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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87화 (187/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87화

성녀 이스라필의 플롯 연주에 따라 하늘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결 같았고 파도 같기도 했다. 점점 출렁이던 하늘이 통째로 어떤 광경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이스라필 님은 신해의 주인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림다."

두 손을 모은 레테가 황홀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해의 주인?"

"네."

하늘이 출렁거리더니 놀랍게도 드넓은 바다로 바뀌기 시작했다.

수면 곳곳에 파문이 일어났다.

물고기들이 첨벙거리거나 수면 위를 뛰놀고 있었다. 지느러미 대신 날개가 달린 신수해들은 대륙의 물고기들과는 다른 형태와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돌고래를 연상케 하는 큰 개체들도 있었다.

첨벙! 첨벙!

쏴아아아.

생전 처음 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전위적이고 압도적인 장관에 모두가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중력이 역전된 것처럼 바다는 하늘에 머물렀고, 튀어 오르는 물방울 하나 내려오지 않았다.

마치 다른 두 세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가만히 넋 놓고 있으면 어느 쪽이 진짜 지상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염병할!'

유일하게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 레이트만이 이를 갈고 있었다.

'증거를 통째로 없애 버릴 셈이냐!'

이스라필의 플룻 연주가 절정에 치달았다.

드넓은 신수해의 중앙에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사이좋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흩어지듯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뿌우우우우우우우우!!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어지간한 도시 하나 만한 몸집의 하얀 고래가 신수해에서 뛰어올랐다.

하얀 빛깔과 비늘에 무수한 날개들을 가진 그 고래는 수면을 지나 하늘을 넘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레테!"

시몬이 몸을 날리는 동시에, 신수해에서 내려온 하늘고래가 혈천교의 본부를 집어삼켰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

물방울과 진흙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고래의 쩍 벌어진 입에 혈천교 본부 건물이 통째로 집어삼켜졌고, 그것은 다시 방향을 틀어 신수해가 있는 하늘로 승천했다.

"망하아아아아알!"

레이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고래는 무사히 신수해로 들어갔고, 엎드려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었을 즈음엔 혈천교의 본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둥실둥실.

이내 신수해의 수면에서 비눗방울 같은 방울들이 쏟아졌다. 본부에 잡혀 있던 주민들이나 고통받던 실험체들이 방울에 갇힌 채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필이 다시 한번 플룻을 연주하자 서서히 신수해가 닫히며 원래의 하늘로 돌아왔다.

'......하하.'

지켜보던 시몬은 얼이 빠졌다.

세상에 이렇게 엄청난 힘이 존재할 수가 있구나.

"아, 쫌!"

레테가 손바닥으로 시몬의 가슴을 밀어내며 빠져나왔다. 혈천교를 일격에 정리한 이스라필이 물방울들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레테."

"뭐요."

"저 성녀 분이 우리 엄마의 직속후배라고 했잖아. 우리 엄마도 전성기 시절에는 저런 힘을 쓸 수 있었던 걸까?"

그녀가 순백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성녀의 정수는 대상자에 따라 힘의 종류가 바뀝니다. 안나 선생님의 기적의 성수가 이스라필 성녀님에 간 건 맞지만, 두 사람의 능력은 차이가 있다고 들었슴다."

"엄마는 어떤 거였는데?"

"나도 그 세대 사람이 아니라 잘은 모름다. 당대 최강의 성녀셨다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신수해가 아니라 천국을 열었다나 뭐라나."

이스라필이 포로들을 데리고 바닥에 내려왔다. 비눗방울이 터지자 그들의 상처는 어느새 깔끔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이단 심문관들이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습니다!""

이스라필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건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는 건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모두가 바닥에 엎드린 가운데 유일하게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남자. 레이트가 손에 든 십자가 검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홧김에 내팽개치는 동작에 대지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쿵! 쿵! 쿵!

그가 살벌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윽, 청장님!'

'이 양반 사고 칠 분위긴데.'

몇몇 측근들이 고개를 들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레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덥석!

레이트가 이스라필의 앞에 다가오더니 그녀가 스스로 손을 내밀기도 전에 손을 붙잡아 올렸다. 그러곤 대충 한쪽 무릎을 꿇고 손등에 키스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가 저렇게 막무가내야?'

예를 취하긴 했지만 반신의 존재라는 성녀 앞에서 무례하다고도 볼 수 있는 행동.

하지만 이스라필은 눈을 감은 채 웃는 표정 그대로였다.

"오랜만이에요. 레이트 청장."

"이게 무슨 짓입니까."

레이트가 뿌득뿌득 이를 갈며 말했다. 당장 성녀에게 손찌검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노 수위였다.

"이건 정당한 영장을 내고 출전한 이단 심문이었습니다! 연방을 흔들고 있는 혈천교에 대한 모든 배후와 정보를 밝혀낼 절호의 기회였단 말입니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혈천교의 다른 배후는 없답니다. 혈천교는 혈천교예요."

"아무리!"

레이트의 목에 핏대가 섰다.

"성녀께서 전쟁을 반대하신다고 해도 이건 아닙니다! 증거를 몰살시키다니!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는......!"

그녀가 레이트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돌렸다.

"이리 나오세요 레테. 그리고 동료분."

그 말에 나무 뒤에 숨어서 끼어들 틈을 보고 있던 레테와 시몬이 뛰어나왔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레테가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예를 차리며 성호를 그린 다음 절을 올렸다. 시몬도 눈치껏 동작을 따라 하면서, 시선은 레이트 쪽으로 향해 있었다.

'와, 살기 봐. 사람을 산 채로 찢어 죽일 눈이네.'

이쯤 되면 저런 살기를 뿜어대는 사람 앞에 태연하게 서 있는 이스라필 쪽이 더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예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레테는, 시몬이 건넨 서류가방을 받고 다섯 걸음 앞으로 나와 다시 절을 올리고는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

"혈천교의 주교. 알로켄이 가지고 있던 문서입니다."

그리고 공손히 두 손으로 서류가방을 내밀었다.

"수고했어요."

이스라필이 웃으며 가방을 받았다. 그녀가 혈천교의 본부를 날려버렸고, 이제 이게 유일한 증거.

"신성연방의 미래는 참으로 밝습니다."

이스라필은 즐거워 보였다. 레테를 뿌듯하게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뒤에 물러나 있는 시몬도 한 차례 훑었다.

"우리 어른들도 못한 일을 이렇게 젊은 아이들이 해냈군요. 이들의 세대가 무척 기대됩니다."

"......어서 열기나 하시지요."

심기가 불편한 레이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맘 같아선 저 서류가 드러나기 전에 불살라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성녀의 앞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이스라필은 서류가방을 열고 가장 앞에 놓여 있는 문서를 눈으로 쭉 훑었다.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그녀가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서류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읽었다.

"이단 심문청에 정보를 흘리고, 심문청장이자 전쟁 강경파 '레이트'가 사건현장을 제일 먼저 목격한다. 네크로맨서에 대한 강경 여론을 형성하고, 신성연방과 암흑연합의 전쟁유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내용에 레이트의 주먹에 힘이 꽉 실렸다.

"명료해졌네요. 혈천교는 신성연방과 암흑연합의 전쟁을 유도하는 게 목적이었고. 심문청장도 하마터면 혈천교에게 이용당할 뻔했네요. 그렇죠?"

"......."

레이트가 분노를 식히고 눈을 감았다.

여기다 대고 '사실은 우리가 혈천교를 이용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성녀가 직접 저 내용을 봐버린 이상 전쟁은 물 건너갔다. 레이트가 아무리 미친개라고 한들, 한 조직의 책임자인 이상 패배를 받아들이고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스라필도 그런 사실을 읽고 있었고, 레이트에게 심문청을 캐지는 않을 터이니 여기서 끝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결국.

"......예."

속에선 천불이 나지만 내민 손을 붙잡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 물러가 보세요. 청장."

성녀답게 우아하게 두 손을 포개어 모은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입 끝을 올렸다.

"교황 성하께는 제가 직접 보고하도록 하겠어요."

"......."

결국 레이트는 심문관들을 이끌고 터덜터덜 돌아갔다. 걸음에 힘이 축 빠져 있었지만 이글거리는 표정과 서늘한 눈빛은 그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어째저째 오늘도 살아남았다.'

점점 멀어지는 레이트와 심문관들을 보며 시몬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세요 레테."

이스라필이 말했다.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레테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스라필이 선하게 웃으며 두 팔을 펼치자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스라필 님!"

레테가 달려들어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겼다.

반신인 성녀 앞에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은 사적으로도 친한 듯했다.

이스라필이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큰 사건에 휘말렸다기에 걱정했어요 레테."

이스라필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던 레테가 눈동자를 올리더니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요?"

"그럼요."

"제가 혈천교가 납치한 열차에 탔다고 했을 때는 '힘내' 한마디로 끝냈다가, 혈천교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소리에 다 내팽개치고 달려오셨잖아요."

"그건 레테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죠."

이스라필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지켜보던 시몬은 일관적인 표정이 이렇게 편리하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잠시 레테가 칭얼거리고 이스라필이 달래주는 시간이 있었다.

레테가 안나를 어떤 절대적인 우상이자 친엄마처럼 여긴다면, 이스라필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친한 언니 같은 느낌으로 대했다.

"우리 귀여운 레테~ 언제 성녀가 돼서 나랑 놀아줄 거예요?"

이스라필이 레테의 뺨을 꼬집으며 물었다. 그녀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스라필 님이 은퇴하시면요! 기적의 성수 가지고 싶어요!"

"아주 그냥 신성모독을 밥 먹듯이 하네요! 십자가에 매달고 싶어라~"

"그전에 법정에서 이스라필 님 흑역사를 다 불고 죽을 거예요."

소리 내어 웃던 이스라필의 시선이 시몬으로 옮겨갔다.

"레테의 동료분?"

"아, 넵!"

시몬이 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우리 레테를 보살피고 지켜주셔서 고마워요."

"아,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보살피는 쪽이었거든요!"

"레테는 입을 다물도록 해요."

시몬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네, 제가 레테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딸을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나도 반가워요. 이름이?"

"스카 세라피노라고 합니다."

그때 이스라필이 레테를 품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두 발을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서 흐르듯 날아와 시몬의 앞에 섰다.

갑자기 성녀와 가까워지자 시몬은 긴장감이 훅 몰아치는 걸 느꼈다.

"스카 사제."

"네."

"당신......."

감고 있던 그녀의 눈이 떠지며, 심연을 연상케 하는 새까맣기만 한 눈동자가 시몬을 응시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과 많이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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