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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06화 (206/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06화

네프티스는 대용량 아공간을 선물로 사주었다.

시몬은 몇 번이고 감사하다며 허리 굽혀 인사했고, 네프티스는 받을 만한 일을 했다며 시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더 정확히는 그녀가 팔을 뻗고 콩콩 뛰자 시몬이 잠시 쪼그려 앉아 머리를 대줘야 했다.

그렇게 가게 밖으로 나오는 길, 네프티스와 스테파니가 수다를 떠는 사이 시몬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근데 진짜 이거 이렇게 휙 받아도 될까?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거라며."

그 말에 로레인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차보라고 했을 땐 그렇게 빠르게 차더니."

"아, 아니! 그건 그냥......."

"농담이야."

그녀가 드물게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보다, 시몬의 아버님이랑 어머님은 잘 계시니?"

"응. 걱정해 준 덕분에."

"엄마의 전우분들이시라니까, 언제 한번 선물 들고 찾아가서 인사라도 드려야 하는데."

로레인은 자신과 동갑인 것치고는 의젓하고 차분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짊어진 게 다르다는 느낌? 사람들 사이에선 벌써 로레인이 키젠 경영에 어느 정도 입김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내일 개학인데 뭐 하고 있었어?"

로레인이 물었다.

"조원들이랑 숙소에서 방학숙제. 우리 숙소 진짜 좋아. 시계탑 아래층 공간을 쓰는데 괜찮다면 놀러 올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권유는 고맙지만 됐어. 갑자기 가면 걔들 눈치도 보이고, 나도 내일 개학이라 준비해야 하고."

"방학숙제는 다 했어?"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부터 해야지~"

다시 상기하는 거지만, 학생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흑마법 실력을 가진 로레인의 필기 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 * *

네프티스 모녀와 헤어진 시몬은 다시 시계탑으로 돌아왔다.

"잠깐! 이거 틀렸잖아! 저주 수식을 누가 이렇게 쓰래?"

"딕! 여기도 틀렸어요!"

다들 막판 스퍼트 중이었다.

골머리를 싸매며 숙제하는 딕을 중간에 앉혀놓고 두 여학생들이 온갖 잔소리를 퍼붓고 훈수를 두는 중이었다.

"날 그만 내버려 둬어어어어!"

그렇게 절규하던 딕이, 막 숙소로 들어오는 시몬을 구세주라도 되는 것처럼 보았다.

"시몬! 도와줘!"

"그래."

슬리퍼로 갈아신은 시몬이 딕의 맞은편에 앉았다.

"난 소환학 봐주면 돼?"

"아! 그쪽 말고!"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경향도 있었지만, 그래도 네 명의 머리가 힘을 합치니 어느 정도 딕의 방학숙제도 대충 봐줄 만한 단계까지 왔다.

이제 시몬과 카미바레즈도 나란히 앉아서 자신의 숙제를 마무리했다.

"내일 개학식이 기대되네요~"

그녀가 깃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새로운 화제를 감지한 딕이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개학식에 새로운 교수님들 보겠네! 니들 그거 아냐? 이번에 새로 오시는 맹독학의 별야 교수님 말고, 혈류학 교수님도 바뀐다는 거?"

"응."

"네."

딕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런 반응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 그럼 바뀐 혈류학 교수님이 누구신지는 모르......."

"발터 한 교수님."

시몬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실 아침에 봤어요 딕."

카미바레즈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딕이 씁쓸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 이거 비장의 정보였는데."

"야!! 내가 놀지 말라고 했지!"

벽 너머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파자마로 갈아입은 메이린이 튀어나왔다. 끈으로 머리를 한데 묶었고 방금 씻었는지 얼굴도 반들반들했다.

딴짓하던 딕이 기겁하며 숙제를 보는 척했다.

"메이린! 우리 파자마 파티해요!"

카미바레즈가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애들 숙제 다 시키고."

"헤헤, 오늘 안엔 못 하겠네요."

"......흑. 다들 나 그만 좀 패라. 내가 이 숙소도 잡았는데 서럽다 진짜."

"별거 가지고 생색은. 꼬우면 방학숙제 미리미리 좀 해오든가."

왁자지껄 떠드는 세 사람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런데 통합 2학기. 준전시 커리큘럼이라는데 과연 어떻게 진행될까?"

"별거 있겠어?"

메이린이 자리에 앉아 턱을 괴며 말했다.

"방학 시작할 때는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는데, 지금 뭐 신성연방 쪽은 진정됐다며? 다시 평시 수업으로 진행해도 이상할 게 없지."

"그런데 왜 진정된 거예요?"

"아, 그거 그거!"

또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딕이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지금 혈천교인가 뭔가 하는 이단집단한테 어그로 다 끌렸대! 신성연방과 우리를 싸움 붙이려 했다는데?"

"맞아. 암흑연합에서도 대단한 이슈였지."

이 이야기에서는 슬쩍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우는 시몬이었다.

바로 그 중대한 역사적 순간의 한복판에 자신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레테, 엘렌, 이스라필 님, 다들 잘 있으려나? 메틴도 신성 슬럼프를 잘 극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때 딕이 다가와 팔로 시몬의 목을 둘렀다.

"어허, 뭘 또 혼자 우수에 잠겨 계시나? 재밌는 생각 혼자 하지 말고 나도 같이 좀 알자!"

"하하! 아니, 별로 재밌는 생각은 아니었어."

늦은 밤 네 사람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개학 준비를 마쳤다.

* * *

이른 새벽.

"후아암."

"하음."

시몬은 아직 잠이 덜 깬 딕과 카미바레즈의 하품 소리를 들으며 짐을 챙겼다.

메이린은 지치지도 않는지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해댔고, 시몬은 워낙 체력이 좋다 보니 알아서 척척 준비를 마치고 청소까지 다 도맡아서 했다.

"잘 놀다 갑니다!"

딕의 외침과 함께 네 사람은 시계탑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직 사람들이 별로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몇몇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마당을 쓸고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집합장소에 가기 전에 서점부터 들렀다.

원래 2학기 교과서는 어제 사러 가려고 했는데, 예상 못 한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당일에 구매하게 됐다. 당연하지만 로체스트에서 교과서를 사려면 비싸니 여기서 구매해서 로크섬으로 건너가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서점에 들어오니, 네 사람과 같은 목적으로 온 1학년 학생들이 많았다.

"어! 메이린이다!"

"시몬!"

익숙한 A반 학생들을 만났다. 질문의 달인이자 명예 반장인 제이미 빅토리아, 그리고 A반의 사령학 에이스인 신디 비바체도 있었다.

메이린과 제이미가 수다를 떠는 사이, 신디가 시몬의 팔꿈치를 툭 치며 낄낄댔다.

"야, 어떻게 지냈냐?"

"그냥저냥 지냈지."

시몬이 주머니의 지갑을 붙잡은 채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본 신디가 쾌활하게 웃었다.

"이제 안 훔쳐가 인마!"

두 달 만에 다른 A반 학생들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동시에 개학 분위기가 훅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카미바레즈와 딕도 끼어들어서 다 같이 A반 학생들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편 메이린과 제이미는 정신없이 수다를 떠느라 둘이서만 저만치까지 가 있었다. 제이미가 휘파람을 불었다.

"뭐야~ 방학 동안 더 예뻐졌네? 머리카락 찰랑이는 것 좀 봐."

"입에 발린 소리 고맙네요."

메이린은 시큰둥하게 대꾸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실제로 연극 준비한다고 머리를 엄청 공들여서 기르고 있었다.

"아, 근데 좀 부럽다."

제이미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조는 다 여자애들뿐인데. 넌 남자를 둘이나 거느리고 다니고."

"거, 거느리고 다니긴 무슨!"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녀의 반응을 캐치한 제이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말해봐. 둘 중 어느 쪽?"

"야! 하지 마! 애들 듣는단 말이......!"

"혹시 딕?"

"돌았냐."

메이린이 장난기 없이 정색했다. 충분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제이미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언니한테 말해~"

"그런 거 아니니까 개소리 집어치우고 니 연애나 신경 쓰세요. 헥토르 좋아한다며?"

이번엔 제이미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너 진짜 그거 말하면......!"

"뭔 이야기 해?"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신디 비바체의 난입으로 중단됐다. 그녀는 무척이나 입이 가벼운 것으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다물자, 신디가 잘못 이해한 듯 메이린을 보았다.

"와, 메이린 헥토르 좋아해? 취향 참."

"......얼려줄까 태워줄까."

그렇게 교과서를 모두 구매한 네 사람은 서점 밖으로 나왔다.

로크섬에 들어가는 루트는 다양하게 있는데, 랭거스틴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황천고래를 탔다. 시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저 황천고래는 처음 타봐요!"

카미바레즈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간식으로 구매한 말린 육포를 질겅이고 있던 딕이 물었다.

"그럼 입학식 땐 뭘 타고 왔어?"

"칼로스 왕국에서 커다란 독수리 같은 걸 타고 넘어왔어요! 건물에 앉아 있으니까 독수리가 건물을 통째로 들어서 로크 섬에 떨어뜨려 줬어요."

"......와, 역시 키젠. 스케일 겁나 크네."

네 사람이 부둣가에 도착했다.

저번처럼 커다란 배가 한 척 정박해 있었고, 하수인들이 학생들을 통제해서 안으로 들여보냈다. 딕은 열심히 카미바레즈에게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제 배에 타면, 황천고래가 와서 우릴 삼키는 거야!"

"와아!"

"거기 넷."

그때 검은 까마귀 깃털이 달린 망토를 입은 남자가 네 사람을 보았다.

"잡담 그만하고 서둘러 이동하도록. 뒷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 옙! 죄송함다!"

딕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얼른 배 쪽으로 뛰었다.

"얘들아 봤냐? 봤어? 까마귀야!"

키젠 본부의 핵심 전력이자 최정예 네크로맨서 요원으로 구성된 조직 '까마귀'. 현재 키젠 교수 중에서도 바힐 등이 속해 있었다.

메이린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이번엔 교수님들이 아니라 까마귀가 왔네. 뭔가 문제 있나?"

"오호."

음모론 좋아하는 딕이 눈을 반짝 빛냈다. 겁을 먹은 카미바레즈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 그렇게 생각할 것까지 있을까요? 인력이 조금 부족한가 봐요."

"어서 타자. 또 한소리 듣겠어."

시몬이 말했다. 네 사람이 나란히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다른 학생들도 배에 올라탔다.

헥토르와 그 파벌들도 보였다. 다행히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단을 내려가 아래 칸으로 갔다.

이내 랭거스틴에 있던 모든 키젠 학생들이 다 탑승했다. 하수인들로부터 인원보고를 받은 까마귀 요원이 마지막으로 탑승했다.

"요원님. 5분 뒤에 도착합니다."

하수인의 보고에, 까마귀가 피곤한 표정으로 손을 까닥했다. 하수인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좌석의 안전띠를 매달라며 소리쳤다.

'황천고래도 오랜만이네.'

시몬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안전띠를 맸다.

"저기 왔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부터 거대한 물보라가 도착했다. 이제 키젠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쏴아아아아아!

이내 물보라가 크게 일어나며 그 안에서 나타난 황천고래가 배를 통째로 집어삼키고는 바다로 들어갔다.

* * *

"이제 안전띠를 푸셔도 됩니다."

모두가 탄 배는 무사히 황천고래의 뱃속에 안착했다.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안전띠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래 뱃속이라지만 내부는 꽤 따뜻하고 쾌적했다.

하수인들이 학생들의 수발을 들거나 디저트나 먹을 것 등을 제공했다. 메뉴도 선택할 수 있었다.

시몬은 크림 커피를 골랐다.

"조, 조금 무섭네요."

눈을 동그랗게 뜬 카미바레즈가 선홍색으로 이루어진 고래 뱃속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딕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막 위장으로 내려가진 않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고래에서 내린 뒤가 진짜 경치 하이라이트니까 기대하고!"

"하이라이트요?"

"어어, 상공 수천 미터에서 키젠 캠퍼스까지 한 방에 떨어져. 그때 일출 경치가 크으!"

수천 미터란 말에 카미바레즈가 겁을 집어먹고 어깨를 떨었다.

메이린이 카미 겁주지 말라며 딕의 등짝을 갈기려는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앙!

갑자기 배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폭음?"

딕이 놀란 표정으로 메이린을 보았다.

"내 등을 얼마나 세게 친 거야?"

"미친놈아! 내가 그랬겠냐!!"

콰아아앙! 쿠우우우웅!

흔들림이 점점 더 격해지며 황천고래의 고통에 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배의 난간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점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배가 급격히 흔들리며 시몬의 의식이 끊겼다.

* * *

쏴아아아아아아아!

파도가 밀려드는 소리.

시몬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입에서는 흙 맛이 났고 머리는 퀭했다.

쏴아아아아아.

바닷물이 시몬의 몸을 지나갔다. 알고 보니 모래판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딕? 메이린? 카미? 다들 어딨어?"

시몬이 친구들을 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세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는 오로지 시몬 혼자뿐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시몬의 시야가 뒤늦게 바닷물 쪽으로 향했다. 밀려드는 바닷물이 붉은색이었다.

"!"

시몬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해무 속에 보이는 광경에 그의 눈이 커졌다.

방금 타고 있던 거대한 황천고래의 몸이 한참을 떨어진 곳에 배를 보이고 둥둥 떠 있었다. 바다가 황천고래가 쏟은 피 때문에 온통 붉은색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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