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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220화 (220/93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20화

첫 소환학 수업부터 파장은 대단했다.

모두가 시몬과 사족보행 스켈레톤에 대해 이야기했다.

"......헤, 헥토르."

반면 헥토르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파벌 학생들은 첫날부터 저기압인 헥토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신경 쓸 거 없어. 저거 유일하게 좀 잘하는 게 소환학이잖아."

"그럼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헥토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됐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응!"

평소에는 그럭저럭 젠틀하고, 뒤끝 없고, 자기 사람은 잘 챙기는 녀석인데 꼭 시몬만 연관되면 이 사달이 난다.

파벌들이 헥토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시몬!"

시몬도 이제 밥을 먹으려 일어나는데, 헥토르의 눈치를 보고 있던 몇몇 여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들이닥쳤다.

"아까 어떻게 한 거야?"

"나도 스켈레톤 대쉬 잘하고 싶어!"

"주말에 연습 좀 봐줄래?"

여학생들이 모여들어서 정신없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시몬은 싫은 기색 없이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아, 진짜? 아쉽......."

툭!

그때 질문을 쏟아내는 두 여학생의 어깨를 밀치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들이 눈을 사납게 뜨며 돌아보았다.

"어떤 미친......!"

그리고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소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그녀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당황한 두 사람이 어버버하고 있을 때, 무표정하던 메이린 쪽에서 먼저 빙긋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 막 오다가 다리가 엉켜 넘어졌어. 진짜 미안."

메이린이 사과하자 두 소녀는 오히려 더 당황하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아냐 아냐! 우리가 더 미안해!"

"너인 줄 몰랐어......! 지, 진짜야!"

메이린은 생긋 웃어 보이고는 시몬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다른 여학생들도 주춤했다.

"야."

메이린이 입을 열었다.

"밥 안 먹으러 가냐? 카미랑 평민이 뒤에서 기다려."

"응. 가자."

두 사람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왔다. 성큼성큼 시몬을 데리고 걸어가던 메이린이 그를 슥 돌아보았다.

"별로 안 좋게 보이는 거 알지?"

"뭐가?"

시몬의 반문에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였다고 아주 헬렐레~ 니가 왜 개인시간까지 써서 걔들 연습 봐주고 봉사해야 하는데? 키젠에서는 시간이 금이야. 성격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어."

갑자기 냉랭하게 쏘아대는 메이린의 말에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안 그래도 거절하고 오는 길이야."

"으, 응?"

"주말에 선약이 있거든. 그리고 같은 학생한테 배우는 것보다는, 나보다 훨씬 능력 있고 잘 가르쳐 주시는 조교쌤들한테 찾아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어."

"......그, 그러냐."

어쩐지 무안해진 메이린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휙 정면으로 되돌렸다.

'아 씨이, 괜히 급발진해서!'

시몬은 한없이 착해빠지고 배려심도 많아서, 숙맥에 손해 많이 보고 살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달랐다.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시몬이 본인의 흥미에 따라 움직이는 건 많이 봤지만, 호구처럼 자신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영역에서 나서는 건 거의 못 봤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녀석이 과연 연애나 이성교제에 관심이 있긴 한 걸까? 그냥 자기 일이 바쁘다면서 딱 놓고 거절할 것 같은 스타일이긴 했다.

'......근데 그딴 생각을 내가 왜 하고 있냐.'

메이린이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식당 앞에서 수다를 떨던 딕과 카미바레즈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 정말 대단했어요! 시몬!"

"크으으! 헥토르랑 붙을 때마다 대사건이 나온다니까!"

잔뜩 흥분한 듯한 딕이 다가와 주먹을 세우며 웃었다.

"헥토르 멘탈 무너뜨리려고 의도적으로 1학기 소환학 첫 수업을 재현한 거지?"

시몬이 주먹을 맞부딪히며 쓰게 웃었다.

"그럴 의도는 절대 아니고, 이기려고 용을 쓰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헥토르가 괜히 신경 안 썼으면 좋겠는데."

네 사람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수업 두 개를 연달아 듣는 바람에 조금 늦은 점심식사였다.

빈자리에 앉은 딕이 메뉴판을 보고 말했다.

"난 치킨 커틀릿."

"나도."

남자들은 빠르게 메뉴를 정했다.

소스가 교복에 묻을까 봐 우아하게 앞치마까지 입은 메이린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참견할 부분 아닌 거 아는데. 새로운 것 좀 먹어봐. 어쩜 1학기 때 입맛이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냐?"

"후후, 안전빵이 최고지! 섣부른 도전정신은 하루를 망치는 법!"

그렇게 말한 딕이 히죽 웃었다.

"그렇게 훈수 두는 넌 뭐 고르는지 한번 보자."

"흥."

메이린은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살폈다.

"그럼 난 콩자반을 곁들인......."

"우에에에엑!"

갑자기 구토음이 들렸다.

메이린이 째릿 딕 쪽을 노려보자 딕이 나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다시 메뉴판을 보았다.

"콩자반......"

"구에에엑엑!"

"쿨럭! 우욱! 우에에에엑!"

"아, 진짜! 어떤 새끼들이야!"

메이린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먹던 학생들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구토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근처의 또 다른 몇몇 학생들도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리고 있었다.

"왜 저래?"

"D반 애들인 것 같은데."

시몬과 조원들을 물론, 다른 학생들도 당황해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조용히 메뉴판을 읽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조심스럽게 메뉴판을 덮어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제안했다.

"우, 우리 다른 식당으로 갈까요?"

다른 세 사람은 조용히 동의하며 메뉴판을 덮었다.

* * *

하지만 다른 식당들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구토를 호소하며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바닥에 부침개를 펼치고 있었다.

메이린은 입맛 다 사라졌다며 투덜거렸다. 결국 네 사람은 매점에 가서 샌드위치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다음 수업을 들으러 들어갔다.

오늘의 마지막 수업은 별야 교수의 맹독학 수업이었다.

맹독학관 건물의 강의실. 1인 1마법솥이 배치된 공간에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야 교수님이 수업을 한다니, 잘 상상이 안 돼. 어떤 수업을 해주실지 궁금하긴 하다.'

시몬이 긴장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별야와 조교들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크, 크흠.'

'시선을 둘 곳이 없네.'

별야는 개학식 때 입었던 정장이 아니라, 그 누더기 같은 야생의 차림 그대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성큼성큼 강단에 올라온 그녀가 퍼질러지듯 털썩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까닥하자, 조교들이 쩔쩔매며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 저 사람들.......'

시몬은 조교들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딕도 눈치챘는지 한마디 했다.

"랭 교수님의 조교진 그대로네."

사실 키젠 본부나 원로들은 이들을 그리 탐탁지 않게 보고 있었다. 랭이 암살당하고 성녀가 프란체스카에게 들러붙는 동안, 가장 가깝게 생활했던 조교들이 아무런 이변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물론 이번 일은 키젠 전체가 속아 넘어간 사태였고, 이들에게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쪽 문제를 떠나 이번 맹독학 교수 교체로 랭의 교수진은 전원 실업자가 될 운명이었다.

그렇게 조교들이 울적한 마음으로 로크섬에서 떠날 준비를 하며 짐을 싸고 있는데, 놀라온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조교진을 짜야 한다고? 아! 귀찮아! 그냥 하던 대로 해!

이변이 일어났다.

별야라는 괴인이 몸 하나만 달랑 가지고 맹독학 교수랍시고 키젠에 넘어온 것이다. 그녀는 랭의 조교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조교들은 섬기던 교수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났다는 무능력한 낙인만 찍힌 채로 쫓겨날 뻔했지만, 새로운 교수가 그들을 받아주면서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생겼다.

당연히 조교들은 별야를 위해서라면 쓸개도 내어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솟아오른 상태였다.

출석을 부른 여성 조교가 별야에게 걸어가 낮은 자세로 말했다.

"교수님. A반 전원 출석했습니다."

"어어."

한 차례 늘어지게 하품을 한 별야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성큼성큼 걸어와 교단 앞에 섰다.

앞자리에 있던 학생들은 슬쩍 별야와의 시선을 피했다. 다소 높은 노출도의 누더기 의상은 역시 17세 학생들이 보기에는 퍽 난처했다.

"흠."

그녀가 교과서를 펼쳐 보았다.

아직 1학기 교과서의 분량이 남았다. 이 진도를 모두 나간 뒤에 2학기의 새 교과서를 쓰라는 게 키젠의 지침이었다. 학생들도 모두 배운 부분까지 교과서를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팔랑 팔랑.

"대체 이딴 걸 왜 가르치라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 진짜."

몇 장 넘겨보던 그녀가 교과서를 툭 덮었다. 그러곤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린 그녀가 삐쭉삐쭉한 삼각형의 상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첫 수업은 화두를 던지고 시작해야 간지 난다매? 좋아. 독이란 무엇인가."

그녀가 칠판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분필을 들고 크게 하나의 글씨를 썼다.

물론 저 글씨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대륙 공용어가 아니라 초원의 마르라트족들이 쓰는 상형문자였으니까.

"인류의 역사는-"

분필을 내려놓은 그녀가 주먹으로 칠판을 탕! 쳤다.

"독의 역사이기도 하다."

칠판이 금이 가며 후두둑 파편이 떨어졌지만 별야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의 죽음 전체를 놓고 보면, 사실 인간들끼리 싸우다 뒈진 건 얼마 안 돼. 독은 질병이고 질병은 전염된다. 옛날 대륙 인구의 1/3을 죽였다는 혈사병 같은 사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 결론은 수명 온전히 다 쓰고 천수를 누리고 가는 사람들 보다, 병세로 뒤지는 사람들이 더 많단 거다."

학생들이 멍한 표정이자 그녀가 히죽 웃었다.

"아~ 새끼들 표정 꼬라지 봐라. 내가 너무 넓은 범위를 이야기했나? 그럼 니들이 좋아하는 전쟁 이야기를 해보자. 전쟁에서 병장기로 찔려 죽는 건 사실 보잘것없는 졸병들이다. 희대의 영웅이나 권력가 등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자들이 진짜 날붙이에 뒈지는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아. 대장이 칼에 맞아 죽는 건 전력 차가 극단적으로 한쪽에 기울었을 때나 가능하거든."

그녀가 칠판에 쓴 글자 옆에 또 하나의 글자를 더 썼다.

"그래서 전쟁은 X나게 비효율적이란 거야. 걸림돌인 권력자 한두 명 죽이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쫄병들이 뒈져 나가야 하냐? 역사적으로도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들을 없앤 건 독과 질병이었어. 독은 X나 쉽고 편해. 그냥 먹고, 맡고, 숨 쉬게 하는 것만으로도 중독되게 할 수 있지. 이걸 안 쓰는 사람이 등신이야. 안 그러냐?"

그녀가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실용주의자라는 네크로맨서들이 이런 좋은 수단을 공부하지 않을 리가 없지? 강력하고 복잡한 독은 프리스트들의 정화로도 풀지 못해. 혹은 정화를 거는 사이에 이미 장기는 곤죽이 되어 있지. 우린 그 정도의 수준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녀가 분필을 던지며 다시 앞으로 나왔다.

"어휴! 주절주절 서론이 길었다 새끼들아! 니네 부총장이 꼭 이런 거 하라고 시켜서. 이제 바로 이 몸의 맹독학 실습으로 들어가마!"

조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시몬은 꿀꺽 침을 삼켰다.

대체 어떤 수업을 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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