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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98화 (198/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8화

헥토르가 살벌한 기세로 몸을 일으키자, 발터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그러니?"

부드러운 카리스마.

발터의 미소에는 그 어떤 공격성도 없었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 같은 게 있었다.

휘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헥토르는 중얼중얼 키젠 교수 어쩌고를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실시간으로 무수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결국 눈에 초점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대단히 실례가 많았습니다 교수님."

헥토르가 꼬리를 내렸다.

'......역시, 이 녀석이라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시몬은 속으로 안도했다.

헥토르는 학생들 사이에선 물불 안 가리는 난폭한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교수진을 비롯한 어른들에게만큼은 깍듯하고 의젓하게 굴어서 평판 자체는 좋았다. 사실 꽤 영리한 녀석이다.

"나는 아직 키젠 교수가 아닌데."

발터가 쑥스러운 듯 옆머리를 긁었다.

"뒤처리는 다른 말 나오지 않도록 무어 가문이 책임지고 수습하겠습니다. 키젠에 돌아가서 벌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다며, 헥토르가 등을 돌려 터덜터덜 걸어갔다.

시몬은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특례 10번 말콤이나, 셋째 왕자 안드레 등 불같은 성격으로 몰락하는 학생들과 헥토르가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는, 역시 꼬리 내릴 때를 안다는 점이었다.

싸움이 끝난 걸 알았는지 구경꾼들도 제 갈 길 가며 빠르게 흩어졌다. 발터와 카미바레즈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그런데 바닥에 무척이나 비싸 보이는 금빛 만년필이 떨어져 있었다.

시몬은 허리 숙여 그것을 주웠다.

'이거 어떻게 읽는 거더라?'

만년필에는 멋들어진 필기체로 한 단어가 박혀 있었다.

'......유다(Judah)? 사람 이름인 것 같은데, 누구 거지?

바로 그때.

시몬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

그렇게 서글서글하고 상냥하게 학생들을 대하던 발터가 갑자기 끔찍한 괴물과도 같은, 살벌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한 시몬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서 눈을 한번 깜빡이자, 발터는 다시 평소의 그 부드러운 미소로 돌아와 있었다.

"아, 고맙다. 아까 바닥에 떨어뜨렸나 보구나."

발터가 손을 내밀자 시몬이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만년필을 돌려주었다. 발터가 만년필을 받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봤니?"

......무슨 말일까.

만년필에 박혀 있는 유다라는 글자? 아니면 아까 그 소름 끼치게 무서운 눈빛?

시몬이 입을 열었다.

"이 만년필, 선물 받으셨나 봐요. 교수님."

"왜 그렇게 생각하니?"

"유다(Judah)라고 적혀 있었으니까요. 이런 명품 만년필에는 본인 이름을 새기는 게 관습이라고 들었어요."

시몬은 그렇게 말하고 발터의 반응을 관찰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눈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고인의 유품이란다. 내가 물려받았지."

"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만년필을 정장 안 주머니에서 집어넣은 발터가 손을 내밀었다.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지?"

시몬를 악수를 받으며 대답했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자네는 명석한 학생이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두 사람이 악수하며 서로 미소 지었다. 카미바레즈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님! 시몬은 저랑 같은 조원이에요!"

"그래, 맨날 이야기하던 그 익명의 남학생 맞지?"

"앗, 교수니임!"

카미바레즈가 얼굴을 붉혔다. 발터의 눈길이 시몬으로 향했다.

"실라지 스승님께 이야기 많이 들었다. 네가 가진 SM-1 혈액에 대한 모든 연구결과를 인계받았으니 2학기부터는 정상적으로 혈류학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란다."

"기대되네요."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이 사람. 언제 손을 놓을 생각이야?'

악수가 끝나 시몬은 상대의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발터가 계속 붙잡고 있었다.

시몬은 다소 무례할 수도 있지만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키듯 해서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릎을 굽히며 신발 끈을 묶는 척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앞에서 서툰 몸가짐으로......."

"음? 끈이 풀려 있었구나. 괜찮단다. 아까 격렬하게 싸우던데."

그때 카미바레즈가 슬쩍 발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교수님! 시몬은 싸우려고 한 게 아니라 그저......!"

"걱정 말거라. 내가 교수가 아닐 때 일어난 일로 징계를 줄 생각은 없단다."

그렇게 말한 발터가 이번엔 카미바레즈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잘 곳은 있니? 우리 숙소로 오렴. 전에 이야기했던 우르슬라의 피에 대해서 쭉 논의하고 싶은데."

그 말에 카미바레즈가 두 손으로 시몬의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

"권유는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조원들이랑 같이 있기로 했거든요."

"음, 그렇구나."

발터가 손을 내리고는 아쉬운 듯 미소 지었다.

"그럼 두 사람 다 키젠에서 보자꾸나. 최근 이 도시는 뒤숭숭하니 몸조심하려무나."

"네! 키젠에서 뵈어요!"

"들어가십시오 교수님."

발터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곤 등을 돌려 걸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몬이 슬쩍 시선을 올렸다.

저 사람이 실라지를 대신할 새로운 혈류학 교수.

'......유다. 왜 최근에 저 이름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왜 그러세요 시몬?"

"아, 아니. 그냥 잡생각을 좀. 메이린이 기다리겠다. 깃펜 사러 가자."

"네!"

* * *

두 사람은 깃펜을 구매하고 점심으로 먹을 음식들까지 잔뜩 포장해서 시계탑 숙소로 돌아왔다.

"메이린! 딕! 우리 왔어요!"

카미바레즈가 장바구니를 손에 끼고 총총걸음으로 거실로 뛰어왔다. 그런데 숙소는 텅 비어 있었다.

"어, 두 분 다 어디 가셨지?"

"왜 그래?"

뒤따라온 시몬이 실내화로 갈아신으며 물었다.

"메이린이랑 딕이 안 보여요."

시몬이 손에 든 반찬거리를 주방에 놓고 화장실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숙제하다가 잠깐 밖에 나간 걸까요?"

"그런가 본데."

헥토르와 싸우느라 지쳐 있던 시몬이 푹신한 소파에 훌러덩 몸을 맡겼다.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쉬고 계세요! 두 분이 돌아오기 전까지 제가 식사 준비할게요."

"아냐, 나도 도와줄게."

시몬이 다시 소파에서 일어났다.

"......."

일어나면서 바닥을 본 시몬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시몬은 무릎을 꿇고 천천히 바닥을 손으로 쓸어보기 시작했다.

'흙, 그리고 발자국의 흔적.'

이 숙소에서는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하는데 흙이 있다. 시몬은 세심하게 바닥을 살피기 시작했다.

억지로 발자국을 지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다 치우는 못한 모양이다.

메이린과 딕이 발자국을 지워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자다가 일어나서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

지워진 발자국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테라스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시몬은 테라스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예리하게 훑었다.

테라스의 난간 한쪽만 먼지가 깨끗하게 사라져서 자국이 남아 있다. 마치 이 위에 줄 같은 것을 건 흔적이다.

"시몬?"

뭔가 이상하단 걸 깨달은 카미바레즈도 테라스로 나왔다.

"표정이 무서워요. 무슨 일 있어요?"

"아무래도."

시몬이 굳은 얼굴로 카미바레즈를 바라보았다.

"숙소에 침입자가 있었던 것 같아."

* * *

어두운 조명, 습한 공기, 그리고 곰팡내 나는 어딘가.

메이린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그녀는 붙잡혀 있었다.

철제 의자에 두 팔이 뒤로 묶여 있었고, 다리도 밧줄에 고정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쩐지 데스랜드에서의 데쟈뷰가 느껴지는 상황.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 짜증 나아아아아!"

그녀가 발칵 소리를 지르자 주위의 남자들이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보든 말든 그녀는 짜증스럽게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진짜 나 혼자서 다 이기는 건데!'

시몬과 카미바레즈가 밖으로 나가고, 메이린은 딕을 쪼면서 방학 숙제를 시키고 있었다. 답답하다면서 테라스 밖에서 공부하던 딕이 갑자기 '억!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린이 깜짝 놀라서 테라스로 가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저 우락부락한 근육남들이 밧줄을 타고 테라스에 침입해 있었다. 제대로 맞은 건지 딕은 키젠 교복을 입고서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이어지는 교전.

메이린은 혼자서 정체불명의 남자들을 여덟 명이나 쓰러뜨리는 기염을 토하며 무쌍을 찍었지만, 침입자들이 딕의 교복을 벗기고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왔다.

'저 멍충이만 아니었어도!'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밧줄에 묶여 바닥에 쓰러져 있는 딕이 애벌레처럼 꿈틀대는 중이었다.

뭔가 이상한 독에 당했는지 해롱거리며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정말 정말 한심했다.

"안심해도 좋다. 신경 교란용 독이고, 한두 시간 뒤면 부작용 없이 회복된다고 말한다."

조금은 어색한 대륙어가 들렸다. 의자에 묶여 있던 메이린이 고개를 들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딕을 제압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들 누구야!"

메이린이 소리쳤다.

"감히 키젠 학생들을 납치해? 니들 어디 깡촌에서 살다 내려왔냐? 아님 마빡에 단체로 화살 처맞기라도 했어?"

남자들 몇몇이 눈썹을 꿈틀했지만, 메이린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제지했다.

그 또한 주위의 다른 남자들처럼 상의를 까고 기이한 무늬를 칠했다. 하지만 골격이 괴물처럼 컸고 몸에 무늬도 더 화려했으며, 머리엔 사자의 머리 가죽을 통째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이 대장이라고, 메이린은 예상했다.

"내 이름은 위차샤 와함라타. 그리고 우리는 '후파'족이다."

"후파족이건 허파족이건 간에! 이거 풀어!"

"미안하지만 그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위차샤가 무덤덤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준비."

그의 말에, 어둠 속에서 남자들이 이상한 물건을 가지고 다가왔다. 위치샤는 직접 붉은 천 같은 것을 건네받아 메이린을 내려다보았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가 붉은 천을 들고 메이린의 머리로 두 팔을 뻗었다. 메이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좀 빨리 와줘! 시몬!'

* * *

하아! 하아!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숨을 헐떡이며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시계탑 근처를 지나던 여행객들로부터 제보를 들었다.

덩치가 크고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들이 뭉쳐서 시계탑을 나오고 있었다는 정보. 딕과 메이린은 그들에게 납치당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카미바레즈가 울먹이며 말했다.

"딕이랑 메이린을 왜......!"

"나도 전혀 모르겠어."

아무런 단서가 없다. 너무나도 경우의 수가 많았다.

'내가 놓친 게 뭐가 있지?'

시몬은 우선 냉정하게 이 도시에 와서 얻은 정보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일단 납치자들은 키젠 학생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암흑연합 사람이라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을 불문율을 깼다.

랭거스틴의 주민이나 갱들의 소행이 아닌, 외부인의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최악의 경우엔 도시엔 숨어든 광신도 프리스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

-몸에 기이한 무늬를 칠한 남자들을 조심해라.

카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카쟌은 그냥 아무 말이나 줄줄 흘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다.

왜 몸에 무늬가 있는 남자들을 왜 조심하라고 한 걸까? 시계탑에서 나왔다는 덩치들이 바로 그들이 아닐까?

시몬의 사고가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호, 혹시......!"

카미바레즈가 입술을 떨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신문에 나왔다는 그......! 요즘 랭거스틴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살인범과 관련 있지 않을까요?"

"......글쎄."

확신할 순 없지만 그 추측은 조금 이상했다. 시몬은 아공간을 열어서 아까 구매한 신문을 꺼냈다.

사건 현장의 모습은 적나라했다.

벽이 박살 나 있고, 사람은 거리 한복판에 떡 하니 두 팔을 벌리고 죽어 있다.

약간은 우발적으로도 보이는 범행. 흔적을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을 납치한 남자들은 달랐다. 굳이 시계탑까지 올라와서 딕과 메이린을 납치하고 왔다 간 흔적도 지워 버렸다.

이 두 종류의 사건은 잘 맞물리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아!'

그때 신문의 살해현장 사진을 보고 있던 시몬의 눈이 커졌다. 자세히 보니 피해자의 배에 어지럽게 칠해진 무늬가 보인다.

'설마!'

시몬이 걸음을 멈췄다.

"시몬?"

"잠시만 카미."

시몬은 근처의 잡화점으로 뛰어들어가 며칠 간의 랭거스틴 지역지를 죄다 사 왔다. 신문들 모두 1면에 정체불명의 살해현장을 담고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어.'

크기나 색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피해자들 모두 몸에 저 기이한 무늬가 칠해져 있다. 살인범은 아무나 막무가내로 죽인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오로지 몸에 무늬가 있는 저 남자들만 죽이고 다닌 거였구나.'

카쟌도 굳이 조심하라고 말한 건, 요즘 뒤숭숭한 살해범이 아니라 몸에 무늬가 있는 남자들 쪽이었다.

이러면 남자들이 딕과 메이린을 납치했을 가능성에 확실히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그 남자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왜 살해당한 걸까.

뭣보다 두 사람을 납치한 이유는 뭐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일단 카쟌을 찾아봐야 하나.'

하지만 이 넓고 복잡한 도시에서 카쟌을 찾아내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리고 카쟌 또한 지금 그 남자들을 뒤쫓고 있을 테니, 굳이 카쟌을 먼저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자,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 게 최선일까.'

시몬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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