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89화 (18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89화

3등석에서의 열차 여행은 즐거웠다.

그 어떤 프라이버시도 보장되지 않는, 뻥 뚫린 장소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다들 눈치 보는 것 없이 행동했다.

이곳은 연방이 허락한 유일한 자유의 요람 같았다. 시몬은 쉴 시간도 쪼개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연방민이면서 여신을 믿지 않거나, 에프넬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심문관 앞에서는 철저히 신도인 척 했지만 말이다.

여러 사람을 접하면서 시몬은 자연스럽게 견식도 확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반면 이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았던 레테는 시선테러를 당하지 않으려고 대부분의 시간을 2층 침대에 올라가 있거나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지냈다.

그래도 이틀 차부터는 대충 적응했는지, 본인도 겉옷을 훌러덩 벗고 편한 차림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동갑의 평민 소녀와 친해져서 자주 같이 다녔다.

그렇게 5일간의 열차 여행도 끝나고, 처음 연방에 도착했을 때 들렀던 바로 그 마을의 열차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의 작별인사를 받았다. 심지어 열차에 있던 친해진 심문관 두 명도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시몬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열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일단 브로커부터 만나러 갔다. 약속장소인 낡은 주점에 도착해서 물을 홀짝이고 있으려니, 남루한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나타났다.

"늑대의 고백은."

브로커가 말했고.

"미련한 양에게."

시몬이 대답했다. 두 사람을 데려다준 바로 그 브로커가 고개를 숙였다.

"또 뵙는군요. 돌아갈 준비는 다 해두었습니다."

"지금 국경은 상황이 어떤가요?"

시몬의 물음에 브로커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기뻐하십시오! 이번에 가장 큰 연방의 골칫거리였던 혈천교를 토벌한 뒤라 경계가 한층 해소됐습니다. 일이 또 이렇게 풀리는군요."

시몬과 레테는 슬쩍 시선을 교환하며 미소 지었다. 세 사람은 이제 구체적인 일정을 짰다.

"그럼 내일 새벽 일찍, 암흑연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레테와의 여행은 여기까지였다.

사실 레테는 다시 암흑연합으로 건너가서 안나가 건강을 회복하는 것까지 곁에서 보고 싶어 했지만, 이스라필이 엄포를 놓았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위험하고 무모한 행동입니다. 에프넬을 대표하는 학생이라면 분별력을 가지세요!

그녀는 지인으로서가 아니라 성녀로서 레테에게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다. 결국 레테는 국경을 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해야 했다.

"그냥."

"?"

브로커와 만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레테가 착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이스라필 님 생까고 당신이랑 같이 넘어가 버릴까요."

지극히 충동적으로 보이는 그녀의 의견에, 시몬은 타이르듯 말했다.

"너무 걱정 마. 엄마는 괜찮으실 거야. 아버지가 말씀하신 기일에서 훨씬 앞당겨 임무를 완수하기도 했고. 수술 잘 끝나면 꼭 국경 너머로 편지 보낼게."

레테에게는 너무 많은 폐를 끼쳤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녀도 그녀만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에프넬 수석 학생이라면 엄청나게 바쁠 텐데, 지금 이렇게 안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것도 많이 무리했으리라.

이 이상 그녀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

"왜 그래?"

레테는 뭔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입술을 삐쭉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암것도 아님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늘은 신성연방에서의 마지막 밤. 두 사람은 로브를 걸치고 야시장으로 나왔다.

첫날 이곳에 왔을 때 이단 심문관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방문한 지금, 그런 모습은 없었다.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시몬이 생각하던 야시장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자, 뭘 사볼까.'

이스라필의 협력으로 여행이 빠르게 끝났고, '화이트 리프'를 구매한다고 큰돈을 쓴 것도 아니라 자금에 여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군것질도 하고 안나에게 줄 선물들도 구매했다.

그녀는 암흑연합에서 지내고 있으니 이곳의 물건들은 쉽게 구하지 못할 것이다. 깨끗한 새 경전이나 다양한 기도용품. 그리고 특산물이나 간식거리 등을 구매했다.

"이것도 사 가죠. 분명 안나 선생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안나에게 줄 선물을 살 때는 레테의 조언이 빛을 발했다.

"이게 뭐야? 대추?"

"대추야자. 달고 맛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안나 선생님께서 맨날 무릎에 앉혀놓고 씨앗 빼서 주셨슴다."

"그건 그냥 네가 좋아하는 게 아닐까?"

"닥쳐."

시몬은 안나와 리처드에게 줄 선물들을 잔뜩 사서 아공간에 넣었다.

키젠 쪽 지인들을 위한 선물도 사고 싶었지만, 신성연방의 물건이란 게 들킬 수도 있으니 괜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자제하기로 했다.

"아."

그때 시몬의 시야에 한 옷가게가 눈에 띄었다. 지금 입고 있는 새 로브를 구매했던 바로 그 가게였다.

"레테. 잠깐만 따라올래?"

"네? 어디 가게요."

시몬은 그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나, 또 오셨네요 사제님!"

가게 주인은 시몬을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반갑게 맞아준 그녀는, 이번엔 옷을 사러 온 타깃이 레테라는 걸 눈치챘는지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입으로 양념을 쳤다.

잠시 후 탈의실 커튼이 젖혀졌다.

"......아 진짜."

레테는 시몬이 입었던 바로 그 하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레테가 민망한 듯 옆머리를 쓸었다.

"너무너무 아름다우세요! 손님!"

가게 주인이 비즈니스 비명을 질러댔다. 시몬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 어울려."

"아, 아니. 부담스럽게 갑자기 왜 이러심까."

"너 저번에 내가 입은 이 옷 마음에 들어 했잖아. 한 벌 사줄게."

"아니, 이거 비싼......! 그, 그리고 당신이랑 커플룩이잖슴까! 이걸 당신이랑 나란히 입고 시장을 돌아다닐 바엔 차라리 목매달고 죽을 거예요!"

시몬이 빙그레 웃으며 로브를 벗었다.

펄럭!

그러고는 반대로 뒤집어서 코트형으로 바꾼 다음 몸에 걸치고, 손끝에 칠흑이 아닌 마나를 불어넣었다.

옷의 색깔이 감미로운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이러면 됐지?"

"......."

레테가 다른 소리 하기 전에, 시몬과 가게 주인은 손발이 잘 맞는 콤비처럼 재빨리 계산을 마쳤다.

탈의실에서 내려온 레테도 싫지는 않은 눈치인듯 귀밑머리를 넘기며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고 있었다.

"가자."

시몬이 푸른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왔다.

"......."

슬쩍 시몬을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곤 조그맣게 뭐라고 하더니 본인 먼저 밖으로 휙 나가 버렸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고맙다는 소리가 아닐까 추측했다.

"숙녀분 귀엽네요."

가게 주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레테가 들을세라 시몬이 급히 입술 위에 검지를 세우고 있는데, 문 너머에서 빨리 나오라고 왁왁거리며 화내는 레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찬 밤바람이 불었다.

시몬과 레테는 같은 옷이지만 커플룩은 아닌 옷을 입은 채 야시장을 활보하고 다녔다.

돈은 아직도 많이 남았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노점에서 서서 국물 요리를 맛보기도 했고 화살을 던져서 과녁에 맞추는 게임도 했다. 경쟁에 불붙은 두 재능 괴물들이 경품을 싹쓸이하자 노점 주인이 두 사람을 쫓아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짧은 방학이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신성연방의 유명한 와인 가게였다. 레테가 잔을 기울이자 시몬이 잔을 쨍 소리가 나게 치며 말했다.

"응, 많은 일이 있었지."

* * *

그날 새벽 숙소.

이제는 가야 할 때였다.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긴 시몬이 마지막으로 겉에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왤케 늦슴까."

반대편의 숙소방을 잡았던 레테가 시몬이 사준 흰 로브를 입은 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좀 과음하지 않았어?"

"정화마법 한 방이면 그깟 알코올쯤이야."

시몬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신성을 그런 곳에 써도 돼?"

"내 맘입니다. 가요. 배웅은 해줄게요."

밖으로 나오자, 그 활기 넘치던 도시가 휑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새벽바람을 맞으며 두 사람은 걸었다.

"오셨군요."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브로커가 고개를 숙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준비되고 있었다.

한번 경험해 봤기에 과정은 명료하게 이해됐다.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국경 근처의 창고로 이동하고, 그곳의 짐 마차 상자에 들어간 채 '신성의 문'을 통과한다.

그다음 상자 아래에 그려진 텔레포트 마법진을 발동시켜 레스힐의 이웃 영지인 '호프'로 이동하면 끝이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나처럼 브로커가 먼저 마법진을 밟고 이동했다.

이제 시몬과 레테, 두 사람이 마법진 앞에 남았다.

작별의 순간.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레테였다.

"안나 선생님을 잘 부탁함다."

"응.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

그녀는 천천히 로브에 달려 있던 후드를 올렸다. 레테의 입이 달싹이는 걸 본 시몬이 말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 있어?"

그녀의 흰 머리카락이 로브 사이로 흘러나와 흔들렸다.

"나는 당신의 가장 큰 적이야."

"응."

"안나 선생님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잠시 같이 일했을 뿐이지, 우리의 운명은 이미 완전히 갈라지고 비틀렸어."

"알아."

"난 앞으로 성녀가 될 거고, 여신과 에프넬의 명령에 최선을 다할 거야. 임무가 내 최우선이고, 필요하다면 살생도 망설이지 않을 거야."

"그래."

"임무 중에는 키젠과 부딪힐 일도 많을 거야. 내 손에 네 소중한 사람들, 친구들이 죽을지도 몰라."

"알고 있어."

"그러니까."

후드 속에서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빛났다.

"마지막 기회를 줄게. 나랑 싸워, 네크로맨서."

시몬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왜 그래?"

"닥치고 그 프린스란 녀석까지 다 꺼내. 제대로 나랑......."

"거절할게."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난 널 해치지 않을 거야."

레테는 안나를 구했다. 집안 전체가 큰 신세를 졌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곁에서 봐왔다. 성녀 중에서는 이스라필 같은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미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욘 없어. 각자 키젠과 에프넬에서 최선을 다하자.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온 힘을 다해서 싸우자.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서로 원망하지 말자. 우린 우리가 누군지, 어떻게 살았는지, 이제 서로 다 알았잖아."

"......."

잠시 멍하니 있던 그녀가 킥 웃었다.

"하여간 당신은 재수없슴다."

"갈게."

그녀가 다시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내려온 앞머리가 흔들리며 그녀의 금빛 눈동자가 보였다.

"잘 가요. 시몬."

마법진을 밟으려던 시몬이 멈칫했다. 그러곤 웃는 얼굴로 뒤돌아보았다.

"마지막에서야 이름으로 불러주는 거야?"

"윽! 아! 닥치고 빨리 꺼져요 쫌! 맘 바뀌어서 확 죽여 버리기 전에!"

시몬이 킥킥 웃으며 마법진을 밟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한번 교차했고, 이내 눈부신 푸른빛이 시몬을 다음 장소로 이동시켰다.

"......."

푸른 빛방울들이 허공에 떠다니다가 사라졌다.

"......절대로 당신에게 지지 않을 검다."

잠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던 레테는, 결의하듯 로브 자락을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