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17화
"방학 잘 보냈나요? A반."
기다렸다는 듯 우렁찬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제인은 가볍게 손바닥을 세우며 학생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때 제인의 뒤에 서 있던 조교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뿔난 시늉을 하더니 제인을 슥 가리키고는 다시 열중쉬어 자세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지만 어떤 네 명은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신성에 대한 대처를 준비해 오라고 그렇게 말했을 텐데."
그제야 학생들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은 틀림없이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의 톤은 그렇지 않았다.
"옆의 B반은 딱 1명이 떨어졌다더군요. 바힐 교수님께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내 낯이 다 화끈거렸습니다."
'아, 바힐 교수님 진짜......!'
딕을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속으로 바힐을 원망했다. 왜 또 이 사람 성격을 건드려서 우릴 힘들게 하는 거냐고.
학생들이 고개를 푹푹 숙이자 제인이 미소 지었다.
"저는 여러분을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잘못한 건 여러분이 아니라 무능력한 탈락자들이니까요."
그녀가 등을 돌렸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칠판으로 걸어가자, 조교들이 신속하게 마나 투사기를 설치하고 공중에 스크린을 띄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번 시험의 피드백을 해야겠죠? 가장 마지막 등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 *
제인은 영상을 돌려가며 A반 학생들의 실수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첫 수업부터 피드백을 듣는 학생들의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다.
딕의 경우는 말만 번지르르하지 실속이 없고, 루트 선택에 커다란 실수가 있었다는 지적을.
카미바레즈는 처음 신성 괴물을 보고 멘탈이 흔들려 시작이 느렸다는 점과, 팀원들을 구할 때 쓸데없는 정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었다.
메이린은 강에 얼음 배를 만들어 이동하는 창의성은 좋았지만, 본인이 냉기에 약해서 덜덜 떠는 모습을 지적하며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철저하게 까였다. 유일하게 제인이 그냥 넘어간 사람은 시몬과 헥토르뿐이었다.
"같은 반 학생이라도 배울 점은 배워야겠죠. 다들 두 사람의 판단력을 본받도록 하세요. 박수."
짝짝짝짝!
갑작스럽게 박수를 받게 되자 시몬은 민망한 듯 웃었고, 헥토르는 여전히 시몬에게 밀려서 2등을 따낸 점이 짜증 나는지 인상을 구겼다.
"교수님! 그래도 우리 반 대단하지 않아요?"
딕이 불쑥 말했다. 그는 옆자리 친구에게 말 건네듯 제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게 미쳤나!'
메이린과 주위 학생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지만 제인은 의외로 말을 받았다.
"뭐가 대단하단 거죠? 딕 헤이워드."
"우리 반에서 1위, 2위, 9위가 나왔잖아요! B반에는 Top10이 8위 한 명밖에 없던데요!"
제인이 싸늘하게 노려보자 딕이 얼른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 공지사항으로 넘어가죠."
놀랍게도 이다음부터는 제인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열심히 필기하는 척하던 딕이 시몬을 향해 조용히 엄지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이 오늘까지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그녀가 조교로부터 새로운 자료를 받아 들고는 말했다.
"이번 통합 2학기에서 여러분은 지금 듣고 있는 아홉 과목 중 최대 두 가지를 제외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담당교수가 들어오는 초급 흑마법, 통합 2학기의 핵심인 신성 방어학, 그리고 칠흑역학은 필수과목으로 책정되었습니다. 키젠에서는 한 가지 수업만 제외할 것을 권고합니다. 두 가지 수업을 제외하려는 경우에는 담당교수의 면담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수업이 줄어든다고 성적을 받는 데 유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설명을 듣던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홉 과목 중에서 일곱 과목으로 확 줄어 들어버리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완전히 한 과목에 올인하는 스타일의 학생이 아니면 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니 이번 주까지 제외할 수업을 하나 선택해 오세요. 이상."
시몬은 바로 결정했다.
'......움브라 교수님, 죄송합니다.'
시몬은 아직도 사령학의 닭 모이 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스피릿을 느끼지 못한 학생들은 대부분 사령학을 제외할 것이다.
물론 카미바레즈도 마찬가지였다.
"메이린은 어떻게 할 거예요?"
"난 정했어."
"어, 나도 오케이."
의외로, 메이린과 딕 두 사람 모두 사령학을 제외하기로 했다.
메이린은 사령학의 핵심인 '혼령화' 상태에서는 칠흑원소계를 준비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고.
딕은 그냥 니들 셋 다 제외하니까 따라가겠다는 이유였다. 메이린은 바로 핀잔을 주었다.
"증~말 생각이 없어서 좋겠다. 장래가 걸린 문제니까 제발 진지하게 생각해."
"난 올라운드라 다 자신 있어서."
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사령학은 전공생들이랑 일반 학생들이랑 편차가 심하고, 성적 받기도 불리해. 이쪽을 빼는 게 맞아."
그렇게 네 사람 모두 결정했다.
* * *
제인의 초급 흑마법 수업이 끝나고 시몬과 조원들은 다음 수업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시몬은 무척 기분이 좋았다.
'바로 두 번째 수업이 소환학이라니!'
아론의 수업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동안 배우는 게 너무 고팠다. 빨리 새로운 것들을 배워서 내 힘으로 만들고 싶다.
그런데 옆에서 걷고 있던 딕이 수첩을 뒤적거리다가 말했다.
"이번 소환학 수업, 평소의 그 강의실이 아니네?"
"네! 야외수업이래요!"
카미바레즈가 말했다. 옆의 메이린이 흐음. 하고 작은 콧소리를 냈다.
"첫 수업부터 야외수업이라니, 촉이 와."
"무슨 촉?"
"종합 흑마법 능력평가의 힌트."
확실히, 아론은 개학식 행사 때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시험의 테마는 너희들이 직접 알아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힌트를 제공할 것이다. 교수들이 툭툭 던지는 농담에도 힌트가 있을 수 있으니 매사에 집중하도록.
그 목소리를 떠올린 시몬이 살짝 탄성을 흘렸다.
"예리한데."
메이린이 잘난 척하며 치렁치렁한 하늘색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넘겼다.
"아니, 나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니들 오랜만이라 감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빨랑 정신 차려."
그렇게 시몬을 포함한 A반 학생들 전원이 아론이 통지한 수업장소에 도착했다.
결투평가로 자주 들락거리던 제3실내 경기장의 뒤편이었는데, 경주로 트랙이 설치되어 있었다.
트랙의 타일에는 눈금자가 그려져서 기록을 측정할 수 있게 해놨다. 남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제자리멀리뛰기를 하고는 기록을 비교하며 놀고 있었다.
시몬이 턱을 괬다.
'소환학이랑, 트랙이랑, 종합 흑마법 능력평가? 뭔가 감이 잘 안 잡히네.'
다른 세 사람도 열심히 다음 시험 테마를 유추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버전의 마라톤이라느니, 순간 스피드 대결이라느니 다양한 추측들이 오갔다.
"집합해 주십시오!"
아론과 조교들이 나타났다. A반 전원이 긴장한 얼굴로 줄을 맞춰 섰다.
'여전하시구나.'
시몬이 속으로 웃었다.
어제의 깔끔한 복장은 어디 가고, 아론은 다시 반소매와 반바지의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왔다. 면도도 하지 않은 듯 까끌까끌한 턱을 매만지는 그의 눈에는 피곤함과 귀찮은 감정 등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아론이 앞으로 나오고 조교들이 그 뒤에 정렬했다.
"오랜만이다."
나른한 아론의 목소리에 학생들도 반갑게 인사했다. 다들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방학 동안 푹 쉬었길 바란다. 모든 교수들이 통합 2학기 내내 너희들을 살벌하게 굴릴 예정이니까."
그렇게 말한 아론이 스윽 트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첫날부터 무게 잡고 빡세게 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은 새로운 소환학 계열의 흑마법을 배워보겠다. 다들 본인의 스켈레톤을 하나씩 꺼내도록."
그 말에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아공간을 열고 본인의 스켈레톤을 부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시몬도 군단화 되지 않은 일반 스켈레톤 한 구를 꺼냈다.
"두 달의 공백 기간을 고려해서, 잠시 복습을 해보겠다."
아론이 입을 열었다.
"언데드 소환수 중에서 스켈레톤만의 강점."
딱 '강'까지 말하는 순간 누구보다 번쩍 들어 올려지는 팔이 있었다. 아론이 또 너냐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제이미 빅토리아입니다 교수님! 스켈레톤 최대의 강점은 역시 뼈와 뼈가 서로 이어지고 붙으려는 성질을 이용한 '복원'의 응용력과 유틸성입니다! 무너져도 뼈마디에 칠흑이 남아 있다면 얼마든지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약점은?"
직접 대답하고 싶었던 시몬이 번쩍 손을 들었지만 앞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거대한 사람에게로 아론의 손가락이 향했다.
"헥토르 무어입니다. 프리스트의 신성에 취약합니다."
"그건 거의 모든 언데드가 가지는 약점이다. 다음."
이번에야말로 시몬이 손을 파밧 들었고, 아론이 슬쩍 웃으며 시몬을 가리켰다.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스켈레톤의 단점은 기동성과 방어력입니다. 복원기로 사용하지 않고 단독으로 운용할 경우,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전에 격파당하기 쉽습니다."
"정답이다."
아론이 정답이라고 말해주는 순간, 시몬은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별거 아닐지 몰라도 수업에 참여하고 정답을 맞혔다는 사실 자체로도 순수하게 좋았다.
'이 새끼! 일부러 나 다음에 대답을......!'
헥토르가 속으로 분노하며 이를 갈았지만 시몬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론의 설명이 이어졌다.
"스켈레톤은 뼈로만 이루어진 언데드인 만큼 운동능력이 탁월한 편은 아니다. 강한 충격을 받으면 간단히 뼈들의 결합이 흩어지며 무너지지. 물량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 말에 적극 공감한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1학기 결투평가 초반부에는 스켈레톤의 물량을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무기를 든 언데드가 다가오는 걸 상대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 상대의 공격을 강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뿐, 키젠 학생들의 역량이 전체적으로 올라간 지금은 다들 광범위 기술로 다수의 스켈레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었다.
언데드가 휘두르는 무기에 쉽게 당하지 않는 마투도 갖췄다. 1학년 중반부에 이른 지금, 이제 스켈레톤은 머릿수 외에 큰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위협성도 떨어져 상대방의 공격을 끌어내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상대가 프리스트라면 더더욱 골치 아프다. 그냥 신성을 쾅 방출해 버리면 스켈레톤을 쓰지 못하게 되니까.
그래서 시몬도 스켈레톤 본연의 전투력에 기대기보다는 복원기를 이용한 전투 위주로 구사했다. 랭거스틴에서 헥토르와의 싸움에서도 둘 다 복원기만 썼었다.
"그렇다면."
아론의 목소리에 시몬은 상념에 벗어났다.
"스켈레톤은 복원기에 재능이 있는 네크로맨서만 사용할 수 있는 소환수인가? 그런 질문에 나는 당연히 NO라고 답하마."
아론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너희들이 말한 스켈레톤의 단점들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통합 2학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