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01화
"와우! 오오오!"
위차샤의 명령에 새들이 일사불란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딕이 연신 감탄성을 터뜨렸다.
"개쩐다! 저게 드루이드들의 힘이구나!"
메이린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납치당해서 무섭답시고 질질 짜는 게 아니라, 왜 하필 저딴 놈이랑 잡혀 오게 됐을까 하는 짜증과 서러움 때문에.
뒤에서 메이린이 한심하게 보건 말건, 딕은 후파족들과 말을 트고 연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절대 인질로서 의자에 묶여서 안위를 위협받고 있는 사람의 반응이라 보기 힘들었다.
"이야, 드루이드들이 다룰 수 있는 동물이 다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언제 어디서건 딕의 친화력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 근데 형님들이 쫓는 별야라는 사람은 쥐나 벌레를 다룬다면서요? 그게 사실이면 이 도시에서 우릴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에요?"
메이린이 발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걸 굳이 왜 말해!
"그녀의 힘으로 우리 위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위차샤가 단정 지었다.
"우리는 도시 곳곳에 200개의 토템을 설치했다. 드루이드들의 비술로 동물들의 통제력을 잃게 하는 힘이다. 그녀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오늘 하루 안에 숨겨진 토템들을 다 뿌리 뽑지 않는 이상, 이곳의 위치를 특정할 순 없다고 말한다."
"이열~ 엄청 철저하게 준비하셨네요 형님!"
"물론 그녀가 우릴 찾아내도 상관없다. 그때는 교전하면 그만."
위차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키젠에 부름을 받은 자를 바로 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녀가 완전히 교직을 포기한 뒤에 깔끔하게 목숨을 거둘 것이다."
"아하! 그런 거였군요!"
딕이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아부를 떨어댔다. 메이린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추장!"
그때 후파족 남자가 뛰어들어와 위차샤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위차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딕을 응시했다.
"같잖은 수작을......."
딕은 싱글싱글 웃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지금 당장 은거 장소를 옮긴다!"
"예!"
후파족 남자 한 명이 딕을 의자째로 훌쩍 거꾸로 들어 올렸다. 딕이 '억!'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피 쏠립니다 형님!"
"네놈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는 거다!"
메이린에게도 한 명이 다가왔다.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봐, 분명히 말해두는데! 내 몸에 털끝 하나라도 손댔다간......!"
하지만 그는 실랑이할 생각이 없는 듯, 메이린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윽, 아파!'
그대로 메이린을 의자째로 들어 올리려는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천장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천장의 잔해가 와르르르 떨어지고, 폭발 연기와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야!"
후파족들이 웅성거리며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위에서 누군가가 내려왔다.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르르르르륵!
자욱한 먼지 속에서 은빛의 촉수칼날들이 사방팔방으로 휘둘러지며 후파족들을 날려 버렸다. 메이린을 붙잡으려던 남자도 날아갔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시몬!"
바닥에 내려온 시몬이 서늘한 눈빛으로 후파족들을 응시하다가 메이린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정말 다행이야. 다친 곳은 없어?"
* * *
30분 전.
할렘가 주점.
"아 귀찮네."
별야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뭔가 잘 안 풀린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세요? 교수님."
시몬이 얼른 물었다.
"우리 아이들의 컨트롤이 제대로 안 돼. 아무래도 후파족 놈들이 토템을 깐 것 같은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학물 같은 위험한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직접 가봐야겠어. 친구들을 찾는 건 내게 맡기고, 넌 어디 경비대 같은 곳에 들어가 있어. 괜히 빨빨거리면서 싸돌아다니다가 붙잡히지 말고."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뻥 뚫린 주점 천장 위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시몬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다시 찾아보자.'
시몬이 주점을 나서려 하는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
저 멀리서 찢어질 듯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딕의 신제품인 오르골 소리였다. 카미바레즈가 뭔가를 발견했다는 신호다.
시몬은 즉시 주점을 뛰쳐나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렸다.
'등불! 등불! 어디 있지?'
금방 찾았다. 아직 1,000개의 불빛이 일어나기 전이었기에, 밤에 외로이 떠오르는 등불이 보였다.
시몬이 정신없이 그쪽으로 달려갔다.
"카미! 어디 있......!"
"시몬!"
그녀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른 그녀에게 다가간 시몬이 조용히 물었다.
"찾아냈어?"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녀가 입술에 올린 손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새빨간 핏방울이 바닥에 말라붙어 있었다.
"핏방울?"
"네. 딕의 피 냄새예요."
카미바레즈는 뱀파이어 일족답게 피 냄새에 민감했다. 피 냄새로 상대가 누군지 구분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딕이 끌려가는 도중에 의도적으로 손가락 등을 베고 피를 짜내서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아요! 피 냄새를 따라가 보니까 수상한 남자들이 있었어요."
"역시 딕이네."
시몬이 미소 지었다. 잔머리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냄새가 향하는 곳으로 안내해 줘."
"네!"
두 사람은 살금살금 어둠 속의 거리를 걸었다.
"저기예요."
골목에 착 붙은 카미바레즈가 손끝으로 가리켰다. 낡은 건물에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둘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키가 크고 쩍 벌어진 어깨에 덩치도 좋다. 대충 짬밥에 밀려서 경비를 서는 게 아니라 저 둘은 수준급의 전사다.
한 방에 해치우지 못하면 바로 도망쳐서 안의 동료들에게 상황을 알릴 것이다.
"저주를 걸고 진입하자."
"그게 좋겠어요! 하지만 거리가 좀 멀어요. 빗나가면 어쩌죠?"
시몬은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씩 웃었다.
"나한테 좋은 수가 있어."
* * *
로브를 뒤집어쓴 두 남자는 아지트 입구의 경비를 맡았다.
그들의 임무는 심플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대응하면서 안으로 들어와 상황을 알리는 것.
가끔 거리에서 진상 부리는 술꾼들을 치우는 것 외에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오늘도 시작이군."
오른쪽의 남자가 후파족 언어로 말했다.
천 개의 불빛이 시작되며 무수한 등불들이 밤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왼쪽의 남자가 말을 받았다.
"형님, 저런 거는 왜 하는 거유."
"나도 몰라. 여긴 별이 잘 안 보여서 그러나."
"그보다 이 동넨 갑갑해서 죽겠슈. 빨리 그 여잘 잡아 죽이고 초원으로 돌아가고 싶구먼."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하늘로 올라가야 할 등불 두 개가 힘이 다한 듯 비실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허 참."
남자가 픽 웃었다. 등불은 그들의 근처에 떨어졌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 날리는 사람도 있슈."
"구멍 났네. 어디 걸려서 찢어졌나 본데."
남자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코를 후비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바로 그때, 등불 안에 숨겨져 있던 마법진이 번뜩였다.
<시크니스(Sickness)>
<블러드 프레셔(Blood Pressure)>
각각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저주가 연기의 형태처럼 뻗어 나가 두 사람의 몸을 관통했다.
"......!"
남자들은 동시에 강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그 틈을 질풍처럼 파고든 시몬이 오른쪽 남자의 복부를 후려쳤다.
"커헉!"
남자의 몸이 뒤로 꺾이자, 등을 짚고 올라타듯 뛰어오른 시몬이 팔꿈치로 상대의 뒤통수를 내려쳐 기절시켰다.
"형님!!"
동료 하나가 순식간에 당했다. 왼쪽 남자가 시몬에게 대응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덥석! 하고 누군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입과 코를 가렸다.
피잉!
습격자의 손에서 뭔가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코와 입이 시큰거리더니 코피가 줄줄 쏟아지며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침입자!'
남자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유지하며 등 뒤로 손을 보냈다. 그러곤 달라붙은 뭔가를 강제로 떼어 떨어뜨렸다.
연보랏빛 머리카락의 조그만 소녀가 미약한 신음을 흘리며 길가에 쓰러졌다.
"이게!"
남자가 그녀를 짓밟으려는 순간,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돌아갔다. 시몬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찌그러뜨리며 강타한 것이다.
수 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엎어진 그가 다시 일어나기도 전에, 득달같이 뛰어든 시몬이 턱을 걷어찼다.
남자는 그대로 흰자를 보이며 널브러졌다.
"카미! 괜찮아?"
시몬이 놀라서 달려갔다. 그녀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몬이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네, 고마워요 시몬."
그녀가 일어서고, 시몬은 신속하게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로브를 벗기더니, 그가 입은 상의를 붙잡고 확 잡아당겼다.
'왓!'
카미바레즈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가렸다. 그의 복부와 가슴까지 천연염료로 칠한 기이한 무늬가 보였다.
"후파족이야. 확실해."
"여기에 딕과 메이린이 붙잡혀 있는 거네요."
"응. 경비가 제압당했다는 사실이 들키는 건 시간문제야. 이 사람들을 치워놓고 바로 돌입을 준비하자."
"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인 카미바레즈가 저 멀리 넘어져 있는 남자의 몸을 붙잡고 '흡!' 하고 힘을 주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체내 칠흑 활성화로 근력을 증강시킨 다음, 질질 끌어서 구석진 곳으로 끌고 들어왔다.
시몬은 진작 남자의 몸을 옆으로 치워놓고는 돌입 루트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건......!'
건물의 천장을 살펴보던 그가 눈을 빛냈다. 지붕 위에 마법진이 보였다.
'메이린의 흑마법이다.'
수식을 읽어보니 '냉기'와 '결집'이 보인다. 칠흑원소계라면 메이린이 확실했다.
잡혀 있는 와중에 칠흑을 몰래 흘려보내서 건물의 지붕 위에 원격으로 마법진을 그리다니. 역시 상아탑 출신다운 실력이었다.
'그럼 나는 이쯤에서.......'
시몬은 카미바레즈에게 침입루트를 손가락으로 알렸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흑마법을 준비했다.
이어서 시몬은 아공간에서 좀비 두 구를 꺼내 지붕에 딱 붙였다. 그리고 물러나서 시체폭발을 준비했다.
그때 건물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핏물이 길처럼 떨어져 있었다고?"
"예!"
딕이 피를 뿌린 것도 슬슬 들킨 것 같다.
놈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자신과 흑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카미바레즈도 들킬지도 모른다.
'바로 들어간다.'
시몬이 카미바레즈에게 진입 사인을 보낸 다음, 좀비들을 향해 뻗은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시체폭발!'
꽈아아아아아앙!
두 마리의 좀비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철골로 이루어진 건물의 천장이 우르르 무너졌고, 그 잔해로 내부에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시몬은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폭발 연기와 먼지로 실내는 주위가 제대로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당황해서 고함을 지르는 후파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사히 착지한 시몬이 왼발로 강하게 바닥을 디뎠다.
'개문!'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르르르르륵!
자욱한 먼지 속에서 은빛의 촉수 칼날들이 사방으로 휘둘러지며 후파족들을 날려 버렸다.
'됐다! 딕이랑 메이린은?'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 의자에 묶인 딕을 들어 올렸고, 마찬가지로 의자에 묶여 있는 메이린에게 손을 대려는 남자가 보였다.
시몬이 메이린 쪽으로 오버로드를 보내 그를 날려 버리는 동시에, 아공간을 열고 스켈레톤을 꺼냈다.
'가라.'
차악! 착! 착!
뼈들이 딕의 의자에 자석처럼 달라붙더니 그대로 날아가 벽에 달라붙게 했다.
"시몬!!"
메이린의 외침이 들렸다. 시몬이 무사해 보이는 그녀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정말 다행이야. 다친 곳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