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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199화 (199/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9화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메이린을 납치한 후파족 추장, 위차샤가 붉은 천을 들고 그녀의 머리 위로 두 팔을 뻗었다.

"......?"

질끈 눈을 감았던 그녀가 조심스레 실눈을 떴다. 막 저걸로 목을 조르거나 눈을 가릴 줄 알았더니, 자연스럽게 어깨 위로 안착하며 가슴 아래로 천이 떨어져 내렸다.

알고 보니 그냥 빨간색 바탕에 당근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였다.

"???"

갑자기 그녀의 앞으로 식탁이 내려오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구운 칠면조 요리가 세팅되고, 주위로 기름에 튀긴 요리나 버섯 수프 등이 진열되었다.

"풀어드리라고 명한다."

위차샤가 말하자 우락부락한 남자 한 명이 그녀의 뒤로 와서 밧줄을 풀어 두 손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다리와 허리에 고정된 밧줄은 풀어주지 않았다.

달칵!

어느새 신경독에 취한 헬렐레한 딕도 다른 의자에 앉혀졌고, 그의 앞에도 음식이 나오고 있었다.

"편안하게 드십시오!"

남자들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

이내 분위기가 바뀌었다.

후파족의 전통 악기인 듯, 생소하지만 맑은 피리와 북소리가 배경음악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상체를 깐 남자 두 명이 그녀의 좌우에서 이파리로 만든 부채를 흔들어주고 있었다.

메이린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멍해 있다가 이내 벌컥 화를 냈다.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우리의 조건은 하나다."

위차샤가 말했다.

"너희가 오늘 하루만 이곳에서 머무르는 거다."

"......."

"이 이상 너희들의 몸에 손을 대거나 안위를 위협하진 않는다. 우리의 방식이 서툴 수는 있지만,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최선을 다해 너희들을 편안하게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메이린이 '하'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지랄도 이 정도면 병이다 병! 니들이 밥을 주든 부채질을 하든 이건 명백한 납치야. 사람을 이따위로 감금해 놓고 흐지부지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알고 있다."

위차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부담스럽게 꿈틀대는 근육과 적나라하게 드러난 두 포인트 때문에 메이린은 질색하며 눈을 돌렸다.

"우리는 키젠 학생을 납치했다. 그에 대한 대가를 감수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요구사항을 너희에게 전달했을 뿐, 너희가 이곳에서 도망치려 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안위의 위협도 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메이린이 팔짱을 꼈다. 그녀는 여전히 냉소적이고 차가운 태도였지만 대화할 여지 정도는 생겼다.

"한번 들어나 보자. 우릴 여길 붙잡아두려는 이유가 뭐지?"

위차샤가 손바닥을 슥 펼쳐 보였다.

"그 물음에도 대답하겠다. 하지만 그전에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떤지 묻는다. 음식이 식고 있다."

저 멀리서 빨간 앞치마를 두른 근육남 두 명이 국자를 휘젓다가, 메이린과 눈이 마주치자 엄지를 척 세우는 모습이 보였다.

"열심히 준비했......."

"나가 죽어. 변태 새끼들아."

메이린이 싸늘하게 대꾸하자 두 요리사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위차샤가 안타까운 듯 말했다.

"에우라와 하케는 마음이 여리지."

"그딴 거 내 알 바 아냐! 그리고 내가 왜 저 찌찌 변태들이 만든 걸 입에 대야 하는데? 독을 탔을 수도 있는데?"

"네게 독을 먹일 생각이라면 이미 강제로 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는다."

"뭐라고 한들 난 한 입도 안 먹......!"

꼬르르르륵.

타이밍 좋게 배에서 소리가 났다. 메이린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으아아악 쪽팔려 진짜! 왜 하필 이럴 때!'

위차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직 아무것도 못 먹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큭!"

그녀의 얼굴이 분함과 부끄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재차 말하지만 우린 음식에 장난질을 하는 쓰레기는 아니다. 너희가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것이다. 결정하는 건 네 몫이다."

"......."

메이린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납치범들이 준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다.

아니, 근데. 이건 그냥 내가 짜증 나서 성질부리는 중일 뿐이고, 놈의 말대로 독이나 약을 먹일 거면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사실 붙잡혀 있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냥 여기서는 협력해 주는 척하면서 고분고분하게 굴다가, 놈들이 방심했을 때 기습으로 확 무너뜨리는 게 최선이다.

이건 모두 전략적인 판단이지. 절대로 배가 고파서 이러는 건 아니다.

의식의 흐름 끝에 메이린은 포크를 들었다. 그러고는 눈앞에 놓인 큼지막한 칠면조 요리의 살점을 살짝 눌러보았다. 마치 치즈처럼, 포크가 부드럽게 연한 육질을 파고들며 육즙이 주르륵 쏟아진다.

그녀는 포크로 고기조각 하나를 뗀 다음, 조심스레 손바닥으로 받치고 한입 먹어보았다.

"!"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하 씨, 자존심 상하는데 겁나 맛있어 미친. 1학기 때 홍펭 교수님 집에서 먹었던 그 바비큐 맛이야.'

손에 쥔 포크를 덜덜 떨던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다시 한 점을 떼어냈다. 위차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다."

"아, 입 닥쳐! 근데 맛있긴 해!"

그 말에, 요리를 만들던 앞치마의 두 남자가 눈에 띄게 좋아하며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위차샤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에우라와 하케는 칭찬에 약하지."

"그딴 거 알고 싶지 않다고!!"

* * *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열심히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흩어져서 찾아보자. 그편이 빠를 것 같아."

시몬의 제안에 카미바레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요! 그런데 두 사람의 위치를 발견하면 어떻게 서로에게 알려주죠?"

"잠깐만."

시몬은 아공간을 열어서 어제 만들고 남은 등불 세트를 꺼냈다. 아직 두 장 더 남아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만들어봤기에 접는 건 금방이었다. 빠르게 두 장을 완성한 시몬이 한 장을 카미바레즈에게 주었다.

"천 개의 불빛이 시작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어. 발견한 쪽이 먼저 등불을 띄우는 거야. 그리고."

다음으로 시몬이 품에서 꺼낸 건 딕의 오르골이었다.

예전에 데스랜드에서 좀비들의 시선을 끌 때 썼던 물건인데, 딕이 여기에 아이디어를 얻어 좀비들을 끌어모으는 용도로 개조했다.

어젯밤에 술 마실 때 나름 히트작이라고 자랑하면서 세 사람에게 하나씩 선물로 줬었다.

"먼저 찾은 사람이 등불을 날리고 그 위에 오르골을 매달아서 소리가 나게 하자."

"좋아요!"

그렇게 두 사람은 둘로 흩어져서 랭거스틴 구석구석을 뒤지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그렇게 많은 남자들이 로브를 뒤집어쓰고 수상쩍게 걸어갔는데, 이상할 만큼 목격자가 별로 없어. 아마 시계탑 숙소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있을 거야. 동시에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고 숨겨진 곳.'

시몬은 좁고 미로 같은 골목 위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어, 저 할머니는?'

판잣집들이 가득한 할렘가 골목으로 들어오자, 흰자뿐인 눈에 얼굴의 반이 기괴하게 비틀린 할머니가 보였다. 아까 카미바레즈와 같이 다닐 때 질병의 정령 어쩌고 했던 바로 그 할머니였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작은 말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몬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어, 실례합니다."

그녀가 중얼중얼 이상한 말을 읊조리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쥐들이 사라졌어."

"네?"

"도시의 쥐들이 다 사라졌어. 벌레도, 까마귀도, 모두."

시몬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왜 사라진 걸까요?"

"질병의 정령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야."

중얼거리듯 말하던 그녀가 떽! 하고 목소리를 확 높였다.

"정령께서 노하셨다! 오늘 밤, 또 이 도시에서 사람이 죽을 게야!"

"......."

또 그런 살인사건이 발생한단 말인가? 시몬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그 질병의 정령은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요?"

"정령께서는......!"

말을 이으려던 그녀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싸아아아아아아-

할렘가 골목 곳곳에서 수많은 벌레들이 바닥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몰려들고 있었다.

"왔다! 왔어! 정령께서 오셨다!"

할머니는 기겁하며 본인의 판잣집으로 들어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시몬은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내 벌레 떼가 몰려들어 순식간에 시몬을 지나쳤다.

'아.'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길래 몸으로 올라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확히 시몬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시몬도 조금 거리를 두고 그 벌레들을 따라갔다.

'어디까지 가려는 거지?'

벌레들은 점점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쾅!

시몬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무집의 벽면이 박살 나더니, 그 안에서 새까만 쥐 떼가 파도처럼 몰려들어 시몬의 몸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마치 급수의 흐름 같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시몬을 태운 쥐 떼가 골목 아래로 시몬을 내던졌다.

"웃차차."

시몬이 충격 없이 바닥에 착지했다. 쥐 떼들은 그대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고 시몬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할렘가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반지하 건물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시몬은 한 주점 앞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로 들어오라는 건가?'

시몬은 각오를 다잡고 주점문을 열고 들어갔다.

"실례합...... 윽!"

코를 찌르는 술 냄새.

술에 찌든 듯한 몇몇 사람들이 엉망으로 널브러져 있다. 이 주점의 주인장으로 보이는 남자 또한 얼굴이 시뻘게진 채 뻗어 있었다.

다들 쓰러져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중앙에 멀쩡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명.

꿀떡. 꿀떡.

무려 드럼통 하나를 통째로, 그것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술을 들이켜는 여인이 보였다.

목이 꿀렁거리며 액체가 넘어가고 있다. 두 다리는 쩍 벌려서 테이블 위에 발바닥이 보이도록 올려놓았는데,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누, 누구지?'

지금까지 키젠을 다니면서 세상의 이상한 사람은 다 만나봤다고 생각했지만, 이 사람만큼 이상한 사람은 없었다.

고슴도치처럼 삐쭉삐쭉하면서도 엉망으로 얽혀 있는 회갈색 머리, 그 사이로 동물처럼 삐쭉 솟아난 두 귀.

몸에는 누더기 같은 옷을 걸쳤는데 이걸 의복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온갖 누더기를 대충 몸에 걸치고 붕대 매듯 그저 칭칭 둘렀다. 몸과 옷 곳곳에 지저분한 찌든 때와 얼룩들이 보인다.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씻은 지는 얼마나 된 걸까.

문명 속의 사람보다는 야생의 짐승에 더 가까운, 동화 속 이야기에서처럼 늑대가 키운 아기가 성장한 모습 같았다. 언어 그대로의 야인(野人).

하지만 그녀의 몸에서는 안 씻은 사람들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위험한 화학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네가."

쿵!

기어이 드럼통을 다 비우고 바닥에 내려놓은 그녀가 히죽 웃었다. 이빨이 상어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삐쭉삐쭉했다.

"시몬 폴렌티아란 놈. 맞지?"

나를 알고 있다. 시몬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싹수없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게 돼 있냐?"

그녀가 손을 슥 내밀자, 까마귀가 날아와 주점의 술 한 병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코르크 마개를 오프너도 없이 맨손으로 따버리고는 바로 입으로 직행했다.

꿀떡 꿀떡.

다시 술을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 병을 가뿐히 비워낸 그녀가 '캬하!' 하는 감탄사를 흘리며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 보니.'

시몬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누구랑 좀 묘하게 닮은 것 같은데.'

"암튼, 너도 키젠 1학년 맞지?"

"아, 넵! 맞습니다."

그녀가 의자의 팔걸이에 팔을 놓으며 킥킥 웃었다.

"그럼 홍펭이라고 아냐? 내가 걔 쌍둥이 언니 되는 사람이다."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어쩐지 닮았다고 했더니!

풍기는 분위기나 복장, 말투나 억양 피부색 등 완전히 다른 사람 같은데 외모가 닮았다. 홍펭의 야인버전 같은 느낌?

"그, 그런데 홍펭의 언니분께서 이곳에는 왜......."

"내 이름은 별야 툰 소쿰 마르라트."

그녀가 입을 벌리자 상어 이빨이 번뜩였다.

"이제 숨길 것도 없겠지? 내가 바로 키젠의 새로운 맹독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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