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18화
"조교, 준비해라."
아론이 턱짓하자, 남자 조교가 검 한 자루를 들고 헐레벌떡 트랙으로 뛰어갔다.
조교는 트랙의 출발점에서 꽤 먼 곳까지 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아론은 아공간에서 스켈레톤을 하나 꺼냈다.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아일랜드 랫맨 스켈레톤이었다.
스켈레톤은 검을 들고 트랙의 출발점에 섰다.
'뭘 하시려는 거지?'
시몬과 모든 학생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스켈레톤을 보고 있었다.
스켈레톤이 무릎을 굽히고 발뒤꿈치를 드는 게 보였다. 마치 돌진의 준비 자세 같다.
츠팟!
출발점에 서 있던 스켈레톤이 광풍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주위의 학생들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거나 스커트를 붙들었다.
"!"
이때 시몬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출발점의 스켈레톤이 한 번의 돌진으로 20M는 넘게 떨어진 곳에 있던 조교의 정면까지 도달한 것이다. 스켈레톤은 돌진한 힘까지 더해 검을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앙!!
스켈레톤이 휘둘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굉음.
공격을 받아낸 조교가 힘에 밀려 붕 떠올라 트랙을 몇 바퀴나 구르다 낙법으로 멈춰 섰다.
차아악.
바닥에 착지한 스켈레톤이 쓰러진 조교에게 검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조교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스켈레톤 대쉬(Skeleton Dash)."
경악한 학생들의 침묵 속에서 아론이 말했다.
"스켈레톤이 사용하는 전용 돌진기다."
와아아아-!
곳곳에서 감탄사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손뼉을 치고 있는 시몬은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정숙."
순식간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흑마법이 네크로맨서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네크로맨서는 자신이 조종하는 언데드에게도 흑마법을 사용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수준을 좀 더 발전시키면, 스켈레톤 메이지(Skeleton Mage) 같은 마법형 언데드도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지."
시몬의 잇새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옆에 서 있던 메이린이 움찔 놀라며 그를 돌아보았다.
"야! 그 소름 끼치는 웃음 뭔데?"
"아니, 그냥 좋아서."
흑마법은 참 넓고 방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렇게 배울 게 많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시몬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론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이 기술을 마스터한다면 너희는 스켈레톤으로도 얼마든지 프리스트나 다른 상대를 잡을 수 있다. 알겠나?"
"네!!"
확실히, 스켈레톤이 저 정도의 돌진기를 쓸 수만 있다면 프리스트의 신성이 퍼부어지기 전에 선제공격이나 압박이 가능하다.
그냥 검을 든 몬스터 A가, 실탄이 장전된 초고속 포탄으로 바뀌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럼 바로 실습으로 넘어가겠다."
조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트랙 곳곳에 장대에 묶은 짚단을 설치했다. 흔히 기사들이 검술훈련을 할 때 쓰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스켈레톤 대쉬의 원리는 어렵지 않다. 아주 간단히 표현하자면, 사념에 접속한 스켈레톤에게 '칠흑 밟기'를 명령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라."
마법적인 원리는 스켈레톤의 두개골에 그려진 '소환 마법진' 옆에 조그맣게 수식하나를 더하는 게 끝이었다.
이제 스켈레톤의 칠흑을 발밑으로 유도해 집중시키고, 그 칠흑을 폭발시키며 앞으로 쏘아져 나가게 한다.
확실히 어려운 원리는 아니었지만, 직접 해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아론은 언데드에 흑마법을 명령하는 팁을 세세하게 알려준 다음, 학생들을 트랙에 세워서 실습을 시켰다.
"시작하겠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자신만만하게 나선 건 메이린이었다. 그녀가 스켈레톤에게 검을 쥐게 하고는 돌진을 명령했다.
츠팟!
스켈레톤이 칠흑을 밟고 제대로 날아올랐다. 지켜보던 학생들의 탄성이 들렸다.
"역시 엘리트!"
"첫 시도 만에 성공이야?"
그러나 스켈레톤의 발밑에서 칠흑을 폭발시킨 건 좋았지만 워낙 강한 압력 때문에 다리뼈가 박살 나 흩어졌다.
결국 그녀의 스켈레톤은 하체가 다 날아간 채 상반신만 볏짚 앞에 툭 떨어졌다. 대실패였다.
'윽.'
메이린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딕을 비롯한 학생들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쏟아냈다.
"푸하하하!"
"실습하랬더니 아예 다른 기술을 개발했네!"
"돌진 한 번에 하반신을 통째로 희생하는 신기술이냐?"
그때 딕이 손을 확성기처럼 입에 붙이고 소리쳤다.
"메이린 오리지널! 하반신 브레이크!"
그녀가 시뻘게진 얼굴로 바닥의 뼈를 집어서 딕에게 던졌다.
"으으! 너희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
동급생들에게 거칠게 윽박지른 그녀가 슬쩍 아론의 눈치를 보았다.
당연히 꾸중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론의 표정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첫 시도치곤 잘했다. 이 정도면 상위권이다."
"네, 네?"
메이린이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대쉬에 온 신경을 쏟느라 스켈레톤의 상태에 소홀하면 일어나는 문제다."
아론이 자신의 정강이와 발목을 차례대로 짚으며 설명했다.
"강한 힘으로 나가면 이쪽에 무리가 가는 게 당연하다. 사람은 근육에 과부하가 걸리는 정도겠지만, 스켈레톤은 그냥 무너져 버리지. 다음번에는 돌진을 시도하는 동시에 하반신 뼈 간의 결속을 신경을 써보도록."
"가, 감사합니다!"
메이린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자신을 놀리던 딕과 학생들을 '봤냐?' 하는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입이 쑥 들어갔다.
이어지는 다음 차례들.
아론이 메이린에게 '이 정도면 상위권'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켈레톤을 앞으로 보내지도 못하고 출발점부터 바닥에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그 외에도 돌진은 해냈지만, 정면이 아니라 제자리에 뛰어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돌진과 동시에 스켈레톤의 모든 뼈들이 날아가 버리며, 의도치 않게 볏짚에 본 스피어를 박아넣는 경우도 있었다.
"토토 아모리입니다!"
소환학 지망생으로서 이 수업 나름의 기대주였던 토토도 실패했다. 스켈레톤의 몸은 그대로 있지만 발만 날아가 볏짚에 닿았다.
또 한 번 주위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토토 오리지널 - 스컬 킥'이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잘했다. 상위권이다."
"가, 감사합니다."
아론은 칭찬했지만, 정작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토토는 조금 풀이 죽었다.
아론이 입을 열었다.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말해두지만 첫 시도부터 성공하는 학생은 없......."
오오오오오오오오!!
그때 조교들이 실습을 진행하던 트랙 쪽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론과 토토의 고개도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갔다.
시몬의 차례였다.
그가 보낸 스켈레톤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 검을 휘두르자, 볏짚이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베기 자세를 취하며 트랙에 멈춰 선 스켈레톤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검을 세웠고, 트랙 출발점에 서 있던 시몬이 기쁨으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이 보였다.
"......."
"......."
토토가 고개를 돌려 아론을 보자, 아론은 시선을 피하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저건 그냥 미친놈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 * *
'한 번 더.'
시몬은 오랜만의 신기술을 연마하는데 온 신경이 꽂혀 있었다. 트랙에서 되돌아온 스켈레톤이 다시 출발점에 섰다.
두개골에서 흘러나오는 스켈레톤의 칠흑이 뼈마디와 마디로 이동하다가 발끝에 집중적으로 모였다. 그 상태로 무릎을 굽혀 도약 자세를 취하게 한다.
'칠흑을 눌러 밟는 감각으로.'
처음 마투학 수업을 받을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2학기인 지금은 내가 칠흑을 밟는 게 아니라, 스켈레톤에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거다.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천천히 집중력을 끌어올리던 시몬이 눈을 확 뜨며 절대명령을 발동시켰다.
'날아라!'
타앗!
스켈레톤이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스켈레톤이 있던 자리에 먼지가 흩날리며 검은 흔적이 퍼져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십 미터를 도약한 스켈레톤이 그대로 검을 휘둘러 볏짚을 베어냈다.
와아아!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서류판을 든 소환학 조교가 기록을 체크했다.
"도약거리 10미터. 타깃도 베어냈어요! 아주 좋아요."
진짜 좋은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봐도 저 뼈밖에 없는 언데드로 단번에 상대와의 거리를 10M나 줄일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효용이다.
하지만.
'뭔가 아쉽네.'
첫 시도에 비해 거리 자체는 늘었지만, 시몬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도착지로 걸어가서 방금 베어낸 볏짚을 살폈다.
'완전히 베어내지 못하고 살짝 끝만 스쳤어.'
절대명령을 사용해서 대쉬 명령을 내리면, 스켈레톤의 돌진 속도와 안정성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디테일이 문제였다.
절대명령을 쓰면, 스켈레톤은 오로지 '날아라'라는 명령의 실현만을 중시한다. 그 동작 하나만을 구사하는 데 집중하느라, 가장 중요한 타깃을 공격할 때의 집중력은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문제점을 찾아내자, 바로 개선점도 떠올렸다.
'그럼 이번엔 두 가지의 절대명령으로!'
시몬은 연달아 두 번의 시도를 해보았다.
날아라 → 베어라.
날아서 베어라.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전자는 '날아라'라는 첫 절대명령에 집중하는 바람에 '베어라'가 묻혀 버리고.
후자는 두 가지의 절대명령을 동시에 내리니, 스켈레톤은 그냥 나는 것에만 집중했다.
만족할 만한 성공이 나오지 않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지만 시몬은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
'오늘 수업 안에 어떻게든 이 벽을 깨겠어!'
그렇게 누구보다 빠른 성취를 보이며 발전하는 시몬을, 아까부터 계속 힐긋거리며 신경 쓰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역시 놈은 성공했군.'
보란 듯이 대쉬를 사용하는 시몬의 모습에, 헥토르는 산불 같은 승부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헥토르 무어 학생? 시작하세요."
조교의 말에 헥토르는 자신의 스켈레톤 쪽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그 불같은 눈빛에 옆에서 지켜보던 조교도 움찔했다.
'나라고 못 할 건 없다. 놈이 하는 건 무조건 나도 해낼 수 있어.'
헥토르가 오른팔을 뻗으며 스켈레톤에 대쉬 명령을 내렸다.
부우우우웅!
스켈레톤이 대쉬를 사용하며 5미터 떨어진 곳의 볏짚을 베어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파벌들이 열렬하게 소리쳤다.
"역시 헥토르야!"
"다른 애들과는 격이 다르다니...... 어?"
갑자기 파벌들이 입을 다물었다. 헥토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머리가 짜증으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실패네요."
조교가 서류판에 체크 표시를 하며 말했다.
대쉬와 공격 자체는 성공시켰지만, 스켈레톤의 발뼈가 날아가 있었다. 스켈레톤도 볏짚을 베어내고는 발이 없어서 바닥에 엎어진 상태였다.
"브리핑."
헥토르가 조교를 응시하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와 분함이 뚝뚝 묻어나오고 있었다. 조교가 어깨를 움츠리며 미소 지었다.
어린놈이 성깔 장난 아니네.
"뼈와 뼈 사이의 결속은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 흥분하고 열의만 앞서다 보니 순간적으로 언데드의 컨트롤이 흔들리고 결속도 무뎌진 거예요. 조금 더 릴렉스하고 시도하면 어떨까요?"
그 말에 헥토르가 바로 새로운 스켈레톤을 꺼내 출발선에 세웠다. 눈을 감고 천천히 흥분을 가라앉혔다.
'마음을 비워라. 쓸데없는 잡념에서 벗어나 오로지 앞만 본다.'
헥토르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이제 그에겐 오로지 10미터 너머의 볏짚만이 보였다.
'간.......'
"와아아아아!"
"시몬 이 자식! 이번엔 11미터야!"
"대단해요 시몬!"
와르르르르르!
헥토르의 스켈레톤이 도약과 동시에 여덟 개의 몸으로 분해됐다. 손에 든 검은 볏짚에 박혔지만, 정작 스켈레톤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크아아아악!!"
헥토르가 활화산처럼 분노를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