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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91화 (191/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1화

새벽 2시.

불빛 하나 없이, 음침한 어둠만이 가득 깔린 밤의 도시는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활기찬 대도시 랭거스틴의 모습만을 생각하는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이곳의 주민들만 아는 일면.

모두가 잠든 이 밤, 테라스 의자에 앉은 검은 후드를 눌러쓴 남자는 조용히 이곳의 야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후아으으암."

그의 여운을 깨듯, 뒤에서 늘어지는 하품 소리가 들렸다.

불룩 튀어나온 배에 수염이 턱과 인중을 지나 귀까지 수북한 남자가 테라스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후드를 쓴 남자가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며 픽 웃었다.

"피곤한가?"

"말도 마십쇼."

수염남이 쩝쩝거리며 눈을 비볐다.

"새벽부터 찾아와서 이 난린데 어찌 안 피곤하겠수."

"도시생활에 잘도 적응했군."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시선은, 수염남의 불룩 튀어나온 뱃살과 늘어진 옷을 보고 있었다.

수염남이 껄껄 웃으며 배를 툭툭 두들겼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동네라지만, 적응하면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합디다. 역시 나는 초원에서 양 떼나 기르며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쪽이 더 좋아."

"팔자 좋군."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수염남이 다시 하품을 했다.

"졸리니까 본론이나 말씀하시죠. 그 인간은 나라도 못 찾아낸다고 했잖슈."

"오늘은 다른 용무다."

시가를 테라스 밖으로 던진 남자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마력 촬영기로 찍은 사진이었다.

"이 소년을 찾고 있다."

건네받은 사진을 본 수염남이 눈을 끔뻑거렸다.

"키젠 교복이잖아? 이 친구는 뭐 하려고?"

"키젠에서 애지중지하던 특례 1번 입학생이라던데. 이름은 시몬 폴렌티아."

수염남이 미간을 찌푸렸다.

"......충고하는데요, 키젠과는 연관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학생들은 절대 건드려선 안 돼요. 에프넬이 1학년 꼬맹이들을 테러했다가, 네프티스에게 무슨 꼴을 당했는지는 그쪽 촌구석에서도 알고 있죠?"

"안다."

그가 다시 사진을 받아 품에 넣었다.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만 말해라."

"그야 뭐, 이쪽에서 찾아다니지 않아도 곧 개학시즌이니까 이 도시에 올......."

수염남이 움찔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지?"

"......집에 누가 있습니다."

수염남이 살금살금 걸어가서 거실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집에 쥐 한 마리가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수염남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3층인데 저런 건 또 언제 들어왔어?"

수염남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근처의 빗자루를 붙잡았다. 쥐는 집안의 과자 부스러기를 갉아먹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착하지, 얌전히 있어라."

그가 숨죽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빗자루를 들어 올리는 순간, 쥐가 수염남을 돌아보았다. 야생동물처럼 두 눈동자가 번쩍이고 있었다.

"......!"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집안의 어둠에서 수백 쌍의 눈동자들이 번뜩였다.

"허어어억!"

수염남이 기겁하며 빗자루를 놓친 채 쓰러졌다. 바닥에서 쥐 떼가 무수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기랄! 놈이다!"

"으악! 아아악!"

수염남은 끔찍한 쥐 떼들을 피해 거실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무수한 바퀴벌레들이 온 벽과 바닥, 천장 등에 들러붙어 바글거리고 있었다.

수염남은 입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스르르르르르르르.

테라스의 어둠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그자는 도대체 뭐를 밟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우글거리는 뭔가에 두 발을 딛고 3층에 올라서 있었다.

"흐억! 허어어어억!"

수염남은 공포에 질려 거품을 물었고,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는 히죽 웃으며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제 발로 찾아오다니!"

남자가 바닥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첫걸음에 온몸에 반점이 생기고, 두 걸음에는 흉측한 두드러기가 돋아나더니, 세 걸음에 이르러서는 손발이 누렇게 변했다. 마침내 네 번째 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남자는 침음성을 흘리며 털썩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끄윽! 그으그그극!"

검을 든 남자가 거품을 물며 괴로워했다. 수염남은 그저 벌벌 떨며 테라스에서 걸어오고 있는 밤손님을 올려다보았다.

"무, 무슨 용무......! 아니 모,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방금."

손님의 입술이 열렸다.

"시몬 폴렌티아라고 했나?"

* * *

"시몬! 짐 다 챙겼니?"

"네! 다 챙겼어요 엄마!"

이른 새벽, 2층 방에서 거실로 내려오니 잘 다려진 키젠 교복 한 벌이 놓여 있었다. 내장된 흑마법이 망가지지 않도록 안나가 신경 써서 세탁해 준 거였다.

시몬은 새 옷처럼 깨끗한 교복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드디어 이걸 입는구나.'

조금은 감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정장 수트와 흡사한 검은 팬츠 안으로 다리를 밀어 넣는 순간, 부들부들하고 좋은 촉감이 느껴진다. 이어서 벨트를 찬 다음, 흰 셔츠에 팔을 집어넣었다. 단추를 잠그고 그 위에 레드 넥타이를 매고 마지막으로 키젠 문양의 상의를 멋들어지게 걸쳤다.

거울 너머로 수트핏이 쫙 드러나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키젠에 입학하던 기분이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데, 안나가 주방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능숙한 손길로 아들의 입에 애플파이를 물리고 손수 넥타이를 말끔하게 고쳐 매주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그녀가 시몬의 교복 차림을 보며 상기된 얼굴로 두 손을 맞잡았다.

"어쩜~ 우리 아들 이제 다 컸구나. 정말 다 키웠어."

"준비는 다 됐느냐 시몬."

문이 열리고 리처드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옆에 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를 대동하고 있었다.

"이분은 누구예요? 아버지."

"네프티스 님께서 직접 파견한 키젠의 하수인 분이시다. 마당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주셨다."

하수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시몬 학생. 랭거스틴의 외곽 도시까지 이동하는 마법진을 준비해 뒀습니다. 그곳에서 마차를 타면 두 시간 이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겁니다."

"아,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역시 키젠은 키젠이다.

저번 신성연방 여행에서도 느낀 거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은 정말로 귀했다.

키젠에선 일반 학생들에게도 마음껏 제공되는 이 마법진이 사실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력과 노력이 들어가는 장치였다. 일반인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못 타보고 죽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수인이 밖으로 나갔고, 이제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리처드는 시몬의 어깨를 짚고 앞으로 주의해야 할 점들이나, 교수나 다른 학생들에게 군단을 들켰을 때의 대처까지 줄줄 설명했다. 그 옆으로 안나가 도시락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카미바레즈 우르슬라 님께.

안나는 기어이 조원들 한 명 한 명 도시락까지 다 싸주었다. 쪽지에는 친구들의 이름을 썼고 하트 모양을 그렸다. 우리 시몬을 잘 부탁하고 학교생활 힘내라는 짤막한 메시지도 남겼다.

시몬은 리처드의 팁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넣고, 안나의 도시락을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아공간에 챙긴 다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겠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자 마당에 마법진이 보였다.

시몬이 마법진 앞에 섰고, 리처드와 안나가 밖으로 나왔다. 안나는 결국 눈물을 보였고, 리처드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녀도 리처드 쪽으로 몸을 기댔다.

"조심하거라 시몬! 키젠 안이라고 결코 집에서처럼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온 힘을 다해 당대 최고 네크로맨서들의 지식과 노하우를 네 것으로 빼앗아 오도록 해라!"

"부디 건강하게만 돌아오렴. 밥 굶지 말고!"

시몬은 한 번 더 부모님께 깍듯하게 인사한 다음 걸음을 돌려 텔레포트 마법진을 밟았다.

'드디어 가는구나. 키젠으로!'

시몬의 두 발이 두둥실 떠올랐다.

* * *

역시 신성연방에서 맛본 텔레포트 마법진과는 차원이 다른 쾌적함이었다.

눈을 뜨니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은 인구수가 극도로 많은 랭거스틴을 보조하기 위한 일종의 위성 도시였다.

마차 도로에는 많은 마차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고, 마부들과 승객들이 비용을 흥정하고 있었다.

시몬도 줄을 서서 기다리니 금방 차례가 와서 마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랭거스틴으로 가주세요."

"예이!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마차가 출발하고, 시몬은 남은 방학 숙제 점검을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던가. 시간은 정말로 빨리 갔다. 집중해서 문제 몇 개를 풀고 있으려니 마부가 곧 랭거스틴에 도착한다고 알렸다.

그제야 숙제에서 시선을 뗀 시몬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와......!"

드레스덴 왕국의 수도이자, 로크섬과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 '랭거스틴'.

처음 레스힐에서 빠져나와 대도시를 봤을 때의 감동 그대로였다.

하나같이 높고 커다란 건물들과 정신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마차들. 그 사이로 보이는 길거리에는 무수한 인파들로 가득했다.

시몬이 탄 마차는 딱 랭거스틴의 초입부에서 멈춰 섰다.

"죄송하지만 외부 마차는 여기까지만 갈 수 있습니다. 워낙 텃세가 심한 동네라."

"네, 이제부턴 제 발로 갈게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마차에서 내린 시몬은, 눈을 감으며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와글와글 여러 사람들의 뒤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로 들려왔다.

'일단 카미랑 먼저 합류하자.'

딕은 랭거스틴에서 볼일 보는 중이라고 했고, 메이린은 내일 도착한다고 했다. 우선은 카미바레즈를 만나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았다.

시몬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랭거스틴의 언덕길을 올랐다.

'캠밸로드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었지?'

캠밸로드는 네크로맨서 용품들을 파는 거리였다. 시몬도 입학 전에 로레인과 함께 방문해서 아공간과 교과서를 구매한 기억이 있었다.

시몬은 여러 추억들을 떠올리며 걸었다.

'근데 여기, 생각보다 높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이 도시의 언덕 경사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었고, 핵심 상권까지 들어가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야 했다.

랭거스틴에 살면서 느는 건 잔머리와 다리근육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덜컹덜컹!

그때 열심히 언덕길을 오르고 있는 시몬의 옆으로, 마차 도로를 지나던 마차 한 대가 멈춰섰다.

"헤이~ 소년!"

시몬이 걸음을 멈췄다. 마차 문이 달칵 열리며 여성의 각선미가 드러나는 두 다리가 튀어나왔다.

이내 마차문이 완전히 활짝 펼쳐지더니, 긴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몬이 멍하니 있자 그녀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검지로 밀어 올리며 히죽 웃었다.

"반가워요 시몬~ 개학 준비하러 왔어요?"

"세르네!"

그녀는 키젠의 특례 2번 입학생이자, 상아탑 공식 후계자인 세르네 아인다르크였다.

그녀가 눈을 찡긋거리며 물었다.

"어디 가는 중이에요?"

"......그건 왜?"

일단 세르네의 앞에선 경계부터 하게 된다. 그녀가 옆으로 물러나더니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팡팡 두들겼다.

"랭거스틴은 복잡해요. 타요! 목적지까지 데려다줄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때 마차 도로 곳곳에서 험악한 고함이 들렸다.

"저 여자가 미쳤나!"

"왜 도로 한복판에 멋대로 멈추고 지랄이야!"

험악하게 소리치는 마부들을 돌아보던 세르네가 긴 상앗빛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붙잡더니, 우아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벨벳 같은 머릿결이 휘날리며 그 안에서 하얀 깃털들이 날아가 마부들의 목덜미에 푹푹 꽂혔다. 그들이 얼굴을 붉히며 헬렐레한 표정이 되었다.

"에헤헤헤."

"거 마차 좀 멈출 수도 있지."

"느긋하게 살아야 인생도 건강해지는 법이여."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마부들의 태도에 시몬이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마차에 탄 승객들이 빨리 가라고 조르자, 오히려 마부들이 그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랭거스틴 일대 교통이 마비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숙녀를 기다리게 할 거예요?"

세르네가 재차 빈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들기며 미소 지었다.

"......하아."

결국 시몬이 마차 위로 올라탔다. 그녀가 '출발해 주세요~' 하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마부가 고삐를 흔들며 말들을 출발시켰다.

"어디 가는 중이에요?"

그녀가 다시 선글라스를 쓰며 쿡쿡 웃었다.

"캠밸로드."

"들었죠? 마부 아저씨."

마부는 얇은 천 너머로 윤곽만 보이고 있었다. 그는 고삐를 움직여 능숙하게 말머리를 돌려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세르네는 긴 다리를 쭉 뻗더니 그 위에 반대쪽 다리를 얹었다. 또 그 위에 양손을 포개어 무릎 위에 올린 다음 싱긋 웃었다.

"키젠에 가면 또 치열한 하루하루가 시작되겠네요? 한 학기 동안 잘 부탁해요."

"응. 태워줘서 고마워."

"뭘요~ 이걸로 도장 하나 더......."

"내릴게."

"아하하! 농담이에요!"

별생각 없었는데, 자꾸 세르네가 도장 도장 하면서 언급하니까 뭔가 신경 쓰이게 된다.

그때 세르네가 얇은 천 뒤에 보이는 마부의 등을 주먹으로 콩콩 두들겼다.

"마부 아저씨. 진짜 인사 안 할 거예요? 거의 두 달 만에 보는 거잖아요."

"......."

누구길래 저러는 거지?

그때 얇은 천이 걷히며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회색 머리카락과 눈에 난 긴 흉터, 늑대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턱선과 눈빛.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만남이라 더 반가웠다.

시몬이 큰소리로 외쳤다.

"카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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