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08화
"허억! 허억!"
"이쪽이야!"
로크섬의 북쪽에 떨어진 딕은 눈을 뜨자마자 해변가에 흩어져 있는 키젠 학생들을 모으며 상황에 대처하고 있었다.
추락의 충격과 신성 괴물들의 등장으로 패닉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세 치 혀로 규합하며 정신적 버팀목으로 올라서는 건 딕에게는 정말로 간단한 일이었다.
"위에서 온다!"
누군가의 외침에 딕의 고개도 올라갔다. 새의 형상을 한 프리마 마테리아의 괴물이 보였다.
"피해! 저거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개체야!"
모두가 일제히 몸을 던져 언덕으로 숨었다.
팟!
새 괴물은 몸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서 신성으로 이루어진 빛의 기둥을 발사했다.
흙더미가 마구 튀어 오르는 사이로, 딕과 학생들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괴물은 사방으로 마구 신성을 쏘아대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지, 진짜 죽일 속셈으로 쐈어!"
한 남학생이 패닉에 빠져 중얼거렸다. 옆자리의 주근깨 여학생이 말을 받았다.
"......역시 이상해. 아무리 키젠이라지만 학생의 코어를 부술 작정으로 신성을 발사하는 건 너무하잖아!"
"그치, 시뮬레이션치곤 수위가 너무 높아. 이건 실제상황이야."
또 자기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보며, 딕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섬 생존평가 때가 딱 좋았다. 불도 못 피우고 어버버 하는 귀족들을 살살 구워삶아 자신을 따르게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다 보니까 애들이 자꾸 통제를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우리 굳이 왜 숲 쪽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냥 이 근처에 숨어 있자. 누가 배를 타고 지나갈지도 모르잖아."
"자, 자! 내 말 잘 들어!"
이대론 안 된다. 보다 못한 딕이 손뼉을 짝짝 쳤다.
시몬처럼 똑똑한 녀석들이랑만 다니다가, 이런 평범한 애들을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게 영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싸움은 자신보다 이 녀석들이 더 잘하니 어떻게든 케어해야 했다.
"머리가 있으면 한번 생각해봐! 니네 담당교수님들이 통합 2학기는 준전시 커리큘럼으로 진행한다고, 했냐 안 했냐?"
"......해, 했지."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자! 니들 정신 차려. 지금 충격 때문에 뇌가 움츠러들어서 머리가 잘 안 굴러가나 본데, 평정을 되찾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출제자의 의도는 명확해."
딕이 검지를 척 올렸다.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맞설 것."
딕은 열심히 연설하면서 곁눈질로 열심히 허공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성녀의 테러로 1학기 전체가 흐지부지됐어. 부상자도 많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애들도 많았지. 결국 방학까지 앞당겨서 했잖아? 이건 사건에 대한 끝마무리가 안 된 상황인 거야. 이걸 키젠이 그냥 넘어갈 리가 있나? 성녀의 테러를 재현한 뒤에, 우리보고 과거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게 출제자의 의도라고!"
"하, 하지만 너도 봤잖아!"
잔뜩 겁에 질린 듯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저것들 진짜 신성을 죽일 기세로 쏜다고! 제대로 맞으면 키젠 학생 탈락이 아니라 네크로맨서로서 탈락인데! 그런 걸 어떻게 키젠에서 용납을......."
"그럼 문제 하나 낼게."
딕이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번 방학숙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뭐였지?"
"!"
그제야 모든 학생들의 입이 벌어진다. 그들끼리 시선을 맞추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프리스트전에서의 경쟁력!"
"마, 맞아! 신성을 막는 방법이었어! 뭘 준비했는지는 2학기 첫 수업에서 발표하게 된다고 했는데."
딕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발표는 페이크야. 방학의 가장 큰 과제인 대프리스트전에서의 경쟁력. 바로 그걸-"
딕이 두 팔을 벌렸다.
"지금 이 시뮬레이션에서 시험하는 거야!"
놀라움으로 커진 학생들의 눈에 서서히 평정심이 깃들었다.
확실히, 그들은 너무 지나치게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진짜 에프넬의 공격으로 키젠이 멸망했다면, 이 섬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암흑연합도 이대로 무너지고 신성연방의 속국이 되는 건가? 전쟁이 벌어지면 우린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가?
실제상황이 아니다. 이건 단지 시험이고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딕이 슬쩍 근처의 돌멩이를 손에 쥐고는 인챈트를 걸었다.
"지금 바로 가장 큰 증거를 보여줄게!"
딕이 등을 돌리며 돌멩이를 강하게 날렸다.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까만 돌멩이가 갑자기 공중에서 틱! 소리와 함께 부딪혀 튕겨 나왔다.
"어?"
모든 학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충격으로 투명화 효과가 해제된 옵저버가 튀어나왔다.
"웃차차!"
어느새 딕이 능숙한 어부처럼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도망치려던 옵저버가 그대로 그물에 걸려 당겨졌고, 딕이 훌쩍 뛰어들어 옵저버를 붙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잡았다!"
"지, 진짜 옵저버잖아!"
"우릴 몰래 지켜보고 있던 거였어!"
학생들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딕은 주위의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인챈트를 걸었다.
"아니, 그게 아닐 수도 있어."
"뭐? 하지만 너 방금 계속......."
"100%가 아니란 뜻이야. 에프넬에서 우릴 관찰하려고 보낸 걸 수도 있잖아? 부숴서 해부해 봐야겠어."
벙찐 다른 학생들을 바라보며 딕이 키득거렸다.
"확실해서 나쁠 건 없지~ 이거 엄청 비싼 장비라고 들었는데, 아깝지만 적에게 관찰당하는 건 곧 죽음이니까."
두 무릎으로 옵저버를 고정한 딕이 힘껏 돌멩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옵저버에서 급하게 붉은빛이 일어나며 경고표시가 일어났다.
-삐빅! 시험 중 옵저버를 훼손하지 마십시오.
-삐빅! 삐빅!
마치 살려달라는 듯 열심히 경고음을 일으키는 옵저버를 보며, 딕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하냐?"
모든 학생들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딕이 몸을 일으키며 교복에 묻은 흙을 탈탈 털었다.
옵저버는 부리나케 도망쳐 다시 투명화 상태가 되어 사라졌다.
"자! 나는 이 시험에 관해 더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 살아남고 싶지? 개학 첫날부터 교정 문턱도 못 밟아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 죽어도 싫지? 막 작별 인사한 부모님 얼굴 어떻게 보겠냐. 안 그래?"
학생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나만 믿어."
내 장기말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 * *
시험 실행본부.
"허, 새끼. 실력은 그저 그런데 잔머리만큼은 팽팽 돌아가네."
화면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시험 총감독관, 에반겔로스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옵저버를 찾아내서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해 먹어? 암, 네크로맨서라면 저 정도 깡은 돼야지! 저 친구도 체크해 놔."
"예!"
딕을 살펴보던 에반겔로스가 본인이 앉은 바퀴 달린 의자를 슥슥 끌고 다시 중앙으로 복귀했다.
상황은 평이했다.
아직도 패닉에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슬슬 두각을 드러내는 몇 명은 키젠의 섬 중앙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빠른 상황판단 능력이 아주 맘에 든다.
깃털로 자신의 경호부대를 만들어 여왕처럼 군림하는 특례 2번의 세르네.
닥치는 대로 모든 괴물들을 섬멸하며 전차처럼 우직하게 걸어나가는 특례 3번의 샤텔.
지상이 아닌, 유령선을 타고 공중 루트를 활용하고 있는 특례 7번의 엘리사.
'특례 학생들은 두말할 것 없군. 하긴, 스타트가 일반 학생들과는 다르니.'
그 외에도 얼음으로 배를 만들어서 강 루트를 활용하고 있는 메이린.
모두가 흩어진 상황에서 피 냄새로 부상자들이나 혈류계 학생들을 찾아내 하나의 커다란 협력조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카미바레즈.
키메라로 섬의 동물이나 몬스터를 현혹해 괴물들의 시선을 끌고, 전투 없이 진행하는 피츠제럴드까지.
오히려 일반 학생들의 진행속도가 특례 학생들보다 더 빨랐다.
학기가 진행될수록 특례 입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의 격차는 점점 줄어드리라.
'하지만 역시.'
에반겔로스의 시선이 한 화면으로 향했다.
'가장 눈에 띄는 놈은 따로 있단 말이야.'
화면에 비치는 시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반겔로스가 고개를 돌렸다.
"시몬 폴렌티아를 포함해, 가장 먼저 들어오고 있는 다섯 명에겐 다음 시련을 준비시켜."
"예!"
에반겔로스가 깍지를 끼며 음흉하게 웃었다.
'자, 이번에는 어떻게 하는지 볼까.'
* * *
언덕 위에 오른 시몬이 위에서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젠과 가까워질수록 어슬렁거리는 괴물들의 수와 덩치도 커졌다. 지형도 도와주지 않는다. 저 앞으로는 나무나 풀처럼 은폐할 곳이나 장애물이 없는 탁 트인 초원지대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혼자서 저런 규모의 적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슬슬 준비하자.'
칠흑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시몬은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번 대프리스트전 시몬의 비장의 한 수는 바로.
"오랜만이다."
머드 골렘이었다.
오랜만의 등장에 골렘의 핵도 반가운 듯 팅! 팅! 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몬은 골렘의 핵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는 근처의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핵을 내려놓았다.
'이제 집중.'
키젠에서 낸 방학숙제. 신성을 발사하는 프리스트전에 대한 대처.
시몬도 여러모로 고민해봤다.
물론 어렵긴 했다. 언데드가 주력인 소환학 지망생이, 상극인 신성을 퍼붓는 프리스트를 대처를 하는 것도 어려웠고 뭣보다 사실.
'......내가 왜 대처를 해야 하지?'
플레마와의 전투 이후, 시몬의 몸은 신성 공격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게 되어버렸다.
네크로맨서에게 극히 치명적인 엑소시즘 같은 백마법을 맨몸으로 맞아도 멀쩡할 정도.
하지만 '저는 신성이 안 통하니까 괜찮아요' 따위의 말을 제인 앞에서 발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소환학 지망생으로서 새로운 파훼법을 연구했다.
'그 답이 바로 이거였지.'
시몬은 골렘의 핵을 쓰다듬으며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골렘은 소환수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개체다.
골렘의 핵은 사념에 접속할 수 있는 언데드 취급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언데드가 아닌 키메라에 가깝다. 몸을 구성하는 재료도 살점이 아니라 자연물이라서 신성에 치명적이지 않다.
시몬은 뒤로 물러나 골렘의 핵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섰다.
그리고 눈을 감고 두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서먼 골렘(Summon Golem)>
쏴아아아아아!
골렘의 핵에 주입한 시몬의 칠흑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주위의 모래와 진흙, 암석 등이 핵을 중심으로 철썩철썩 달라붙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머드 골렘과는 다른 형태로 구축한다.'
전투용이 아니라 속도와 회피에 특화된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골렘의 일반적인 형태는 포기했다.
'심플하고 기동성 있게.'
골렘의 핵을 중심으로 서핑보드 같은 넓적한 형태를 구성한다. 팔과 다리는 생략하는 대신 바퀴를 달고 후방에는 바퀴를 굴릴 엔진을 만든다. 엔진을 돌리는 힘은 당연히 칠흑이다.
스스스스스.
그냥 위에서 내려다보면 유선형 몸체의 진흙 보드 같은 형태다.
시몬은 그 위에 훌쩍 올라탔다.
이게 바로 시몬이 준비한 머드 골렘의 보드 스타일. 신성열차의 바퀴에서 힌트를 얻었다.
"가자!"
키이이이이잉!
칠흑으로 엔진이 작동하며 골렘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내 시몬을 태운 보드가 모래를 흩뿌리며 쏜살같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