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7화
스으.
헥토르가 웅크리듯 몸을 낮추었다. 다소 특이한 자세지만, 저기서 다른 준비 동작 없이 바로 스프링이 튕겨져 나오듯 돌진해 올 것이다.
붉은 눈동자로 변한 카미바레즈도 물러서지 않고 피의 바람을 활성화했다.
"카미."
그때 시몬이 그녀의 어깨를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상대할게."
"아, 시몬! 하지만 충격이......!"
"충격에선 회복됐어. 그리고 이건 헥토르가 내게 싸움을 걸어온 거니까 내가 정리하는 게 맞아."
"누가 나서든."
헥토르의 몸에서 넘쳐 흐르는 칠흑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들어간다."
헥토르가 땅을 걷어차듯 돌진했다. 그의 신형이 사라지며 지면이 흔들리고 먼지가 피었다.
시몬은 즉시 카미바레즈의 앞으로 뛰어나오며 두 팔을 교차하는 방어자세를 취했다.
투콰악!
헥토르의 주먹이 그녀의 앞에서 멈췄다. 시몬이 교차한 두 팔로 막아낸 것이다.
"크으!"
시몬이 땀을 뚝뚝 떨어뜨렸고, 헥토르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진작에 그렇게 나......!"
시몬의 허리가 비틀어지며 다리가 번쩍 솟구쳤다. 헥토르가 기겁하며 턱을 젖히고 그 위로 검은 섬광이 일자를 그리며 뻗어 오른다.
'쳇, 마투는 명불허전이군!'
헥토르가 일단은 뒤로 물러났다. 시몬이 다리를 내리며 가볍게 후우 하고 숨을 토해냈다.
"꼭 여기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커다란 싸움의 소리를 듣고, 골목 곳곳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너 지금 이러는 거, 개막장인 건 알지?"
"우리는 키젠이다. 시몬 폴렌티아."
헥토르가 팔을 뻗어 아공간을 열었다.
"싸우고 싶으면 그냥 싸우면 돼. 누구도 우릴 말릴 수 없다."
그의 아공간에서 스켈레톤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잘 봐라! 내 방학의 성과를!'
헥토르가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스켈레톤의 몸이 다수의 뼈로 분해되더니, 길쭉한 창의 형태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저건......!'
<본 스피어>
시몬이 급히 바닥을 박차며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로 뼈의 창이 곡선을 그리며 흙바닥에 푹푹 박혔다.
'헥토르가 복원기술을?'
푸욱! 푸욱! 푸욱!
허공에서 뼈의 창이 장대비처럼 쏟아졌고, 시몬은 정신없이 피하기 바빴다.
"크하하하하!"
그가 이번엔 왼손을 휘둘렀다. 아공간에서 쏟아진 스켈레톤의 몸 몇 개가 헥토르의 다리와 주먹에 달라붙었다.
시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본 아머 버전의 부츠와 건틀렛!'
분명히 1학기 소환학 수업시간에서 헥토르는 복원기술을 잘 쓰지 못했다. 그는 전 과목 모두 높은 수준의 선행학습을 해왔지만, 복원기술만큼은 절대적인 재능의 영역이어서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실전에 쓸 수 있을 만큼, 자유자재로 복원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방학 동안 겉잠 한번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피를 토하면서 내 수준을 끌어올렸다!'
헥토르의 발이 맞닿아 있는 바닥에 콰직 하고 금이 갔다.
'이제 네가 자랑하는 소환학으로 꺾이는 기분을 맛봐라!'
헥토르가 폭발적인 힘으로 시몬에게 돌진해 왔다.
시몬도 급히 아공간을 열고 팔을 세웠다. 뼈들이 오른팔에 착착 달라붙었다.
불곰의 앞발처럼 휘둘러져 오는 공격. 딱 봐도 시몬의 완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시몬의 절대명령이 떨어진다. 오른팔에 깃든 뼈들이 검푸른 마력을 폭발시키고 이내 두 소년의 본 건틀렛이 중앙에서 격돌한다.
투콰아아아아악!
격렬한 충돌에 바닥 타일의 종잇조각이나 무너진 나뭇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렸다.
부웅! 부웅!
본 건틀렛을 거칠게 휘둘러 대는 헥토르의 공세를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피하며 시몬은 다시 오른팔을 아공간 쪽으로 향했다.
건틀렛의 위로 추가 부품이 달라붙는다. 뼈로 이루어진 휠이 달리고 탄환이 달라붙으며 사출구가 맞춰진다.
<본 아머 - 핸드건>
헥토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신기술?'
휘둘러지는 상대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낸 시몬이 사출구를 헥토르의 이마에 겨누고 방아쇠를 인력으로 당겼다.
타앙!
섬광처럼 쏘아져 나가는 뼈의 탄환을, 헥토르가 간신히 왼손으로 붙잡았다.
'기껏 따라잡았더니 또 괴상한 기술을!'
헥토르가 격분한 표정으로 물러나고 시몬은 핸드건의 화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박!
탄환이 쏟아지며 헥토르의 뒤에 있던 판잣집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헥토르는 계속 회피기동을 하면서 뒤쪽의 뼈 무더기 쪽으로 팔을 뻗었다.
<본 스피어>
뼈들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창의 형태를 갖추며 올라가 고공에서 시몬을 내려찍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제자리에서 탄을 퍼붓던 시몬이 몸을 날려 피했다. 그가 새로운 탄환을 장전하는 사이 장대비처럼 내리꽂히는 헥토르의 공세가 계속 이어졌다.
찰칵!
공중에서 날아온 모든 탄환을 받아들인 시몬이 휠을 돌리며 헥토르를 겨누었다.
두 사람이 발사하는 투사체가 허공을 정신없이 어지럽혔다.
"와! 이게 네크로맨서들 간의 싸움이구나!"
"대단한데!"
어느새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덩달아 흥분해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하는 쪽으로 고함을 내지르거나 손뼉을 쳤다.
"야, 빨리 와!"
"키젠끼리 붙었다!"
모든 구경꾼들이 흥분해서 소리치는 가운데, 카미바레즈만이 두 손을 모으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투콰악!
두 사람이 중앙에서 충돌했다가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헥토르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왜 안 쓰러지는 거냐! 왜 한 대도 허용하지 않는 거냐!! 이기고 싶다. 진짜 저 새끼만큼은 미친 듯이 이기고 싶다!'
쿠웅!
헥토르가 발을 구르자 지금까지 사용했던 스무 기가 넘는 스켈레톤의 잔해가 두둥실 공중으로 떠올랐다.
'널 이기고 내 피 흘리는 노력의 유의미함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나 자신에게! 이 세상에 한층 더 떳떳해질 것이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이제는 피할 공간도 주지 않는 장창 세례가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다.
'헥토르가 왜 나와의 싸움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아.'
쿠우우웅!
시몬도 지지 않고 발을 굴렀다. 그동안 사용했던 모든 스켈레톤들의 뼈가 두둥실 떠올라 시몬의 정면으로 집합했다.
'사실 그냥 한 번 정도 져주는 것도 방법이야. 그러면 학교생활이 조금 더 편해지겠지. 하지만.'
두근- 두근-
시몬은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두 손을 지휘자처럼 휘둘렀다.
'승부에선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중앙에 모인 뼈들이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이며 커다란 탑의 장벽을 형성했다.
<본 월(Bone Wall)>
투타타타타타타탁!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본 스피어가 벽에 막혀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간다. 그제야 상황파악을 마친 구경꾼들이 기겁한 소리를 내며 튕겨 나오는 뼈들을 피해 도망쳤다.
"무슨 소란이냐!"
결국 랭거스틴의 경비병들까지 몰려들었다. 잔뜩 흥분해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경비병들의 등장에 움찔거리며 물러나거나 등을 돌려 도망쳤다.
랭거스틴의 경비병들은 과잉진압의 악명으로 유명했다.
"어떤 정신 나간 새끼들이 대낮부터......!"
경비병이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와보았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싸우는 건 갱들도, 주민들도, 여행객도 아니었다. 키젠 교복을 입은 두 소년이 붉은 넥타이를 휘날리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나왔던 경비병들은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키젠이었어?"
그때 구경꾼들을 비집고 달려든 노파가 경비에게 뛰어들어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고, 좀 말려줘! 저 뒤에 우리 가게가 있다우!"
"크흠. 어르신. 키젠은 저희 관할이 아니라서......."
"혀, 형님. 한번 슬쩍 말이라도 해봐요. 싸움 그만해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니가 해 미친놈아!"
경비병들마저 서로 나가라며 다투기 바빴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그들 사이를 한 남자가 지나쳐 걸어갔다. 경비병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남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꽝!
충돌한 두 소년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키젠 교복 덕분에 피차 상처는 없었지만 충격으로 인한 몸의 부담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칠흑도 소모되고 체력이 떨어져 갔다.
"시몬 폴렌티아아아아아!"
헥토르가 두 팔을 떨치듯 펼쳤다.
처음엔 적당히 몇 대 치고받고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사방에서 동시에 열린 아공간에서 시룡의 비늘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다리와 상체가 순식간에 용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결투평가까지 더는 못 기다려! 지금 여기서 놈을 꺾고 2학기에 들어간다!'
그가 입을 쩍 벌리며 칠흑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꽈아아아아아앙!
검붉은 폭염이 시몬의 앞에서 폭발했다.
불과 폭발이 일어나자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불똥의 잔해가 건물로 옮겨붙으며 활활 타올랐다.
고오오오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난 한가운데, 뱀처럼 똬리를 튼 금속의 칼날이 시몬의 몸을 빈틈없이 가리고 있었다.
헥토르가 씩 웃었다.
"드디어 그 소환수를 꺼냈냐!"
"이 앞으로는 나도 자제 못 할지도 몰라."
칼날이 벌어지며 시몬의 번들거리는 두 동공이 보였다.
"계속할 거야?"
"당연하지!"
펄럭!
헥토르의 어깨에 달린, 구멍 숭숭 뚫린 시룡의 날개가 최대 크기로 펼쳐졌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시몬 폴렌티아!"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헥토르가 휘두르는 용의 발톱과, 본 아머를 두른 시몬의 주먹이 대기를 가르며 돌진했다.
터업.
"!"
두 소년의 팔이 동시에 누군가에게 붙잡혔다.
엄청나게 강한 힘으로 두 팔의 방향이 비틀어지는 동시에, 두 소년의 몸이 교차하며 공중에서 뒤집혔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몸 위로 떠오른 붉은 방울이 보였다.
'이 기술은?!'
퍼어어어어엉!
피폭발이 일어나며 두 소년의 몸이 그대로 타일을 박살 내며 들어갔다.
"흐음-"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한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중앙에서 팔을 교차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머리색과 같은 갈색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었다.
"여기서 이러면 곤란한데."
남자가 외눈 안경을 약지와 엄지로 올리며 말했다. 무척이나 차분하고 신사 같은 목소리에 곤두섰던 신경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아직 개학 전이니 자중해 줬으면 좋겠구나."
"크윽!"
머리에 잔뜩 타일 잔해를 뒤집어쓴 헥토르가 고개를 들었다.
"키젠 간의 결투를 방해하다니! 네놈은 뭐냐!"
그때 카미바레즈가 입을 틀어막은 채 놀란 표정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 박사님?"
"오랜만이구나. 카미바레즈."
그가 부드러운 눈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저 사람이 카미바레즈가 신세 졌다는 바로 그 박사님인가?
시몬은 상황파악을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지만 헥토르가 이를 갈며 몸을 일으켰다.
"정체를 밝혀라!"
"중대한 임무를 수행 중이신 내 스승 실라지 님을 대신해, 내가 한 학기 동안 혈류학 수업을 진행하게 될 것 같구나."
남자가 미소 지었다.
"혈류학을 담당하게 된 '발터 한'이라고 한다. 잘 부탁하마."
'새로운 혈류학 교수......?'
시몬과 헥토르는 물론, 카미바레즈도 놀란 눈치였다.
"박사님! 아, 아니! 교수님! 어떻게......."
"실라지 스승님의 임무가 길어질 예정이라 스승님의 추천을 받은 내가 정식 교수로서 수업을 맡기로 했단다."
그냥 실라지의 대타가 아니라 정식 혈류학 교수.
이미 외부 면접을 통해 발터의 교수진 합류는 확정된 상태였다.
"그리고 아직은 그냥 박사란다. 로크섬에 가서 교권을 받은 뒤에 교수가 되는 거니까."
키젠 측의 면접은 합격했지만, 아직은 일반 네크로맨서였다. 이제 로크섬에 건너가서 네프티스를 대면하면 정식 키젠 교수로서 막대한 권력을 쥐게 된다.
'아직은. 이라.'
그때 헥토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