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9화
터엉!
프린스는 한 손으로 헬하운드의 앞발을 꽉 붙잡아 바닥에 고정시켰다. 겉모습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지만, 완력으로 저 거구의 키메라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거,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오긴 했는데.]
프린스가 머리에 쓴 왕관을 벗어서 검지 끝에 걸고 흔들었다. 프린스의 능력으로 만든 모조가 아니라 본체가 쓰던 진짜 왕관이었다.
[너 진짜로 이거 쓸 거냐?]
"!"
시몬은 왕관을 보는 순간 눈에 힘이 빡 들어가며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이 정도 텀을 뒀으면 중독현상이 조금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여전했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안 쓰고 싶은데, 혹시 모르니까."
프린스와 헬하운드가 힘 싸움을 하는 사이, 객실로 블러드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레테가 즉시 반응하며 신성마법을 쓰려 하자, 시몬이 팔을 들어 제시시켰다.
"괜찮아."
"네?"
프린스가 다시 본인의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있었다.
팟!
프린스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변했다. 그러자 달려들던 십 수기의 좀비들이 멈칫하더니, 그들의 눈도 금빛으로 변했다.
이내 타겟을 바꿔서 헬하운드의 몸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뭐야? 저것들 왜 저래요?"
레테가 얼빠진 표정으로 팔을 내렸다.
"프린스가 조종하는 거야."
헬하운드가 몸을 흔들거나 반대쪽 앞발을 마구 휘둘렀지만 좀비들은 끈질기게 달려들어 목덜미와 몸 곳곳에 들러붙었다.
이어서 시몬이 오른손을 펼쳤다. 군단화된 프린스가 조종하는 좀비들은 군단장이 시체폭발로 터뜨리는 게 가능하다.
'시체폭발!'
꽈아아아아앙!
좀비들이 연달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헬하운드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이 틈에 무릎을 펴고 뛰어오른 프린스가 헬하운드의 안면에 주먹을 후려갈겼다.
쩌엉!
거대한 헬하운드의 몸뚱이가 날아가 너덜너덜해져 있던 열차의 한쪽 벽을 들이받아 박살 내며 열차 밖으로 떨어졌다.
시몬과 레테가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프린스가 왕관이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바닥에 내려왔다.
[올~ 왕관 안 쓰고도 시체폭발을 쓸 수 있게 됐네?]
"방학 동안 아버지께 빡세게 배웠거든."
두 사람에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리고 프린스가 뒤늦게 잔뜩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좌석에 딱 붙어 있는 레테를 발견했다.
[근데 얜 뭐야? 프리스트 아냐?]
짜악!
프린스가 한 걸음 다가오기 무섭게 레테가 질색하며 뺨을 후려쳤다.
"이 미친! 가까이 오지 마!"
[아야!]
프린스가 벌컥 화를 냈다.
[다짜고짜 초면에 뭔 짓거리야?! 시몬! 얘 죽여도 돼?]
"참아. 사이좋게 지내줘."
레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프린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언데드인데, 어떻게 말을 하지?"
"프린스는 에이션트 언데드야."
시몬의 설명에 레테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당신 역시 군단장......."
"어. 전에 말했잖아."
레테도 군단장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는 알고 있었다.
암흑연합 정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존재들. 수십만 언데드 대군을 운용할 수 있고, 에이션트 언데드라는 미지의 존재를 다루는 괴물들이라고 들었다.
레테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 자식, 나보다 좀 앞서간다 이거지? 아, 나도 빨리 성녀를 달아야 하는데.'
프린스는 레테를 한번 노려본 후 등을 돌렸다.
[가자.]
세 사람은 빠르게 열차를 돌파했다.
프린스가 있으니 식은 죽 먹기였다. 그가 왕관을 쓰고 좀비들을 조종해서 자신의 병력으로 삼았다. 방심하고 있던 신도들은 배신한 좀비들의 공격에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다.
그렇게 쭉쭉 열차를 치고 나가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콰아아앙!
열차의 한쪽 벽이 뜯겨 나오며 아까 열차 밖으로 밀려났던 헬하운드가 다시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발로 열차를 따라잡은 것이다.
[너 끈질겨!]
프린스가 왕관을 벗어서 시몬에게 던지며 말했다.
[저건 내가 상대할게. 그리고 충고하는데, 기왕이면 안 쓰는 게 네 정신건강에 좋을 거야.]
"충고 고맙다."
시몬은 왕관을 받자마자 아공간에 넣었다.
프린스와 헬하운드, 두 괴물이 격돌하며 연신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사이에 시몬과 레테는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아! 대체 이것들 얼마나 많은 검까?"
혈천교 신도들이 침대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피의 마법을 날려대고 있었다. 그 뒤에는 좀비들이 우글거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시간 좀 걸리겠는데요."
"이렇게 계속 시간 질질 끌릴 순 없어. 둘로 나뉘자."
시몬의 제안에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둘로?"
"너는 계속 정면돌파하면서 포로들을 구해줘. 나는 단번에 열차 천장으로 달려서 기관실로 직행할게. 기관실을 정리한 다음에 놈들의 등을 칠 거야."
결국 레테나 시몬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쓰러뜨리면서 가면 중간에 만나게 되는 셈이다. 레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 다 지지부진하게 시간 끌릴 바엔 그것도 나쁘지 않겠슴다."
전략이 바뀌었다. 시몬이 객실 천장을 열고 위로 올라갔다.
덜컹덜컹!
열차과 궤도가 부딪히는 공명음과 함께 강렬한 맞바람이 몰아친다. 시몬은 팔로 얼굴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들판에서는 여전히 블러드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고, 열차 벽면에 그려진 마법진에서도 좀비와 신도들이 계속 소환되고 있었다.
'일단 움직이자. 기관실에 가보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겠지.'
시몬이 달리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열차 위에도 몇몇 혈천교 신도와 좀비들이 지키고 있었다.
시몬은 달려가면서 오른팔을 펼쳤다.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스켈레톤의 뼈들이 그의 팔을 빈틈없이 뒤덮었다.
<본 아머 - 핸드건 모드>
방학 동안 새롭게 개발한 신기술이었다. 시몬이 팔을 뻗어 다가오는 좀비들을 겨누었다.
위이잉!
핸드건의 중간이 휠처럼 회전하더니, 시몬의 손목 위의 사출구로 뼈들이 총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퍼버벅! 쩍!
놀라운 속도로 날아간 뼈의 총탄에 맞은 좀비들이 그대로 뒤로 쓰러지거나 열차 밖으로 튕겨 나갔다.
'실전은 처음인데 꽤 괜찮네. 재장전!'
스켈레톤의 복원기술을 이용하면 탄환의 재활용도 가능했다. 발사한 탄환들이 돌아와 다시 핸드건의 휠 사이에 찰칵거리며 맞춰졌다.
파바바바바바박!
몰려드는 좀비들에게 뼈의 총탄을 쏟아부으며 달렸다. 곳곳에서 신도들의 고함이 들렸다.
"이 녀석! 네크로맨서다!"
"둘러싸!"
신도들이 포위해 오자 시몬이 왼발로 강하게 바닥을 디뎠다. 이번엔 오버로드의 칼날이 휘둘러지며 주위의 신도들을 모조리 기차 밖으로 날려버렸다.
"허억! 후우!"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신성열차의 머리 쪽, 기관실 근처까지 도착했다.
시몬은 스파이처럼 조심스럽게 열차의 벽면으로 내려와 두 발로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왔다.
몸을 한 바퀴 구르며 벌떡 몸을 일으킨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여기는 승무원 휴게실이었고, 신성열차의 승무원들이 피범벅이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시몬이 급하게 그 너머에 있는 기관실로 달려가 보았다.
'한발 늦었어.'
열차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기관장도 싸늘한 시체로 남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열차를 멈출 방법이 없다.
시몬은 혹시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도 한 장을 발견했다.
그냥 객실에 흔히 꽂혀 있는 정차역이 표시된 지도였는데, 붉은 글씨로 'C'라고 적힌 부분이 보였다. 이 지도에는 그냥 숲으로 나와 있지만, 사람이 직접 붉은 펜으로 길을 쭉 그어놓았다.
'우린 지금 이 C 루트로 들어온 거야.'
시몬의 시선이 붉은 선을 따라 계속 향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X 자 표시.
저 장소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신성열차와 승객들을 저 목적지로 데려가려 한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신도들과 좀비들을 보내서 열차에 남아 있는 저항분자들을 싹 정리한 다음, 열차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는 승객들을 생포하려 했던 것 같았다.
'아니 근데.'
시몬이 지도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인상을 썼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단 심문관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강한 프리스트들이 벌써 당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걸 보면 벌써 전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시몬은 기관실에서 빠져나와 걸었다. 기관실에서 승무원실로, 그리고 승무원 실에서 이단 심문관 휴게실로.
'......아.'
시몬은 너무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가슴에 구멍 뚫린 채 의자에 널브러져 싸늘하게 죽어 있는 다섯 명의 심문관들이 보인다.
그동안 심문을 받느라 다들 눈에 익은 얼굴들이었다.
'이건 분명 내부의 누군가가 배신한 거네.'
그때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시몬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벽 끝에 피를 흥건하게 흘린 채 죽어가는 심문관 한 명이 보였다.
그동안 집요하게 시몬을 괴롭혔던 메틴이었다.
'아직 살아 있어!'
시몬이 다가가 그의 상처를 살폈다. 외상이 심한 부위에 왼손을 올리고 힐을 사용하면서,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내 그의 입에 물렸다.
내상과 외상이 모두 조금씩 회복되어 갔고, 서서히 메틴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목숨은 건졌겠지.'
치료를 마친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째서."
다음 객차로 넘어가려는데 뒤에서 미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날 살려주는 거냐? 난 너를......."
시몬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메틴이 다시 말했다.
"아주 작은, 핏방울을 조심해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작아."
시몬이 발걸음을 멈췄다.
"......혈천교의 주교가 이 열차에 타고 있다."
시몬은 물끄러미 메틴을 바라보았다. 메틴은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바닥에 대고 숨을 헐떡였다.
시몬은 그 정보를 머릿속에 넣으며 다음 객실로 향했다.
덜컹! 덜컹!
이쪽은 큰 싸움이 있었는지, 벽이 무너져 있었고 그 틈으로 바람이 쌩쌩 불어닥치며 열차가 달리는 소리가 잘 들렸다. 이곳도 온통 피범벅이다.
'건질 만한 단서는 없는 것 같네.'
시몬이 신중하게 다음 객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때.
'......!'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보이지도 않을, 아주 작은 붉은 핏방울이 허공에 떠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급히 발을 굴러 뒤로 물러났다.
퍼어어어엉!
핏방울이 엄청난 크기로 폭발했다. 시몬이 물러서는데 바닥과 벽면에도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이를 악물고 바닥을 굴렀다.
퍼어엉! 퍼어어엉!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시몬이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반응이 좋은데."
반대쪽 객실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적갈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의 남자.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건 틀림없이 심문관의 복장이었다.
"뜬금없는 가면 놀이라......."
남자가 시몬이 쓴 가면을 보며 웃었다.
이 남자가 바로 혈천교의 주교라는 건 다른 사전 정보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그냥 강자라는 게 느껴진다.
"나는 혈천교의 주교, 알로켄이다. 그대는 네크로맨서인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릴 공격하는 거지?"
시몬이 눈에 힘을 주었다.
"네크로맨서라면 당신을 도와야 한단 겁니까?"
"꼭 그러란 건 아니지만, 이런 적지에 같은 네크로맨서끼리 만났는데. 동족끼리 서로 돕고 살면 좋지 않나."
그가 팔을 세워 들었다.
"우리가 여기서 없앤 심문관들과 프리스트들,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암흑연합의 부담이 되지. 전쟁으로 치면 우리는 큰 전과를 올린 셈......."
"그건 전시일 때의 이야기고."
알로켄의 말을 끊은 시몬이 격분한 표정으로 자세를 낮췄다.
"당신은 그냥 테러리스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