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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75화 (175/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5화

"기도문 3절."

"만물이 위대한 데바를 어머니로 받들게 하시며."

"제 10고행."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며, 자지 않는 절욕의 고행입니다."

"말라오기 8장 30절 말씀부터."

"마몬인들의 침범에 라벤 사제는 튼튼한 성벽을 세우고 제단을 건설했습니다. 성벽 위에는 허수아비들을 세웠습니다. 여신께서 이를 어여삐 여기시어, 허수아비들을 천국의 병사들로 변신시키니 마몬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여 떠났습니다."

오오-

막힘없이 척척 대답해 내는 시몬의 모습에, 주위에서 듣고 있던 심문관들마저도 순수하게 감탄했다. 악에 받친 메틴이 거의 20분 동안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부었지만, 시몬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 말라오기 8장? 나도 그런 디테일은 기억 못 하는데."

"대단하네요."

"신참, 그만하고 가자. 왜 저 독실한 친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메틴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있을 수 없다. 말도 안 된다. 이렇게 네크로맨서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놈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걸 그냥 놔줘야 한다고?

이가 빠득빠득 갈렸다. 그냥 심문하지 말고 목부터 쳤어야 했다. 이렇게 정당하게 심문을 통과해 버리면, 자신이 시몬의 신실함을 증명해야 하는 꼴이 아닌가.

"이봐."

선임 심문관 바카라가 인상을 굳혔다. 그도 슬슬 메틴의 독단에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여기서 계속 붙잡혀 있을 시간 없어."

"딱 하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씹어먹듯 대꾸한 메틴이 시몬을 향해 고개를 쭉 들이밀며 말했다.

"제 8고행."

"끓는 모래 위에 몸을 굴리며 나흘을 버티는 고행입니다."

"아니, 그거 말고."

메틴이 히죽 웃었다.

"수습사제라고 했지? 제 8고행이 막 끝난 뒤 두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전부 다 말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거 아냐? 버벅거리면 끝인 줄 알아. 자, 시작."

과거 기억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

이게 만약 본인이 하지 않은 경험이라면, 말이 많아질수록 실수가 생기거나 거짓말이 더해지기 딱 좋다.

하지만 시몬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스읍 숨을 들이마셨다.

"제가 8고행을 막 끝내고 몸을 일으켰을 때, 목은 타들어 갔고 살갗이 다 벗겨져 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돗자리를 깔고 며칠간 제 고행을 지켜보던 어르신께서......."

"이게 뒤질라고. 생김새까지 싹 다 안 말해?"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썹이 짙고 입술이 두툼한 50대 나잇대의 그분이 이마에 주름살을 그리며 제게 물통을 넘겨주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보고 죽은 아들이 생각난다고 하셨습니다.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무리한 고행으로 면역체계가 무너졌고, 그해 병에 걸려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 첫째 아들. 어르신께서는 일찍 아들을 데려간 여신님을 한때는 원망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저를 보시고......."

"그만! 그만! 그만하면 됐소!"

바카라가 소리쳐서 시몬의 말을 막았다.

메틴과 심문관들이 눈에 힘을 주며 바카라를 보았다. 메틴은 왜 심문을 끊냐는 항의 때문이었고 심문관들은 왜 이야기의 중요한 순간에 끊냐는 항의였지만 바카라는 가볍게 무시했다.

"신실한 형제의 협조에 감사를 표하는 바요! 그대의 신앙을 한순간이라도 의심해서 대단히 실례가 많았소. 자, 가자!"

바카라와 심문관들이 2등석으로 넘어갔다. 메틴은 끝까지 심문을 해봐야 한다며 발버둥 쳤지만 선배들에게 뒷덜미를 붙들린 채 질질 끌려갔다.

쿵! 소리와 함께 객차의 문이 닫히고, 비로소 긴장감이 해소되었다. 시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끝났슴까?"

마침 저쪽도 끝났는지, 레테가 순백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복도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응, 어떻게든 잘 넘어갔어."

"막 꼬장 부리는 거 없었어요?"

"메틴 그 사람이 악착같이 물어보긴 했는데, 전부 우리가 준비한 상정 내였어."

"죽도록 암기시킨 보람이 있네요."

그녀가 피곤한 듯 객실로 들어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몬이 입을 열었다.

"난 그 심문관한테 붙잡혀서 그렇다 치고, 넌 왜 이렇게 늦었어?"

레테가 말도 말라는 듯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FM으로 다 했죠 뭐. 그 미친 여자가 속옷까지 다 벗으라잖아! 아무리 심문관 이슈가 있어도 요즘 누가 그렇게까지 해? 사람 짜증 나게 진짜."

그녀가 창가에 팔꿈치를 올리고 분노를 쏟아냈다. 시몬은 애써 웃어넘기며 말했다.

"이제 힘든 거 다 끝난 거지?"

"네. 끝났어요. 생명의 나무까지 한 방에 갈 테니 힘 비축해 놓으세요."

물론 그건 두 사람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즐! 거운! 이단 심문이다 이 새끼야!"

메틴은 끈질기게 이단 심문 일정을 추가해 댔고, 할당받은 대부분의 시간을 시몬을 심문하는 데 썼다.

그리고 물어볼 테면 물어보라는 듯 어깨 펴고 술술 대답하는 시몬도 그에 못지않았다.

두 사람은 신경전을 벌이며 심문과 대답을 반복했고, 결국 바카라나 선배 심문관들이 작작하라며 메틴을 데려가는 엔딩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기차 여행 2일 차.

오늘도 메틴에게 시달린 시몬이 지친 피곤한 표정으로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

결국 메틴이 별 수확 없이 다음 객실로 넘어가려는데, 그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테가 불러세웠다.

"심문관님."

"뭡니까."

메틴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레테가 턱을 괴며 툭 내뱉듯 대꾸했다.

"심문 다 끝나시면 잠깐 나 좀 봐요."

그렇게 잠시 후, 다른 객실의 이단 심문까지 마친 메틴이 레테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가 삐딱하게 선 채로 머리카락을 쓸며 말했다.

"아까 부르셨습니까."

메틴은 불려가는 길에 슬쩍 하나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시몬은 화장실에 가서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테가 따라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복도로 나왔다.

"엘렌 선배도 잠깐 와봐요."

"아, 넵!"

레테는 엘렌도 데리고 계속 걸어갔다. 여러 객차들을 지나서 꼬리 칸의 화물실까지 들어왔다.

"뭡니까 사제님."

메틴이 귀찮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에도 공무 수행해야 하니 짧게 끝내주십쇼."

"엘렌 선배."

레테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망봐요."

"네?"

쩌어억!

엘렌의 급격히 눈동자가 커졌다. 메틴이 자신의 복부를 움켜쥐며 비틀거리고 있었다.

콰직!

이번에는 메틴의 코를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그가 코에서 피를 쏟으며 휘청거리다가 벽에 등을 기댔다.

바로 메틴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당긴 레테가 그의 뺨을 짝! 소리가 나게 후려갈겼다.

"아, 아......!"

엘렌이 입을 틀어막으며 공포에 떨었다. 레테가 착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 망보라고!"

"아, 네, 넵!"

퍼억! 쩍! 빠직! 퍽!

화물실이 핏물로 낭자했다. 코와 입에 피를 줄줄 흘리며 일방적인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메틴은 막지도 않았고 반격하지도 않았다. 그저 죽일 듯 노려보는 눈빛만 그대로였다.

"야."

레테가 메틴의 멱살을 붙잡았다.

"너 진짜 구질구질한 거 알지? 왜 자꾸 걔 건드려? 그 새끼랑 날 엮어서 잡아넣으려고 이러는 거냐?"

메틴이 침을 바닥에 퉤 뱉었다. 핏물에 적셔진 이빨 하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할 뿐입니다."

"근데 X발 내 눈치는 보지도 않네?"

짜아아악!

다시 한번 뺨을 후려치자 메틴이 처음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빡치지?"

레테가 에프넬 교복 상의를 붙잡아 공중으로 날려버리며 말했다.

"그럼 계급장 떼고 붙어. 임마."

그 말에 메틴이 옷에 달린 심문관 뱃지를 붙잡아 떼더니 바닥에 팍! 소리가 나게 내리꽂았다. 신성을 일으킨 그가 아공간에서 가시 메이스를 꺼냈다.

"넌 이제 죽었......!"

쩌어어어어어어억!

메틴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레테의 신발 밑창이 그의 얼굴을 짓밟은 채로 벽까지 끌고 갔다.

"커, 커헉......!"

반응도 못 한 속도.

압도적인 힘.

메틴의 흔들리는 동공이 정면을 응시했다. 어두운 화물실에서 금빛의 두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팔에는 뱀 같은 생명체도 감겨 있었다.

메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압도당했다.

이게 진짜 1학년이라고?

"크윽!"

메틴이 즉시 레테의 하얀 다리를 붙잡아 고정시키고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그대로 다리를 분지를 생각이었지만 바닥에 고정된 그녀의 왼 다리가 떨어지며 메틴의 머리를 차올렸다.

쩌어어억!

메틴의 등이 날아가 나무상자를 박살 냈다. 곡물가루에 파묻힌 그가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크아아아아!"

메틴이 즉시 오른 주먹을 뻗어 움켜쥐었다. 그녀의 사방에서 생성된 열 개의 신성 이빨이 동시에 날아왔지만 레테는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펼치는 것으로 막았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화아아아아악!

축복이 발동하며 그녀의 몸에서 광풍이 몰아쳤다. 그녀의 흰 머리카락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어지며 금빛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났다.

<레테 오리지널 - 라 베뉴(La Venue)>

압도적인 힘의 파동에 메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레테가 오른팔을 뻗자, 팔을 휘감고 있던 백룡의 입이 쩍 벌어지며 눈부신 프리즘 빚깔의 검이 튀어나왔다.

"죽기 직전까지 썰어줄게."

그녀가 바닥을 짓밟고 뛰어들려는 그때.

"레테! 레테 사제님!"

엘렌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누, 누가 오고 있어요!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요!"

"......."

그녀가 쯧 혀를 찼다. 화물실에서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승객이 심문관에게 이야기한 모양이었다.

레테가 자신의 몸에 건 축복을 해제하며 말했다.

"란."

란이 메틴의 몸을 칭칭 휘감아 그녀의 앞으로 데리고 왔다. 쪼그려 앉은 그녀가 메틴의 얼굴에 손을 댔다.

"크윽! 뭐하는 짓이냐!"

"닥치십쇼."

<그레이트 힐>

화아아아악!

메틴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는 깜짝 놀랐다. 이 여자, 치료학도 상당한 수준이다. 뭔가를 제대로 말할 틈도 없이 얼굴이 회복됐다.

"최소한의 수습임다. 에프넬한테 처맞았다고 니들 선배한테 꼰지르든 말든 니 맘대로 하십쇼."

"......."

그녀는 다시 란을 아공간으로 회수한 후 엘렌과 함께 화물실을 나섰다.

메틴은 멍하니 바닥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잠시 레테와 바카라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가, 그녀는 떠나고 바카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허이구."

엉망이 된 화물실과, 상처는 없었지만 넋 놓은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메틴을 보며 바카라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러게 내가 작작 건드리라고 했지?"

"......."

"맞은 거냐? 솔직히 말해. 아무리 에프넬이 절대적인 영역이라고 해도 내가 교수님들께 보고해서 자체징계 정도는 넣을 수 있다."

메틴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러곤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서 먼지를 탈탈 턴 후 머리에 고쳐 썼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하, 새끼."

"그리고 심문도 하던 대로 계속 진행할 겁니다."

메틴이 휘청거리며 화물실을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던 바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화장실에서 객실로 돌아온 시몬은 레테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는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화장실에 갔다면 여자 화장실이 바로 맞은편이니 중간에 마주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찾아보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거기서 엉거주춤 뭐 하심까?"

레테가 태연히 복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연신 힐끔힐끔 눈치를 보고 있는 엘렌도 있었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걱정했어."

"당신한테 걱정 받을 만큼 나약하진 않슴다."

레테가 엘렌 쪽으로 슥슥 손짓하자 그녀는 부리나케 본인 객실로 들어가 앉았다. 레테도 객실로 돌아와 시몬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내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있었지?"

"말 안 할 검다. 그리고, 진짜 별일 아니었어요."

시몬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게."

옅은 미소를 흘린 시몬이 다시 책상에 올려둔 경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

믿음이라.

잘 모르겠다. 프리스트와 네크로맨서 사이에 믿음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을까.

레테는 새 와인을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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