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7화
"피 냄새요?"
그렇게 되물은 레테가 본인도 코를 킁킁거렸다.
"난 잘 모르겠는데요. 약간 비린내? 같은 게 나긴 하는데 그냥 다른 객실에서 먹은 음식 냄새일 수도 있고."
"......."
시몬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레테는 계속 이야기했다.
"냄새는 잘 모르겠고, 갑자기 열차가 느려지긴 했네요. 더럽게 덜컹대서 탑승감도 구려졌...... 어, 어?"
창밖으로 향해 있던 레테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그녀가 벌떡 일어나 창가에 몸을 바짝 붙였다.
"뭐야 저게!"
열차 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목초지에서 시뻘건 좀비 떼들이 피를 흘리며 열차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창문으로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테가 기겁한 소리를 내며 물러나다가 뒤에 있던 시몬의 품에 폭 안기는 형태가 됐다.
"이런 미친! 저것들 다 뭐냐고!"
-케에에에에에에!
창문에 좀비가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객차에서도 마찬가지인지 곳곳에서 떠들썩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좀비들은 살아 있는 인간을 보고 흥분해 괴성을 지르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두들기기도 했다. 어떤 것들은 열차의 천장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레테, 잠깐만."
시몬이 대담하게 걸어가서 좀비들로 가득한 창문에 찰싹 붙었다.
'대체 어느 틈에?'
좀비들 사이로 보이는 열차의 차체에 붉은 마법진이 그려진 게 보였다. 바로 저기서 좀비들이 소환되고 있는 거였다.
와장창!!
그때 뒤쪽의 유리창이 박살 나며, 좀비들이 1등실 안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왔다. 사방팔방에서 경악성이 울려 퍼지며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졌다.
"쯧!"
레테가 제일 먼저 복도로 달려나가 손가락을 세웠다. 검지 앞으로 펼쳐진 마법진에서 무수한 신성화살들이 쇄도해 좀비들의 심장과 머리에 꽂혔다.
"이 빨간 좀비들이라면 그겁니다! 혈천교!"
뻐어억!
레테의 목덜미를 노리던 좀비를 발차기로 걷어차며 나타난 시몬이 말을 받았다.
"요즘 문제라는 그 이단?"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슴다. 놈들은 블러드 좀비라는 자기들만의 개량 언데드를 사용해요. 정화마법에 대한 저항력도 가지고 있어서 까다롭죠."
신성화살을 연사하던 레테가 객실의 의자를 짚고 날아올랐다.
스커트를 휘날리며 정면의 좀비 머리를 박살 낸 그녀가 반동으로 재차 뛰어올랐다. 이내 천장에서 열 마리의 좀비들을 동시에 포착하고는 성호를 그렸다.
<라 브로쉐(La Broche)>
푸우우욱!
푸욱!
천장을 보고 있던 좀비들이 등 뒤에서 솟아난 신성 창에 꿰뚫리며 쓰러졌다. 어느새 바닥에는 신성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쾅!
쓰러지는 좀비들 너머로 또 하나의 좀비가 수 미터를 날아올라 벽에 철퍽! 소리가 나게 부딪혔다.
"후우우."
시몬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가운데, 좀비들이 괴성을 토하며 좌우에서 달려든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인듀어런스>
스스로 세 개의 축복을 건 시몬이 주먹을 휘둘렀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좀비 하나의 얼굴이 으깨어지며 창밖으로 날아갔다.
-케에에에에에!
-키이이!
좀비들이 더 격분하며 달려들었고, 시몬의 두 팔이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쩍! 으적! 퍽!
좀비의 다리가 분질러지고 턱이 함몰되어 날아간다. 그사이 뒤에서 시몬의 허벅지를 문 좀비는 '인듀어런스'의 효과로 단단해진 피부에 가로막혀 이빨을 박지 못했다.
시몬이 팔꿈치로 놈의 정수리를 내려쳐 박살 냈다.
'너무 빠를 필요 없어. 호흡을 유지하면서 하나하나 확실하게.'
아무리 많은 숫자가 몰아쳐도 시몬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시몬의 전투를 지켜보던 레테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언제 성투학 가르친 적 있었슴까?"
"이건 마투학이야. 주먹질하는 게 거기서 거기지."
팟!
전격처럼 뻗어간 견제용 잽에 좀비가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뒤이어 연결 동작처럼 전진하며 오른팔로 깊게 스트레이트. 좀비가 우탕탕 소리를 내며 다른 좀비들에게 부딪혀 객실에 널브러졌다.
두 사람의 분투에 전세는 빠르게 안정되었다. 방어막만 켠 채 우왕좌왕하던 다른 프리스트들도 평정을 되찾고 반격을 시작했다.
그중에서는 신성 범위기를 남발하는 엘렌도 있었다.
"엘렌 선배!"
레테가 소리쳤다.
"곧 프리스트들이 있는 1등석으로 사람들 다 몰릴 검다! 선배가 책임지고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아, 알겠어요! 근데 두 분은요?"
시몬과 레테는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몬이 말했다.
"기관실로 가봐야겠어."
"그건 너무 무모해요! 거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적을 상대해야......!"
쩌어억!
시몬이 보지도 않고 휘두른 주먹에 좀비 한 마리가 뇌수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녀올게. 엘렌."
"여기 잘 지켜요."
두 사람은 성큼성큼 다음 객실로 넘어갔다.
2등실도 당연히 난리가 나 있었다. 겁먹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시몬과 레테가 걸어오는 1등실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옆으로 몸을 기울인 채 걸어서 2등실과 3등실을 지나 일반 객실로 들어왔다. 침대 없이 좌석만 빼곡하게 설치된 이곳은 가장 많은 승객이 타고 있던 객실이었다.
"으아아아악!"
"그, 그마안! 끄윽!"
사람이 많았던 만큼 여긴 훨씬 더 아비규환이었다. 좀비와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물어뜯기는 사람들,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는 사람들, 그리고. 목에 뭔가를 찬 채 앉아 붙잡힌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옆으로 보이는 붉은 옷의 남녀들.
'누구지?'
시몬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들은 좀비의 공격에 공격당하지 않았고, 치렁치렁한 긴 붉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만 반항하고 목걸이를 차."
"이걸 차면 너희도 혈천교의 일원이 되는 거야."
그들은 빨간 개목걸이 같은 걸 사람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걸 목에 차면, 붉은 옷의 사람들처럼 좀비들의 공격을 받지 않게 됐다.
"그쪽도 이제 그만 버티고 목걸이를 차시지?"
좀비에게 다리를 물린 중년 남성이 피를 흘리며 저항하고 있었다.
"우, 웃기지 마라! 나는 여신의 신도......!"
"X랄."
퍽!
혈천교 남자가 그의 턱을 발로 찼다.
"그럼 빨리 그 잘난 여신께 빌어봐. 구해달라고, 우리에게 천벌을 내려달라고! 안 되지? 안 되잖아! 아니, 머리가 있으면 한번 생각해 봐! 그렇게 위대하고 전능한 신이 있는데 니들을 왜 안 구해주는......!"
쩌어어억!
남자의 얼굴이 뭉개지며 주위의 혈천교 신도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날아 차기로 신도 하나를 쓰러뜨린 레테가 툭 내뱉듯 말했다.
"네에, 주문하신 천벌 나왔슴다."
"이게!"
혈천교 신교가 막 착지한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곤봉 같은 무기를 휘둘렀다.
터엉!
어느새 레테의 등을 가로막듯 튀어나온 시몬이 팔을 들어 막았다.
'빨라!'
시몬이 상대의 손목을 붙잡아 당기는 동시에 반대쪽 주먹으로 턱을 올려쳤다. 신도의 몸이 날아가는 것을 신호로 레테와 시몬이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뛰었다.
피가 튀고, 뼈가 꺾이고, 안면이 짓뭉개진다.
두 사람은 객실을 종횡무진으로 헤집고 뛰어다녔다. 각자 마투와 성투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신도들과 좀비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아, 이쪽으로 오지 마요! 자꾸 엉키잖슴까!"
레테가 발차기로 신도의 복부를 후려 차며 말했다.
"네 발에 맞을 뻔한 게 벌써 세 번째야."
시몬이 신도의 팔 관절을 꺾으며 말했다.
객실 사람들은 거의 넋을 놓고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사실 이들이 바로 키젠 특례 1번과 에프넬 선발 1번, 각 세력을 대표하는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사, 살려줘요!"
"뒤쪽에도 언데드들이!"
문제는 다른 객차에서 도망쳐 오는 사람들이었다. 사람과 좀비들이 마구 뒤섞여 나오니까 제대로 피아식별하며 싸우기가 힘들었다.
레테가 날리려던 신성 창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 때문에 주춤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안 되겠슴다."
레테가 말했다.
"내가 보조로 들어갈 테니까 당신 혼자 싸우세요. 가능하죠?"
얼핏 들으면 무모한 소리 같았지만, 시몬은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좋지! 나도 그렇게 제안할 생각이었어."
"아, 자존심 상해."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제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성호를 그리며 자신의 주위에 결계를 펼친 다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그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신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테가 보조로 들어가주면 엄청 든든하지.'
시몬도 백마법을 공부하면서 그녀의 실력에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내 눈부신 광채가 휘몰아치며 축복 파티가 열렸다.
<매스 헤이스트>
<매스 인듀어런스>
<매스 다우너>
화아아아아악!
기대 이상이었다. 열차 천장에 백마법진들이 무수히 그려지더니 사람들에게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몸에 고성능의 버프가 걸렸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속도가 갑자기 확 빨라졌다. 좀비에게 물려도 좀비의 손톱과 이빨이 사람들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좀비들의 공격이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게 됐다. 거기에 정신적으로 안정을 주는 백마법까지. 혼란이 순식간에 잠재워지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감탄성을 터뜨렸다.
<매스 힐>
<커스 브레이크>
이번에는 치료와 정화 마법이다. 좀비에 물린 상처가 깨끗이 회복되었고 심지어 시독에 의한 감염증상도 사라졌다.
거기에 커스 브레이크는 목에 붉은 목걸이를 찬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강력한 정화효과는 저주로 이루어진 붉은 목걸이까지 박살 내버렸다.
시몬이 소리쳤다.
"자, 여러분! 이제 안전하니까 질서를 지켜서 빠져나가세요!"
레테가 보조로 돌아선 이상 사상자는 0명이나 다름없었다. 시몬은 사람들을 유도하며 혈천교와 싸웠다.
으적!
시몬의 주먹이 좀비의 안면을 박살 냈다. 그때 그의 측면에서 신도 한 명이 혈류화살을 완성해 발사했다.
터엉!
시몬의 앞으로 레테의 방어벽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막혔다. 시몬이 바닥에 떨어진 물병을 발끝으로 툭 쳐서 띄우고는 몸을 회전시키며 돌려찼다.
레테가 타이밍 좋게 마법진을 해제했고, 신도의 얼굴이 퍽! 하고 물병에 부딪혔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무슨 소란이냐!"
"객실 하나 정리 못 해?"
뒤쪽에서 계속 혈천교의 신도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때 시몬의 다리 아래로 백마법이 그려졌다.
<라 비테스(La Vitesse)>
화아아아악!
광풍이 시몬의 몸을 휘감았다. 실내에서 머리카락과 옷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시몬이 씩 웃으며 자세를 낮췄다.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효과를 내는 레테만의 축복이다.
'이거라면!'
달려드는 신도들을 향해 시몬이 돌진했다. 그의 몸이 녹색 궤적을 그리며 눈부시게 뻗어 나갔다.
천장과 바닥, 벽을 미친 듯이 박차며 주위에 거치적거리는 신도들을 걷어찬 시몬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시몬이 내려오기 무섭게 다섯 명의 신도들이 입과 코에서 피를 뿜으며 주위를 나뒹굴었다.
"하아."
레테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객실 의자 너머로 몸을 일으켰다.
"다 정리했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