가 봐도 비교가 확 됐다.

갑자기 엘렌이 입고 있는 교복이 엄청나게 어설프게 보일 지경이었다.

"저는 선배님의 직속후배, 에프넬 1학년, 레테 샤르데나라고 합니다. 선발 1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엘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엘렌을 내세우고 뒤에서 낄낄거리던 소녀들도 더 웃지 못했다.

"왜 그러시나요 선배님?"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몸을 숙이고 있던 레테가 고개만 슥 들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안색이 나빠 보이세요."

"아, 아, 아, 아무것도 아닙! 아니, 아니야! 오호호호!"

......진짜가 나타났다.

설마 이 열차에 현역 에프넬 학생이 타고 있을 줄이야. 그것도 선발 1번 입학생이란다.

진땀을 흘리던 엘렌이 도움을 구하는 시선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벌써 소녀들은 도망친 뒤였다.

"엘렌 자일? 엘렌 자일......."

미간을 구기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레테가 입을 열었다.

"대단히 실례합니다만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 혹시 어디 과목 전공이신지 알 수 있을까요?"

"시, 신성역학 전공입! 아, 아니. 전공이란다! 오호호!"

"아~ 그러시구나."

레테가 두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상냥한 눈웃음을 지었다. 엘렌도 침을 꼴깍 삼키며 억지 미소를 흘렸다.

혹시 이대로 넘어가 주려나? 이번 위기만 넘기면 그냥 다음 역에서 내리.......

"우연이네요."

레테가 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안 그래도 제 지도교수님께 보고하려고 했거든요. 신성역학 전공이시면 라흘 교수님 아시죠?"

"라, 라흘 교수님......!"

"인사드리실래요?"

엘렌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흘 교수에게 짝퉁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들키면 정말로 끝장이다.

그녀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어버버 하고 있자, 레테는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며 통신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에프넬 사칭은."

레테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진짜 중죄란 거, 알긴 아냐?"

* * *

한편 화장실에 갔던 시몬이 다시 1등실로 돌아오고 있었다.

'와, 신기해. 어떻게 화장실이 열차 안에 있을 수 있지? 오물은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던 시몬은 뒤늦게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1등실의 객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아깐 그렇게 떠들더니, 다들 자나?'

시몬은 의아함을 느끼며 A2번 객실로 복귀했다.

"어?"

조금 당혹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레테가 다리를 꼬고 앉아 와인잔을 흔들고 있었고, 그 옆에는 레테와 똑같은 에프넬 교복을 입은 소녀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을 들고 있었다.

"아! 귀에 팔 똑바로 안 붙임까?"

레테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두 팔을 번쩍 세웠다.

"엉덩이로 다리 깔고 앉지 마! 엉덩이 들어! 무릎 펴지 마. 그래 그 자세 계속 유지하십쇼. 진짜 확 뒤지기 싫으면."

부들부들 다리를 떨며 벌을 서고 있는 소녀, 시몬은 무척이나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셨슴까."

시몬을 발견한 레테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제3자의 등장에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엘렌은 소심하게 눈동자만 굴려서 시몬을 보았다.

"어?"

엘렌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어어?"

전혀 이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엘렌은 너무 놀라서 자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시몬도 그녀를 알아보고는 쓰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엘렌."

* * *

엘렌 자일.

키젠에 들어오고 난 뒤 시몬의 첫 임무에서 만났던 에프넬의 프리스트 소녀.

그 정체는 그냥 에프넬 퇴학생이었다. 동생들을 먹여 살릴 돈을 벌기 위해, 브로커를 통해 암흑연합까지 넘어와서 일하다가 시몬과 부딪힌 일이 있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었던 거야?"

시몬이 엘렌의 가짜 교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해요. 그날 이후로 그만두려고 했는데...... 역시 에프넬의 프리스트로 활동하는 것과 일반 프리스트로 활동하는 건 의뢰비 차이가......."

"완전 막장이네."

자초지종을 들은 레테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방금 벽면에 그려놓은 음성차단 백마법진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다시 한번 체크한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에프넬을 사칭한 걸 넘어서, 그 가짜 신분으로 암흑연합에 넘어가서 일했다고? 진짜 미쳤슴까?"

엘렌이 고개를 푹 숙이자, 레테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한때 에프넬에 다닌 건 사실이니까 선배 대우는 해드리려고 했더니, 당신은 그냥 질이 나빠. 지금 당장 하늘섬 연락해서 감찰들을 부르겠슴다."

"아, 아, 안 돼!"

엘렌이 레테의 다리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아 씨! 이거 안 놔?"

"나 그 사람들에게 잡혀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내가 죽으면 동생들은......!"

"진정으로 동생들을 위해서였다면 그딴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레테가 거머리처럼 다리에 들러붙은 엘렌을 냉정하게 떨어뜨렸다.

"혹시 죽거나 감옥에 갇히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쇼. 선배의 동생들은 내가 책임지고 반듯한 수도원에 보내놓을 테니까."

"아, 안 돼! 제발!"

엘렌이 아무리 눈물로 애원해도 레테는 흔들리지 않는 장벽과 같았다.

도저히 용서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엘렌의 시선이 이번엔 시몬 쪽으로 향했다.

"시, 시몬! 제발 도와주세요!"

"그 사람한테 엉겨 붙어도 소용없어요."

레테가 비웃음을 흘렸다.

"여긴 신성연방인데 저 사람이 무슨 힘이 있......."

"걱정 마 엘렌."

시몬이 엘렌의 어깨를 토닥였다.

"레테는 널 감옥으로 보내지 않을 거야."

"시몬......!"

엘렌의 눈이 감격으로 그렁그렁해졌다. 그 말에 레테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이없네. 당신이 뭔데 그딴 소리를 하는 검까."

"사실 레테도 죄를 지었거든. 날 여기까지 데려온 게 레테야."

"야!! 이 미친놈아!"

레테가 버럭 소리 지르며 시몬의 멱살을 붙잡았다.

"죽고 싶냐! 그걸 왜 말해?!"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시몬의 입장에선 엘렌이 붙잡히면 곤란했다. 심문이나 고문의 과정 중 그녀의 입에서 시몬의 이름이 튀어나오거나 정체가 까발려지면 곤란했으니까.

빠르게 상황파악을 마친 엘렌이 확 밝아진 얼굴로 손뼉을 쳤다.

"아하! 그럼 이제 우리는 공동운명체인 거네요!"

"큭......!"

레테가 신경질적으로 시몬의 옷깃을 놓고는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지긋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번 일은 기억할 검다."

"미안해."

시몬이 사과했다.

"하지만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엘렌이 붙잡히면 우리가 곤란해지는 건 맞잖아? 굳이 그런 리스크를 질 필요는 없다고 봐."

"그건 맞는데, 이딴 식으로 저 선배랑 엮이고 싶지 않았슴다."

"걱정 마. 엘렌은 입이 무거우니까."

그렇지? 하고 시몬이 엘렌을 보고 묻자, 그녀는 충성심 가득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레테는 무척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선배, 누가 손 내리래요?"

레테의 한마디에 즉시 온순한 양이 된 엘렌이 양팔을 번쩍 들었다.

이후 세 사람은 같은 객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렌은 새로운 의뢰를 해결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는데, 두 사람보다 목적지가 멀어서 기차 여행 내내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일곱 동생들도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근데 희한하네요. 그딴 짝퉁 교복을 입고 있는데 열차에 있는 이단 심문관들한테 안 걸렸슴까?"

레테의 물음에 엘렌이 민망한 듯 헤헤 웃었다.

"나 사제신분인 건 확실하니까요! 이 옷은 그냥 코스프레라고 하니까, 엄청 한심하단 눈으로 보는 것만 빼면 그냥 넘어가 주던데요?"

"자랑이다 아주."

이단 심문관의 목적은 이단을 찾아내 심판대에 세우는 것. 이런 종류의 사칭 문제는 본인들의 담당이 아니니 그냥 넘어가 준 모양이었다.

시몬이 레테를 보았다.

"근데 슬슬 팔은 좀 내리게 해줘도 괜찮지 않아?"

두 시간이 지났지만 레테는 아직도 본인 선배를 죽일 듯이 벌주고 있었다. 이제는 엘렌도 힘겨운 듯 팔을 달달 떨고 있는 게 안쓰러웠다.

"간섭하지 마세요. 이건 프리스트들의 일입니다."

레테가 어림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퇴학생 따위가 에프넬을 사칭한 걸 생각하면 이딴 건 벌도 아니에요. 애들 장난이지. 그쵸 선배?"

"으, 응! 맞아요! 아하하하!"

바로 그때였다. 뭔가 장치를 해둔 듯, 레테가 움찔하더니 입을 열었다.

"심문관들이 옵니다. 엘렌 선배도 빨리 자리로 돌아가요."

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엘렌이 두 사람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레테는 빠른 동작으로 벽에 설치한 음성차단 마법진을 지우고 자리에 앉아 머리를 정리했다.

시몬은 갑자기 긴장감이 확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레테에게 빌린 성전을 꺼내 읽는 척했다.

"음."

레테가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그거 읽는 척하는 거, 좀 오버하는 것 같지 않아요?"

"광신도 컨셉으로 가려고."

"아, 예. 들키지만 마십쇼."

저벅. 저벅.

정말로 이단 심문관들이 나타났다. 손에 무기와 고문도구들을 들고 철커덩 소리를 내며 복도를 지나갔다.

열차 내에 쥐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심문이 있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프리스트들과 그 가족들이 머무는 장소라서 그럴까. 시장에서 봤던 심문관들에 비해서는 태도가 공손했다.

시몬은 다른 객실에서의 이단 심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어려운 건 없었다. 어느 정도 상식적인 질문들. 시몬은 이 정도 난이도면 쉽다고 생각했다.

저벅. 저벅.

그리고 마침내, 이단 심문관들이 레테와 시몬이 있는 곳에 멈춰 섰다.

"휴식 중에 대단히 실례합니다."

선임 이단 심문관 바카라가 어느 때보다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은 레테가 입고 있는 교복으로 향해 있었다. 뒤쪽의 다른 심문관들도 레테를 보고는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저번 역에서 탑승하셨더군요. 잠시 심문이 있겠습니다. 두 분의 믿음을 의심해야 하는 죄악을 용서하시길, 상부의 절차에 따른 일이니 협조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레테가 시크하게 고개를 까닥거렸다.

"네, 네. 마음대로 해봐요."

바카라가 간단한 질문을 몇 가지 던졌고 레테는 뭐 그딴 걸 묻느냐는 듯 툭툭 내뱉었다.

조금 꼬아서 내는 질문도, 그 핵심을 파고드는 대답을 하기까지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에프넬 학생다운 탄탄한 신앙심에 심문관들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은 이 정도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체검사를 하겠습니다."

"아, 진짜. 귀찮게."

"면목 없습니다."

바카라가 옆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 이단 심문관이 걸어와 말했다.

"사제님, 탈의실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시몬 혼자 남겨지는 게 불안했던 레테가 이를 뿌득 갈았다.

"아니, 꼭 이딴 식으로 FM으로 해야 함까?"

"죄송합니다. 최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협조해 주십시오."

아무리 에프넬의 학생이라고 해도, 공식 절차를 밟고 실행하는 이단 심문관의 심문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여성 심문관과 걸어가던 레테가 불안한 시선으로 남겨진 시몬을 돌아보았다. 시몬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닥했다. 레테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탈의실로 향했다.

"네, 이제 사제님 차례입니다. 사제님은 우선......."

"선배, 잠시만."

그때 바카라를 비집고 젊은 이단 심문관이 들어왔다.

그는 객실 내로 들어오자마자 다리를 들어 냅다 책상을 쾅! 소리가 나게 짓밟았다.

"오랜만이야."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저번 야시장에서 마주친 이단 심문관, 메틴이었다.

"그땐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갔지? 이번엔 어림도 없어."

메틴이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흐흐! 바로 이 칠흑의 냄새. 넌 죽었다. 네 정체를 여기서 낱낱이 까발려 주마!"

"메틴!"

바카라가 메틴의 어깨를 짚었다.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다. 섣불리 사제님을 이단으로 확정 짓는 무례를......."

탁.

메틴이 바카라의 팔을 치우고는 살벌한 표정으로 시몬의 얼굴을 응시했다.

"넌. 이 자리에서. 죽을 거야."

그때였다.

메틴은 자기가 생각해도 놈을 궁지를 몰아넣었다고 생각했지만, 시몬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악의라는 티끌도 느껴지지 않는 그 포근하고 태연자약한 미소에 메틴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심문관님께서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으신 모양입니다."

시몬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신성을 일으켰다.

기분 좋은 은은한 신성이 퍼져서 객실을 채우자 다른 심문관들이 작게 감탄성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순도 높은 신성은 오랜만인데.'

'내 마음이 다 깨끗해지는 것 같아.'

메틴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자, 뭐든 물어보시죠."

시몬이 미소 지었다.

냄새인지 뭔지 어떻게 알아챘는진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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